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푸른사상 시선 8
송유미 지음 / 푸른사상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끓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ㆍㆍㆍㆍㆍㆍ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 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중에서 부분 발췌 -

 

우리집은 산 바로 밑이다.

쉽게 표현해서 왼쪽으로 5분 정도 산길을 따라 가면 산비탈에 서있는 아들 학교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5분 못되게 가면 자그마한 절이 있다.

집과 학교와 절의 꼭지점끼리 연결하여 가상의 마름모를 그려 우리집과 반대방향으로

10배 정도,20배 아니 100배 정도 잡아 늘이면 서오능이다.

 

이렇게 동네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이유는,

내가 이 동네 이 집에서10여 년을 살면서 절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를 며칠 전에야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전에 누가 부석사를 놀러간다고 자랑을 하는게다.

나는 그 전부터 가고 싶었던 선암사도 아직인데,

친구가 부석사로 놀러간다고 하니 마음이 막 부석사로 달려가는거다.

부석사로 향하는 내 마음의 부러움 따위를 마알갛게 비워내고 나니,

새벽 종소리가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이 떨리는 공명을 만들어내는 것마냥 한없이 가깝게 들린다.

 

부석사를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면서,

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내려다보는 눈맛을...그야말로 '무등'(비교할 바가 없음)이라고 자랑하는데,

난 이상하게 운주사의 와불이 생각나는거다.

운주사의 와불 또한 세계에서 하나뿐인 누운 불상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운주사의 '와불'은 일명 '머슴부처'라고도 불리우는 좀 슬프게 생긴 부처이다.

생각은 여기서 널을 뛰어 '송유미'란 시인이 쓴 '운주사 머슴부처'란 시가 생각나는 거다.

 

                        운주사 머슴 부처

 

  운주사 머슴 부처 한 분 돌 속에 장승처럼 서서 바람으로

눈이 덮인 산길을 자꾸 쓸고 있다 전생에 무슨 업보로 염병할

천연두라도 앓았던 것일까 왕곰보의 보기 흉하게 얽은 얼굴

에는 눈물이 살을 파고 들어 고름이 질질 흘러내린다 열반에

드는 일도 저와 같은 고역일 진데 이중 삼중 고행을 하는 머슴

부처 사람의 손때 묻은 가사자락도 몹쓸 담뱃불에 덴 흔적

ㆍㆍㆍㆍㆍㆍ부처들도 일하는 부처 노는 부처 공부하는 부처 따로

따로 어울리는지 외따로이 떨어진 외로운 산비탈에 서서 눈

길만 쓸고 있는 머슴 부처 팔이 달아난 줄도 모르고 싹싹 빗질

하는 아릿한 소리 눈이 덮인 산길에도 어느새 피가 배여 나와

황톳물에 섞여 질척거린다

이 시는 가만 몰입을 하다보면 정말 슬픈 시인데...한번도 제대로 몰입을 해준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밑에서 세번째 행의 싹싹 '빗질'이 거슬려서이다.

눈 덮인 산길이면 '비질'이 맞춤법에 맞는거겠지만,

시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싹싹 빗질'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산비탈에 누웠으니 땅을 비질하는거고,

그게 누운 머슴부처의 머리 부분이면 빗질이 되는건가?

 

암튼 나는 송유미의 시에 대해 잔뜩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일종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

그 이유는 그니의 시집 뒷표지 추천글에서부터 비롯되는데,

시인 고은에서부터 이윤택, 임헌영, 최재봉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사람들이 추천글을 쓰고 있어서였다.

거기다가 작품해설은 또 어떠한가?

내가 엄청 좋아하고 있는 철학자 김영민님과 이경호님이 하고 계시다.

뭐, '빛 좋은 개살구'나 '빈수레가 요란하다' 따위를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시를 읽어나가면서 그것이 나의 선입견이고 색안경이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첫 느낌은 뭐랄까?

좀 쓸쓸하고 고고하게 느껴지는 것이, 그니 스스로 소외를 자초했다는 느낌이었달까?

근데 차근 차근 읽어나가다 보니,

그게 일상에서 동떨어지고 소외를 자초해서가 아니라,

쓸쓸하고 외로운 섬처럼 각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반어법이라는 걸 알겠다.

