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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수술실
조광현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환자가 반드시 의사를 키운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의사를 키운다.

 

키운다라는 말이 있다. ‘크다라는 동사의 사역형이다.

그 말은 여러모로 사용되는데, 가령 이렇게 쓰인다.

그렇게 하다가 병을 키웠다

 

병이 더 진척이 되었다는 말이다.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키우다'라는 말은 그렇게 쓰이는데, 여기 수필에서 그 말이 또 다르게 의미있게 쓰인 것을 발견했다

환자가 나를 키운 셈이다.”(47)

 

환자가 의사인 저자를 키웠다니? 무슨 말?

그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말을 마져 읽어야 한다.

그렇다. 환자가 의사를 키운다. 오늘도 나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참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의사의 눈으로 볼 때에 자기를 찾아오는 환자 덕분에 자기가 성장했다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를 조금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그 말 앞의 문장을 인용해본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정말 고맙다. 이후의 심장수술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으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고 실감했다. 그녀 덕택으로 나는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입지를 어느 정도 세울 수 있었고 몇 년 후 병원장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된 듯도 하다.”

 

환자가 의사인 자기를 키운다는 고백은 비단 여기뿐만이 아니다.

그는 그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말이 진심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얼마 후 체외 순환에 관한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중략) 환자의 사망이 가져다준 쓰라린경험으로 시작된 연구가 어느 정도 꽃을 피운 셈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환자가 나를 키운 셈이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그것이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떠나서 환자는 반드시 의사를 키운다.>(67)

 

그 말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가 병원은 왜 존재하는가, 의사는 왜 존재하는가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의사와 환장의 상호관계를 잘 인식하고 있기에 그렇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덕분에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고 많은 의사들이 모두다 그렇게 성장하고 있지는 않기에 그렇다.

무슨 이유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저자의 따뜻한 심성이 그렇게 그를 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환자가 그를 키우기 전에, 이미 저자의 심성이 그를 키운 것이다.

 

그렇게 따뜻한 심성은 어떻게 하여 자기 자신을 키우게 되었을까?

따뜻한 심성을 가진 의사를 환자들은 알아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 표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사람들을 알아본다. 지금 앞에 대하고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자기를 대하고 있는지, 그저 적당히 표면적으로만 대하고 있는지를 다 안다는 말이다. 따라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의사를 환자들은 알아본다,

그 따뜻함이 결국은 환자들의 신뢰를 얻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따뜻함이 신뢰로 연결되는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기에게 수술받기를 원하는 환자에게 자기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권하자 그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여기에서 받을거예요.”

기회를 놓치면 안돼요. 우린 아직 준비할 게 많아요.”

기다리겠어요.”

한사코 싫다하니 이번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온 가족들이 그녀를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환자의 철석같은 신뢰가 오히려 킁 돌덩이가 되어 나를 꽉 눌렀다.(42-43)

 

따뜻한 기록들

 

이 책은 사건의 기록이다. 그러나 메마르게 기록한 사건일지는 아니다. 그 사건을 저자는 따뜻한 심장으로 기록했다, 심장이라는 말에 따뜻한이란 형용사를 붙인 것이 이해가 되는지?

 

그는 고백한다.

<심장을 나는 감정을 인지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신체의 어느 장기보다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음이 심장에 있는 양 착각하며 살고 잇다. 심성이 유난히 고운 사람을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가 하면 큐피트의 화살은 항상 심장을 향하여 나아간다고 한다.>(45)

 

그의 말에 기대어, 다시 표현해 본다.

그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맞닥뜨리는 사건을 항상 따뜻하게 대하여 결과적으로 사람을 살려낸 것이다.

 

이 수필집은 그러한 기록이다.

맨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그저 단순한 의료사건 기록처럼 생각되었지만 읽어가는 동안에 내 생각은 바뀌었다. 이것은 사건의 기록임은 맞지만, 그 기록의 이면에는 저자의 따뜻한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소리를 기록한 것이라는 것. 그렇게 뛰는 저자의 심장이 환자들의 심장을 역시 뛰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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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 1~3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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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빠진 인간들에 대한 경고

 

제대로 잘 그렸다.

