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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
리샤르 콜라스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24년 8월
평점 :
할복
이 책은 소설이다.
마치 실제 인물의 전기 같은, 아니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할, 그런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해서 읽어가면서 내내 실존인물인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았지만, 아직까지?
주인공 이름은 에밀 몽루아, 진짜 이름은 볼프강 모리스 폰 슈페너.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그가 경험한 세상의 역사 경험은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만하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같은 상황이라 표현하면 어떨까?)
독일에서 영국의 폭격을 경험하고, 다시 베를린에 진주한 소련군을 만나고, 프랑스로 도망쳐 잠입, 신분을 프랑스인으로 바꾸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종군기자의 신분으로 한국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그러니까 세계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한꺼번에 겪은 유일무이(?) 한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장치가 너무나 정교하게 되어있어, 마치 실제 그런 인물이 실제 활동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니. 그게 작가의 역량이 아닌가 싶다.
독일과 프랑스의 혼혈로 태어난 그는 독일에서 살아가면서 전쟁의 와중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런 인연들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며, 그의 운명을 바꾸며 주인공을 주인공다운 인간으로 성장시켜간다.
작가가 마련하여 그에게 선사한 사람들 – 귀한 인연들
아버지 : 의사, 나치 독일의 군인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실험을 한다.
어머니 : 프랑스인, 피아니스트.
프랑스인 에밀 : 유대인 수용소에서 데려온 아이
일본인 겐소쿠 : 아버지의 의과 대학 동기, 일본에서 마루타 실험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프랑스인 클레베, 앙주 : 베를린에서 탈출할 당시 만난 프랑스인.
일본인 기자 J.T : 종군기자. 한때 731부대에서 마루타 관리 담당 (소위)
한국인 선희 : 마루타 출신, 주인공의 아내가 된다.
이런 인연들이 얽히면서 주인공을 인물로 만들어가는데, 주인공의 이런 회고가 마음에 와 닿는다.
살다보면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만남이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인생에 영향을 준 만남은 .......(314쪽)
그에게 그런 안 좋은 만남도 있지만 좋은 만남이 더 많았다. 그게 이 소설을 어찌보면 흐믓한 심정으로 읽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만나는 사람은 또 어떻게 우리 주인공을 도와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게 만들어준다.
이런 것 알게 된다.
냉전이란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조지 오웰 (295쪽)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가 떨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한 말이다. (318쪽)
유럽은 도시를 재탈환하는 전투를 할 때 대성당이나 역사 유적지를 파괴하는 것이 싫어서 무의미한 시가전을 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반면 미국은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해서 적군을 전부 쓸어버리는 전략을 사용한다. (322쪽)
과연 이게 사실일까, 궁금해진다.
전쟁 상황에서 이런 모습도
베를린 사람들은 평소처럼 규칙을 따르며 생활했고 타고난 담담함과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베를린은 공습으로 끔찍하게 파괴되었지만 공공 서비스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독일 제국 라디오 방송도 평소처럼 클래식 음악 공연 실황을 방송했고, 뉴스와 일기 예보를 내보냈다. (177쪽)
공습을 피해 지하실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장면에서...
소련군이 어디까지 진격해 올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187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총사령관으로 여러 전쟁터를 직접 누빈 외할아버지는 전쟁이 얼마나 비정하고 부조리한 살육인지 깨달았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외할아버지가 딸에게 독일어를 공부시키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상대 나라의 언어를 완벽하게 익혀 사고방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32쪽)
우리가 타락하는 것은 욕망이 너무 커서야. 우리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집중하느라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 (151쪽)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연민 없이 차가운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세상에서, 에밀은 살아갈 이유가 사랑에 있다고 생각했다. (238쪽)
다시, 이 책은? - 작가가 짚어내고 있는 것들
어쩌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작가의 취재력에 먼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더하여 생각할 점 몇 가지 적어둔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일까?
그런 덕목은 또 언제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전쟁에서는 그런 덕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치에 해당하는 것일까?
저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주인공 에밀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부모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지니고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보여준다.
그 사회의 지도자급 지위에 맞는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일을 할 것.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일이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는가 하는 점도 꼭 살펴야 한다.
그런 점을 저자는 주인공의 가냘픈 인생 위에 얹어 놓았다.
아버지는 의사로서 승승장구하지만 아우슈비츠에서의 그의 행적은 아들인 에밀에게 커다란 올무로 남게 된다. 그게 결국 이 책의 제목이 된다.
또한 한국전쟁을 취재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통해서 또한 인간이 그런 덕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사족 - 소설 속 울려나오는 음악들
볼프강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다. 해서 음악이 이 소설에서 흘러나온다.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 읽어가면서, 이야기에 따라 등장하는 음악들이 마치 BGM처럼 들리는 듯하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런 점도 이 책의 매력이 될 듯하다.
참고가 되리라 생각하여 색인을 만들어 보았다.
에메랑스 폰 슈페너 : 볼프강의 어머니다. 피아니스트
에메랑스 드 그라브 (결혼 전 이름)
엘리제를 위하여 (32쪽)
슈베르트 가곡 (34쪽)
멘델스존의 이중창 OP.63
<내 사랑을 한 마디에 실어> (37쪽)
멘델스존, 슈베르트, 바그너, 구스타브 홀스트 (38쪽)
<초심자들을 위한 작은 피아노 소나타> (41쪽)
Mozart Piano Sonata 16번 C장조 K.545 중에서 1악장. Allegro(초보자를 위한 소나타)
쇼팽 피아노 소나타 (51쪽)
모차르트 레퀴엠 (54쪽)
바흐 칸타타 (63쪽)
프랑스 가수 샤를 트로네 (67쪽)
<당신의 말을 잊어요>, <기쁨이 없어요>, <봄>, <노래하는 광인> (67쪽)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04쪽, 143쪽)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스와 나지코 (124쪽)
바이올린 스트라다바리우스 125쪽
지휘 한스 크나퍼츠부슈 (125쪽) - 실존인물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콘체르토 (180쪽)
연주자 게르하르트 타슈너 (180쪽)
지휘자 로베르트 헤거 (181쪽)
바그너 <신들의 황혼> (181쪽)
쇼팽의 <녹턴> (190쪽)
바흐 <아리오소> (190, 258, 394쪽)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3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