그러고나니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쓸쓸하고 고고하고 외롭게 이 감정들조차도 너도 느끼고 나도 느끼게 되면,

동지 의식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일종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 한 의자의 초상

 

  녹슨 햇살 분분한 철거를 기다리는 주공아파트 놀이터의

낡은 의자가 문득 말을 걸어온다 따뜻한 겨울 햇살에 조금씩 

살이 붙는 의자였다 그는 언제나 반기는 고향처럼 나의 육혼

을 팔베개해준다 나는 가끔 다과를 준비해 이웃 아줌마들과

함께 찾아가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런 날 그는 묵언승이 된다

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이었을까 비에 젖는 의자가 걱정스러

워 그의 이마에 매달린 빗방울을 하나 둘 닦고 있다 그러자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습니다"*라고 내 귀에다

속삭였다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우산을 쓰고 그곳을 산책한다 그

때마다 비닐우산은 바람에 날아간다 더 이상 젖지 않는 자의

환희를 교감한다 그렇구나 삶이란 각자의 밥그릇만한 존재의

휴지(休止) 되어주는 일이구나 마음이란 무량의 의자 비어 있

어서 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의자이구나

 

 철거가 시작되자 포크레인 한 대가 집들을 과자처럼 부수

어 먹기 시작한다 그는 용달차 기사 옆자리에 올라타는 나를

향해 나뭇잎의 파란 손을 오래오래 흔든다

 

  비가 오면 나는 벌목의 피비린내 가득한 그 곳을 살찐 슬픔

으로 돌아다닌다

 

                                *오규원의 시,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때론 수다스런 이웃 아줌마가 그리울 때도 있고, 때론 내 얘길 들어줄 귀가 필요할 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오지랖이란게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내가 엉덩이가 뚱뚱하다고 얘기했더니 한 친구는 '엉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었었다.

말 그대로 엉덩이가 뚱뚱하여 내 엉덩이 면적만큼 의자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였는데 말이다.

비가 오면 내 엉덩이가 가리고 앉았던 만큼만 젖지않을 것이고,

내 마음이란 그릇도 마찬가지로 크기만큼만 받아들이고 채워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어찌 보면 같을수도 있는 마음과 의자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마음은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비워내는 수고를 해야하고,

의자는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미 비워진 채로 준비되어진거고...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어진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의자를 향하여 생물, 무생물 경계를 나누는 일은 어쩜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뿌리

 

 

쓸 만한 나사 하나 찾으려고 연장함 뒤적인다

한 번 어디엔가 박혔다가 튕겨 나온 나사는

다시 쓰기 어렵다 나사의 뿌리가 다쳤기 때문이다

화분에 옮겨 심다가 잘려나간 뿌리로는

다시 어디에 심어도 뿌리 내리기 어렵다

내가 통째로 그 자의 눈에 거슬려 뽑혀 나와

다시 그 자리의 틈을 파고 들기 어렵듯이

천직의 일자리를 잃은 무수한 나사들이 칼잠을 자고 있다

 

 

물질주의 뿌리가 없이는 가난한 민초의 생은

부평초의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가능한 한 뿌리를 융성하게 번식시켜야 하고

그 뿌리를 잃지 않아야 이 세상에다 쾅쾅

내 목소리의 뿌리내리며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철면피로 망치를 잡아 쥐고

녹이 슬었지만 그나마 뿌리가 생생한 나사 하나 찾아

단단한 벽에 한 그루 나무를 심듯이 쾅쾅

집 전체가 무너지게 나사를 박는다

이 나사가 튕겨 나오면 집 한채 무너질 것이다

이보다 세상이 단단하니

뽑히지 않은 뿌리들은 더 손잡고 깊어 갈 것이다

이 시는 앞의 두 시들보다 더 어렵다, 적어도 내겐.

고독감, 소외감, 쓸쓸함으로 모자라서 존재론적 회의론까지 건드린다.

부평초는 연못에 떠다니는 부레옥잠을 일컫는다.

뿌리내리지 못하고, 또는 잔뿌리 몇몇으로 간신히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살아간다.

 

나사못을 망치로 쾅쾅 내리치면 과연 나사는 박힐 것인가?

나사의 뿌리는 뿌리대로 망가지고,

나사못이 박힌 자리는 금이 가고 균열이 생겨 언젠간 무너지지 않을까?

