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 인간관계가 귀찮은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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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착 시스템 복원에 관한 종합보고서

 

이 책의 원제는 <回避性 愛着 障害>이다. 회피성 애착장해.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존 바울비가 전쟁고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정립한 이론이 바로 애착이론이다. (22-23쪽 참조) 그는 전쟁고아들이 아무리 영양을 충분하게 공급한다 할지라도 성장이 더딘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정서적 안정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모성애 박탈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했고, 그것을 애착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이 책의 저자 오카다 다카시는 그런 애착이론을 토대로 하여 현대인들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 맺는 것을 싫어하고 진심을 나누지 않는 경향, 즉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꼭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현대인의 대부분은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결혼이나 출산을 하려고 하지 않으며, 책임이나 속박보다는 자유를 선호한다는데 착안하여, 그러한 경향을 회피성 애착장애라 이름짓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애착 시스템의 복원에 관한 종합보고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애착이론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신이 원할 때 반응해 주는 존재에게 애착이 생긴다.(26)

 

애착은 인간의 생존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소로 작동한다. 아무리 먹을 게 풍족해도 애착이 없으면 행복을 느끼기 힘들고, 이것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28)

 

그런 애착에 관하여 저자는 분석을 시작한다.

그런 애착이 결핍되어 성장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저자는 그렇게 애착시스템의 붕괴를 진단하고, 붕괴된 애착시스템이 복원되지 않으면 개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봐도 행복한 삶이란 본질적인 문제에 의문을 던지지만,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봐도 인류의 대가 끊길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262)

 

개인적 차원의 문제

 

저자는 단순하게 애착이론을 이론으로서만 설명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애착 형성에 실패한 많은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그 중 그 어려움을 극복한 경우들을 소개 하고 있는데, 이는 애착형성에 실패한 것이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얼마든지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저자의 의도이다.

 

그런 예로 들고 있는 인물들이 에릭 호퍼(57), 일본의 시인 다네다 산토카(59), 헤르만 헤세(70), 소렌 키르케고르(120), 카를 구스타프 융(179), 존 로날드 로웰 톨킨(218), 등이다.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 나름대로 그 어려움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얼마나 힘든 시기를 겪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그런 인물들은 어쨌든 그 질곡의 시기를 건너고 지금 후세에 전해지는 것처럼, 인생을 구가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사례들이다.

 

사회적 차원의 문제

 

애당초 인간의 애착 시스템은 양육과 종족 보존을 위해 생겨난 것이다.(99) 그런데 애착 시스템이 원활하게 기능하지 못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가족은 풍비박산이 난다. 그래서 애착의 붕괴는 가족의 붕괴이며, 양육을 보호하는 구조(즉 사회)의 붕괴로 이어진다.

 

따라서 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애착시스템의 회복이 요청되는 것이다.

 

유의해서 볼 기법들

 

애착을 회피하려는 증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처 방법이 여럿 있는데, 이중 두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폭로요법(186),

불안이나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을 극복하는 기법으로서, 이 요법을 행할 때에는 우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여 그 것에 직면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런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 마음에서 도망치지 않고 계속하여 그 상황을 맞서는 연습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설 수 있다면 공포와 불안은 점차 희미해지면서, 회피하려는 마음을 없앨 수 있다.

 

모리타 요법(191)

힘든 일이 있을 때에 그 일은 방치해두고 다른 일에 매진하는 방법이다. 즉 어떤 일로 근심걱정이 찾아올 때에 다른 일에 온통 신경을 집중하여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어차피 죽을 것인데 - 하다보면 어느 사이 그토록 자기를 괴롭혔던 증상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즉 그 증상을 치료하고 싶어도 낫지 않지만 중요한 일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가지는 또 다른 가치

 

이 책은 일단 애착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고, 그 애착시스템이 고장난 경우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단순히 객관적으로 그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그러한 애착 회피형 인간에 해당되는지를 알아 볼 수 있으며, 만약 해당사항이 있다면 자가회복을 위하여 이 책에 제시되어 있는 여러 기법을 활용해 볼 수 있다는 점에 또 다른 가치가 있다.

