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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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실패>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된다. 경제나 정치, 철학을 논할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부담스러워하듯 나 역시 그렇다. 이 글은 작가가  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저명한 사람들과 대담을 하고 신문에 연재한 글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엮은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대한 고민과 대담을 했을까 그게 먼저 궁금해진다.

 

지금은 전 세계가 경제 위기를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IMF를 겪었지만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예상보다는 빨리 헤쳐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위태롭고 세계의 가장 강국이라고 여기던 미국조차도 국가제정의 위기를 겪을 정도니 지구촌 전체가 경제 살얼음판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어지는 책은 아무래도 집필과정이 있기에 한반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저자는 그런면에서 신문 연재를 통해 발빠르게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글을 읽기는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철학이나 경제 등의 문제보다 당장 나에게 어떤 잇점이 있고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쉽게 풀어주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국을 이야기할때 좌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더 나은 실패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어렴풋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하게 와닿는다.  이 말을 역설적으로 지금 견디기 힘든 이 때가 바로 넘어야 할 산이고 그래야 더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기에 낫게 실패하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좌절하기 전에 실패를 감지하고서라도 넘어서려는 의지 때문에 나은 실패를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이 책 역시 천천히 여러번 곱씹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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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클래식 보물창고 25
조지 오웰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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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한 개인의 도구화, 디스토피아 현재인가 미래인가?>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개인은 있는가?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고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그렇게 한다고 배웠다. 개인의 도구화, 수단화..그런 말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엄청난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개인사찰. 사찰이 무엇인지 낯설었던 즈음, 그것은 정치적인 용어이고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국가를 위해 개인이 사찰당했다는 말을 듣고 경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 보호에 끔찍했던 미국에서조차 개인의 이메일까지 사찰한다는 의혹을 받은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과연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감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작금인지, 이 시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작품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풍문으로만 들었지 조지 오웰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물농장>이나 <1984>의 문학적 가치는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이슈화 되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이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1949년. 그는 1949년에 1984년 디스토피아 세상을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가 바라보는 디스토피아는 어떤 세상인가? 적어도 그가 경험한 사회체제의 모순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재창조되고 조련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작품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현대사회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개인사찰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1984>속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텔레스크린을 통해서 사상검증을 받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받는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상황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그 사상을 검증받는 시스템이나 통제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야말로 다시 인간을 다시 학습시키는 과정까지 적나나하게 그려져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 속에서 미래의 가상 세계를 세우고 인간의 분신인 콜론을 통제하는 영화들도 모두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 든다.

 

더욱 놀란 것은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 계속 되는 조련 속에 등장하는 '2분간 증오' 시스템이나 당원과 당을 위한 감정조차 실리지 않는 최소한의 목적만 담은 신어의 등장은 경악하기에 충분하다. 정말 이런 세상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지 못함에 당황스럽다. 주인공인 윈스턴이 불온한 사상의 행동으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 일기쓰기라니. 생각의 획일화가 필요한 세상에서 자유로운 생각은 불온한 사상의 시발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생각의 획일화가 가져다주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는 인간성 말살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권력의 무한 독제라고 한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복종화된 인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당시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쓰여진 작품이지만 현 시점에서 과연 그러한 경고가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에만 해당되는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상의 문제가 아니고 어쩌면 모든 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 사상 검증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 사찰이 필요하고 감시가 필요하니 개인의 자유는 무지불식간에 침해되는 것이다.