 

이 만화는 제대로 그렸다. 이 세태를 잘 그렸다. 욕망에 찌든, 그래서 가족도, 심지어 자식도 죽여야 하는 그러한 이 세태를 잘도 그려내었다.

 

그렸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만화로, 그림으로 잘 그려냈다는 말이다. 그림이 - to see -가 매체로서는 훨씬 효과가 있지 않은가? 그런 그림으로 이 책은 우리 눈으로 쉽사리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164쪽을 보자

서울에 처음 가는 쓸개, 그런데 그림 한켠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대비되어 있다.

현재의 쓸개가 서울에 가는 모습, 그리도 그 상대편에는 어머니의 서울가는 모습.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등장한다. 그 대비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색이 다르다. 현재의 모습은 칼러로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은 흑백으로 처리해 놓았다. 과거는 흑백이다. 그래서 아스라하게 떠오르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 쓸개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습이길래, 흑백으로 그렇게 처리된 것이리라.

 

또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쓸개의 모습을 그림은 잘 그려 보여주고 있다. 2권의 11.

지하철에서 옆자리의 어머니와 그 아들이 다정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쓸개의 가슴에는 그 모습이 자기와 어머니의 모습으로 치환되어 눈에 어른거린다. 색은? 당연이 흑백을 주로 하고 약간 색을 가미한 회고조의 채색이다. 이게 바로 칼러의 힘이 아닌가?

 

그러니, 그런 그림으로 스토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세태를 잘 그려냈다.

 

그렸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잘도 꼬집어서 표현했다는 말이다. 이 만화는 탐욕에 찌든 인간상을 잘 묘사했다. 돈은 처음 쓰여질 때에는 단지 교환수단으로서만 작용했다. 그래서 그 것은 인간의 생명보다, 다른 가치보다 저급한 단지 교환수단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의 목숨조차 화폐의 저 밑에 위치한다. 이런 현상은 목하 진행중이라, 그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이제 돈은 인간을 종 부리듯이 부리는 상전 중의 상전이다. 그 돈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키고 있는지를, 인간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는가를 잘 그려내고 있다.

 

돈에 놀아나는 인간들 - 돈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래서 그 돈은 인간을 가지고, 종 부리듯이 희롱하며 노는데,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이 만화는 몇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가진 신체의 기관들이 모두다 돈을 따라 작동한다.

먼저는 이다. 그 눈이 탐욕을 찾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쓸개는 말한다. “밖에 나와 제가 배우고, 가진 것은 탐욕을 보는 눈이예요.” (363)

그래서 사람은 욕심이 생기면 눈빛이 변한다.(3149)

 

그렇게 사람의 은 돈을 따라 가고, 돈을 따라가느라 변한다.

그래서 결국 사람이 돈에 미치면 사람을, 사람과의 관계를 못 알아보게 된다. 결국 돈에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인간 신체 일부인 을 돈에 따라 변하는 기관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어디 뿐이랴! 또한 돈 냄새를 따라서 인간은 행동한다. 그러니 인간의 또다른 기관인 역시 돈에 굴복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만화에서 작은 에피소드이지만 희재가 쓸개에게 다가와 다단계사업에 끌어들이려 한다. 말 그대로 희재는 거기에서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에서 실패한다. 나중에 희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돈 냄새만 맡았지 뭐 해 본 적이 없었지” (375)

 

스토리의 탁월함

 

여기서 굳이 스토리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스토리를 끌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장치가 다양하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독자들이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마음 조리면서 조마조마하게 이 만화의 중요한 장치- 인간의 탐욕을 측정해주는 도구- 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지 말기를 바라는, 그러한 심리를 잘 알아서 작가는 장치를 미리 해놓는다. 그 장치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작가의 솜씨에 그저 놀랄 뿐이다. 특히 3118쪽은 탄복할 정도이다.

