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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은 바다에서 만나고 - 정치학자 임혁백 교수와 떠나는 지중해 역사문화
임혁백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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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은 바다에서 만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여행갔던 때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겁니다.

유럽 특히 저자가 다녔던 베니스를 거쳐 로마 등등을 다녀오던 길, 그저 여행안내서 한권만을 들고 다니며 무언가 조금 더 심도있는 자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여행내내 곱씹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당시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는지라, 그저 여행안내서 한권이 모든 여행길을 지배했었습니다. 그래서 지리도 역사도, 문화도 모두 그 책의 지시대로만 알고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때 이런 책을 수중에 가지고 있었더라면 조금 더 폭 넓은 깊은 여행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이 책을 읽는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이 책을 읽고 지금이나마 이런 식으로 (부록으로) 각 도시마다 정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에르푸르트

- 독일 사회민주당이 탄생한 곳 (232)

- 루터가 대학생활을 보낸 곳 (238)

- 막스 베버가 탄생한 곳 (238)

 

이런 식으로 각 도시마다 정리를 해놓으면 그 도시에 가면서 그런 사실에 착안점을 두고 관광을 한다면, 그 지역이 더욱더 의미있는 곳으로 각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비단 여행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여러 요소들을 두루 구비하고 있는 책이기에 그렇습니다. 저자는 그의 인문학적 소양을 맘껏 뽐내고 있습니다. 미술, 음악, 문학, 역사, 지리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여행하는 해당 지역과 연관된 자료들을 쏟아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해당 지역인 서양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관련된 동양의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백의 시, 소동파의 시 등등 문학작품은 물론 도덕경의 깊은 바다와 논어의 넓은 들판도 같이 보여줍니다.

 

이 책을 정리해 보자면, 저자 부부와 친구 부부 해서 4명이 유럽의 지중해 지역을 여행한 여행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한 것처럼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 이끌린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여행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하느라 얼이 빠졌고, 어떤 때에는 그의 역사 해설에 잠시 넋이 나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예를 든다면, 블레드 호수와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러니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200)을 이 책 말고 어디에서 들어 볼 수 있었겠습니까?

 

더하여 새로 배운 것들도 많았습니다. 201쪽에 기록된 오토 힌체(Otto Hintze)의 이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가 주장한 내정의 연장은 외정이고, 외정은 다시 내정을 규정한다는 내정과 외정의 상호결정론은 그런 유럽의 역사에서 이미 검증된 이론으로 보입니다. 어디 그런 것이 하나뿐인가요?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와 진달래와의 얽힌 이야기(216)도 처음 듣는 이야기이고, 또한 마키아벨리에 관해 저자가 여기 저기 지역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내용들을 모아보면 한편의 훌륭한 마키아벨리 평전이 될만도 합니다.

 

또한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여기저기 배치해 놓아,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직접 현지에 다니는듯한 기분도 들게 합니다. 사진도 잘 찍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이 책을 따라 여행을 하는 동안 나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베니스와 관련하여 제가 여행중 산 마르코 광장 근처 어떤 카페에서 차를 마신 일이 있는데, 안타깝지만 그 카페 이름이 기억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카레 플로리안(Caffe Florian)이 유명하다 합니다. 커피의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세계적 바람둥이 키시노바가 탈옥후에 잠시 이곳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127)로도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혹시 내가 들렀던 곳이 거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유쾌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이미 다녀온 여행의 추억을 되살려 보는데도 좋거니와, 혹시 앞으로 여행을 할 때에 그냥 발자국만 남길 요량이 아니라 조금더 심도 있는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한권쯤 들고 떠나도 좋을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자, 출판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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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5
다나미 아오에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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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보통 인간의 모습이고, 그것이 국가로 확대될 때에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 싶지만, 그것도 분수가 있지,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를 읽은 총체적 느낌은 그랬다.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책은 적나라하게 이스라엘의 실상을 까발린 책이다. ‘까발린이란 말을 사용한 것을 용서하시라. 지금껏 읽은 책 중에서 이스라엘의 속사정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알려준 책은 없었고, 이제 알게된 진실로 인하여 받은 나의 충격을 표시하기에는 그 말 보다 더 정확한 말이 없기에 그렇다. 그만큼 실상 나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아무래도 이 책의 원제가 의미하는 바처럼 부재자라는 말의 정의부터 짚고 가는게 좋겠다.

