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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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탓이다.
누구나 탈출을 바라지만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_ <빅픽처>, 117쪽 중에서

그는 단지 사진이 찍고 싶었을 뿐이었다. 피사체를 통과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뿌듯했으며, 인화지에 담겨나온 자신의 작품을 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었다. 카메라 콜렉션이 유일한 취미였으며, 새로 나온 렌즈를 가장 먼저 구입해서 사용해보는 것이 기쁨이었고, 그 진열대를 바라보며 웃음짓는 것이 가장 달콤한 휴식이었다. 성인이 되고 성공만 하면 평생 사진만 찍으며 살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에는 그에게는 짊어져야 할 현실의 짐이 너무나 컸다.   

월가의 억대 연봉을 받는 <빅 픽처>의 주인공 벤은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월가의 변호사, 안정된 수입, 뉴욕의 중상류층이 모여 사는 교외의 고급 주택 거주자, 아름다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 모두가 벤에게 선망과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벤 스스로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성공한 변호사가 아니었다. 변호사는 단지 자신의 진짜 꿈인 사진사가 되기 위한 발판이었다. 변호사 수입으로 카메라 장비를 사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멋진 사진으로 인정받는 그런 사진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각종 장비를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벌었지만 사진을 찍으러 다닐 여유가 없었다. 직장, 집, 가족은 그에게 안정을 가져다 주었지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빅픽처>는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르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혹은 단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전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일을 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꿈을 잃어버린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우연한, 아니 우발적인 사고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게리'라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야 겨우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다(벤은 게리를 살해하게 되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게리로 살아가기로 한다. 게리의 시체는 벤이 자살한 것으로 위장해 세상에서 벤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말이다). 자신의 이름, 직장, 가족 등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그의 꿈인 사진사가 될 수 있었고, 그의 평생 꿈대로 사진사로 결국 유명해지게 된다.  

우발적인 사고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겪게 되는 일상의 문제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 벤은 '벤'이 아닌 '게리'가 되었을 때야 비로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는지가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이미 주어진 사회적인 지위와 책임 속에서는 인생의 꿈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작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꿈을 이루게 한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꿈을 찾기 위한 대가가 이만큼 어마어마하니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것일까?

게리가 살아있을 적 벤과 마주했을 때 게리는 이렇게 벤을 빈정거렸다. "적어도 나는 아직 사진에 발을 담그고 있잖아. 너 자신을 똑바로 쳐다봐. 넌 그냥 일개 사원이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꿈꾸던 일을 하나로 합치지 못한..." 그의 이 말에 혹시 가슴이 뜨끔하지 않았는가? 마치 나에게 이 말을 하는 것처럼 느끼지 않았는가? 난 그랬다. 그리고 내 꿈을 찾기 위해 지금 난 무얼 버려야 하고, 무얼 잊어야 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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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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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는 하지 말죠"
뮈리엘은 오랜기간 준비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신상 향수였다. 뮈리엘의 성공적이 세일즈 프로모션을 위해 일본 최고의 광고회사를 찾아간 뮈리엘 측 사람들은 쓰에무라의 이 한마디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광고를 위해 찾아간 광고회사에서 기획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광고를 하지 말자'라니.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모두의 입을 떡 벌리게 만들었다. "요즘 십대 아이들은 광고 따위는 믿지도 않아요. 광고를 요란하게 할수록 그 상춤은 자기들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것으로 여깁니다. 대신 '그것'에다 돈을 쓰시죠."

