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 비판 - 지식 경제 시대의 부와 분배
가 알페로비츠 & 루 데일리 지음, 원용찬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한 명의 천재가 수십만, 수백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 같은 부자들의 성공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그들을 칭송한다. 하지만 그러한 천재론은 점점 심해져만 가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들의 비참한 삶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은연중에 길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예를 들자면, 모 대기업 회장은 그 정도의 부와 재화를 누려도 된다고, 그가 한국 경제와 근로자들을 먹여살리고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하지만 그것이 그의 탈세와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 그리고 근로자들의 위험한 작업환경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면 과연 사회가 부를 이루는 과정에서 최상위의 부자들과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경제적 상황에 처해야 마땅한 것인가. 가 알페로비츠와 루 데일리는 <독식 비판(원제 Unjust Deserts)>을 통해 소득 분배와 공정한 사회 질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지식 경제 사회에서는 장기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기술, 즉 사회의 공동 자산이 개인의 생산 활동보다 훨씬 크게 부의 창출에 기여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한마디로 일종의 인프라(infra)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예전에 개발도상국이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사회 전반의 기초적인 인프라의 부족을 꼽았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한 단락이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저자들은, 지금의 거부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기반이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나 제3세계의 최빈국에 있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부를 거머쥘 수 있었을지 의문을 던진다. 물론 그들의 재능을 활용해서 평균적인 동시대인들보다는 잘 살수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엄청난 수준의 부를 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굳이 경제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 등의 새로운 발견과 그로 인한 기술적 진보 역시 단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들이 채택되고 재결합되는 일종의 진화적인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고 경제사가 어셔는 설명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개인적 노력으로 기여하여 이룩했다고 보이는 것조차도, 상당 부분은 각 개인이 받은 일종의 유산, 사회적 영향, 행운이 낳은 생산물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는 물질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인 것 역시 포함된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이 유산과 행운보다 의미가 적거나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혜택을 받은 개인은 상속을 받은 만큼 사회를 뒷받침하여 어느 정도 기여할 도덕적 책무(noblesse oblige)를 지닌다. 위에 언급한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같은 막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거액을 기부하고 있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성공한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공동 자산의 혜택을 어떻게 사회의 정당한 몫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까. 저자들은 결코 그들의 정당한 몫을 몰수해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다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압제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해결책으로써 저자들은 상위 1~2퍼센트에 대한 소득 과세 증가, 법인세 증액, 대규모 자본의 사적인 상속에 대한 세금 인상, 종업원 소유 기업에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사회적인 제도들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의 안정성 측면에서 봐도 이 편이 훨씬 낫다. 통계학의 지니 계수(Gini's coefficient)는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진다.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다는 것을 뜻하고, 수치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어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부자들이 부를 누리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로자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착취다. 첫째 문단에 예로 든, 모 대기업 회장 한 사람이 그 기업의 수많은 근로자들을 먹여살린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기업이 많은 이익을 내고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것은, 규정 외의 노동 시간에 시달리고,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중병에 걸리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받아야 할 마땅한 몫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이며 아버지, 어머니인 수많은 근로자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이 사회에 여러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고 이제는 그들에게, 그리고 모든 근로자들에게, 나아가서 최소한의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그들의 몫을 분배해야 한다. 

"난 몰랐어."
경애가 말했다.
"그게 너의 죄야."
윤호가 말했다.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야. 너희 할아버지는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둘렀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일한 적이 이때까지 없었어. 너의 할아버지는 모든 법조항을 무시했어. 강제 근로, 정신·신체 자유의 구속, 상여금과 급여, 해고, 퇴직금, 최저 임금, 근로 시간, 야간 및 휴일 근로, 유급 휴가, 연소자 사용 등, 이들 조항을 어긴 부당 노동 행위 외에도 노조 활동 억압, 직장 폐쇄 협박 등 위법 사례를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야. 난장이 아저씨의 딸이 읽던 책을 보았어. 너희 할아버지가 한 말이 거기 쓰여 있었다구. 지금은 분배할 때가 아니라 축적할 때라고 쓰여 있었어. 그리고, 너의 할아버지는 돌아갔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나누어주지? 너의 할아버지가 죽은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다 주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걸 몰랐지? (중간 생략) 이제 네 죄에서 네가 스스로 벗어나야 돼. 지금까진 너희를 위해서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의 어린 동료들이 희생을 당해왔어. 지금부터는 그들을 위해 너희가 희생할 차례야. 알겠니? 집에 돌아가면 어른들에게 말해."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의 단편 '궤도 회전' p.152~153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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