 

쓸개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

 

이 만화에서 주인공인 쓸개는 이름이 없다. 무적자다. 무적자란 말은 이 땅, 이 곳에 그의 적이 없다는 말이니, 그 흔적도 공식적으로는 남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엄마가 붙여준 이름은 있다, 바로 쓸개이다. 그럼 왜 엄마는 그 아이에게 쓸개라는 이름을 주었을까? 그 답은 만화의 내용중에 들어있다. 조선족의 미신에 따르면, 아기는 어머니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살덩이이니 신체 기관이나 신체 부위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고, 효도한다. 그래서 쓸개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자는 왜 만화의 주인공에게 쓸개라는 이름을 부여했을까?

혹시 쓸개 빠진이란 속담 또는 관용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속담에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은 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관용구로 쓸개() 빠지다라고 할 때에는 하는 짓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줏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쓸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사회는 쓸개 없는 사회에 불과하고, 따라서 저자는 이 사회가 쓸개가 빠진 것 같다고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있어야 할 쓸개는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없었고, 따라서 이 사회는 쓸개없는 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직 쓸개 있는주인공 쓸개만이 제 정신을 가지고 황금에 휘둘리지 않고, 이 땅을 살아가려고 애쓰지 않는가? 그러니 '독자들이여, 제발 정신 차리고 쓸개 없는 사람들처럼 살지말고, 그래서 이 사회가 쓸개있는 사회가 되도록 만들어달라'는 호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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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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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러 개의 상처 이야기

 

이 책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있다.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 속에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413)고 했다. 물론 그런 큰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등장 인물마다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그런 작은 이야기도 중요하다. 아니 어찌 보면 그 이야기들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들이 날줄과 씨줄로 엮어지며 흥미로운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1. 절대로 서두르지 말 것!

 

혹시 이런 책을 읽으면서 결과에 조급해 하지는 않는지? 그런 독자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결코 서두르고 말라고. 특히 이 소설은 더더욱 그렇다. 저자의 그 신기한(?) 스토리 텔링 기법에 빠져든 나머지, 독자들은 어서 빨리 그 결과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책의 앞부분에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오고,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독자들은 애가 탈 것이다. 결과를 알고 싶어서.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아버지의 말처럼, 어머니는 정말 미친 것일까?

 

그래서 혹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살짝 엿보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금물이다. 이 책의 묘미는 어머니가 아들 다니엘에게 누차 말하고 있는 것처럼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며 읽는 데에 있다.

 

어서 결론을 듣기 원하며 채근하는 아들의 눈빛을 읽은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앞 뒤 잘라먹고 결론만 내면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들리지. 그래서 내가 성급하게 결론을 내지 말라고 부탁했던 거야. 내 식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주렴.”(290)

 

난 결론부터 시작해서 그 사건을 요약해서 말했지. 자세한 내용도 없고, 전 후 사정도 없이 말이다. 그런 실수를 저지르면서 나도 배운 게 있다. 그래서 너에게는 좀 더 철저하게 말한 거야.”(306)

 

그래서 결국 아들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게 된 것처럼, 독자들도 그렇게 읽어간다면, 책 읽는 재미를 열배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했으니, 여기서 이 책 읽으면서 그러한 것도 배워보자.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하면, 설령 미친(?) 사람에게서라도 우리는 배울 게 있다. 분명히!

 

2.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게 인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비단, 가정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이 말은 맞지 않을까?

<행복한 사람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의 이유? 바로 그들이 받았던 상처들로 인해서 저마다의 이유를 간직한 채서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니, 결국은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숨은 원인이 바로 상처인 셈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람들은 그렇게 주고받은 상처로 인하여 생긴 상흔(傷痕)들을 가지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3. 상처의 치유!

 

그러면 저자는 이 소설속에서 어떻게 그 상처들을 치료하고 있는가?

