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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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문학과 SF소설을 읽을 때 흔히 사람들은 소설의 리얼리티를 기대하고 보진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속도감있게 잘 다루었으면 하는 기대를 할 것입니다. 소설마다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을 터이지만, 지금까지 제가 읽어본 장르소설은 특정한 독자에 맞추어져 있었고, 소설 또한 독자에게 특별히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성을 따져가며 장르소설을 읽기 보다 소설이 만들어낸 공간과 사건 속에서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며 보여주려 하는 것이 무언인가를 따져가며 소설을 읽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소설의 리얼리티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재미있게 지어낸 이야기 안에서 그것을 찾아야만할 이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장르문학에서 어설프게 현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소설을 보면 일단 우습게 보였고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권위있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장르문학을 바라보는 바로 그런 시선으로 말이죠. 소설은 소설일뿐이라는 생각을 갖고서 소설 속의 현실이 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거대한 제방을 만들어 완강하게 버티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읽기를 잠시 쉬고 소설이 담고 있는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해 나름의 조사를 해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작가가 소설에서 만들어 놓은 치밀한 현실성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어집니다. 완강하게 버티고 서있던 거대한 둑에 금이가고 물이 새어나와 현실의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이후에 소설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소설속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믿으려 듭니다. 소설이 보여준 생생한 현실에 벌벌 떨다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바로 소설 속의 세계와 다를바가 없구나를 느끼기도 합니다.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소설이 되는 것입니다.



    『13계단』을 읽었을 땐 다카노 가즈아키가 사회부 기자이거나 법률 관련 일을 했던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노사이드』를 읽고 나니 이 분의 진짜 정체가 무엇일까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조사와 연구를 거쳤으며 다시 그것을 다방면에 걸쳐 고증하려 했던 노력이 소설에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래서 조금 엉뚱해보일지 모르지만, 다카노 가즈아키의 정체는 역시 작가였구나 라는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들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과 치열한 문제의식들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대단한 소설의 형태로 이렇게 연이어서 제게 다가오니,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생겨납니다. 제방이 한번 터져버리니 이제는 걷잡을 수 없어진 것입니다.



    '제노사이드'는 종의 말살을 의미합니다. 소설에서 말하길,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의 눈에는 인간이 신과 같은 존재로 비칠 것이라 합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수한 지능과 기술력을 갖고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을 능가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면 인간의 눈에 그 새로운 종이 다시 인간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 『제노사이드』는 그런 상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종이 현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인간이 그 종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강행한다는 전개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새로운 종과 제노사이드에 대한 SF적 요소가, 사실은 현재까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빈번히 발생했던 일이었고, 또 가까운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사회에서 자주 발생했던 일이라, 이때부터 SF소설이 더 이상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감을 갖고서 치밀함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의 확장을 통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잔혹한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가 다른 미지의 생명체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잔혹함이 그 어떤 공포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잔혹한 모습들, 이율배반적인 배타성이야 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모습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크게는 인종에 대한 배타적인 말살, 그리고 이어서 문화, 민족, 국가, 종교, 정치집단, 이익단체 등등의 이름으로 개인적인 종을 구획지어 놓은 인간끼리의 잔혹한 싸움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종으로서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진 인간사회 이면의 어두운 모습이 소설속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니, 점차 인간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절대신에 의한 강압적인 평화 뿐이란 생각에까지 미칩니다.



    하지만 신에 거의 다다른 새로운 종, 진화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근본은 인간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은 어쩔 수 없음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비관론자는 아닙니다만 소설에서 보여준 인간들의 모습을 토대로 보자면, 인간의 노력이 결국 무의로 그치고 무한히 반복되는 역사와 함께 지구가 여전히 종말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 역시 신과 같은 우수한 사고와 기술력을 갖췄다 한들 신과 같은 절대적인 도덕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설 속에서 새로운 종이 우리가 혼란이라고 여길 일련의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미리 손써둔 잔혹한 짓들을 생각해보면, 역시 종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라는 것을 느낍니다. 만약 우리가 신을 통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가능하다면야 도덕적으로 긍정적인 유전자만을 이어받아 진화한 종이 우리의 신이 되어서 지구를 지배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설령 더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쓰고 버리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손에 쥐어진 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누군가를 죽인다 할지라도 총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던가. 죄는 방아쇠를 당기는 인간, 살인을 명령한 당사자에게 있었다. (27쪽)



    때때로 자연은 인간에게 잔혹할 정도로 차별 없이 불평등을 안겨 주었다. (138쪽)