 

가장 편한 것은 말하는대로 따르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에 저항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잘 이끌어지는 모범적인 반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보여지지 않는 권력이 있음을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싶다. 다른 생각이 어우러지면 분명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모든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6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시대적배경이나 고민이 결코 지난 세대가 아니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작품이라 일컫는데는 이런 연속성의 이유가 큰 몫을 차지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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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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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치유의 중심은 가족이지만...>

 

책을 읽기 전에 영화로 먼저 만나게 된 <소원>. 사실 난 영화를 볼 기회가 자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 부모 가진 사람의 비슷한 이유때문일 것이다. 입에 올리기도 힘들고 견디기도 힘든 내용을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그런 일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는 하나 그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데는 심한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는 외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적나나하게 보여줄 수도 있을 영화에 대한 부담감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밖이었다. 사건의 심각성을 부각하거나 가족의 고통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주인공 소원과 그 가족이 견뎌내고 이겨내는 과정, 그리고 현실성이 조금은 떨어지기는 하지만 주변의 긍정적이고 밝은 시선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영화이다. 아마 감독 역시 현실적인 어려움보다 이렇게 그들이 과거와 같은 일상의 품으로 안기기를 바라는 희망을 전하고자 한 연출의도가 보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도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한쪽으로 가슴이 무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마주하게 된 소원은 영화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오히려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소재원 작가의 소설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영이 사건, 조두순 사건을 글로 쓰기로 마음 먹은 그의 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그의 책을 통해서 어린이 성폭행자문기구인 해바라기 아동센타에 인세기부가 주어진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사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는 이제 더 이상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가 궁금해하고 관심가는 것은 사실 그런 사람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어떤 처벌이 강화되고 준비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관심은 소설 속의 지윤이의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는 내가 당하지 않기 위한 방패막에 대한 관심보다 더 눈을 돌려야 할 것이 많다. 바로 그건 내 이웃의 아픔과 고통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윤의 가족이 견뎌내는 슬픔이 생활 속에서 머물기만 했다면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에 별 감흥이 없었을지고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독특한 기법은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지윤이 험한 일을 당할 당시 지켜주지 못한 지윤엄마를 향한 지윤 아빠의 분노. 그것도 독자로써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세가족이 견뎌야 할 마음의 무게가 컸는데 그 가운데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지윤 엄마의 모습,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아빠가지 거부하는 지윤이, 딸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8살의 감성에 머물러 버린 아빠의 모습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이들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단지 지윤 엄마와 아빠가 그들의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복한 순간과 추억을 더듬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찾아가는 편지글, 지윤과 아빠(도라에몽)가 서로를 이해하며 건네는 편지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국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낫게해주는 것은 가족일 수 밖에 없다.

 

이미 해답은 알고 있지만 아픔을 치료하는 과정이 너무 멀고 힘들어 우린 그런 모습을 외면할 때가 많다.  혹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그들을 진정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잦은 입방아나 안스러운 시선이 그들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깨닫는것도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우리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싸움질 말고 사회에 필요한 울타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주는지도 잘 봐야겠다 싶다. 지윤이가 상처입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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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1 - 한중일 동아시아史를 한 바늘로 꿰어낸 신개념 역사서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1
이희진 지음 / 동아시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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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을 횡으로 보는 역사>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가 인생에서 접하는 역사 교육의 전체가 되는 경우가 많은가 적은가?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접하는 것 외에 독서를 즐기거나 역사에 관심이 있지 않은한 또 다른 서적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육이 너무도 중요하고 중요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지금 한창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 과거 같았으면 두려워 아무 말도 못했을 터인데 지금은 그릇된 역사관에 대해서 너도나도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과거 일본이 중심이 된 역사교육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 대해서 그리 깊이 알지 못하는 나이기에 이번 책 역시 또 다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접하게 되었다. 미시적인 안목에서 접하기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통사 중심으로 역사를 외우기에 바빴던 우리들은 한국사라면 어느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시대순으로 나열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국사 라는 이름으로 한국사를 배우면서 한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식으로 먼저 제한하면서 생각햇던 듯하다. 그래서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일본을 한꺼번에 동선상에 놓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히 한국사를 중심으로 기술을 하고 그 다음 부수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중국사를 배우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중국의 이야기에 방대한 양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없다. 작가는 그 원인을 우리나라 역사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사관에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사관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주목한다. 그것은 현대사에서보다 고대사에서 더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이는 지금 국제문제화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과의 연계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나라가 통치를 위해 시작한 중화주의 사상과 천명을 받은 천자로써의 황제 통치는 그 이후 중국의 통치사상이 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주변국에서 이러한 영향을 주면서 조공-책봉의 관계를 유지했는데 현재의 중국은 이러한 관계를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보고 조공을 받쳤던 모든 나라를 중국의 변방국으로 인식하여 주변국의 고대사를 중국의 고대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영토문제로까지 발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보다 빠르게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가 성립되었다는 것이 이상하다거나 단군신화는 그냥 설화일 뿐이라는 등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대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에 발목을 잡는 것은 일본의 시관이란다. 중화사상을 모방해서 만든 일본의 황국사관에 의해 우리나라의 역사 인식에서 많은 부분이 와해되고 변질되었다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저지르는 큰 오류중의 하나는 주류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주류는 말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이기에 그릇되더라도 옳다고 주장하는 인식의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것에서 달리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말하는 저자와 같은 역사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고 본다. 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아닌 토론의 장으로 연구의 장으로 나올 수 있어야 진정한 역사연구가 되는게 아닐까?