 

먼저는 만남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만난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그래서 각자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관심 밖에 있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지내던 모자가 만나는 것으로 상처의 치유는 첫발을 딛게 된다. 그 무지는 아들, 다니엘이 어떻게 부모님 형편에 대해 이토록 무지할 수 있었을까?”(49)라는 탄식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무지에 대한 자각은 이런 깨달음으로 아들을 몰고 간다.

<문득 내가 부모님의 재정상황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다면, 모르는 게 또 뭐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55)

 

그렇게 만남으로 해서 각자의 상황을 보게 되고, 듣게 되고 , 그런 가운에 서서히 이해의 길이 열리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 간다.

 

그래서 이 소설의 대미는 이렇게 끝이 난다.

어머님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411)

 

재차 병원에 수용되어 가족과 만나기를 거부했던 어머니가 아들을 포함한 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렇게 만남은 치유의 시작이며, 또한 끝맺음인 것이다.

 

두 번째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에게 당부한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열린 마음으로 듣겠다고 약속해라.>( 32)

 

세 번째는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직면(直面)하여 싸매주는 것이다.

 

그 직면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약간의 모험이 필요하다. 그냥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는 바로 아들이 스웨덴으로 날아가 어머니가 대면했던 그 현실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들은 어머니가 겪었던 그 아픔의 현장에서 어머니의 상처를 대면(對面)하게 되고, 어머니의 상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과정이 없었더라면 결코 어머니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그대로 묻혀 버렸을 것이다.

 

4. 오해의 근원 - 투사(投射)

 

그러면 왜 어머니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상황을 그리 오해하며, 특히 미아에 대하여는 사건 아닌 사건을 만들게 되었을까?

바로 어머니가 어릴 때에 겪었던 상처, 곧 그런 상황을 겪었던 그 과거가 미아에게 그대로 투사(投射)된 것이다. 저런 모습을 보니, 내 과거가 떠오른다. 저 아이의 저런 모습이 내가 겪었던 그 아픔일거야, 그러니 내가 그 아이를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은 그런 몽상 속으로 빠져 들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묘사가 된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는 엄마의 시각에서 위험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407)

 

미아에게 어떤 위험도 없었는데, 과거의 상처로 인한 아픔 때문에 어머니는 미아 역시 그런 위험에 처해 있는 줄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잘못된 투사는 어떻게 해결이 될까?

역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푸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다. 이 책에서 아들은 그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미아를 만나고, 결국은 미아에게 투사된 것들이 허상에 근거한 것임을 파헤치게 된다.

 

아들 다니엘은 미아와 안데르스에게 런던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주기를 요청한다. 이때 미아의 대답은 가슴을 울리는 명대답이다.

틸데 아줌마(어머니)라면 저를 위해 그렇게 했겠죠.”(400)

 

그렇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안아준다면, 그 상처들은 쉽게 아물 것 같다. 미아의 그런 행동으로 결국 어머니는 오랜 고통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5. 끝으로 이 소설의 제목에 대하여

 

한글판 제목은 <얼음 속의 소녀들>이지만 원제는 <The Farm>이다. 따져 보자면, 주인공의 부모가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농가쯤 되겠다. 거기에서, 그 곳을 기점으로 하여 벌어지는 사건들, 그 장소를 지칭하는 제목이 원제인 <The Farm>이다. 그런데 왜 한글판 제목은 <얼음 속의 소녀들>일까?

 

그런 제목이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 생각했었다. 그러길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사건이 벌어지는 농장 근처 호수가 얼어붙은 것을 발견하고, 혹시 그 얼음 속에 행방불명된 미아가 숨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그 시점부터 더 주의 깊게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얼음 속의 소녀>에서 얼음은 주변에서 냉대받는, 따돌림 받는 것의 은유이고, ‘소녀들은 소녀 시절의 어머니이며, 또 한명의 소녀는 미아로 파악이 되었다. 그러니 그런 얼음(냉대, 따돌림) 속에서 살아온 어머니의 아픈 과거가 곧 제목으로 형상화 된 것이리라.