 

또한 타인에 대하여 시선을 돌려보면, 지금까지는 우리 주변에 그러한 경향을 지닌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는데,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

 

인명의 이름 표기에 관한 건이 우선 그 하나.

이 책에서는 애착이론의 창시자를 존 바울비(John Bowlby)’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 관련 책에서는 많은 경우 그를 존 보올비라 부르고 있다. 외국인의 이름이니까 한글 표기는 나름대로 할 수 있겠지만보편적으로 부르는 이름을 두고 굳이 다른 표기를 하는 이유는? 번역자의 취향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낯설다.

 

두 번째는 전문적 용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이 책을 읽다가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했다. 처음 그 단어를 접했을 때에 그 의미를 몰라 헤맸다. 그런데 그 단어가 한두 번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열 번이 넘게 등장하니까 문맥상으로 그 의미를 짐작은 했는데, 그래도 미심쩍어 다른 경로를 통해 그 뜻을 알아보았다.

<ひきこもり[()もり] 은둔형 외톨이;

장기간 자신의 집이나 방에 틀어박혀 사회적 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상태; 또는 그런 사람.>

 

그 용어가 심리학에서 이미 전문용어로 인정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역자가 그 단어에 대한 뜻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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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다 -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공감 능력을 회복한 아이들
브루스 D. 페리,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 민음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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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조차,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행복한 사람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불행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된 사유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러나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할지라도 그들의 삶, 역시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말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브루스 페리와 마이아 샬라비츠 공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다>이다.

 

이 책에는 그것을 증명해주는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 등장인물들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에서 말해주는 그 불행의 나름의 모습들로, 얼마나 가슴아픈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저자들은 그 불행한 인생들을 이 땅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이끌어주는 실제 사례들을 글로 우리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런만큼, 저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추스르며 읽었다. 한 건 한건 케이스가 펼쳐질 때마다, 그래도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기도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이 책의 제목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다>이다. 그렇다면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태어나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쉬운 말이나,‘사랑받기 위해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

사랑받는다는 말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기에 그렇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받는다는 말인가?

 

저자는 그 말을 어떤 의미로 썼을까? 그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의 원제는 <Born for love: why empathy is essential and endangered>이다.

거기에 바로 힌트가 있었다. 바로 공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그 것에 공감을 적용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랑받는다는 말은 공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받기 위해서는 공감이 바로 관건이 된다는 말이겠다. 그런 나의 추론은 바로 <작가의 말>에서 증명된다.

 

<우리는 이 책을 위해 방대한 작업을 했다. 교육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 중 핵심내용만을 뽑아 설명하고자 했다. 공감은 매우 광범위한 주제기에 관련내용을 취사선택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단순화 된 사례도 있다.>(11)

 

또한 <프롤로그>에서는 바로 이점을 언급하며 시작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관심을 보일까? 우리는 정말 사랑받기 위해태어났을까? 이런 질문들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공감이다. 공감은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하고, 서로를 치유하거나 상처 입히는 인간관계의 원동력이다.>(12)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받는다는 것은 공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프롤로그의 제목인 <우리는 과연 사랑을 충분히 주고 있을까>라는 말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하고 있는가?’라고 바꿔도 좋을 것이다. 또는 공감을 주고 있는가로 대치해도 좋을 것이다.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럼 공감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저자는 공감에 대해 여러 가지로 분석을 해 놓고 있다. 공감이란 무엇이며 공감에 대한 현대의 상황은 어떤 정도인가, 까지.

