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수술실
조광현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환자가 반드시 의사를 키운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의사를 키운다.

 

키운다라는 말이 있다. ‘크다라는 동사의 사역형이다.

그 말은 여러모로 사용되는데, 가령 이렇게 쓰인다.

그렇게 하다가 병을 키웠다

 

병이 더 진척이 되었다는 말이다.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키우다'라는 말은 그렇게 쓰이는데, 여기 수필에서 그 말이 또 다르게 의미있게 쓰인 것을 발견했다

환자가 나를 키운 셈이다.”(47)

 

환자가 의사인 저자를 키웠다니? 무슨 말?

그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말을 마져 읽어야 한다.

그렇다. 환자가 의사를 키운다. 오늘도 나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참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의사의 눈으로 볼 때에 자기를 찾아오는 환자 덕분에 자기가 성장했다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를 조금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그 말 앞의 문장을 인용해본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정말 고맙다. 이후의 심장수술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으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고 실감했다. 그녀 덕택으로 나는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입지를 어느 정도 세울 수 있었고 몇 년 후 병원장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된 듯도 하다.”

 

환자가 의사인 자기를 키운다는 고백은 비단 여기뿐만이 아니다.

그는 그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말이 진심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얼마 후 체외 순환에 관한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중략) 환자의 사망이 가져다준 쓰라린경험으로 시작된 연구가 어느 정도 꽃을 피운 셈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환자가 나를 키운 셈이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그것이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떠나서 환자는 반드시 의사를 키운다.>(67)

 

그 말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가 병원은 왜 존재하는가, 의사는 왜 존재하는가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의사와 환장의 상호관계를 잘 인식하고 있기에 그렇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덕분에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고 많은 의사들이 모두다 그렇게 성장하고 있지는 않기에 그렇다.

무슨 이유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저자의 따뜻한 심성이 그렇게 그를 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환자가 그를 키우기 전에, 이미 저자의 심성이 그를 키운 것이다.

 

그렇게 따뜻한 심성은 어떻게 하여 자기 자신을 키우게 되었을까?

따뜻한 심성을 가진 의사를 환자들은 알아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 표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사람들을 알아본다. 지금 앞에 대하고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자기를 대하고 있는지, 그저 적당히 표면적으로만 대하고 있는지를 다 안다는 말이다. 따라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의사를 환자들은 알아본다,

그 따뜻함이 결국은 환자들의 신뢰를 얻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따뜻함이 신뢰로 연결되는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기에게 수술받기를 원하는 환자에게 자기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권하자 그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여기에서 받을거예요.”

기회를 놓치면 안돼요. 우린 아직 준비할 게 많아요.”

기다리겠어요.”

한사코 싫다하니 이번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온 가족들이 그녀를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환자의 철석같은 신뢰가 오히려 킁 돌덩이가 되어 나를 꽉 눌렀다.(42-43)

 

따뜻한 기록들

 

이 책은 사건의 기록이다. 그러나 메마르게 기록한 사건일지는 아니다. 그 사건을 저자는 따뜻한 심장으로 기록했다, 심장이라는 말에 따뜻한이란 형용사를 붙인 것이 이해가 되는지?

 

그는 고백한다.

<심장을 나는 감정을 인지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신체의 어느 장기보다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음이 심장에 있는 양 착각하며 살고 잇다. 심성이 유난히 고운 사람을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가 하면 큐피트의 화살은 항상 심장을 향하여 나아간다고 한다.>(45)

 

그의 말에 기대어, 다시 표현해 본다.

그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맞닥뜨리는 사건을 항상 따뜻하게 대하여 결과적으로 사람을 살려낸 것이다.

 

이 수필집은 그러한 기록이다.

맨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그저 단순한 의료사건 기록처럼 생각되었지만 읽어가는 동안에 내 생각은 바뀌었다. 이것은 사건의 기록임은 맞지만, 그 기록의 이면에는 저자의 따뜻한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소리를 기록한 것이라는 것. 그렇게 뛰는 저자의 심장이 환자들의 심장을 역시 뛰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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