 

그러나, 비단 이 책의 주인공들만 그런 얼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그런 아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런 얼음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자문해 볼 일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상황 여부를 떠나 이 세상 자체가 얼음으로 꽉 채워져 있지 않은가? 그 얼음 속에서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소설을 읽고나니 그런 생각이 짙게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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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집
송영화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수필집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다

 

1. 이 책으로 극복한 수필집 트라우마

 

'내가 어느새 수필 읽는 재미에 빠졌나 보다.'

이 책을 스스럼 없이 들고 있는 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책을 냈노라며 보내오는 수필집들, 이게 종이의 낭비 아닌가? 애꿎게 나무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깜냥이 못되는 수필집이 시중에 차고 넘치는데, 그래서 내가 그런 책을 기피하는 습관이 저절로 들었었는데, 이 책은 예외임에 틀림없다.

 

그런 책들은 보내준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읽고나면 남는 것은 씁쓸한 감정의 무더기뿐이다.이거 자기 자랑 아닌가? 이제 먹고 살만하다고, 여고 시절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수필인척 하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빠지지 않는 것이 다른 동창들은 다 속물로 늙어가는데 자기만은 교양있게 늙어가고 있다는 자화자찬을 끝내면, 이제 남편 출세했다는 이야기로 방향을 옮기며 아들 자랑에 며느리까지 더하며, 더하여 자기는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국화빵들을 열심히 찍어낸다. 또 추천사를 보면 어떤가? 문화교실의 지도교사쯤으로 보이는 수필가가 이 책이야말로 수필의 정수를 보여준다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책들을 두권쯤 읽고나면, 그것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내 머리에 남게 된다. 그래서 다른 수필집을 대하면 이 책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하는 자라보고 놀란 토끼모양이 되는 것일까? 미사여구만 잔뜩 모아다 짜깁기 하는 것이 수필인줄 아는 유한마담의 책이 아닐까, 하며 지레 겁을 먹게 하는 그런 트라우마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수필집이란 저만치 밀어 놓았다가, 목차를 훑어본 후 그 중에 몇 개 읽어보고는 팽개치는 그러한 장르의 문학이었다. 해서 수필이라면 손을 휘휘 내저을 정도가 되었는데, 어느 새인가 수필을 읽는 재미에 빠졌으니, 그것은 김서령의 <참외는 참 외롭다>를 읽고 난 후부터다. (http://blog.yes24.com/document/7792325)

그 책을 읽고나서 수필도 작가 나름이구나, 하며 수필집 트라우마에서 회복하는 기미가 보였는데, 이 책 <반집>,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그 트라우마가 말끔히 고쳐졌음을 알게 되었다.

 

2. 글이 아름다운 무늬를 이룬다.

 

일단 이 책의 글은 아름답다. 그냥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며 작자가 그려내고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경치를 완상하고 음미하듯, 저자가 그려내고 있는 생각과 상황들을 그저 따라가며 즐기면 된다. 그만큼 이 안에 들어있는 글들이 편안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더하여 글들이 잘 짜여 있다. 노련한 솜씨로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내는 솜씨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작자가 그려내는 글의 무늬는 굳이 덧붙여 설명하거나,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이루어짐(完成)이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3. 문장 공부하려거든 이 책을 읽어라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수필들을 이루고 있는 문장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명문장이다. 그런 문장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문장을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된다. 운율도 어느 사이에 문장 사이에 생겨난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이런 문장이다.

동생네 화장실 수도꼭지는 빛이 난다. 스텐 손잡이에 물방울 자국이 하나 없다. 깨끗이 씻어 닦은 변기와 가지런히 걸린 수건까지, 볼 때마다 깨끗하다.”(86)

 

읽어보시라. 두 번 정도 읽으면 저절로 운율이 입에 따라오지 않는가?