 

몇 가지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아동기에 공감 능력이 제대로 발달하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특정한 경험 및 ,행동이 필요하다.(15)

 

마이아는 좀 더 개인적인 이유로 공감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오다 어린 시절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으로 괴로운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은 강렬한 욕망은 물론 그것이 불가능한 때 자신 안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극도의 고통에 시달려 왔다.

 

이 책은 사회 전체에 공감의 물결이 확산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공감은 사실상 신뢰, 이타심, 협동, 사랑, 관용과 같은 모든 사회적 가치의 근원이다. (16)

 

그러한 공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랑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우리는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감능력의 부재로 인하여 현대 사회는 위기에 처했고, 결국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오늘날 미국 사회의 공감능력은 위기에 처했다. (14)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사례들

 

그 공감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저자들은 여러 사례를 제시한다.

그 어느 것이든 좋으니 차분하게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 사례들을 몇가지 소개하고 싶은데, 저자가 소제목에 압축하여 표현한 타이틀이 그 내용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눈맞춤으로 시작되는 인간관계

나에게만 사랑을 주세요

개별적인 돌봄의 부재

공감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사회적 맥락

반복적인 애착 박탈이 가져온 잔인성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공감하는 존재로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는 또래 집단의 압력

불평등한 사회에서 약자가 받는 스트레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공감 결핍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

 

이런 사례들을 통하여 저자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공감능력을 회복한 많은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났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몇가지 빠트리지 말고 읽어 볼 부분들

 

공감능력에 영향을 주는 인생주기

 

에필로그에서 440-441 쪽에 나오는 공감능력에 영향을 주는 인생주기에 관련된 글. 꼭 읽어볼 일이다.

 

이렇다.

<사회의 공감능력 발달에 영향을 주는 인생주기에는 영아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우리는 많이 접해보지 못한 부류의 사람과는 제대로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중략)....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는 연장자와도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연령별 분리는 사람들의 관계 형성 기회를 제한한다.....(하략) >(440-441)

 

부록, 꼭 읽어라

 

이 책의 부록에 나오는 것들, 정말 요긴하고 중요한 내용이 담뿍 담겨있다. 그러니 저자의 감사의 말까지 읽고 다 읽었다고 책을 덮지 말고, 꼭 부록에 나오는 글을 모두 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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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
서영 지음 / 책벗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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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새롭다, 특이하다, 놀랍다.

 

이 책은 특이하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대로 중국 역사를 다루지만 그 중국역사 속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 오지 못했던 인물들을 다룬다. 물론 그 중에는 우리가 많이 접해 본 인물도 있다. 서시, 왕소군, 측천무후. 그러나 그 이름을 들었다고 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중국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 그저 말타고 스쳐 지나가듯이 보고 알 뿐이다. 그러니 그런 인물을 포함하여 다른 인물-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는 -들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이 책은 특이하다. 이런 이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이청조, 황도파, 진양옥?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럼 중국 최초로 황후란 타이틀을 얻은 인물은? 그리고 중국 정사에 기록된 단독으로 기록된 여장군은? 그리고 이런 것도 있다. 중국 글자인 한자(漢字), 그 중에서 한자를 새로 만들어내어 자신의 이름으로 정한 여인이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아시는지?

 

이렇듯, 이 책은 우리 독자들이 지금껏 모르고 있던 인물들, 모르고 있던 사실들이 담뿍 들어있는 책이다. 그만큼 특이하다. 다른 중국역사를 다룬 책, 또는 중국 인물들을 다룬 책들과는 차별성이 있다. 그러나 더 가치가 있는 것은 그런 인물들을 발굴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저자의 기억을 되살리는 자세가 특이하다.

 

기억과 기록

 

왜 저자는 책의 제목을 <중국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이라고 했을까? ‘기록이 아니라, ‘기억’. 뭔가 뜻이 있으리라!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기록이라는 말 대신에 기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애썼다.

 

기억기록의 차이가 무엇일까?