<소문>은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일본 최고의 광고 기획자인 쓰에무라는 뮈리엘 향수 상품 설명과 타깃 소비자를 보자마자 '소문'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에무라의 소문 마케팅 방법은 최고의 마케팅 서적이라고 말하는 책들에 등장한 사례보다 뛰어났다. 우선 여고생들로 이루어진 모니터를 모집한다. 소비자가 될 학생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입소문에 민감하며 인터넷 확산력을 가진 여고생들을 소문의 근원지로 모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니터는 일반 상품 모니터처럼 샘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모니터의 목적은 "도시형 커뮤니케이션 전달"에 관한 조사다.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 달 안에 최대한 많은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보수는 이야기를 전달한 학생들의 수로 정해진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조종당하는지도 모른채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열심히 친구에게 전달한다. 30명의 학생들에게서 시작된 그 소문은 순식간에 시부야를 넘어 전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그 확산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여고생들은 미친듯이 뮈리엘 향수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여고생들 사이에 뮈리엘 향수가 없으면 트렌드에 뒤쳐지는 아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뮈리엘 향수는 잘나가는 수많은 외국계 향수제품들을 모두 누르고 일본 최고의 향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그때, 그 소문이 현실로 벌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밤중 시부야에는 뉴욕에서 온 살인마 레인맨이 나타나서 소녀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 간대. 하지만 뮈리엘을 뿌리면 괜찮대"


쓰에무라가 만들어낸 소문은 '도시 괴담'이었다. 한밤중 시부야에는 여고생들의 발목만을 노리는 레인맨이라는 작자가 돌아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뮈리엘 향수를 뿌리는 소녀는 건들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발목만 잘린채 숨진 여고생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여고생들은 더욱 공포에 떨기 시작했고 그 소문의 정체를 알아낸 경찰의 수사는 쓰에무라의 광고회사로 그 수사의 폭을 점점 좁혀들어온다.

이 책은 미스터리 추리물이지만 그 안에는 이토록 뛰어난 입소문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반면 남에 대한 좋은 이야기나 칭찬 보다는, 욕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드러나 있어 찹찹하기도 했다. 쓰에무라의 마케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추악한 인간의 본성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었다.

WOM. Word of Mouth. 입소문의 힘을 가리키는 용어. 긍정적인 경우 한없이 유용한 방법이지만, 그에대한 부작용 역시 만만찮다. 루머 때문에 누군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도 하고, 잘 나가던 기업이 한순간에 파산하며 세계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기도 한다. 이 책 <소문> 역시 그 폐해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찌보면 무더운 여름 밤 읽으면 좋을 미스터리 추리물에 불과하겠지만, 그 안에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녹아있어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돈 혹은 매출'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타인의 악성 루머를 즐기는 우리네들의 모습이 녹아있어 읽는 내내 서글펐다.

추신,
이 책에는 반전이 있다. 맨 마지막 한 문장에 담겨 있다고 책 표지에서 공공연히 말하고 있어 스포일러는 아니다. 읽다가 너무 궁금해서 미리 맨 마지막 장을 봤지만, 이 책은 다 읽지 않으면 그 문장 속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해낼 수 없다. 그러니 혹시 읽게 되시는 분들! 저와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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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마빈 클로스 외 지음, 박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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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대한민국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기쁨과 함께 함께 16강에 진출할 국가들의 면모가 속속들이 들어나면서 이제 여기저기서 월드컵 이야기 뿐이다. 우승후보국으로 점쳐지던 프랑스,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이변과 더불어 새로운 우승 후보국들에대한 기대가 점쳐지면서 이제 월드컵은 축제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전 세계의 눈이 바로 지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스타디움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한 달전만 하더라도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불안한 치안상황, 갖가지 설비에 대한 의구심 등이 과연 남아공이 성공적인 월드컵을 치뤄낼 수 있을까 걱정하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월드컵 초반부터 삐끄덕 거렸다. 그리스 선수단의 숙소에 강도가 침입하는 사건이 일어나질 않나, 성숙하지 못한 시민 문화가 경기장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질 않나, 많은 사람들은 남아공의 월드컵 개최는 역시 무리한 결정이었다고 탄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월드컵이 남아공에서 치뤄지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불과 40,50년 전인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 남아공은 모든 국제 단체경기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는 이유로 1976년 국제축구연맹으로부터 제명되었고, 그 이후로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남아공은 국제 경기에서 영원히 볼 수 없는 국가가 될뻔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30년 후인 2004년 5월 15일 남아공은 2010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결정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최되는 사상 첫 월드컵이었다.