이 문장의 형식을 패러디 해서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이 글들은 빛이 난다. 글 가운데 억지 자국이 하나 없다. 깨끗이 씻어 닦은 글들과 가지런히 배치된 행간내용까지, 읽을 때마다 빛이 난다.”

 

그런 글들을 몇 편만 읽어가노라면 내가 서두에 수필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문장공부를 하게 되는 셈이다.

 

4. 엄마로서, 아니 부모로서 생각 좀 하고 살려면 이 책을 읽어라

 

이 저자의 생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글은 글쓴이의 인격과 생각을 보여준다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이 얼마나 올곧고 바른 길을 가는지를 알게 된다. 그가 아들에게 보여주는 모습- 바둑을 하겠다고 나선 아들에게 대하는 태도 - 은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부모가 무릇 어찌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모든 어머니가 그랬으면 좋을테지만, 그래도 이런 어머니가 있다는 자체가 이 사회에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믓했다.

 

이런 사례는 굳이 여기에서 열거할 필요조차 없다. 이 수필집의 1 , <몰래 나선 여행>에 포함된 10편의 글이 모두다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부모로서, 생각 좀 하려고 한다면 이정도 되어야 하고, 그러면 이런 글쯤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5. 기억 이야기 하나 - 기억을 꺼내는 법

 

저자는 기억을 꺼내는 법을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그가 어떻게 기억을 내어 우리에게 보여주는지, 이런 기억을 보자. 98쪽부터 시작되는 <돈쓰기>라는 제목의 글이다.

 

저자는 먼저, ‘이십여년 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돈 없다는 타령을 해 댔습니다라고 운을 뗀다. 학창시절에 같이 지내던 친구, 이제 이십 여년만에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창시절에 매점에 가면 언제나 빵 값을 내지 않고 그냥 저자가 내는 것이 당연한 양 먹던 친구다. 그 친구를 이십여년 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 ~~ 의 문장이 바로 기억을 꺼내는 방법이다. 그 말 한마디로 기억은 자연스럽게 할머니로 옮아간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 저자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내놓는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라는 말에 기대어, 나도 “(내가 아는) 누구도 그랬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내 이야기도 하나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6. 기억 이야기 둘 - 기억을 닦아 윤내기

 

이번 역시 기억에 관한 글을 읽어보자. 86쪽의 <기억닦기>. 

잔잔하고 애잔하다. 이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 기억도 한번 꺼집어 내어 닦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애잔한 가족사를 꺼집어 내어 현재의 생활을 관조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기억을 닦는 것이다.

 

아까 문장 공부가 저절로 된다며 예를 들었던 부분, “동생네 화장실 수도꼭지는 빛이 난다. 스텐 손잡이에 물방울 자국이 하나 없다. 깨끗이 씻어 닦은 변기와 가지런히 걸린 수건까지, 볼 때마다 깨끗하다.”(86)로 시작되는 한편의 애잔한 드라마같은 수필이다.

 

읽고나면 그 기억이 얼마나 깨끗하고 예쁘게 보이는지, 정말 기억을 잘도 닦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 글중에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저자의 숨겨놓은 위트 한 조각도 음미할 만하다.

동생이 내 말을 너무 새겨들었나 싶어 웃음이 난다. 지나쳐도 탈이라고, 이젠 동생이 화장실이 깨끗하다 못해 수도꼭지 손잡이에 자국을 남길까봐 조심스러울 지경이다.”(87)

 

어린 시절, ‘꿈에서조차 어수선한 집에서 살았기에 걸레를 빨아 수없이 닦아도 늘 쌓이는 먼지들로 닦으나 안닦으나 그게 그거였던 집에서 살았던 기억들, 그런데 고모가 집에 다니러 올때에는 그런다고 자매는 혼이 난다. 애쓴 보람이, 수고한 보람이 없이 그게 그거니까, 혼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안타까운 시절을 보내고, 이제 각자 살림을 하게 된 자매는 닦기에 열심이다. 그런 닦음에 대한 기억을 저자는 잘 닦아 내놓고 있다.