나사가 튕겨나오면 나사가 들어갔던 틈이 내려앉아 무너질지도 모르지만,

나사가 한번 박혀 먹어들어가면 진짜 빼도 박도 못할 형국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단추공장 뒤뜰로 통하는 길

  -- 정봉순에게

 

 

  아이 둘 딸린 주부 가장 그가 오늘 아침 제일 먼저 정리해

고돠어 단추꽃처럼 떨어졌다 그렁그렁 눈물이 솟구치는 그의

눈에서 단추보다 힘없는 눈물이 뚝뚝 손등 발등에 떨어졌다

잎을 위해 꽃이 떨어지듯ㆍㆍㆍㆍㆍㆍ바람은 멈추어 있는데

꽃이 떨어지듯ㆍㆍㆍㆍㆍㆍ

 

 

  만원 지하철 타고 이리저리 밀리다가 블라우스에 꽃단추가

떨어졌다 더 이상 세상에 밀리지 않으려고 손잡이에 매달려

가다보니 각양각색의 단추꽃들 힘겨운 매일 매일을 꼭꼭 여

미고 떨어질 듯 앙상한 나뭇가지에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힘

겹게 매달려 있다

 

 

  살면서 단단히 여밀 수 없는 펑펑 썯아지는 눈물들 폭발하

는 분노들 원망과 미움들 꼭꼭 여미고 살다보면 내 몸 밖에서

우수수 꽃단추가 떨어진다 세찬 세상의 바람에 떨어지지 않

는 꽃이 어디 있을까 새소리는 시끄러운데 산이 깊듯ㆍㆍㆍㆍㆍㆍ

 

 

  이 무심한 꽃이 떨어진 빈자리에는 어떤 잎이 와서 매달릴

까 명퇴당한 늙은 남편의 실밥 날리는 와이셔츠 단추 구멍마

다 치밀어 올라온 목줄기 끝에 아침 연이슬 반짝인다 대책 없

이 친절한물과 달이 함께 흐르고ㆍㆍㆍㆍㆍㆍ

 

이 시는 슬프도록 서럽고 처연하지만 예뻐서 눈물났던 시이고,

개인적으론 '대숲에서'가 가장 좋았다.

 

                           대숲에서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일 뿐이다*

 

  흔들리지 않는 대가 있을까마는 대숲을 보고 있으면 쭉쭉

뻗은 뼈들이 흔들린다 어떤 소리의 뼈는 내공이 약해 잎을 흔

든다 그러나 잎들이 흔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흔든다 꺾

일지언정 휘지 않는다는 대나무의 신념이 서로를 흔들지 않

는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용맹정진 하늘을 향해 소리의

뼈를 쌓아가는푸른 수사들의 옆구리를 찌르면 파도 소리 난

다 살다보면 흔들리기도 꺾이기도 하는것이 세상 대숲을 보

고 있으며 바람이 흔드는 것이지 대나무 스스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흔들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 텅 비어 있

어 누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대숲에 사는 청설모 다람쥐

들도 이 숲에 사는 지혜를 알고 있다 댓이 하나 흔들지 않고

마디를 타고 올라간다 수없이 흔들리는 내 안의 대숲 누가 들

어와 사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흔들린다 까닭도 모르고 정신

없이 흔들리는 지친 소리의 뼈들이 탁탁 백 년 만에 핀 대꽃의

마을을 거쳐 사라진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 시를 읽고,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살아야겠다~.'

뭐,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난 아무래도 범인(凡人)축에도 끼지 못하는 하수이다 보니,

우리들 대부분은 바람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우리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이 큰 위안이었다.

이 얘긴 바꾸어 말하면,

사람 누구나 다 비슷하게 쓸쓸하고 고고하고 외로운 마음의 소유자라는 뜻일테고...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 바람이나 나뭇가지 같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을테지만,

(그냥은 아니어도~) 약간의 노력을 해서 우리의 의지대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니까,

우리의 마음을 우리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그것이 자연에 크게 거스르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보를 곱게, 제대로 쓰는 노력을 해야겠다.

 

그러고보니, '달콤한 인생'이란 뭐 별다른게 아닌것 같다.

우리가 자연스레 쓰는 마음보 하나 하나가 자연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

그게 바로 '달콤한 인생'이지 뭐 별다른게 있겠나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7-10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