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사 1 - 뒤집어진 세상 2차 세계대전사 1
제러드 L. 와인버그 지음, 홍희범 옮김 / 길찾기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 해군의 진주만 기습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을 다음에 옮겨 놓는다. 

  [진주만을 공격한다는 야마모토의]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진주만 폭격은 일본의 전반적인 전쟁 전략과 어긋났다. 만약 기습공격이 성공한다 해도 미국은 사기가 꺾여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를 용인하기보다는 일본과의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 작전 회의에서 오니시 다키지로 해군 소장은 남방 침략으로 전쟁이 시작된다면 만족스럽지 못하게나마 마무리를 지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진주만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다면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또 있었다. 일본의 작전계획은 남방을 침략하는 동안 미 해군에 의해 측면이 위협받을 것을 가정해 수립되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고, 일본에는 이 사실을 알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진주만의 미 해군 함대에는 태평양을 건너편에서 작전하기 위한 보급함, 특히 유류 보급함이 없었다. 호놀롤루의 일본 영사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뛰어난 일본 스파이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다. 게다가 이미 언급했듯 진주만에 있던 미 태평양 함대 전력의 상당수는 대서양으로 차출되었다. 이미 대서양 차출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야마모토는 미친 듯한 편협함으로 자신의 계획을 고집했다. 1941년 9월에 실시된 일본 해군의 워 게임에서는 이미 4월에 대서양으로 이동한 항모 요크타운이 진주만에서 격침당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야마모토의 계획은 수심이 얕은 항구를 공격하는 만큼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앞으로 전쟁에서 미 해군 전력을 재건하는 과정에 매우 크게 작용할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수심이 얕은 항구에서 가라앉은 배들은 완전히 침몰하지 않고 착저하는 만큼 쉽게 인양하고 수리해 복귀시킬 수 있다. 일본은 수심이 얕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항공어뢰를 거의 가라앉지 않고 항주할 수 있도록 개조했으며 이 개조 어뢰는 함대가 출항하기 직전인 11월 17일에 마지막 분량이 인도되었다. 그리고 미국 해군 수병들 대부분은 공격이 벌어질 때 외박-외출 중이거나 설령 배에 있어도 쉽게 구조될 수 있는 만큼 생존 확률이 매우 높았다. 만약 원래 계획대로 대양에서 작전이 벌어졌다면 상황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전략적-실용적 고려도 전술적 성공에만 집착한 야마모토의 뜻을 굽히지 못했다. 진주만 기습을 계획하면서 하와이를 점령하자는 계획도 거론되었지만, 여기에 필요한 병력은 남방 침략에 동원되어야 했기에 실현되지 못했다. (299~300 페이지)

  사실 진주만 공격은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일본에게 재앙이었지만 일본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피격된 함선 대부분은 인양되었고 12월이 지나기도 전에 야마모토가 격침시켰다고 믿었던 전함 중 두 척은 수리를 위해 미국 서해안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애리조나와 오클라호마를 제외한 모든 전함들이 전열에 복귀했으며 그중 일부는 1944년 10월에 미 해군이 압승을 거둘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승무원들도 대부분이 살아남아 미 해군을 재건하는데 기여했다. 이런 전술적 요인들은 기본적인 전략적 오산의 산물이었다. 미국이 메인 호 폭발이나 루시타니아 호 격침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잘 아는 사람들은 평화 시에 벌어진 기습 공격이 미국인들을 단결시켜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싸우도록 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일본의 전략은 시작부터 어긋나는 셈이다. 미국인들이--미국인 대부분이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점령당한 태평양 섬들을 다른 나라에 돌려주거나 독립시키기 위해 큰 희생을 감내하며 탈환하지 않으리라는 일본의 추측은 태평양 전쟁으로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진주만에서 성공한 기습은 일본의 승리가 아닌 패전의 보증수표였다. (302 페이지)


야마모토가 미국 유학 등을 통하여 미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미국을 너무 두려워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원래 계획대로 일본으로부터 더 가까운 대양에서 미국 해군과 처음으로 싸웠다면 지는 쪽은 정말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지는 쪽이 과연 미국이었을까 일본이었을까. 결과론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은 차라리 이쪽에 도박을 거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한 번은 확실하게 이기겠다는 야마모토의 욕심이 진주만 기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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