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광고는 하지 말죠"
뮈리엘은 오랜기간 준비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신상 향수였다. 뮈리엘의 성공적이 세일즈 프로모션을 위해 일본 최고의 광고회사를 찾아간 뮈리엘 측 사람들은 쓰에무라의 이 한마디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광고를 위해 찾아간 광고회사에서 기획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광고를 하지 말자'라니.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모두의 입을 떡 벌리게 만들었다. "요즘 십대 아이들은 광고 따위는 믿지도 않아요. 광고를 요란하게 할수록 그 상춤은 자기들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것으로 여깁니다. 대신 '그것'에다 돈을 쓰시죠."

<소문>은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일본 최고의 광고 기획자인 쓰에무라는 뮈리엘 향수 상품 설명과 타깃 소비자를 보자마자 '소문'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에무라의 소문 마케팅 방법은 최고의 마케팅 서적이라고 말하는 책들에 등장한 사례보다 뛰어났다. 우선 여고생들로 이루어진 모니터를 모집한다. 소비자가 될 학생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입소문에 민감하며 인터넷 확산력을 가진 여고생들을 소문의 근원지로 모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니터는 일반 상품 모니터처럼 샘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모니터의 목적은 "도시형 커뮤니케이션 전달"에 관한 조사다.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 달 안에 최대한 많은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보수는 이야기를 전달한 학생들의 수로 정해진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조종당하는지도 모른채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열심히 친구에게 전달한다. 30명의 학생들에게서 시작된 그 소문은 순식간에 시부야를 넘어 전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그 확산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여고생들은 미친듯이 뮈리엘 향수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여고생들 사이에 뮈리엘 향수가 없으면 트렌드에 뒤쳐지는 아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뮈리엘 향수는 잘나가는 수많은 외국계 향수제품들을 모두 누르고 일본 최고의 향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그때, 그 소문이 현실로 벌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밤중 시부야에는 뉴욕에서 온 살인마 레인맨이 나타나서 소녀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 간대. 하지만 뮈리엘을 뿌리면 괜찮대"


쓰에무라가 만들어낸 소문은 '도시 괴담'이었다. 한밤중 시부야에는 여고생들의 발목만을 노리는 레인맨이라는 작자가 돌아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뮈리엘 향수를 뿌리는 소녀는 건들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발목만 잘린채 숨진 여고생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여고생들은 더욱 공포에 떨기 시작했고 그 소문의 정체를 알아낸 경찰의 수사는 쓰에무라의 광고회사로 그 수사의 폭을 점점 좁혀들어온다.

이 책은 미스터리 추리물이지만 그 안에는 이토록 뛰어난 입소문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반면 남에 대한 좋은 이야기나 칭찬 보다는, 욕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드러나 있어 찹찹하기도 했다. 쓰에무라의 마케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추악한 인간의 본성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었다.

WOM. Word of Mouth. 입소문의 힘을 가리키는 용어. 긍정적인 경우 한없이 유용한 방법이지만, 그에대한 부작용 역시 만만찮다. 루머 때문에 누군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도 하고, 잘 나가던 기업이 한순간에 파산하며 세계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기도 한다. 이 책 <소문> 역시 그 폐해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찌보면 무더운 여름 밤 읽으면 좋을 미스터리 추리물에 불과하겠지만, 그 안에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녹아있어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돈 혹은 매출'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타인의 악성 루머를 즐기는 우리네들의 모습이 녹아있어 읽는 내내 서글펐다.

추신,
이 책에는 반전이 있다. 맨 마지막 한 문장에 담겨 있다고 책 표지에서 공공연히 말하고 있어 스포일러는 아니다. 읽다가 너무 궁금해서 미리 맨 마지막 장을 봤지만, 이 책은 다 읽지 않으면 그 문장 속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해낼 수 없다. 그러니 혹시 읽게 되시는 분들! 저와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