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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데트의 노래
프란츠 베르펠 지음, 이효상.이선화 옮김 / 파람북 / 2024년 9월
평점 :
베르나데트의 노래
이 책은 소설이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 루르드의 성모 발현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이란 이런 내용이다.
1858년 2월 11일부터 프랑스 루르드에서 성모 마리아가 베르나데트 수비루(Marie Bernarde "Bernadette" Soubirous, 1844년 1월 7일 ~ 1879년 4월 16일)이란 소녀에게 나타났다. 모두 18번 나타났는데 당시 14살의 가난한 소녀였던 그녀는 돌아가는 상황을 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여인을 만났다.
이 책은 이 소녀를 비롯한 가정, 그리고 마을에 그 뒤로부터 일어난 일들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있는데, 여러 매체에서 다루고 있는 성모 발현 사건의 기록보다도 더 심층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물론 소설이니까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건의 실체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문>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가’ 내 대답은 이렇다.
이 책에 나오는 기념비적인 사건들은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이다. (...........) 나의 서술은 이 진실성을 조금도 왜곡하지 않을 것이며, 시인으로서 창작의 자유를 다만 이 작품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설명이 지루하게 길어져 생기를 잃지 않도록 시간의 길이를 압축하는 데에만 사용할 것이다. (14쪽)
이 책의 작가인 프란츠 베르델에 대해 잠깐 언급할 게 있다.
작가 프란츠 베르델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와 인연이 있다.
부인이 알마 말러인데 그녀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이다. 구스타프 말러가 1911년 심장병으로 타계하고 나중에 프란츠 베르델과 알마 말러는 부부가 되었고 그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이 책은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 발표한 작품이다.
등장인물들
이 책의 말미에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던 중에 말미에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책을 펼쳐들면서 일단 앞에서부터 읽어가기 때문에, 이것 놓칠 수가 있으니 독자들은 이 점 참조해서 먼저 뒤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책을 편집하면서 등장인물 소개를 앞부분에 배치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많다. 인물들이 속한 기관들도 다양하다.
주인공인 베르나데트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 지역의 인물들을 비롯해서 국가, 가톨릭 교회, 그리고 느베르 수녀원까지 프랑스 나라 전체가 총동원된 듯하다.
베르나데트는 이런 아이였다.
주인공 베르나데트는 어떤 사람이었나? 아니, 어떤 아이였나?
그것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이 있는 가난한 집 아이다. 이제 14살인데 학교에서 공부도 별로 하지 못하고, 똑똑한 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런 아이다.
베르나데트는 이 순간까지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몰랐다. (81쪽)
그 고귀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 그녀는 마치 사랑에 빠졌으나 자신의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연인처럼 고통받고 있다. (94쪽)
베르나데트는 멍청해서 그런 이야기를 꾸며내지 못해.
분명히 배르나데트는 거짓말은 안해. (125쪽)
지금 상반된 두 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만이 여인에 대해 알고 독점하고 싶은 감정과 온 세상에 알리고 함께 여인을 보고, 기쁨을 나누고 싶은 감정이다. (127쪽)
난 여인과 말할 때, 여기서 말하는데...
여기서라고 말할 때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기의 가슴을 가리킨다. (155쪽)
뛰어난 인물 심리 묘사
그런 아이, 베르나데트가 어느날 신비체험을 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마을에 퍼지고, 그게 일파만파 프랑스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그러자 소녀를 둘러싼 다양한 기관들이 등장하여, 논쟁의 소용돌이로 진입하게 된다.
시장, 경찰서장, 검사, 판사, 학교 교장, 가톨릭의 주교, 신부, 수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베르나데트의 체험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피력한다.
이때 저자가 각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그 사건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마치 살아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몇 번이고 토론의 장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소설의 묘사 또한 치열하다.
그러한 장면을 읽어가면서, 어떤 한 사건에 대하여 처해있는 입장에 따라 이렇게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그러한 입장 또한 사건의 진척에 따라 변하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루르드의 성모 발현의 시간별 기록
이 소설은 루르드의 성모 발현 사건을 시간별로 추적하고 있다.
그래서 맨처음에는 주인공 베르나데트의 가족 이야기부터 다루고 있다. 어떤 가정인가, 그녀는 어떤 아이였는가, 그리고 사건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또한 그후의 모든 과정, 그녀가 죽는 모습과 그 뒷이야기까지.
이 책을 통하여 어떤 다른 기록보다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기록된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나오는 데에는 저자의 인생 역정도 한몫을 한다. 저자는 나치를 피해 도주하던 중 프랑스의 루르드에 잠시 들르게 되었고, 거기에서 이 놀라운 사건의 실체를 접하게 된다.
그렇게 나치를 피해 다니던 중에 만난 이 이야기를 듣고, 저자는 모종의 맹세를 한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 미국의 해안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제일 먼저 ‘베르나데트의 노래’를 쓰겠노라고. (14쪽)
저자는 다행하게도 나치의 손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그는 그때의 맹세를 잊지 않고, 이 소설을 쓴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은 독자들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궁극적인 생명의 가치에 무관심하며 조롱하는 풍조에 염증을 느꼈다는 저자의 심정(15쪽) 또한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내용의 진실됨과 저자의 간절함을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