이 책의 원제는 <부재자들의 이스라엘>이다. 그 제목을 부연설명하자면 부재자들이 사는 이스라엘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에서 부재자로 명명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부재자가 살고 있다니? 부재자란 보통의 경우에는 있지 아니한 사람’,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니, 책 제목은 벌써 형용모순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거다. 책 제목이 형용모순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실상이 각종 모순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것을 낱낱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지향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재자의 사전적 의미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고 법률적 의미로는 주소지를 떠나 있어서 쉽게 돌아올 가망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두 번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부재자 투표’,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서는 그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 23, 24 쪽과 288쪽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 거기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있다. 이 책은 부재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부재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부재자는 곧 삶과 직결된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 부재자라 불리면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부재자재산관리법에 따라 부재자로 간주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재산이 '재무장관이 임명한 부재자 관리인'이 관리하게 되어 있다. 이 법률에 따라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던 아랍인들 중 약 절반은 부재자로 간주되어 자신들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상실했다. 여기서 말하는 재산이란 부동산만이 아니라 현금이나 상품, 주식, 그리고 거주권이나 영업권, 사용권 등 모든 권리를 말한다. (288-289) 그래서 부재자가 된 사람들은 땅을 빼앗기고, 자기가 살던 정든 땅에서 다른 곳으로 추방되어 무일푼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부재자는 자기가 살던 땅을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쫓겨난, 존재하지만 부존재로 법률상 인식된 부재자를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런 불행한 '부재자'들이 이스라엘 땅에 '현존'하고 '실존'한다는 것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부재자 이야기는 이쯤 해두자,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다음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나의 편견에 관한 것이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편견,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 - 그것이 어디 한두개인가? -을 낱낱이 밝혀내는 데 이 책은 일조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하여 , 그것이 나의 편견이었구나하면서 무릎을 치며 읽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아직까지 성경 속의 땅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글은 의외로 느껴질 것이다 

 

<북부 갈릴리가 문제되는 이유는, 이곳이 이스라엘을 건국할 때에 아랍인을 다 내쫓을 수가 없어 수많은 아랍인 마을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그리온이 북부를 시찰할 때 그곳이 전혀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처럼 보이지 않아 아연실색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320)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단지 무지로 인한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기쁨, 그것이 이책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주제가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는 점이다. 하나씩 하나씩 편견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 읽는 기쁨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저자가 매우 친절하기에 그렇다. 저자는 우리에게 낯선 주제를 친절하게 잘 요리하여서  제공하고 있다 

 