    다른 민족에대한 차별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면 그들 안의 잔인한 감정이 폭발하여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포와 아픔은 어떤 것일까? 일본인의 무서움을 일본인은 알지 못한다. (171쪽)



    그럼 새로이 탄생한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할까? 우리를 멸망시키려 들리라는 것은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인류와 다음 세대의 인류, 이 두 종의 생태적 지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한 그들의 생식 장소는 확보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본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의 나날을 보내는 데다 지구 환경을 파괴하기만 하는 과학 기술을 갖고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한 하등 동물이다.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생물종은 보다 고도의 지성에 의해 말살된다. (247쪽)



    루벤스가 보기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경쟁의 원동력은 단 두 가지 욕망으로 환원되는 듯했다. 식욕과 성욕. 인간은 타인보다 많이 먹거나 혹은 저장하고,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 했다. 짐승의 본성을 유지한 인간일수록 공갈이나 협박 같은 수단을 쓰며 '조직'이란 무리의 보스로 올라가려 안달했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경쟁이야말로 이러한 폭력성을 경제 활동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법으로 규제하고 복지 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짐승의 욕망을 억누르기는 불가능했다.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251쪽)



    만약 이곳에 기자가 있었다면 학살 현장을 문장으로 적고 있으리라. 그 기사가 읽는 사람의 마음에 평화에 대한 소망을 싹트게 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운 것을 보고 싶은 엽기적인 취향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고 저열한 오락의 발신자와 수신자는 학살자들과 똑같은 생물종이면서도 자기만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입으로만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만족을 느낄 터였다. (376쪽)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415쪽)



    20만 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 중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약 100년 전까지 현생인류와 현저하게 용모가 다른 신생아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살해되었으리라. 인위적인 도태. 그중에서는 진화한 개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없애려는 인간의 습성이 진화의 싹을 속아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471쪽)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물론 이것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습성이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준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473쪽)



    진화한 존재로부터 보면 인간은 불쌍해 보일 정도로 하찮은 지력 정도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눈살을 찌푸리고 싶을 정도로 야비한 생각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주어진 모든 생물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획득한 최선의 능력이었다. 최선을 다해 이 불완전한 뇌를 연마하며 여러 곤란한 상황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6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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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레드 로드
모이라 영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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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블러드 레드 로드』는 정식 출간 전부터 리들리 스콧 감독이 판권을 사들여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보다 더 영화다울 수 있는 소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제작에 딱 알맞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제작사 측에서 이 소설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닌 듯해 보입니다. 




 


    『블러드 레드 로드』는 스트랜드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도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모험을 떠날 것이고 그들이 지나온 '길'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이번 이야기가 피빛의 붉은 길이었다면 다음 이야기는 '포레스트 그린 로드' 혹은 '데저트 옐로 로드'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름이야 가져다 붙이면 그걸로 그만일 것이고, 제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신선한 모험담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죠.



    작가 모이라 영은 여러 판타지 영화들에 꽤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은 츤데레한 숲 속의 소녀가 위기에 다다르자 람보같은 여전사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한 명의 여주인공이 있습니다. '헝거 게임'의 캣니스처럼 말이지요. 그러다 '워터 월드'에서 봤을 법한 모래 위를 달리는 거대한 노예상선에게 붙잡혀 '글라디에디터'의 검투사가 됩니다. 그래서 콜로세움에서 생사를 건 혈전을 벌입니다. 그때 만난 남자주인공과 그후로 운명적인 사랑의 밀당을 시작하는데요, 그 모습이 마치 '트와일라잇'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판타지 영화들보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영화는 '반지의 제왕'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구해야되는 반지는 여주인공의 오빠입니다. 오빠를 구하기 위해 조직된 원정대는 여정을 계속해나가다, 함께 모험을 할 원정대 구성원 몇 명이 그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야기의 최절정에 이르렀을 때 도움을 줄만한 아군을 미리 준비해두며 일종의 복선이 될만한 모험이 이어집니다. 동트는 쪽을 바라보면 백색의 간달프가 나타나고, 아군의 저주받은 병사들이 적군을 휩쓸어 버리듯이 말입니다. 잠시 도움을 받으며 몸을 위탁할 땐 숲 속의 엘프 여왕같아 보이는 인물이 도움을 주고, 적들 중엔 나즈굴같은 느낌의 톤톤이라는 추격자가 등장합니다. 또한 소설의 거대한 괴물 벌레들과의 전투에선 '반지의 제왕'의 고대 괴물과의 전투 장면이 연상됩니다. 주요 인물들이 희생되어야만 하는 슬픈 장면들까지 꽤 많은 부분이 흡사합니다.