국제축구연명으로부터 제명되면서부터 아프리카 대륙 사상 첫 월드컵 개최국이 되기까지의 2-30년이라는 시간동안 남아공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스포츠 축구가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저항의 상징이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여기 축구를 통해 인종차별과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FIFA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나 개인이 아닌 단체의 이름으로 회원이 된 남아공 로벤섬 마카나축구협회.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남아공 월드컵 개최가 그들에게 얼마나 가슴벅차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알려준다.

 

 
로벤섬 수용소에서 시작된 그들만의 리그
 
"목표는 남아공 국민 중에 단 한명의 흑인도 남지 않는 것이다". 남아공의 각료였던 코르넬리우스 멀더는 이렇게 선언했다. 1948년 백인들만의 선거로 집권에 성공한 국민당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채택했다. 인종차별정책인 이 정책은 백인의 우위를 법적으로 확실하게 다지고 흑인들을 짓밟기 위한 정책이었다. 정부는 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모든 상점에는 '백인 전용'을 알리는 표지판을 부착하도록 했다. 식당, 영화관, 호텔은 물론 공원과 버스정류장도 백인과 흑인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명백하게 갈렸다. 스포츠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남아공 정부는 백인들로만 구성된 축구 대표팀을 만들었다(물론 국제연맹으로부터 출전을 거부당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치범으로 구속되었다. 흑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웠던 세딕, 리조, 토니, 마커스 역시 그렇게 로벤섬으로 오게 되었다. 로벤섬은 케이프타운 해변에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바위섬으로 악명 높은 감옥이 있는 곳이었다. 2천 명이 넘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수용소에는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고 온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가장 악질로 여겨지는 정치범들이 수용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은 가히 인간들의 삶이라 할 수 없을만큼 가혹한 삶이었다.

일례로 흑인 죄수들에게는 반마지 발판만 지급되었다. 백인 우월론자들에게 그들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개인 신발도 지급되지 않았다. 대신 신발을 수북히 쌓아 놓은 신발 더미에서 매일 아침 짝이 맞는 것을 찾아 신어야했다. 늦게 일어나기라도 하면 신발이라 부를 수도 없는 다 헤어진  신발을 그것도 짝도 맞지 않게 신어야했다. 기준 식사량 역시 백인들에 비해 적었고, 그것도 그나마 식사량에 맞게 나오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이 먹을 수도 없는 것들이 식사 함량에 아주 미달되게 지급되었다.

 이토록 혹독한 감옥 생활이었지만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축구'였다. 공이 지급될리가 만무했다. 그들은 간수들의 눈을 피해 자신들의 셔츠를 뭉친 후 묶어 임시로 축구공을 만들었다. 옷으로 만든 축구공으로 놀다가 간수가 오면 재빨리 원상태로 풀어 놓았다. 이렇게 로벤섬 수용소에서 몰래 축구가 시작되었다. 길고 지루했던 감옥 생활에 즐거움이 찾아왔고, 수감자들에 눈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침대는 한쪽으로 치워졌고, 5인 혹은 8인조 미니 경기가 매일 밤 펼쳐졌다. 그들은 축구를 꿈꾸기 시작했고, 조용히 그러나 흑인들도 축구를 할 수 있다며 그들의 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이 열리다

"우리가 축구하는 것을 허가해 주십시오." 당연히 쉽지 않았다. 수감자들의 얼토당토한 요구에 더욱 화가 났고 간수들은 수감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내몰았다. 하지만 수감자들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독방 생활과 갖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때마침 세계에서도 남아공에 주목하고 있었다. 1961년에 FIFA는 모든 국제경기에 백인으로만 구성된 남아공 대표팀이 출전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1964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 역시 인종차별의 이유로 축출되었다. 로벤섬에서 축구에 대한 요구를 1년 이상 한 어느날 국제적십자사의 로벤섬 방문이 있었다. 정부는 잘 보여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은 축구할 권리를 얻어냈다.