대개의 경우 기록에 의지하여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니. 기억은 큰 개념(합집합)이요 기록은 작은 개념(부분집합)이다. 따라서 기억은 총체이고, 기록은 그중의 일부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먼저 기록을 충실하게 따져봄으로서 기억을 되살리고, 그 다음에 기록에 없는 부분을 저자는 저자의 방식대로 어떤 기준에 의거하여 복원하지 않았을까?

그런 나의 추론은 저자의 글 <글을 마치면서>에 의해 증명되었다.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되 무미건조한 서술식을 피해 이야기를 엮는 것이 이해와 재미를 돕는데 효과적이라 생각되었다. 그런 이유로 책의 내용에 필자의 주관적인 부분이 들어간 것은 부인할 수 없다.>(274)

 

또한 저자는 덧붙인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들의 입장이 되었을 때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과 고민도 해 보았다.>(274)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상상을 충분하게 읽을 수 있었고, 또한 거기에 스며있는 고민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역사적 고증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먼저 기록 -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다음에 기억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을 충실하게 했다는 것을 글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인용한 저작물들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인물들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많은 자료들을 섭렵하고 있다.

저자가 섭렵한 자료에는 비단 사료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고전의 저작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저자가 우리에게 전거로 들고 있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기. 국어, 좌전, 제자, 묵자, 장자, 맹자, 한비자, 한서, 자치통감,

심지어 고려 시대에 편찬된 명심보감에서도 반소를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91)

 

기록의 한계 또는 해석의 한계

 

그렇게 인물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가운데, 저자는 기록이란 것의 한계를 뚜렷하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한 인물에 대하여 회복하여야 할 기억이 기록에만 의존할 때에 얼마나 미흡하게 되는지를 사례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예를 들어보자면, ‘진시황 배후의 여상인인 과부 청이다.

 

저자는 <사기, 화식열전>에 청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고 먼저 소개하고 있다.

<진시황은 청을 정부(貞婦)로 인정해 정중하게 대했으며 그녀를 위해 여회청대를 지었다.>(39)

 

<위의 기록에서 정부의 뜻을 일반적으로 지조가 굳센 여인이라고 해석한다.>(39)

 

그런데 저자는 이에 대한 다른 해석도 소개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청이 무녀(巫女)라는 설이 있다. 사기에 기록된 진시황은 청을 정부(貞婦)로 인정해라는 대목에서 절개를 지킨 여인의 뜻도 있지만 점치는 여인의 의미도 있다.>(41)

 

그러니 기록에 의지해 한 인물을 기억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같은 인물에 대한 다른 기록을 찾아보기도 하고, 또는 다른 해석을 제시하기도 하며, 부족하기 마련인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렇게 기록을 살려내, 한 인물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려고 애쓴 저자의 수고가 고맙다.

 

그래서 이 책, 믿을만하다.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남성 위인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희미한 기록들이지만 그녀들의 일대기는 ..>(5)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료의 부족함을 어떻게 보충하고 채워나갔나 하는 데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한 역사의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라 자연 사료가 불충분할 수밖에 없는데, 그 부족함을 저자는 어떻게 채워나갔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기억을 되살리는데 과거의 사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일단 많은 사료들을 인용해 그 인물들을 그려낸다. 그 다음에 사료뿐만 아니라, 각종 저술에서 언급된 인물들의 면면도 살펴보면서, 사료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해 나간다.

 

게다가 그들을 과거에만 묶어두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이나 유물의 사진을 함께 실어 그들이 현재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도 아울러 언급하고 있으니, 그 기억, 참으로 생생하기까지 하다. 해서 이 책은 실로 새롭다, 특이하고 내용은 놀랍기까지 하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을 살펴본 결과, 우리에게 생소한 중국의 인물들, 그것도 여성들을 우리에게 소개하는데 있어, 저자가 얼마나 열과 성을 가지고 접근했나를 알 수 있다는 데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고, 그래서 이 책은 믿고 읽을만하다.

