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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클래식 보물창고 25
조지 오웰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10월
평점 :
<국가를 위한 개인의 도구화, 디스토피아 현재인가 미래인가?>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개인은 있는가?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고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그렇게 한다고 배웠다. 개인의 도구화, 수단화..그런 말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엄청난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개인사찰. 사찰이 무엇인지 낯설었던 즈음, 그것은 정치적인 용어이고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국가를 위해 개인이 사찰당했다는 말을 듣고 경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 보호에 끔찍했던 미국에서조차 개인의 이메일까지 사찰한다는 의혹을 받은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과연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감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작금인지, 이 시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작품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풍문으로만 들었지 조지 오웰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물농장>이나 <1984>의 문학적 가치는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이슈화 되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이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1949년. 그는 1949년에 1984년 디스토피아 세상을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가 바라보는 디스토피아는 어떤 세상인가? 적어도 그가 경험한 사회체제의 모순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재창조되고 조련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작품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현대사회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개인사찰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1984>속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텔레스크린을 통해서 사상검증을 받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받는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상황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그 사상을 검증받는 시스템이나 통제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야말로 다시 인간을 다시 학습시키는 과정까지 적나나하게 그려져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 속에서 미래의 가상 세계를 세우고 인간의 분신인 콜론을 통제하는 영화들도 모두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 든다.
더욱 놀란 것은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 계속 되는 조련 속에 등장하는 '2분간 증오' 시스템이나 당원과 당을 위한 감정조차 실리지 않는 최소한의 목적만 담은 신어의 등장은 경악하기에 충분하다. 정말 이런 세상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지 못함에 당황스럽다. 주인공인 윈스턴이 불온한 사상의 행동으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 일기쓰기라니. 생각의 획일화가 필요한 세상에서 자유로운 생각은 불온한 사상의 시발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생각의 획일화가 가져다주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는 인간성 말살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권력의 무한 독제라고 한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복종화된 인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당시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쓰여진 작품이지만 현 시점에서 과연 그러한 경고가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에만 해당되는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상의 문제가 아니고 어쩌면 모든 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 사상 검증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 사찰이 필요하고 감시가 필요하니 개인의 자유는 무지불식간에 침해되는 것이다.
가장 편한 것은 말하는대로 따르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에 저항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잘 이끌어지는 모범적인 반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보여지지 않는 권력이 있음을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싶다. 다른 생각이 어우러지면 분명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모든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6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시대적배경이나 고민이 결코 지난 세대가 아니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작품이라 일컫는데는 이런 연속성의 이유가 큰 몫을 차지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