1967년 어느 바람 부는 토요일 오전, 축구 경기가 시작됐다. 수감자들 중 무작위로 사람을 뽑아 레인저스, 벅스 이렇게 두 팀을 만들고 경기를 시작했다. 축구화나 운동복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들은 죄수복을 입고 있었고 대부분이 맨발이었다. 경기 휘슬리 울렸다. 진짜 공으로 축구를 해본지 3-4년이 지났고, 제대로 먹지 못해 체력은 바닥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선수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 로벤섬에서 축구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로벤섬에서는 축구 리그가 시작되었다. 7개의 클럽에서 시작해 10개 클럽까지 만들어졌고, 협회의 이름도 만들어졌다. 협회 이름은 '마티에니(돌을 의미함)'로 지어졌다 의미가 힘들다는 이유로 후에 '마카나'로 바뀐다. 마카나는 1819년 식민주의 세력에 맞서 영국 군대와 전투를 벌이다 감금되었던 코사 족 지도자의 이름이었다. 마카나축구협회(MFA)는 정관을 작성해 1969년 발표한다. 피파의 규정과 수칙을 적용했으며 이는 그들이 로벤섬에서의 축구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올해의 축구 선수를 선정할 계획도 세우고 이적에 대한 규율도 세운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1969년 드디어 MFA의 첫 번째 시즌이 시작되었다.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로벤섬 수용소에는 온통 축구 이야기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어있었다.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간수들도 은근히 자신들이 지지하는 팀이 이기기를 응원했고, 남몰래 선수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국저그 배경, 피부색, 인종이나 종교적 신념의 문제를 모두 떠나 로벤섬은 하나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축구는 해묵은 인종차별의 문제까지 뛰어넘으며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로벤섬에도 위기가!


모든 스포츠에는 승패가 있다. 그래서 스포츠가 더욱 즐겁기도 하고, 그래서 스포츠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로벤섬에서의 축구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동등하게 하나가 되고, 그 어느것으로도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그들을 축구라는 것으로 연대감을 느끼게 했지만 역시 축구에도 승패가 있었고 이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문제를 만들었다. 축구 실력이 향상되면서 리그는 더욱 치열해졌고 더욱 경쟁적으로 변해갔다. 

 문제는 심판관이었다. 공정한 심판을 진행하려면 선수들과 거리를 두어야했지만 감옥이라는 특성상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경기가 지기라도 하면 심판관들에게 공격적인 언행을 퍼부으며 그들을 괴롭혔다. 심판관들은 경기장에서 호각을 불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선수들은 심판관들이 오심판정을 했다며 협회에 심판 교체 혹은 판정 번복을 요청하기도 했고 재경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의 길고 긴 지루한 싸움은 결국 축구를 하고 싶어하고 축구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 의해 매듭이 지어진다. 이들이 싸우는 동안 경기가 열리지 않자 수감자들은 물론 간수들까지 축구 경기를 보고 싶다며 아우성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리그는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지만 1976년 소웨토 사건으로 수감자들이 대대적으로 들어오며 다시 한번 갈등이 빚어졌다. 

정부가 아프리칸어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입안하자 흑인들은 다시 한번 분개했다. 흑인 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영어와 토착어로 교육을 하고 있었고, 언어에 대한 통제는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다시 한번 봉기한 것이었다. 이번 봉기로 대규모의 흑인들이 정치범으로 잡혀 로벤섬에 들어왔고 이 젊은 소웨토 세대의 흑인들은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들 눈에는 선배들이 백인들에게 붙어 아무 생각없이 굴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놓고 윗 세대들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두 세대를 엮어준 데는 또 다시 축구의 힘이 컸다. 윗 세대들은 자신들이 어렵게 쟁취한 권리에 대해 얼마나 힘든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는지를 설명했고, 젊은 세대들은 축구할 권리를 위해 타협한 배신자라는 생각을 차츰 접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스포츠는 세대 갈등마저 잠재웠다. 젊은 피의 수혈로 로벤섬 리그는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축구는 1990년 로벤섬 교도소가 폐쇠될 때까지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스포츠는 위대하다


"스포츠는 인격을 형성하고, 사회 변혁을 가져오고, 사람들을 공동의 목표를 위해 뭉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_ 254쪽 중에서

1990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끝내 무너지고, 새롭고 젊은 다인종 국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새롭게 탄생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10년 당당하게 월드컵 개최국으로 전세계 손님을 맞는다. 남아공이 월드컵 개최국이 되기 까지는 이렇게 길고도 험난한 역사가, 로벤섬 수용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던 것이다.