 

 

 

또한 저자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혹시 중국 역사에 문외한들이 이 책을 잡으면서 어려운 용어나 배경이 되는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이야기에 흥미를 잃어버릴까봐, 그들을 위한 여러 장치를 해 놓았다.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그런 독자들을 위한 해설을 삽입하여 놓은 것이 그 첫째이고, 풍부한 사진 자료들을 삽입하여 시각적으로도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 둘째이다.

 

참고로

 

이 서평을 쓰면서 서론에 몇가지 언급한 것이 있다.

우리 독자들이 흔히 들어보지 못한 인물을 예시하느라, 중국 최초로 황후란 타이틀을 얻은 인물은? 그리고 중국 정사에 기록된 단독으로 기록된 여장군은 누구인지 물었다. 그리고 중국 글자인 한자(漢字), 그 중에서 한자를 새로 만들어내어 자신의 이름으로 정한 여인이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물었는데,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게 됐겠지만, 그 답은 이렇다.

 

중국 최초로 황후란 타이틀을 얻은 인물은? 유방의 부인 여치(52)

중국 정사에 기록된 단독으로 기록된 여장군은? 진양옥( 263쪽 이하)

 

중국 글자인 한자(漢字), 그 중에서 한자를 새로 만들어내어 자신의 이름으로 정한 여인이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바로 측천무후이다. (144)

 

 

 

<일부 사람들은 무조(武 )를 (측천무후의) 본명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그녀가 황제가 될 무렵 조()라는 한자를 새로 만들어내어 자신의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이 신생 한자에는 해(日)와 달(月)이 하늘(空)에 떠있는 모양처럼 천하를 비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몇가지 더!

 

중국에서는 명절인 설이 되면 집집마다 복(福) 자가 적힌 네모난 종이를 붙이는 풍습이 있는데, 이때 희한하게도 복 자를 거꾸로 하여 붙인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그 유래에 대하여는 이 책의 257쪽을 살펴볼 일이다.

 

주원장이 싫어하는 글자가 있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과연 그 것이 사실일까?

주원장은 황제가 되기 이전에 한 때 승려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황제가 된 후에 광(), (禿), () 자를 싫어하여 그 글자들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이 책에서는 그런 말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데,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이 책의 256쪽을 살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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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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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똑똑하다.

 

이 소설에서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아서와 조지. 서양사람들이니 이름이 길다. 정확한 이름을 적어보자면, 아서는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조지는 '조지 어니스트 톰슨 에들지' (George Ernest Thompson Edalji)(286)이다. 둘 다 실존인물이다. 그러니 작가 줄리언 반스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실제 사건을 소설화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호흡이 길다. 그래서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야 한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읽었다. 하나하나 작가의 숨소리까지 경청하면서 차분하게 읽었다. 그렇게 해야 읽는 맛이 나는 소설이다. 이 책의 내용은 실제 사건인만큼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으니, 이제 작가가 어떤 식으로 그것을 형상화 할 것인지, 그게 바로 이 소설을 읽는 재미가 되겠다.

 

그가 구사하는 소설 기법들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줄거리는 생략한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직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만나지도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사람 - 언제 친구가 될지 모르나, 아직까지는 서로 모르니 친구가 아니다 - 이 등장하는데, 각각 따로 등장한다. ‘따로라는 말에 걸맞게 작가는 그 상황을 각각의 처소에서 따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아서'라는 타이틀로 구분하여 아서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또 '조지'라는 타이틀 아래 조지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식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진행되는 각자의 이야기를 얼른 이해하기 쉽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서술하다 보니, 독자들은 이런 조바심을 간직한 채 책을 읽게 된다.

