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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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똑똑하다.

 

이 소설에서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아서와 조지. 서양사람들이니 이름이 길다. 정확한 이름을 적어보자면, 아서는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조지는 '조지 어니스트 톰슨 에들지' (George Ernest Thompson Edalji)(286)이다. 둘 다 실존인물이다. 그러니 작가 줄리언 반스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실제 사건을 소설화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호흡이 길다. 그래서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야 한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읽었다. 하나하나 작가의 숨소리까지 경청하면서 차분하게 읽었다. 그렇게 해야 읽는 맛이 나는 소설이다. 이 책의 내용은 실제 사건인만큼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으니, 이제 작가가 어떤 식으로 그것을 형상화 할 것인지, 그게 바로 이 소설을 읽는 재미가 되겠다.

 

그가 구사하는 소설 기법들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줄거리는 생략한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직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만나지도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사람 - 언제 친구가 될지 모르나, 아직까지는 서로 모르니 친구가 아니다 - 이 등장하는데, 각각 따로 등장한다. ‘따로라는 말에 걸맞게 작가는 그 상황을 각각의 처소에서 따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아서'라는 타이틀로 구분하여 아서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또 '조지'라는 타이틀 아래 조지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식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진행되는 각자의 이야기를 얼른 이해하기 쉽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서술하다 보니, 독자들은 이런 조바심을 간직한 채 책을 읽게 된다.

<언제 '아서 &조지'라는 타이틀이 등장하지? 그래야 이 친구들이 만날 수 잇을 것 아닌가?>

 

그런데 여간해서 그 고대하는 타이틀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게 바로 독자들을 감질나게 하는 방법이 아닌가? 두 친구가 조우하기를 학수고대하며 독자들은 기대하고 있는데, 그 날이 오기를, 아서와 조지가 따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등장하기를 염원하게 만드는 그 기법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소설기법인가 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우선 1권을 읽었다.

 

그러면 두 친구는 언제 조우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그냥 넘어가련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서또는 조지로만 등장하던 내용에 드디어 변화가 보인다 

바로 147쪽이다. 거기 타이틀이 아서& 조지로 되어 있다. 드디어 아서와 조지가 만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잠깐만! 아직 둘 사이에 만나야 할 어떤 계기가 없었다. 둘은 각자의 처소에서 그저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니, 아직 둘은 만날 채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만난다면? 스토리에 커다란 균열이 생길 뿐이다. 그렇다. 그런 나의 생각이 맞았다. ‘아서& 조지라는 타이틀 아래 진행된 이야기에 둘의 만남은 없다.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인데, 이 타이틀 하에 진행된 이야기를 통하여 둘은 만난다는 것이리라.

그게 무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거기에 일단, 표를 해주고 읽어가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아도 좋을 듯하다. 거기 무언가 힌트가 있다!

 

사건이 벌어진다?, 아니 이것은 사건이 아닌가보다.

 

이 소설에서 드디어 사건이 벌어진다. 그렇게 아서와 조지를 넘나들면서 각자 인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부모님은 평안하신지, 마치 안부를 묻고 다니던 이야기꾼처럼 행세하던 줄리언 반스, 자세를 고쳐 잡고 꺼낸 이야기가 바로 조지와 그의 가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건이다. 영문도 모른 채 그와 그의 가족이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괴롭힘의 주체를 알 수 없다. 조지나 그 가족들에게도, 독자에게도 어떠한 힌트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괴롭히던 그 사건이 일부의 마지막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이렇게!

<하루가 지난다. 일주일이 지난다. 한 달이 지난다. 두 달이 지난다. 괴롭힘이 멈춘다. 괴롭힘이 중지되었다.> (98)

 

그러나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바로 괴롭힘의 시작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그렇게, 그런 식으로 괴롭힌다.

아니,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 되는거야? 그냥 흐지부지 되는 거라면 굳이 왜 그런 사건을 발생시키고, 진행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뚝, 하고 끝을 내는거야. 이게 뭐야?’하는 의아함이 머리에 메아리치기 시작하니, 어찌 괴롭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제 이야기는 제 2장으로 넘어간다. 2장의 타이틀은 <결말을 동반한 시작>이다.

그렇게 독자들을 한껏 기대에 부풀게 한 다음에 슬그머니 한 사건을 언급한다. 바로 인근 마을의 가축들이 공격을 받아 죽어가는 사건.

 

누구는 태평연월을 구가하고 누구는 고생한다. 친구 맞아?

 

이어지는 제 2장에서 작가는 여간해서 그 이빨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조지도 아서도 태평연월을 읊는다. 나름대로 고생은 하지만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된다. 아서는 작가로 의사로서 명성을 쌓게 되고, 조지도 사무변호사로 안착을 한다. ‘이제 그들이 제자리를 잡았으니 그 이야기는 그 정도로 족하다. ‘이제 제발 사건을 들려다오라고 독자들이 아우성 칠 때가 되었음을 아는 줄리언 반스, 드디어 이빨을 드러낸다.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아까 포스트잇을 붙여놓기를 권한 그 장면 기억하는지?

그 장면이 공연히 있었던 게 아니다. 드디어 시련이 시작된다, 조지에게!

 

어떤 사건인가? 공식적으로는 이렇다. 사건의 결말까지 포함하여 말하자면, “징역 7년 언도. 웨얼리의 가축 살해사건. 범인은 동요하지 않았다.”(293)는 것이다. 조지 어니스트 톰슨 에들지가 그 사건의 피고가 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조지에게 세월은 인고의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인 <용감한 친구들> 중 한 명인 아서는 그저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부인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그야말로 태평연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 조지와 만나 용감한 친구 사이로 발전하나? 한 쪽 친구는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하고 있는데, 다른 한 쪽 친구는 그렇게 태평으로 지내고 있으니, '이거 친구 맞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아직 작가인 줄리언 반스는 독자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을 만나게 해서 친구로 지내게 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궁금한 분들에게 이 소설 제 2권이 마련되어 있다!

 

아 참, 깜박할 뻔했다.

1권 마지막에 줄리언 반스, 한마디 잊지 않고 무언가 말했다. 409쪽이다. 그나마 말해주니,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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