저자의 친절함은 각주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보통의 책은 각종 부연설명을 편집상의 편의를 위해서 미주로 미루는데  비하여 이 책은 각주다. 그 페이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개념이나 사실에 대하여 바로 밑에서 자세한 해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읽다가 처음 접하는 사건이나 개념을 만났을 때 그것이 미주로 해설이 되어 있다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렇게 몇 번 잠시 책을 접고 뒤로 가서 미주를 찾아본 독자들, 불편을 참아내느라 책 읽기 어려웠는데, 이 책은 친절하게도 바로 밑에 해설을 해주어 읽기 편한 점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저자는 섬세하기도 하다. 243쪽부터 245쪽까지를 읽어보자.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의 막돼먹은 행동에 어쩔줄 몰라하는 저자의 딱한 상황이 잘 그려지고 있다. 룸메이트의 너절한 행동에 저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조바심에 다음 페이지를 읽게 되는데, 저자는 어쩔 수 없이 룸메이트가 저질러 놓은 어지러움을 치우고 만다. 바로 그 때 이제 부엌도 깨끗해졌고 이제 내방으로 돌아가 한숨 돌릴 때면 그녀가 친구들을 데려오는 일이 징크스처럼 반복”(245)되는 상황이 전개되니, 딱하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책에서, 섬세한 글솜씨로 인하여 그녀의 딱한 상황에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니, 다른 글에서도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부엌에서 보는 이스라엘이라는 장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글쓰는 솜씨가 잘 드러나고 있다. 부엌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환경으로 넓혀나가는 저자의 글솜씨부엌이 작은 공간이라고 해서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부엌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환경정책을 고발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태도는 실로 공분을 사기에 마땅한 일이다. 저자는 부엌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주제로부터 큰 이야기까지, 똘똘 뭉쳐진 저자의 속속들이 파고드는 탐구정신으로 발굴한 많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리고 단순한 고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또한 이 책을 매력있게 하는 요소이다. 그런 글을 써서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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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 -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게오르크 피퍼 지음, 유영미 옮김 / 부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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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으로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쏟아진 옷장들을 정리하며>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중인 트라우마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침리치료를 거쳐 다시 평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당위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자면 우리가 실상과 그 치유법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그러한 당위 - “치료해야 하는데” -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책이다.

그것 역시 구호나 일방적인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풍부한 사례와 그 사례를 뒷받침하는 이론의 제시로 아주 설득력 있게 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비단 전문가나 심리상담 및 치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읽어야 할 책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를 온전하게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신문기사 한토막을 읽어보자.

 

<세월호 트라우마, 외상가 아닌 아직도 외상’>이란 기사중 일부이다.

<세월호 생존자들에게는 빠른 심리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PTSD 상태예요. 트라우마의 본질은 죽음을 목전에서 경험한 사람에게 화인(火印)처럼 새겨지는 죽음 각인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생한 실감은 인간의 어떤 경험보다 강렬해서 그 기억은 일생 동안 집요하게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치유되지 않으면 그 기억에서 도망치려고 사투를 벌이거나 죽은 이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일생이 다 소모될 수 있어요. 단원고 생존 학생뿐 아니라 모든 생존자의 치유는 바로 시작돼야 해요. 주검 수색에 참여한 잠수사들도요.>

 

전문가들은 그렇게 우려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참사에서, 심리치료가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이 책은 그러한 사건을 만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반드시 거쳤어야 할 단계, 그리고 치료의 단계, 심리 치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하되, 단지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상황을 들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이론들은 저자의 풍부한 임상을 거쳐 나온, 실제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가 거론하는 케이스는 우리가 신문지상을 통하여 들었던 케이스들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들. 그 사건들은 이제 시간이 흘러 우리들 기억에서는 사라졌지만 사건의 당사자들에게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른 제 3자는 잊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기에 그들은 매일 매일 그 트라우마를 맞딱드리며 살아간다, 그러한 사건들의 후속 이야기를 저자는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되는지를. 

2011년에 일어난 노르웨이 우토야 섬의 총기난사 사건의 경과를 이 책을 통해 살펴보자.(239쪽 이하 

사건이 일어난 직후, 전국에서 화합을 촉구하는 모임과 침묵시위, 폭력반대 집회가 이어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유가족들은 힘을 얻어 끔찍한 사건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생존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기할만 것은 총기 난사 1주년 기념일에 노르웨이 총리의 발언이다.

우리의 약속은 이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누립시다.”

이 발언은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아주 모범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식으로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풍부한 사례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책을 읽고 나서, 이제는 주변에서 벌어진 트라우마 사건들을 그냥 무심하게 넘기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치유의 손길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 아니 그저 손길을 보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나마 가지게 되었으니, 고맙다. 그렇다면, 설령 우리의 손길이 전문가적인 단계는 아니어서 미흡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잊어버려라하며, 그 희생자들을 백안시 하는 태도에서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리 사회가 온전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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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재필
고승철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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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고난 소회를 어떻게 표현할까?

아쉽다? 안타깝다? 아니 슬프다?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다. 슬픔을 넘어서는 어떤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를 천번 만번 되뇌고 싶다. 그 단어가 무엇인지? 내 사전에는 없는지?