 

7. “사족이다!!!!” - 이 말이 사족이기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흠이라면? 바로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송영화론>이다. 문학평론가 김종환이 쓴 일종의 서평인데, 이게 문제다. 차라리 이것이 없었으면 그냥 아름다운 글, 어머니이며 수필가인 송영화의 수필을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읽었다 싶을 것인데, 이 평론이 붙는 바람에 입맛을 버려버렸다. 왜 꼭 이런 것을 덧붙인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사족이 아닌가? 왜 굳이 수필을 읽으면서 작가 자신의 성격연구’(273)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못한 것이 수필의 문학세계가 심층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인가? 꼭 문학이 개인 구원(274)에 역할을 해야 한단 말인가? 더해서 저자의 글에 꼭 사회의식’(284)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인가?

 

해서, 이 책이 훌륭하게 수필집 트라우마를 해소시키는 역할을 해 주었는데 이 평론으로 또다시 트라우마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이번에는 수필집 끝부분 평론 트라우마’! 일종의 사족 트라우마. 다른 분들에게는? 제발, 이 덧붙임 말이 사족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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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 편견 - 열 개의 오해, 열 개의 진심, 김태훈 인터뷰집
김태훈 지음 / 예담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1. 잘 읽었다.

 

참 잘 읽었다. 정말이다. 이건 빈 말이 아니다.

잘 읽었다는 말의 의미는 두가지이다.

첫째, 잘 읽었다는 말은 '이 책을' 읽기 잘 했다는 것이다. 다른 책 대신에 이 책을 택한 것이 결과적으로 잘 했다는 말이다.

둘째, 잘 읽었다는 말의 의미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저절로 나오는 탄성, ‘잘 먹었다할 때의 그 의미이다. 잘 읽었다.

그러니, 여럿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하여 읽은 것이 잘 읽었다는 첫째 의미이고, 둘째 의미는 이 책 자체를 맛있게 음식 먹듯이 잘 읽었다는 뜻이다.

 

첫째 항목에 대하여 부연하자면, 인터뷰 기사를 가지고 책을 쓴 경우 대부분 - 물론 내가 접한 내용에 한정해서 - 변명 또는 해명성 내용인 경우가 많았기에, 이 책 역시 읽기를 망설였었다. 그래도 그 목록에 포함된 사람들을 보니 무언가 있겠다 싶어 집어 들었는데, 그것을 잘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그렇고 그런 허투루 쓴 책으로 치부하지 않고 집어 들었다는 것, 그것이 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 읽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둘째 항목에 대하여는 말이 좀 길다.

먼저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의 스펙트럼이 대단하다. 정치, 문학, 예술, 음악, 그리고 마술까지 저자의 촉수에 잡힌 내용들의 넓이가 대단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한 번 심도있게 관찰한 느낌이 든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가만히 앉아서 저자가 보여주는 이 사회의 문제점들에 관한 브리핑을 들은 느낌이라 할 수 있다.

 

2. 편견이라는 주제

 

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인터뷰를 한 중요 목적으로 편견이라는 주제를 잡았기에 그렇다.

편견!

인터뷰이들이 편견으로 인하여 당하고 있는 피해들을 하나씩 잡아내어, 그들의 발언을 들어봄으로써 그 편견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으니,

그런 것은 저자가 인터뷰이들과 나누는 대화중에 여실히 들어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만큼은 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34)

 

<이것 역시 제 편견입니다만, 여성 작가의 사건치고는 굉장히 강렬합니다.>(119)

 

또한 낸시 랭에게 인터뷰의 목적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타난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는데요.>(232)

 

가장 그 편견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은 신해철의 발언이다.

편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아주 적절한 답변이 신해철의 발언을 통하여 나타난다.

