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붉은 태양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평점 :
붉은 태양의 저주
기후 위기, 이미 시작되었다.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그것을 느낀 사람이 많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예전의 지구가 아니라는 것, 몸으로 겪고 있다.
그런 기후 위기가 지속되어서 2056년쯤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소설은 시점을 2056년으로 빨리 감아돌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상해 보고 있다.
무대는 우리나라 서울 그리고 부산이다.
주인공은 박기범 박사, AI 전문가다.
그는 부인인 영희가 미국에 있기에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
미국으로 가려면 밖으로 나가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살고 있는 아파트가 폐쇄되고, 그뿐만 아니라 공항도 폐쇄되어 비행기가 오르내릴 수 없게 된 판국이다.
그런 문제가 첫 장부터 펼쳐진다.
따라서 이 소설은 주인공 박기범의 한국 탈출기라 할 수 있다.
위기 탈출, 함께 해야만
그런 일을 돕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주인공 한 명이어서는 될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자연히 몇 명 그룹이 지어지고, 그렇게 일이 진행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는지? 바로 무리를 지었기 때문이다. (75쪽)
저자는 이 말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인간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차례 타이틀을 보면, 그런 저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1. 뜨거운 세상
2. 출발 혹은 탈출
3. 혼자가 아닌 함께
4. 떠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데, 맨 처음에는 보통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한가락 했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험난한 여정에 각각 한몫씩을 해내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이다.
보안요원 – 한국항공 민항기 조종사 김승만
폐인 - 게이머, 마크툽 김지섭
노인 – 전 국방부 장관 정창수
아이 엄마와 아이 – 서울중앙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안정화.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요?
전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진행이 되면서, 어느 나라치고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가 없다.
미국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난민들이 몰려들어 온세계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국도 정부요인들이 미국으로 가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그런 가운데 기후 때문에 고온 현상으로 사람들이 생명은 유지한 채, 뇌기능은 점점 잃어 결국은 좀비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이부분에 대하여는 대통령에게 질병관리청장이 보고하는 내용에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 같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아찔한 내용이지만, 기후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주고 있으니, 잘 새겨 읽을 부분이라 하겠다. (273쪽)
그래서 결국 박기범 박사 일행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일본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 일본에서 비행기로 미국으로 가는 방법을 택하고, 배를 타기 위해 부산으로 떠나게 된다.
소설의 진행,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 김정금의 전작인 『은하수의 저주』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는 각각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 있다 한다. 그런 저자 소개를 읽고나서 이 소설을 읽으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강한 심증이 든다.
이 소설을 예로 들면, 영화는 이렇게 진행이 될 것이다.
한 쪽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 상황에 대처하는 장면이 시시각각으로 펼쳐진다. 널따란 회의장에 대통령 이하 관계자들이 모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대처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다른 한 쪽에서는 박기범 박사와 그 일행들이 서울 아파트를 탈출하여 일본행 배를 타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여기서 영화 <부산행>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그런 과정에서 그려지는 장면 장면이 긴박한 장면의 연속이기 때문에 정말 영화 관계자들이 혹할만도 하게 보인다.
인간에 대하여
우리는 코로나 보건 위기를 몇 년 동안 몸으로, 전체 삶으로 경험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성찰할 수 있었는데, 저자는 그런 성찰을 여기에서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속성이란 말이죠. 타인과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혼자 고립된 상황에선 정상적으로 살 수 없어요.” (230쪽)
“인간은 원래 모순덩어리잖습니까.” (231쪽)
“인간은 로봇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공격성을 드러내는 법이오.” (234쪽)
더하여 사람은 겉모습 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주인공 곁에 모여들어 무리를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 좋은 사례가 된다. 사람들은 각기 쓸모가 있는 법이다. 나중에야 박기범도 그런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대단한 사람을 몰라봤군.” (165쪽)
인공지능에 관하여
폴리의 뇌라고 할 수 있는 AI는 ‘왜’뿐만 아니라 ‘어떻게’도 ‘생각’하지 못 할뿐더러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읽거나 유추하지도 못한다. (80쪽)
폴리는 추론은 못하지만 기출 변형 문제는 곧잘 푼다. ‘얼마나 많은 사람’, 바이러스‘, ’감염‘을 조합하여 검색했을 것이다. (103쪽)
다시, 이 책은?
이 소설에서 기후 위기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거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대응은 굼뜨고 서툴다. 분초를 다퉈가며 거기에 대응해도 모자랄 판인데. 거의 속수무책이다.
그런 사태의 엄중함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일지, 어떤 자세로 기후 위기를 대하고 있는지 이 책은 엄중하게 묻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단지 소설로 읽을 게 아니라, 지금부터 30년후에 이 지구, 우리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를 집약해 놓은 기후 위기 대응 리포트라 생각하고 읽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