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
-
뱀파이어 아카데미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ㅣ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1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자들, 불멸의 상징
바람이 불자 그녀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하얗고 가느다란 목선이 드러난다. 그녀의 목선은 뾰족한 턱선으로부터 길고 부드럽게 뻗어나와 작은 옹달샘 마냥 아름답게 빠인 쇄골뼈 사이로 수렴된다. 그런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잡아 챈 그는 그녀의 몸을 둥글게 휜 화살 시위 모양으로 만든채 자신의 몸을 향햐 끌어당긴다. 그녀의 머리는 아래로 떨어지고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던 머리는 폭포 수가 떨어지듯 땅을 향한다. 대신 하얗고 투명한 그녀의 목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그녀의 목선을 본 그는 입술 끝을 올려 뾰족하게 솟아난 하얗고 날카로운 그의 송곳니를 꺼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의 송곳니를 그녀의 목 가까이라 가져간다.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그의 심장 박동 수는 빠르게 증가한다. 그의 차가운 두 송곳니가 따뜻한 그녀의 목을 뚫자 그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새빨간 핏방울이 피어오른다. 정신없이 그녀의 목에서 피를 빨아먹자 창백했던 그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반대로 점점 백지장차럼 하얗게 변한다.
어렸을 때 주말의 명화를 통해 본 뱀파이어는 그런 이미지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피를 빨아 먹으며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고,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채 불멸을 삶을 살아가는 존재 말이다. 그리고 크면서는 뱀파이어가 불멸의 길이 굉장한 에로티시즘의 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여성의 하얀 목덜미에 뾰족한 송곳니를 꼽고 그녀의 몸 속에 있는 모든 피를 빨아 먹는 그 장면,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두려움과 환희의 얼굴 표정, 통증을 표현하는 것 같으면서도 쾌락이 들어 있는 숨 소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에로티시즘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뱀파이어들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작년에 많은 논란 속에서 개봉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서는 뱀파이어로 변한 송강호가 피를 공급받는 장면을 해학적으로 표현해냈다. 목사였던 송강호가 살아 있는 누군가의 피를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아이러니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참다 못해 결국 자신이 기도를 해주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찾아가 그의 피를 마신다. 그로서는 생명에 피해를 끼치지도 않으면서 신선한 피를 마실 수 있다는 나름 도덕적인 결론이었다.
송강호가 몰래 병원을 찾아가 환자 밑에 누워, 송곳니가 아닌 호스로 피를 마시는 장면은 흡혈에 대한 어떤 환상보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갈급함이 더 느껴져 재밌다. 예전의 뱀파이어들이 피를 마시는 것의 목적이 탱탱한 피부와 멋진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면, 현대의 뱀파이어들은 배곪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갈급함이 더 느껴지는 대목이다.
변치 않는 사랑의 상징
작년 한해 인간 벨라와 뱀파이어 에드워드와의 사랑을 그린 <트와일라잇>시리즈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소녀팬들의 열려한 호응을 이끌어내며 책은 물론 영화에서까지 흥행 몰이에 성공했다. 이에대해 많은 평론가들은 10대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하이틴 소설의 법칙을 이 책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극히 평범한 소녀를 사랑하는 조각상처럼 잘생긴 잘나가는 남학생, 게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디선가 기다렸다는 듯이 전광석화처럼 달려와 위기에서 구해주며 그녀를 위한 달콤한 말을 절대 잊지 않는. 그의 무리들로부터 보호받고 영원히 옆에서 지켜주는.. 모든 것이 소녀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는 것이다.
트와일라잇의 광 팬이었던 나 역시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무엇보다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가 소녀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하는 벨라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욕, 수면욕, 성욕을 뛰어넘어 그 어떤 세상의 욕망보다도 강렬하다는 흡혈의 욕구를 참아내며 벨라를 옆에서 지켜주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소녀팬들의 마음은 녹아내린 것이다.
키스를 나누다 안되겠다면 벨라를 밀쳐내고 뛰쳐나가는 모습이나, 밤마다 잠든 나를 찾아와 편히 잘 수있도록 지켜주는 모습. 그리고 내 곁을 떠난 순간에도 내가 위기에 처하면 달려와주는 그 모습 말이다. "사랑하니깐 널 지켜줄게"라는 남자들의 뻔한 말을 에드워드는 뻔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에드워드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뱀파이어 이야기가 순식간에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자 뱀파이어는 남녀의 사랑의 상징만이 아닌 '우정'의 모습으로도 등장하게 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보다 한 층 더 커진 스케일로 뱀파이어 세계를 다룬 <뱀파이어 아카데미>가 그것이다. 해리포터에서 마법세계의 용어가 등장하듯이 뱀파이어 세계의 용어들이 등장하고, 그들만의 판타지 세계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반 인간 반 뱀파이어인 로즈가 가장 친한 친구인 리사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띠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총 5권까지 나올 예정이고, 현재 2권까지 출간되었는데 이 책이 뱀파이어 열풍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수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뱀파이가 실재로 존재할 수도 있다면?
1980년대 중반, 미국 버지니아 주의 결찰은 20세 제프리 웨인라이트를 살인혐의로 체포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살해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인 것인데, 그가 죽인 사람은 43세의 찰스 브로우넬이라는 사람으로 자신이 흡혈귀라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자칭 흡혈귀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닌 사람의 손에 의해 자칭 흡혈귀가 죽임을 당한 셈이었다.
브로우넬은 스스로를 흡혈귀라고 믿는 자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약한 햇볕에만 노출되어도 피부가 손상되었다. 눈, 코, 손가락 할 것 없이 피부가 뭉개지거나 그 모양이 심각하게 변형되었다. 또한 치아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으나, 입술과 잇몸은눈에 띄게 뒤로 움푹하게 들어가 마치 송곳니가 튀어나온 듯한 인상으로 변했다. 게다가 몸에 털도 나기 시작했다.
그는 3만 명 중 1명에게서 발생한다는 희귀 유전질환인 포르피린증을 앓고 있었던 것인데, 그 증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와의 특징과 비슷해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리면 스스로를 뱀파이어로 착각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뱀파이로 착각한 이들은 이 끔찍한 병을 완화해 보려고 다량의 혈액을 마시기도 했는데, 브로우넬 같은 사람이 바로 그 병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이 병은 헤모의 부족으로 생기는 병이라 헤모수급이 필요한데 그래서 오늘날 포르피린증 환자들은 헤모주사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주사도 더이상 맞지 못하게 되면 정말로 다량의 혈액을 마시는 것만이 필요한 헤모량을 수급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 실제로 흡혈을 하는거나 마찬가지인 병.
의학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정신과 의사들이 한 분석도 흥미롭다. '흡혈귀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을 분석한 결과 그 원인은 매우 복잡하기는 하나, 모자(母子)관계에서의 콤플렉스가 흡혈귀 존재에 대한 믿음에 크게 기여했음을 밝혀냈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모유수유를 거부당한 사랍ㅁ이 있는데, 성인이 된 후 흡협귀의 끔찍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떤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현되는 증상이든 혹은 실재로 존재 가능성이 있는 것이든, 중요한건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이 만나 만들어진 것이 뱀파이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상징은 앞으로도 여전히 불멸과 에로티시즘을 부르짖으며 우리 곁에 다양한 문학적 산물의 원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