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키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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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수성이 좀 촌스럽고 덜 아트스러운건지 모르지만,

아트로 분류되는 프랑스 영화나 소설이랑은 좀처럼 친하지 않은데,

우연한 기회에 '시작은 키스'라는 영화를 보고 (난해하여) 구해 두었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작가가 직접 연출을 했다는데,

제목을 '시작은 키스'라고 생각하고 봤을 때와,

원제 'La delicatesse'(델리카테스)와 연관시켰을 때, 느낌이 완전 달라졌다.

 

영화로 봤었을 때는 '델리카테스'에 대해선 생각조차 못했었고,

그래서 '시작은 키스'라는 다소 감각적인 제목과는 안 어울리는 내용의 어설픈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영화를 '감성적 코미디'라고 분류해 내다니,

역시 내 감수성은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서 좀 촌스럽고 덜 아트스러운가 보다 하고 체념하려던 차였다.

책으로 봤을때는 원제 'La delicatesse'(델리카테스)에 대해 장(章)을 따로 만들어 비중있게 언급을 해서,

적어도 내용을 함축하는 제목을 적절하게 뽑아냈다는 느낌이 들어 안도했다.

만약, 나에게 우리 정서대로의 제목을 뽑아보라면 '짚신도 짝이 있다' 내지는 '제 눈에 안경'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ㅋ~.

 

델리카테스를 이해하려면,

'델리카테스'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델리카'의 사전적 정의도 살펴보아야 한단다.

델리카 delicat

형용사

1. 아주 섬세한, 세련된, 그윽한.

ㆍ델리카한 얼굴, 델리카한 향기.

2. 허약한, 취약한.

ㆍ델리카한 건강상태.

3. 다루기 어려운, 위험한.

ㆍ델리카한 상황. 델리카한 조작.

4. 아주 민감한, 예민한, 세심한.

ㆍ델리카한 남자. 델리카한 주의력.          (67쪽)

 

내가 '시작은 키스'보다 차라리 '델리카테스'가 낫다고 한 것은...

예쁘고 능력있고 성격도 좋은 여자가,

잘 생기고 돈 많은 자신의 상사인 사장의 구애를 마다하고,

못생긴 파견업체 말단 직원과 잘 연결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제목으로써 비교적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 정서에 대입시켜 봤을때는 비현실적이고,

그러다 보면 논리적 오류에 빠지게 되고,

여기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거나 방향을 혼동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예쁘고 능력있고 성격 좋은 여자여도 한번 결혼한 경력이 있고,

남자는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결혼은 커녕 이렇다할 데이트조차 못해본 걸로 그려지고 있다.  

샤를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어쨌거나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얘기할 권리가 있었다.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 사실 그녀와는 모든 게 부담스러웠다. 남편과 사별한 그녀의 처지 때문에 많은 일들이 복잡해졌다. 만약 프랑수아가 죽지 않았더라면 샤를은 훨씬 수월하게 그녀를 유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작자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네 부부의 사랑을 공고히 해놓았다. 자신들의 관계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엇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여자를,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 여자를 무슨 수로 유혹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그 작자가 자신들의 사랑을 영속시키기 위해 일부러 죽어버린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떤 이들은 열렬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치닫는다고 생각하니까.(74~75쪽)

책에서는 나탈리의 사장 샤를을, 그녀에게 추파나 던지고 찝쩍거리는 무뢰한인것처럼 묘사했지만...영화에선 나름 쿨하고 멋진 면모도 가지고 있다.

다만, 나탈리의 죽은 남편 프랑수아가 처음 나탈리에게 반하여 말을 거는 과정에서...

커피숍에서 복숭아주스를 시켰던 그런 '델리카테스'를 기억하고 있다면,

남편 프랑수아도 델리카테스한 사람이었고,

나탈리도 델리카테스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쿨한 사장을 택하기보다, 델리카테스한 마르퀴스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자연스런 이치가 아닐까?

  마르퀴스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탈리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아직 흘러내리지는 않았지만, 복도로 나가자마자 주르륵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눈물을 참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탈리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아 보일 테니. 그러나 이제 뺨을 타고 흘러내리려 하는 그 눈물은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가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이번이 세번째였다.(113쪽)

 

ㆍㆍㆍ ㆍㆍㆍ 그는 그녀를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는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리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 즉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탈리는 이 남자의 배려 하나하나가 델리카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정말로 행복했다.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에게 고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전등을 껐다.

 

두사람의 첫 저녁식사 후 나탈리가 마르퀴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는 짤막한 답장을 보냈다. '그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로서는 좀더 독창적이고,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이고, 더 낭만적이고, 더 문학적이고, 더 러시아적이고, 더 연보랏빛을 띤 답변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 한마디가 그때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방금 꿈에서 깨어났는데 어떻게 또 꿈을 꿀 수 있겠는가?(142~143쪽)

다시 말해, 나탈리의 사람을 택하는 기준은 '델리카테스'인 것이다.

사별한 남편 프랑수아는 델리카테스한데다가, 얼굴까지 잘 생겼었던 것이고,

현재 마르퀴스는 델리카테스하지만, 얼굴은 아닌것이고...

나탈리의 사장님은 얼굴은 어떨지 모르지만,

성격이 델리카테스하지 않고 쿨하신 관계로다가...

나탈리의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글쎄요.내가 아는 것은 당신과 함께 있는게 좋다는 것, 당신은 꾸밈없고ㆍㆍㆍ ㆍㆍㆍ친절하고ㆍㆍㆍ ㆍㆍㆍ나에게 델리카하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고요. 그래요."

"그게 다예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158쪽)

나탈리와 마르퀴스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나,

마르퀴스는 개인의 과거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중, 나탈리와의 만남에서 실수를 하게 된다.

 

사랑이 뭘까?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이렇고 저런 점들은 나와 닮았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상대방의 이렇고 저런 점들은 나와 다를 수도 있고,

그래서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나탈리, 당신한테 말한 그대로예요. 다른 의도는 없어요.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 그게 전부예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는 목에 쥐가 나지 않겠어요?"

"마음보다는 목이 아픈게 나아요.'(169쪽)

마르퀴스는 나탈리로부터 실수를 이해 받지 못할까 두려워 마음을 닫아 걸려고 한다.

'그래서' 좋거나 싫은건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거나 싫어야 하는데,

마르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좋아해 준 적이 없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나와 다른 점이나,

상대의 단점이 좋아 죽겠는걸 두고 '롤랑 바르트'도 뭐라고 했었는데,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가 씌는 수밖에 없다.

빗줄기가 나탈리의 얼굴을 따라 흘러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르퀴스에게는 그녀의 눈물이 보였다. 그는 눈물을 읽을 줄 알았으니까. 나탈리의 눈물이라면 더더욱. 그는 나탈리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그 고통을 꽁꽁 묶으려는 듯이(258쪽)

그리고 이들은 제대로 콩깍지가 씌었다.

그런 이들을 두고,

'그래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지나 '그런가보다'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귀뜸하는건 좀 사악한가~--;

 

'델리카테스'하다는 걸 알고 읽는다면, 묘미가 느껴지는 예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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