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홀랜프 2 - 메시아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평점 :
홀랜프 2
1권에 이어 2권에 그 후속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데, 1권 말미에 등장인물이 더해진다.
바로 움스크린에서 태어난 선우희, 홀랜프를 물리칠 수 있는 구세주 역할을 맡게 되는 인물이다.
그렇게 선우희가 태어나고 5년, 그러니까 그들이 벙커에 들어간지 6년 째 되는 날, 주인공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온다.
그들이 그 안에 있는 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기간 동안에 홀랜프와의 두 번의 대전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 중 살아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홀랜프의 편에 선 존재가 되었는데, 그 명칭을 페카터모리라 한다.
페카터모리, 낯선 용어다.
그런데 그 용어는 낯설지라도 그 내용은 우리 역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아마 저자는 그걸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 6년이라는 기간과 그 기간 동안에 홀랜프의 강압, 회유에 넘어가 홀랜프의 편이 되어버린 사람들, 무언가 감이 오지 않는가?
강한 생물이 지배하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고. 게다가 우리처럼 올바른 정신을 가진 생물체가 더 나은 세상으로 모두를 이끌어 나갈 테고. 인간은 굳이 홀랜프가 아니어도 망했을 종이야. 다행히 홀랜프의 축복이 내려 우리를 이렇게 새로운 진화체로 만들어준 게 아니겠나? (1권, 332쪽)
1권에서 인용한, 페카터모리 알파라는 인간이 내뱉은 자기 변호 중 한 구절이다,
그 안에 숨겨진 논리, 어디선가 들은 것 같지 않은가?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다.
그렇게 지상으로 다시 나온 주인공들과 지상에 남아 홀랜프에 대항하던 사람들과 합세하여
홀랜프를 몰아내기 위한 전투를 시작한다.
저자는 그 과정을 아주 상세하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그 과정을 굳이 여기에서 상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소설에서 언제나 주인공은 어려움을 겪고 살아남는 법이니까.
그런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생각하고 기록한 저자의 노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에, 또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그런 투쟁 과정을 독자들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고, 기억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하나 말해두자면, 아마 수퍼맨 등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전투 장면이 떠오른다. 슈퍼맨 등 주인공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어빌리스의 소유자가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자유자재로 몸을 컨트롤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타이틀이 예사롭지 않다.
2권에서는
프롤로그 : <인간은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
에필로그 : <신은 자기 뜻대로 실행한다.>
1권에서는?
1권을 꺼내 다시 찾아보니, 역시 같은 말이다.
<인간은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 <신은 자기 뜻대로 실행한다.>
왜 저자는 그 말로 이 책의 처음과 끝을 마무리했을까?
인간에 대한 성찰이 엿보이는 구절이 많이 보인다.
“인간의 궁극적이고 완전한 목표는 영원히 산다거나 부자가 된다거나 건강하다거나 하는 그런 육체의 것이 아니야. 인간의 삶은 결국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을 깨닫는 과정이거든. 태어날 때 육체의 완성을 거쳐 정신적인 발전을 이루다가 결국 더럽게 썩어지는 육체는 버리고 정신과 영혼만 가져가는 거지. 그러니 진정으로 인간이 갖고 싶은 것은 결국 더러움에서 분리된 상태, 코데시(Kodesh), 즉 거룩하기 위함이야.” (2권, 9쪽)
이 모든 일을 예상하고 대비한 최박사의 인간론이다. 이 말을 2권 초두에 심어놓은 저자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코데시(Kodesh)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히브리어다.
히브리어로 ‘잘라냄, 분리함,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 일반 세속적인 것이나 부정한 것으로부터의 탈퇴, 신성하고 성스럽고 순수한 것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그러한 거룩을 유지하고, 잃지 않기 위해 외계의 존재와 치열한 투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한 게 아닐까. 물론 외계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독자들 각자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