    '반지의 제왕'과 다른 점은, 『블러드 레드 로드』의 세계는 마법을 쓰지 않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블러드 레드 로드』에서 말하는 세계관은 어딘가 모르게 조금 엉성해 보입니다. 완벽하게 만들어져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만같은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머나먼 미래의 시간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암시하는 몇몇의 증거들을 흘려놓고 있는데, 굳이 미래의 이야기라고 정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라면 만들어 놓은 세계관이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는데 반해, 『블러드 레드 로드』의 세계관에서는 그런 메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찰'이라는 마약이 미래에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다만, 이야기의 흐름에 큰 관련이 없다는 듯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아서 조금 생뚱맞게 느껴졌습니다. 프랑스의 루이16세를 언급하며 '피치'라는 이름의 이 시대의 왕과 동일시하려는 부분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장면의 전환들이 좋았습니다.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따지지 않고, 가볍게 보기에 좋은 영화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스릴 넘치는 모험에 풋풋한 십대의 사랑이야기가 가미된 판타지소설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반지의 제왕도 1편까지는 반지 원정대가 무엇인지, 왜 그들이 계속해서 모험을 떠나야만 하고 길을 가야만 하는지, 이유를 잘 알지 못한 채 이야기를 지켜봐야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그들이 모험을 통해 세상의 위기를 인지하는 과정과 세상을 구할 인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좋아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블러드 레드 로드』이 앞으로 어떤 전개를 보일지 그건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론 인물들이 모험을 통해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또한 넓어진 그들의 세상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바를 뚜렷하게 지지해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시대가 원하는 문제의식과 주제를 읽을 수 있는 모험이 이어진다면 다음 이야기를 계속 기대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움직이는 거야. 우리 인생은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 계속 흘러가고 또 흘러가는 거라고……. 그게 전부야.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66쪽)



    3의 법칙이라고 들어봤어? (…) 누군가의 목숨을 세 번 구해 주면, 그 사람의 목숨이 너한테 속하게 된다는 거야. 네가 오늘 내 목숨을 구해 줬으니까 이제 한번이야. 두 번 더 구해주면 난 네 게 되는 거야. (236쪽)



    일어날 일이라면 일어나게 될 거야. 전부 다 별에 쓰여 있어. 모든 게 운명이야. (236쪽)



    조심하라고, 천사님. 그런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면 남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하게 되거든.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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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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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반려 동물과 함께했던 시절이 거의 없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살며시 집에 이야기를 꺼내 보았던 적이 있지만,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큰 호응을 보내주질 않아서 집으로 동물을 대려오는 것에 매번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반려 동물과 함께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전해듣는 이야기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집에서 금붕어를 키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항을 씻어주었고, 물을 갈아주었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남아있는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금붕어들이 우리집을 어떻게 떠났는지 그것도 잘 기억나질 않습니다. 한날은 아버지께서 가게 앞에 자주 나타났던 새끼 강아지 한마리를 집에 데리고 오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도 무척 오래전의 일이라, 너무 더러워서 씻기고 말리는데만 반나절이 걸렸더라는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두 눈이 축 늘어져 참 순하게 생긴 녀석이었는데 우리 가족과 함께 생활할 운명은 아니었던 겐지, 결국 그 녀석을 시골 외할머니댁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저 역시 반려 동물과 함께 생활할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반려 동물의 '반'자도 모른채 '그 언젠가는'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마리의 터키쉬앙고라 고양이와 한 마리의 푸들 강아지를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저의 존재를 모릅니다. 아주 가끔 제가 그들의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해듣는 정도의 관계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아무런 관계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들려오는 그 소식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마음 한 쪽에선 그 녀석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고, 괜한 관심이 생겨나 요즘은 녀석들의 하루가 어떠했을까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



    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던 제가, 솔직한 말로 그들의 이야기에서 무엇하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싶었습니다만, 일단은 그런 생각들을 접어두고서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로 깜짝 놀라서 오싹하기까지 했습니다. 가끔 전해들었던 고양이와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가 그대로 들어 있어서, 혹시 정솔이라는 이 작가가 키우는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두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반려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만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에서 말하는 것들이 지극히 일반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전해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반려 동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반려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생각에 대해 담아놓은 이 책의 몇가지 이야기들이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반려 동물에 대한 세상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이야기를 책을 통해 그대로 다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솔직히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이 정도까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실제로 반려 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기에 놀라웠습니다.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을 덮고 나니,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고 세상의 따뜻함이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은 동네의 길고양이들에게 말을 걸어봐야겠습니다. 왠 놈이 길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어 보일테니 아마도 미친 놈으로 비춰질 것입습니다. 동네 이웃주민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것이고, 동네 길고양이 녀석들의 눈에도 제가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도 녀석들과 대화를 시도해봐야 겠습니다. 아아, 세상이 갑자기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참으로 훈훈한 세상입니다.