남아공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선 국가였지만 그 속내는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자유를 부르짖다가 잡혀간 수많은 정치범은 로벤섬 수용소에 갖힌 사람들과 닮아 있었고, 소웨토 항쟁에서 학생들이 봉기한 것은 광주 학생운동을 연상시킨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3년에 민주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우리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0년에 같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2002년에, 남아공은 그보다 8년 늦은 2010년에 월드컵 개최국이 되었다.   

올초 신문에 난 서평을 읽다가 읽고 싶어 사뒀던 책을 이제야 다시 꺼내 읽었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후회도 했고 동시에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했다. 시나리오 작가 답게 극적인 이야기 구성도 맛깔나게 잘해냈고,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로벤섬 자료를 이잡듯 잡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낸 것도 대단했다. 한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보는 듯했고, 긴 여운을 남겨주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의 표지는 당시 로벤섬에서 축구를 했던 수감자들의 존재를 알리는 단 한장의 사진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지워져 알아볼 수가 없다. 남아공 정부에 그들은 한 명의 인간, 한 명의 선수가 아닌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들의 얼굴을 찾아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얼굴을 한명 한명 떠올려보려 애썼다. 남아공의 현 모습을 비판하는 것에 앞서, 그들에게 월드컵 개최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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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사마천 지음, 이수광 엮음, 이도헌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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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는 동양인들이 가장 애독하는 역사서다. 한 손에는 삼국지, 다른 한 손에는 <사기>라는 내용을 담은 책제목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들은 2000년도 더 된 역사서, <사기>에 열광한다. 이유가 무얼까?

흔히 <사기>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책은 <사기 본기>가 아니라 <사기열전>이다. 총 70권으로 구성된 <사기열전>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백이숙제의 이야기부터 동북아 고대사 논쟁의 이슈가 되고 있는 <조선열전>등 사마천이 인물과, 주변 국가들의 이야기를 따로 정리해 만든 책이다. '관포지교'니 '토사구팽'이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고사성어의 상당수가 이 사기열전에서 비롯되었으니 동아시아 사람들의 정신 세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큰 책이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이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까닭은 이 열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때문이다. 비극적 영웅인 한신, 입지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 파멸한 승상 이사,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자객 형가, 때를 기다리고 마침내 뜻을 이루는 오자서,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굴원 등 <사기 열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한 인생을 살며 자신의 뜻을 이루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느낄 수 있고, 거칠고 험난한 역사의 무대에서 어떻게 자신을 키워나가고 보전해야할 지도 알려준다. 인생의 길과 삶의 지혜로운 방법론을 느끼고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흥미로운 각 인물들의 파란만장하고 비장한 삶의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하면서도 한편으로 뭉클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만든다.역사서이면서도 문학작품으로서의 매력도 가지고 있는 <사기열전>은 이런 의미 때문에 수천년 동안 많은 독자들이 사랑해온 것이다.

이 책 <꿈꾸는 20대, 사기에 길을 묻다>는 <사기열전>의 이야기를 '내 인생의 사람', 신념', '열정'등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설가 이수광이 쉽게 풀어 쓴  책이다. 만화가 이도현의 일러스트도 멋드러졌다. 고어체 문장을 쉽게 풀어 젊은 세대 독자들이 쉽게 읽게 만든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야말로 <사기열전>의 몇 내용을 뽑아 쉽게 풀어 쓴 책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기를 읽고 싶은 독자인데 어려워 보여서 주저했다면 권할 만하다. 그러나 20대에게 사기의 인물들의 내용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길을 가르쳐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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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4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기열전>과 관련된 책이 꽤 나오는 거 같던데 물론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용이 방대하고 어려워도 원전을 먼저 읽어보고
다음에 요약본이라던가 <사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볼 수 있는 책을 읽는게 나은 거
같아요. 저도 김원중 교수 번역의 <사기열전> 2권을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
내용은 이해할만한데 양이 워낙 많다보니.. 진도가 잘 안나가네요(-_-)a
그래도 가끔 <사기> 원전을 읽다가 막히면 리듬님이 읽으신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리뷰 덕분에 유익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글 잘 읽었어요^^ㅋ
 
