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바른생활 같았던 윤리가 갑자기 지옥(?) 아닌 지옥행이 된 것은 윤리 중반 이후 등장했던 철학사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다. 윤리에서 당근 최고의 기출문제 파트인지라, 수능을 앞둔 내게 정말 큰 시련을 안겼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해를 하면서 읽을
여유조차 없던 시기이기에(그 부분을 고3 때 배웠으니ㅠ), 진짜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고 무지막지하게 암기했던 것 같다. 보통 암기의 폐해는
기억에 저 편 깊숙이 사라진다는 것인데, 용케도 공리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가 남아있으니 그중 하나가 공리주의의 제창자 벤담과 그의 사상을 이어간
제자 밀의 이름 그리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존 스튜어트 밀의 글을 읽게 되었다. 당시 그 책은 여성에 대한 명언이 담겨있는 책이었는데, 19세기 영국의 남자 지성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시대도 시대지만, 영국이라는 배경 그리고 밀은 철학자기에 그런 이야기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밀에 대해 나름의 궁금증이 생기던 즈음 공리주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공리주의 도덕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남들의 선을 위해 자기의 최고선을 희생시키는 능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희생 그 자체가 선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행복의 총량을 높여주거나 높여줄 가능성이 없는 희생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공리주의가 칭송하는 유일한 자기희생은 남들의 행복에 기여하거나
그런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에 기여할 때뿐이다.
우리가 공리주의 하면
떠오르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한 줄이 있다. 여기서 공리란 공적인 이익(公利)이 아닌 효용(utility)을 뜻하는 말이었다. 바로
행복이라는 목적을 얻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 진정한 공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에는 행복에 대한, 쾌락이나 만족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스승인 밴담의 공리주의와 차이가 있다면 밀은 행복의 질을 더 중시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이론은 이 한
줄로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이 책에는
공리주의자가 받는 오해(비현실적, 무신론, 편의론 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도덕과 관련한 공리 주의자의 견해가 드러나 있는데, 개인적으로 장
수는 얼마 안 되지만 난해한 표현들이나 내용들이 있어서 읽다 쉬다를 몇 번 반복했다. 책을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는 편인지라, 이번에는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제일 뒷부분에 해제와 작품 해설 부분을 먼저 접하고 앞의 내용을 읽었다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영어 문장은 한국어 번역보다 더 난해하다고 하니, 그나마 역자에 의해 번역된 이 책이 더 낫겠지만, 그럼에도 내용 자체가 워낙
어렵게 표현되어 이따 보니 사실 이해하면서 읽는 게 쉽지 않다.
해제와 작품 해설을
읽은 후 다시 앞으로 와서 읽으니 마치 퍼즐의 조각이 맞춰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퍼즐 조각 하나하나만 보았을 때는 무슨 그림인 지 전혀
몰랐는데, 작품 해설과 밀의 생애에 대한 글을 읽고 보니 무슨 뜻인지 좀 더 명확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품 해설과 해제를 먼저 읽고 앞
부분을 읽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밀의
공리주의에는 예시가 등장해서 그나마 뜻을 알기에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장이나 이론만 등장했다면, 1도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예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는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19세기 철학자의 주장인지라, 당시는 파악했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은 안 맞는 주장처럼 들리는 부분도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 가난이 퇴치될 수 있다는 주장 말이다. (모두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서 현재도 기아나 가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어 보인다.) 또한 개인의 양심이 행동의 제재가
된다는 부분 역시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긴 하지만, 워낙 행복에 대한 견해가 다르고(특히 기본적 예의나 양심을 상실한 사람이 상당수 존재하고, 더
많아지는 추세이기에), 효용적인 행복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