    <고마워, 너를 보내줄게>라는 책이었는데, (…) 글쓴이는 담담하고 평범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 주제는 내가 글쓴이만큼의 담담함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버거웠다. 누구에든 언젠간 닥칠 이별인데도, 반려 동물과 헤어지는 일은 늘 상상만으로도 굉장한 슬픔과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보내고 싶지 않고, 이대로 함께 오랫동안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반려동물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아서 나보다 먼저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반려 동물과의 이별 앞에선 담담해질 수가 없다. (136쪽)



    반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배움의 연속이다. (…) 당시를 떠올리면, 어려움이 많았던 처음에 비해 지금은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206쪽)



    하지만 자기만족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 내가 제일 일거라고 믿으면서, 나와 함께 있는게 가장 행복할거라고 믿으면서. 상대만을 생각하지만 한없이 이기적인 마음이다. 나 좋을대로만 생각해도 괜찮을것 같은 그런 마음. 이렇지 않은 사랑, 어디 있겠어요.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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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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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해보고 말겠다는 것들 중에 미국의 'AT&T파크에 방문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곳은 펜웨이 파크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AT&T라는 이름은 미국의 거대 통신회사의 이름과 같습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AT&T가 구장을 소유하고 있던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곳에 AT&T파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름이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런 변경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며,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런 사연을 알게되니 무언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불쾌한 기분도 듭니다. 더군다나 이런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제 버킷리스트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의 원리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야구장의 이름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곳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거시기한 거기 파크'에 방문하기로 바꾸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AT&T파크라는 이름의 유래와 비슷한 형태의 특수 광고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이 하고 있지만, 저는 이전까지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런 것들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특정 목적을 지닌 어떤 행위에 대해 인센티브 형식으로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걸로 괜찮고 여겼으며, 또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가능하다면 유명 야구 선수의 사인을 얻고 싶었고, 암표를 구입해서라도 줄을 서지 않고 야구장에 입장하고 싶었습니다. 또 비싼 비용을 들여 스카이라운지 좌석에 앉아서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었던 부자들에 대해 별달리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얄미운 모습을 하고 있었던 시장에 대해 요모조모 뜯어서 살펴보니 묘하게 기분이 나빠집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제목과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여기까지는 괜찮다라고 여기며 선을 그어놓고 허용했던 문제들에 대해 마이클 샌델은 조금씩 영역을 확장시켜가면서 "그럼 이것도 괜찮습니까, 저것도 괜찮습니까, 이런 예는 어떻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던 우리사회의 문제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장경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시장사회가 되어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사회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시장의 원리가 점점 사회 전반에 파고들면서 이제는 모두가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돈을 준다면 당연히 따라올 혜택이라 여겼고, 또 거기에서 더 얹어 준다면 더이상 고려할 필요도 없다고 여기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들을 조금 달리 해야겠습니다. 시장의 논리대로 재화화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할 가치있는 것을 단순한 재화로 여기지 않고, 시장으로부터 지켜야할 도덕적 재화로 여겨야겠습니다. 



    참으로 얄미운 세상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그런데 그동안 그런 사실도 전혀 모르고 지냈던 제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권리를 찾지 못하고,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했으며, 무엇이 어떻게 부당한가에 대한 것조차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회, 경제, 정치 뿐만아니라 철학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공부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이 이제는 '정의가 무엇인지' 알 것이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것이기에 이로운 방향으로 우리 사회에 그 만큼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동안 부당하다고 느꼈던 미묘한 문제들에 대해 철학적인 토론을 거쳐서 명제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결론은 충분히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사회에서 시장의 논리로 적용해선 안되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삶과 시민생활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을 어떤 가치로 지배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사색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27쪽)



    경제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결혼에서 기대하는 효용이, 독신으로 남거나 좀 더 나은 짝을 찾는 경우에 기대하는 효용을 초과할 때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이와 비슷하게 기혼자는 독신이 되거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에 기대하는 효용이, 자녀와의 물리적 별거, 공공 자산의 분리, 법률 비용 등 이별로 상실하는 효용을 초과할 때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많은 사람이 배우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 결혼에도 시장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79쪽)



    미덕에 대한 경제주의의 견해는 시장에 대한 신념을 불타게 하고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시킨다. 하지만 비유가 잘못되었다. 이타주의 · 관용 · 결속 · 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180쪽)