<플레이,즐거움의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요즘 뭐해?'라는 질문에 '나 요즘 놀아'라고 답한다면 백이면 백 당황스러워 하며 다음 말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릴 거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적어도 내게는 태어나면서 부터였다) 우리에게 '놀이'는 죄악시 되고 금기시 되는 말이었다. 공부의 반대말, 일의 반대말에 놀이가 자리 잡았고, 정작 놀고 있는 와중에도 '정말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감에 그나마 노는 와중에도 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노는 인간'. 정말 금기시 되어야 하고 죄악시 되어야하는 말일까?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를 연구한 네덜란드 역사가인 하워징아는 놀이를 이렇게 정의했다. "놀이는 다분히 의식적으로, '평범한' 삶 바깥으로 벗어나는 자유로운 활동이다. 그것은 심각히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을 홀딱 빠져들게 만든다." 하워징아도, 그리고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의 저자 스튜어트 브라운도 놀이를 일의 반대말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이의 반대말은 우울함이며, 행복, 성공, 생존을 돕기 위한 상상력, 생산성, 혁신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보고가 되어주는 것이 '놀이'라는 것이다.

'지금 놀지 못하면 오히려 뒤쳐진다'는 발칙한 주장을 담은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은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을 거쳐 우리 안에 뿌리 내린 놀이의 힘을 활용해 성취감을 얻고 창의적이고 만족도가 높은 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놀이의 역할과 그 효용을 말하는 책이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자신이 만난 환자들의 사례와, 본격적인 놀이 연구를 시작하면서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놀이의 위력을 조목조목 밝힌다.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발견하고, 우연에 마음을 열고, 예기치 못한 것을 즐기고, 약간의 위험을 수용하고, 활기찬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이 모든 것이 놀이의 특징이다.
_ 243쪽 중에서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놀이가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 우리는 맨날 놀아야만 하는 것인가? 누구는 놀고 싶지 않아서 못 노나?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있고 먹고 살아야 하는 생계의 문제가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 놀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먼저 필요하다. 놀이는 우리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더 손쉽게 다가가기 위한 촉매제 역할임을 알아야 한다. 잠깐의, 제대로 된 놀이로 삶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우리의 삶을 더 만족스러운 상태로 올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면, 제대로 된 놀이란 또 어떤 것인가? 어떻게 놀아야 정말 '잘' 놀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인가? 지금의 주말을 보내듯이 이렇게 놀면 되는걸까? 이렇게 노는게 정답이다. 혹은 놀이란 이런거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놀이를 7가지 특징으로 규정한다. 목적이 없어 보인다(그 자체가 목적이니깐), 자발적이다(강제적인 의무가 없으므로), 고유의 매력이 있다(재미있으며 기분이 좋아지고, 때로는 흥분도 일으키니깐), 시간 개념에서 자유로워진다(재미있는 놀이는 시간 가는줄 모르므로), 자의식이 줄어든다(남이 보기에 내가 똑똑해 보이는지, 착해보이는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니깐), 즉흥적이다(엄격한 방법은 없다. 우연과 기회라는 요소가 항상 상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진다.  

모든 동물을 통틀어 인간만큼 잘 노는 종도 없다고 하는데, 현대사회의 인간은 갖은 족쇄에 묶여 그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부모들의 통제와 입시라는 압박감에 인터넷 게임에만 매달리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강박에 휩싸여 주말에도 학원가를 전전하며 공부하기에 전념한다. 이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놀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회사는 언제 내가 있었냐는 듯 잘 돌아가게 마련이고, 부모가 잠시 그 역할을 소홀히 한다 한들 자식들의 독립성이 더 커지면 커졌지 나를 찾는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 않을 것이며, 단 한 달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의 낙오자가 될 일은 결코 없다. 죄책감 때문이든, 책임감 때문이든 일에 치여, 공부에 치여 제대로 놀아보지 못한 당신. 내 삶 속에서 '놀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얼마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한번 돌이켜보자. 그 시간 만으로도 잃어버렸던 놀이의 흥분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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