 

다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고대사의 기술이 많았던 이유가 이런 주변 정세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인 듯하다. 그러나 책의 편집부분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해를 위해 도표나 지도자료를 사용하고 목차나 순서에서도 일반적인 형태의 보기 좋은 서체를 사용했으면 하는 등 아쉬움이 남는다.  한가지 색으로 밋밋하게 이루어진 본문의 활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다른 편집기술이 너무 부족했던 점이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 권 역시 작가의 역사관에 귀 기울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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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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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고의 새로움>

 

 

스토리가 있는 책에 익숙한 나로써는 가장 기피하는 종류의 책 중의 하나가 어려운 인문학서적. 그것도 철학을 다룬 책이 아닌가 싶다. 책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책표지의 중앙에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라는 문구는 읽기 전부터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문구만 아니면 강렬한 제목에 세련된 디자인을 보고 반했을텐데 말이다. 하여튼 이 철학이라는 단어가 은근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건 분명하다. 다음 휘리릭 살펴본 본문이 다시금 긴장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대담 형식의 글을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 말하는 사람의 이름도 주의하면서  구어체로 된 문장에 익숙해져가면서 읽는데 적응해야 할 필요도 있다. 책읽기는 문어체가 되어버린 개인적인 폐단이다.

 

여하튼 어렵사리 손에 든 이 책과 저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소개된 글을 먼저 읽어보니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일본의 니체로 불릴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젊은 인물임에는 틀림없는가 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도쿄대학을 나온 그는 그럴싸한 이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첫작품이 출판되기까지는 냉대와 무관심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작품 이후로 많은 매체에서 대담과 경연이 쇠도했다고 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대담을 일부 엮어서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사실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해서 그의 문체가 얼마나 힘에 넘치고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담을 통해 일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새롭게 세상과 사물을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문학적인 언어적인 통찰에서 끝난다면 고리타분할 수도 있지만 대담의 내용에는 사랑은 물론 원전피해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도 끝임없는 질문의 고리를 따라 대담을 이어가고 생각을 풀어나간다.

 

우린 너무 흑백에 민감하고 익숙해져버렸다. 이미 사회에서 제시한 평범한 사고,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안정적인 가치에 안주해있기 때문에 그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사사키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기 보다 새롭게 세상을 평가하고 질문을 던지고 그러한 모든 철학적인 사고를 펼치는 언어 역시  단순한 표현도구가 아닌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익숙하지 않고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용이 많기에 개인적으로는 여러번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머리가 좋아서 한두번 읽고 통달했다가 아니라 백번 이백번을 읽고서 그 책에 대한 모든 것이 진심과 마음이 통했을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 괜시리 부끄러운 마음까지 든다.  시간을 두고 읽어보고싶은 책이며 또한 저자의 전작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작품은 챙겨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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