<언제 '아서 &조지'라는 타이틀이 등장하지? 그래야 이 친구들이 만날 수 잇을 것 아닌가?>

 

그런데 여간해서 그 고대하는 타이틀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게 바로 독자들을 감질나게 하는 방법이 아닌가? 두 친구가 조우하기를 학수고대하며 독자들은 기대하고 있는데, 그 날이 오기를, 아서와 조지가 따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등장하기를 염원하게 만드는 그 기법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소설기법인가 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우선 1권을 읽었다.

 

그러면 두 친구는 언제 조우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그냥 넘어가련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서또는 조지로만 등장하던 내용에 드디어 변화가 보인다 

바로 147쪽이다. 거기 타이틀이 아서& 조지로 되어 있다. 드디어 아서와 조지가 만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잠깐만! 아직 둘 사이에 만나야 할 어떤 계기가 없었다. 둘은 각자의 처소에서 그저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니, 아직 둘은 만날 채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만난다면? 스토리에 커다란 균열이 생길 뿐이다. 그렇다. 그런 나의 생각이 맞았다. ‘아서& 조지라는 타이틀 아래 진행된 이야기에 둘의 만남은 없다.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인데, 이 타이틀 하에 진행된 이야기를 통하여 둘은 만난다는 것이리라.

그게 무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거기에 일단, 표를 해주고 읽어가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아도 좋을 듯하다. 거기 무언가 힌트가 있다!

 

사건이 벌어진다?, 아니 이것은 사건이 아닌가보다.

 

이 소설에서 드디어 사건이 벌어진다. 그렇게 아서와 조지를 넘나들면서 각자 인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부모님은 평안하신지, 마치 안부를 묻고 다니던 이야기꾼처럼 행세하던 줄리언 반스, 자세를 고쳐 잡고 꺼낸 이야기가 바로 조지와 그의 가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건이다. 영문도 모른 채 그와 그의 가족이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괴롭힘의 주체를 알 수 없다. 조지나 그 가족들에게도, 독자에게도 어떠한 힌트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괴롭히던 그 사건이 일부의 마지막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이렇게!

<하루가 지난다. 일주일이 지난다. 한 달이 지난다. 두 달이 지난다. 괴롭힘이 멈춘다. 괴롭힘이 중지되었다.> (98)

 

그러나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바로 괴롭힘의 시작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그렇게, 그런 식으로 괴롭힌다.

아니,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 되는거야? 그냥 흐지부지 되는 거라면 굳이 왜 그런 사건을 발생시키고, 진행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뚝, 하고 끝을 내는거야. 이게 뭐야?’하는 의아함이 머리에 메아리치기 시작하니, 어찌 괴롭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제 이야기는 제 2장으로 넘어간다. 2장의 타이틀은 <결말을 동반한 시작>이다.

그렇게 독자들을 한껏 기대에 부풀게 한 다음에 슬그머니 한 사건을 언급한다. 바로 인근 마을의 가축들이 공격을 받아 죽어가는 사건.

 

누구는 태평연월을 구가하고 누구는 고생한다. 친구 맞아?

 

이어지는 제 2장에서 작가는 여간해서 그 이빨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조지도 아서도 태평연월을 읊는다. 나름대로 고생은 하지만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된다. 아서는 작가로 의사로서 명성을 쌓게 되고, 조지도 사무변호사로 안착을 한다. ‘이제 그들이 제자리를 잡았으니 그 이야기는 그 정도로 족하다. ‘이제 제발 사건을 들려다오라고 독자들이 아우성 칠 때가 되었음을 아는 줄리언 반스, 드디어 이빨을 드러낸다.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아까 포스트잇을 붙여놓기를 권한 그 장면 기억하는지?

그 장면이 공연히 있었던 게 아니다. 드디어 시련이 시작된다, 조지에게!