그러니 아쉽지만 슬프다는 말로 가름하자.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슬펐다’.

 

왜 슬펐을까?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아프고 슬픈 그것을 목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슬프고 슬픈 것은 우리가 그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사의 교훈을 전혀 생각지 않는 것이다. 이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를 보고도 거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역사를 대체 왜 읽는가?

아니 대체 우리 앞에 역사는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읽을만한 제대로 된 역사책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렇다면, 읽어서 제 나라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될만한 그런 역사는 기록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 감히 그렇다고 할만한 책이 있다.

바로 고승철의 장편 소설 <소설 서재필>이다.

소설의 형체를 지녔지만, 제대로 된 역사다,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 놓은 기록물이다.

 

서재필!

이 책을 통하여 그를 알게 된 지금, 우리 역사를 앞에 두고 통곡하고픈 심정이다.

왜 그는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무대에는 결코 서서는 안될 인물등이 설치는 우리의 역사가 되었는가?

왜 나라의 명운이 달려있는 중차대한 사건 앞에 자기 일신의 영달과 자기 한 몸의 이익만 추구하는 모리배들이 설처대며 역사를 쥐락펴락하게 되었는가?

 

이 문제는 내가 우리 역사상에서 각 왕조의 말기에 발호하는 모리배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가운데, 깊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이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특히나 나남출판사를 통하여 이병주의 <정몽주> 그리고 류주현의 <조선 총독부>를 읽어온 터라, 그 맥락에서 이번 고승철의 <소설 서재필>은 그런 역사의 탐구행렬에 한 획을 긋는 것이라 여겨진다. 나남출판사에서도 아마 그런 생각의 흐름을 가지고 책들을 출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비단 서재필이란 인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조선 왕조 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명멸한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인지를 명확하게 구분짓게 하는 자료성 기록이 많이 보여, 좋았다.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선교사로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있는 알렌 선교사까지, 그들의 숨은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

 

특히나 고종에 대한 평가는 흔히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고종에 대한 평가를 시종여일하게 해 놓고 있어서, 고종이 어떤 인물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 운명 앞에서 자기 - 일신과 일족 - 의 앞가림만을 위하여 줏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과연 일국의 군주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고종에 관한 저자의 묘사는 도식적인 중립적 묘사가 아니라, 일국을 책임져야 할 군주로서 한참이나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런 책임을 묻는 역사가의 준엄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균형을 잡는다고 이리 저리 재어가며 펜대를 굴리는 현대의 기록자들이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닌가?

 

역사적 인물인 서재필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진면목을 모르거나, 아니면 알았다 할지라도 그저 일부분만 알려진 사람일 것이다. 특히나 그가 몇 차례에 걸쳐 망명아닌 망명을 하게 되는 그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역사는 왜 이리 박복한가, 하는 한탄을 금할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만일 서재필이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하여 그의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더라면, 과연 이 나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은 두고 두고 남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편집에 있어서 좋은 점 하나 적고 싶다,

다름아니라, 글에서 한자의 병기를 해 준 것이 얼마나 좋은지, 글의 가독성(可讀性)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내가 책들을 읽어오면서 아쉬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분명 아는 단어겠지만, 그 들을 읽는 독자로서는 과연 이 단어가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를 몇 번이나 생각하게끔 하는 편집, 너무 무책임하지 아니한가? 몇 번이나 문맥을 헤아려 보게 하는 전문적이어서 일반독자로서는 도저히 그 뜻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단어를 남발하는 책들을 보면 참 불친절하다 느꼈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친절하다. 사람의 이름과 이해하기 어렵다 싶은 단어에는 모두 한자를 병기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으니, 참으로 고맙다.

 

결론하여, 서재필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시 한번 우리 역사를 생각하게 해준, 저자와 출판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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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풍전 배비장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김현양 글, 김종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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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할머니 턱밑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 듣던 적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들던 시절, 그 때 할머니의 주머니에는 사탕도 들어있었지만 옛날 이야기도 가득 차 있었다.