 

<게다가 더 큰 공포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신해철의 단편을 조합해서 나머지 빈 공간을 채워버리는 거예요.>(216)

 

무슨 말인지? 다음을 읽어보면 그 내용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을거야, 라고 상상하고 그 말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216)

 

그렇게 편견은 시작되고, 그 편견은 헛소문으로 정착되게 된다는 말이다.

 

3. 이 책의 의의 또는 가치

 

여기에서 이 책의 의의와 가치가 드러난다. 이 책은 그런 편견을 위해서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 전에, 가다머의 선입견(또는 편견)에 관한 생각을 소개해 본다.

 

가다머는 현대사회가 갈등이 존재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된 것은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선입견이나 편견은 자신만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는 태도를 말한다. 편견은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처지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현재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가다머는 대화를 통한 지평의 융합을 주장한다.

 

그런데 그런 지평융합이 이루어지려면, 그럴만한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이 서평을 쓰는 시점의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서로간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바람직한 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는 낸시 랭과 변희재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259쪽 이하) 요원한 일이다. 결국 편견은 배척으로 그리고 증오로 연결되기에, 그런 편견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이 책의 가치는 높이 사야 할 것이다.

 

4. 다양한 삶의 변주곡을 들려준다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삶의 변주곡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을 보는 창을 열고 바라본 느낌, 아니 창이 아니라 여태껏 닫힌 문인 줄 알고 열 생각을 하지 않다가, 저자의 안내로 비로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땅을 밟아보는 느낌. , 이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이로구나, 세상이로구나...하며 경탄을 발하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밝히고 있는 인터뷰의 기획의도에서 드러난다.

 

<세상의 속도가 어떻게 가든지 내 방식대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67)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72)

 

또한 이 책은 굳이 인터뷰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런 형식을 해체하고 읽어도 훌륭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각자 하나씩의 주제로 재편성해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예컨대, 속물과 잉여 담론(78), 진입장벽에 관한 담론 (79쪽 이하), 공교육에 관한 성찰(83),

 

5. 김태훈의 아포리즘

 

저자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뽑아낸 주옥같은 아포리즘 몇 개만 들어보자.

 

<우리가 외로운 것은 옆 사람의 진심을 모르기 때문이다.(5)

<드라마란? 일상의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주인공이 분투하는 이야기이다.> (21)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아는만큼 더 알 게 많아져요.>(192)

<신념과 신념이 만났을 때, 정의로운 신념과 잘못된 신념이 서로 부딪혔을 때 느껴지는 것들을....> (51)

 

수잔 손택, “같은 공간 안에 특권을 누리는 우리가 있고 불행을 당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특권이 저들의 불행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87)

 

신해철의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유념해 읽을만한 대목이다.

< 국가가 공교육과 같은 도구를 통해서 각 개인이 스펙을 쌓고 최적화되기를 요구한다면 거기에 부응해서 자기계발서를 30권 정도 읽고 스펙을 쌓아올리면 그 인간은 끝까지 불행할 수 밖에 없는거죠.>(210)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에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 바로 저자기 인터뷰 기사를 끝낸 다음에 ‘...ending' 이라는 타이틀 아래 몇 자씩 덧붙인 말이 있다. 그 것을 꼭 읽어보시기를. 읽지 않으면? '후회하실 겁니다!!!'

 

6.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

 

끝으로,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영화감독 류승완이 딸과 나누었다는 대화에서 발견한 것이다. (32-33)

아버지 류승완이 딸에게 물었다. 엄마하고 아빠하고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하겠냐고. 그러자 딸이 대답하기를......

잠깐, 그 대답은 그냥 재치있다거나, 입심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예사 대답이 아니다. 그런만큼 여기에서 그것을 밝히는 것은 영화로 말하자면 스포일러가 되는 격이니, 양해하시라.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그런 정도의 생각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류감독 딸의 사려깊은 대답을, 독자여러분은 이 책을 직접 읽어 확인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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