 

어떤 사건인가? 공식적으로는 이렇다. 사건의 결말까지 포함하여 말하자면, “징역 7년 언도. 웨얼리의 가축 살해사건. 범인은 동요하지 않았다.”(293)는 것이다. 조지 어니스트 톰슨 에들지가 그 사건의 피고가 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조지에게 세월은 인고의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인 <용감한 친구들> 중 한 명인 아서는 그저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부인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그야말로 태평연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 조지와 만나 용감한 친구 사이로 발전하나? 한 쪽 친구는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하고 있는데, 다른 한 쪽 친구는 그렇게 태평으로 지내고 있으니, '이거 친구 맞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아직 작가인 줄리언 반스는 독자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을 만나게 해서 친구로 지내게 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궁금한 분들에게 이 소설 제 2권이 마련되어 있다!

 

아 참, 깜박할 뻔했다.

1권 마지막에 줄리언 반스, 한마디 잊지 않고 무언가 말했다. 409쪽이다. 그나마 말해주니,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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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 -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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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봐야 할 생각들, 그리고 지녀야 할 무기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는 말한다. 결코 모난 돌이 되지 말라고, 그저 둥글둥글하게 살라고. 그러니 제발 아무 생각없이 남이 생각하는 대로, 남이 행동하는 대로 그 뒤만 따라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말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생각없는 백성은 죽은 것이다. 그러니 제발 생각좀 하고 살아라...

 

그래서 혹자는 생각해 보려고 할 것이다. 대체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가 맨 먼저 앞에 놓인 걸림돌이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그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그 것에 대한 속 시원한 안내서가 바로 이 책, <생각해봤어?>이다.

물론 이 제목이 형태는 과거형이다. 과거에 그런 생각을 해 봤냐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이 제목을 대하면 주눅이 들지도 모른다. , 한번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과거에 설령 한 번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할지라도, 걱정- 이것도 생각인가? - 하지 말지니,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그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선명하게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기에그런 염려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도면 이 책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이렇게 세 분이 처음으로 같이 쓴 책이라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다음 몇가지 나를 생각하게 만들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더듬어 볼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은 나에게 다음의 네 가지 방향에서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다,.아마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된다.

 

첫째, 우물안 개구리 격으로 전혀 그런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있다.

 

둘째, 뭘 알아야 생각하고 말고가 있지, 대체 뭐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생각을 하고말고가 있지?

 

정보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에게는 귀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셋째, 내 앞에 코가 석자인데, 사회 돌아가는 형편에 생각이 미치나요?

그런 나에게, 그런 독자들에게 누군가 생각거리를 짚어주니, 얼마나 좋은가?

 

그마저도 아니라면 이런 카타르시스라도!

거기에서 나오는 촌철살인 멘트 하나.

 

: '' 누리당, 정말 세요

: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은 없는 겁니다.

: 그런데 이 꽃은 365일 붉어요.

: 조화라 그래요...... (345) 이런 촌철살인을 어디 가서 들어볼 수 있을까?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생각이란 무기하나씩

 

그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에 수록된 내용들이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꼭 알아야만 하는 주제들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데, 적어도 이정도만은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전후사정을 꿰뚫고 있어야만, 야바위꾼들이 설쳐대는 이 사대에 허튼 소리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자들이 말한 바 삶에 필요한 무기라고 하는 것이 백번 맞다. 그런 야바위꾼들이 설쳐대는 이 사대에 우리들이 휘둘리지 않고 확실하게 주관을 잡고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고, 또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이런 말도 한다.

답이 분명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앞서 가는 사람들도 새롭게 바라봐야만 하는 문제가 있는데, 보통사람인 독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바로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저자들의 주장, 거기에 동의한다.

 

특히 소통과 공감이 이 나라에 살아나기를

 

여기 가슴에 특히 와 닿은 말은 의외로 서문격인 <책을 펴내며>에 들어있다.

 

<이 책의 내용이 다소 정밀하지 않을 수 있고, 읽은 이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소통과 공감은 머리가 똑 같아지는게 아니라, 함께 즐거워하는 마음 혹은 아파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5)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비단 이 책의 편집자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리더의 자리에서 한자리 하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런 생각 뼈저리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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