이 책 후미에 평자는 작품 해설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두 작품을 평가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머니자 손자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화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손주들(남매)을 데리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던 중에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을 해 주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려 준 다음에, 할머니가 먼저 손자에게 물었다. “이야기 재미있지?”

손자가 대답한다. “, 재미있어요, 그런데 왜 이춘풍은 같은 실수를 계속하는 것일까요?”

할머니 왈, “그래 잘 보았다.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란다.”

그 때, 같이 듣고 있던 누나가 동생을 꼬집으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어리석지. 그 이야기를 보면 옛날부터 남자들은 실수하고, 여자들은 실수해서 곤경에 빠진 남자들을 구해주는 것, 분명히 알았지? 너는 그러면 안된다.”

손녀가 이번에는 할머니를 보고 말한다.

이춘풍의 부인이 보여준 지혜로운 행동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남자로 변장하고 문제를 해결한 포샤와 비슷해요.”

 

그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성적 욕망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에 손주들과 할머니의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 갈 수 있으리라.

 

평자는 성적 욕망이라 표현하지만, 이 작품에서 성은 자극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고 다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속에서 실수의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적 묘사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두 남자가 드러내는 욕망도 요즈음의 성적 묘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성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 해학과 풍자의 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할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틈틈이 할머니는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및 사물에 대하여 - 책속에서는 각주로 부가 설명된 것들 - 아이들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예컨대 25쪽에서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량 찾아가듯’, ‘서왕모 요대로 주목왕 찾아가듯’, 등등을 설명하면서 무궁무진한 역사 속의 인물들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보충 설명을 들으면서, 또한 우리말 사설조로 엮어진 이야기의 구성진 내용을 들으면서 두 손주는 저절로 어깨춤을 추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것은 어떤가?

86쪽에 등장하는 망망대해의 천리 파도에 대붕이 날다가 지쳐서 앉아 있다.”는 말.

이 때 대붕이 뭐예요?”라는 손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장자의 한 구절을 설명해 주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이라면, 그래서 한자를 공부한 아이들이라면 28쪽에 등장하는 이춘풍과 기생 추월의 이름자를 가지고 희롱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낄만도 하다.

봄바람(春風)도 좋거니와 이슬 내리고 맑은 바람 불고 국화꽃 피는 가을에 가을달(秋月)이 밝았으니 더욱 좋네. 진심이라면 추월과 춘풍, 부부의 인연을 맺어 볼까!”

 

아이들은 이름자를 가지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 글을 지은 사람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두 주인공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봐요.”라고 할만도 하다.

 

그런 대꾸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춘향전도 너희들 읽어보았지? 춘향전에는 그런 대목이 많이 나온단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춘향이와 이도령의 대화중 한토막.

이도령 하는 말이, "네 연세 몇이며, 네 성은 무엇인가?"

춘향이 여짜오되, "연세는 십륙세오, 성은 성가라 하나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그러니 날과 동갑이요, 성짜는 그러니 이성지합이라. 천생연분일시 분명하다.“>

 

()씨 성과 성()씨 성이 합하여 이성지합(李成之合)! 원래의 의미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이다. 서로 성이 달라야 결혼이 가능하기에 이도령이 그런 식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듯이, 이춘풍전에서도 그런 언어 유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언어의 재미에 눈을 뜰 것이다.

 

또한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각박하게 평하는 말들이 살벌하기조차 한데, 여기 등장하는 대화들은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말조차도 격조가 있고, 여유가 있다.

 

<회계비장 잘도 났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흠이로다> (42)

<배비장이 그 여인을 한참 바라볼 때 방자가 말했다 저 눈은 일을 낼 눈이로군”> (86)

 

그런 식으로 이 이야기 두 편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여기에서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우리 고전의 깊은 맛은 그래서 일품이다.

이런 이야기 모처럼 읽으면서 푸근한 할머니 품, 무궁무진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를 회상해 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가빠진 숨을 조금 누그려 뜨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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