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최선의 세계
이바르 에클랑 지음, 박지훈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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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학은 보통 뉴턴의 운동 방정식으로 기술되고, 원칙적으로 이 미분 방정식을 풀면 물체의 미래 운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고전역학의 세계관을 결정론적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뉴턴 역학을 천체에 적용하여 집대성한 라플라스는 나폴레옹 황제가 그럼 "우주 속에 신이 있을 자리는 어디요?"라고 물었을 때, "폐하, 그러한 가정은 전혀 불필요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전역학 속에서도 이러한 계(가적분계integrable system)는 특정한 예일 뿐이고 비가적분계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19세기 말 앙리 푸앙카레 등의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이것이 근래 관심을 끌었던 '카오스'로 가는 단초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당구공 운동의) 예를 들며 (꽤)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가적분계, 비가적분계의 특성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가적분계의 주된 특징은 무엇보다도 운동방정식을 풀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라도 모든 궤적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현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의 상태를 완벽히 예측할 수 있다. 가적분계는 예측이 가능할 뿐 아니라 안정적이다. 이는 곧 일정한 시점에 상태(위치와 속도)가 조금만 변하면, 뒤이어 그와 비슷한 작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가적분계에서는 결과가 원인에 비례한다. 작은 변화, 에컨대 나비의 날갯짓은 열대지방에서 천둥 번개와 같은 대형 난기류로 확대되지 않는다.

...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성질은 가적분계에 특화된 성질이[다]... 고전역학이 오랜 기간 가적분계만 다뤄온 탓에 아직까지 인과관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남아 있다. 비가적분계에서 비롯된 수학적 진리는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모든 것 이외의 원인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려면 오늘 일어나는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의 사건이 뒤이어 발생하는 사건의 유일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연속적이고 명료한 "인과관계 사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38, 139 페이지)


이 세상은  인과관계 사슬로 분해되지 않는다. 발생한 사건의 원인이 직전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이 되도록 사건을 선형적으로 늘어놓지는 않는 것이다. 각 사건은 과거를 향해 뿌리다발을 뻗치며, 미래를 향해 가지 왕관을 올리고 있는 나무와도 같다. 그 어떤 사건에도 단일한 원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로 깊이 들어갈수록, 특정 사건에 대한 선행 사건이 더 많이 보이게 된다. 꼬이지 않은 실처럼 한 가지 경로를 따라 결과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볼수록, 단일한 사건은 더 넓은 그물망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141 페이지)


가적분계는 원인과 효과[결과가 올바른 번역!]가 질서정연하게 비례하나, 비가적분계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의지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경시할 수 없다. 현실은 이 두 가지 체계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며, 대부분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길게 보면, 이 세상은 비가적분계에 해당된다. 하지만 짧게 보면 가적분계가 현실에 부합한다. 예컨대 오늘 날씨를 예측하거나, 지금으로부터 1000년 후 달의 위치를 예측하고 싶다면 가적분계를 따라야 미래의 결과를 정확히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정도의 시간 주기에서는 안전한 예측이 가능하며, 내일 비가 오거나 2100년에 일식이 있으리라는 것을 꽤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진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100년 후의 날씨가 어떨지, (지구 온난화 논쟁을 유념하라.) 화성이 몇 십억 년 후에 어디에 있을지(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도 있다.)를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긴 시간주기에서 예측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 가운데 어떤 변수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지를 알기 어렵다. 이는 장기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저변에 놓인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상호작용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연산 기술 또한 많이 발전했다. 따라서 의미 있는 예측이 가능한 미래의 시점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예측하기 어려운 한계치란 언제든 존재하기 마련이며, 많은 중요한 사례들에서 아슬아슬하게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142, 143 페이지)


이 세상은 가능한 최선(best)의 세계일까? 모페르튀나 라이프니츠의 생각과 달리, 저자는(우리는) 이 세상이 최선(최고)가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최적이 살아남는 세상임을 안다. 가장 고매한 사람이 번성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다. 모페르튀는 최소 원리(좀 더 정확히는 정상 원리stationary principle)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면서 대자연의 목적에 대해 생각했지만, 사실 대자연에 목적은 없다. (목적론적 세계관은 유신론적 세계관과 연관된다.) 저자는 오히려 최악에 가까운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에 주목한다. 


왜 고위직에 있던 인사들[여기서는 투키디데스와 귀차르디니]은 공직에서의 삶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집필을 시작하는 것일까? 그러한 참사들은 피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겪었던 재난들이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고, 미래 세대들이 교훈을 얻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투키디데스의 유명한 말을 소개한다. "이미 일어난 사건과 인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언젠가 비슷하게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명확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가 기술한 역사를 유익하게 느낀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255 페이지)


두 사람이 기록한 역사는 경솔하고도 의욕만 앞선 잘못된 결정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피렌체의 로렌조 드 메디치와 같은 위인들이 시민들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얼마나 꾸준히 영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 준다. 이들의 업적을 훗날 무능하고 경솔한 후손들이 망쳐 놓았다. 이것이 바로 투키디데스와 귀차르디니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며, 역사는 무작정 진행하지 않고 개인들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이 사회는 물리적 세상과는 달리 자연법칙이나 임의성만이 주도하지 않고, 인간의 의지에 이끌린다. 우리는 역사 속의 배우들이며, 인간의 운명은 신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다. (256 페이지)


저자는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인간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합리주의와 과학적 방법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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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7-04-0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차르디니의 <회상록> 중에서: 신앙인들은 믿음이 있는 자가 큰일을 해낼 수 있고, 복음의 가르침대로 믿음만 있으면 산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믿음이 곧 끈덕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강력히 믿거나, 합리적인 것들을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보다 더욱 강력히 믿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써 믿음을 지닌 자는 자신이 믿는 것에 확고한 태도로 변하고, 고난과 위험을 비웃으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로 용감무쌍하고 결단력 있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세상의 사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우연과 사건에 따라 변하므로 믿음을 원천으로 끈덕지게 참아 내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에는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25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