    때로 우리는 시장이 제공하는 사회적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하는 시장 관행을 감내하겠다고 결정한다. 생명보험은 이런 식의 타협으로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겨날 수 있는 재정적 위험에 대해서 가족과 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지난 두 세기 넘게 한 개인의 생명에 피보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사망을 놓고 도박을 벌이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마지못해 결론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투기를 향한 유혹을 억제하기는 어려웠다. (222쪽)



    시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저런 시장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경기의 선(善)을 향상시키는지 훼손시키는지 여부다. (246쪽)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 · 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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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겪었던 경험이 다르며, 평소에 품고있던 생각들과 현재 처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내용의 감동을 주진 않을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입맛에 따라서 맛있는 부분만 도려먹고 맛없는 부분은 뱉어내는 식의 독서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은 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고, 작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이 글에선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책의 맛있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라 워터스『끌림』은 마가릿과 셀리나라는 두 여인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부유한 집안의 숙녀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마가릿은 밀뱅크라는 교도소에 수감된 여죄수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세상의 관심을 보임으로서 그들을 치유하고 동시에 자신을 치유하려 합니다. 그러다 묘한 이미지의 셀리나라는 여죄수를 만나게 됩니다. 셀리나가 밀뱅크에 수감된 이유는 사기와 살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강신술의 영매로 영혼들을 불러내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피터 퀵이라고 자신을 지배하던 영혼이 의뢰인을 거칠게 다루며 발생한 한 사건에 휘말려 유죄판결을 받고 밀뱅크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밀뱅크 방문을 통해 마가릿은 감옥의 다른 죄수들에게선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묘한 끌림을 셀리나에게서 느낍니다. 그런 끌림은 그녀가 그동안 처해있었던 현실이 너무나 외로웠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생겨난 감정일 수도 있고, 왠지 감옥에 갖혀 있던 셀리나의 처지가 억압받고 구속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껴 동질감을 통해 생겨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혼과 대화한다는 셀레나의 신비로운 모습에 이끌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과거부터 동성에게 자주 끌렸던 터라 평소에 갖고 있던 이상형에 꼭 맞아떨어진 셀리나를 만나면서 두 눈에 콩깍지가 씌여져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소설은 동성애를 다루면서 외로움이 가져온 관계에 대한 갈망과 자유를 열망하는 두 여인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리려는 듯해 보였습니다. 교도소의 높은 담장이 한편의 시와 같던 그녀들의 사랑에 표면적 장애물이 될 것이고, 또한 사회적으로 반하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이겨내야 한다는 힘겨운 사랑을 그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소설이 꼭 그렇게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습니다. 소설은 동성애를 소재로 삼고있긴 했지만 딱히 동성애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면 꽤 지루한 소설이 되었을텐데 정말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반면 평범할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는 그녀들의 일기가 나름의 재미를 얻었던 것은 미스터리한 소재 때문이었습니다. 강신술과 영매, 그리고 영혼이 관련된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은 그녀들이 계획하고 원하던 사랑을 결국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 것인가, 이런 것들이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하여금 강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끌림들은, 꽤 오래되어 낡아보였던 고리타분해 보일 소설의 문체를 극복해나가며 계속해서 소설을 읽어 나갈 수 있게 한 힘이 되어줬습니다.



    한편 외로움과 우울증이 자살 시도로 이어지고, 때론 관심이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며, 관계에 대한 갈망으로 인한 착각으로 단순한 끌림을 사랑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물론 소설에서 내비쳤던 아픔을 전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순 없겠지만, 스스로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관계에 대한 오해가 어쩌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들 애매한 미안함이 생겼습니다. 사기치려던 의도로 다가간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사기꾼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감정들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끌림』이 그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소설을 읽어내려가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향한 관심에 잘 이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단 몇번만 찍어도 넘어가버릴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가 바로 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 역시 사람들의 관심에 잘 휘둘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 관심에 의해 쉽게 상처받기도 하고, 혹은 혼자서 그러했다고 여기는 오해들로 인해 아파하곤 합니다. 안에서 우러난 순수한 끌림보다 외로움으로 인해 외부적으로 생겨난 끌림은 대개 좋지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생겨난 아픔은 이후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부정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확인사살하듯 사람을 두번 죽일 상처될 말과 행동, 그리고 배신은 다시는 그사람이 일어서지 못할 만큼의 큰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소설 속의 그녀는 내일을 도저히 살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늘 도서관에는 노처녀들이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분명히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처녀는 유령과 같아서 함께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도 노처녀가 되어야만 주위에 노처녀들이 있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다. (90쪽)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그래도……. 오, 뭔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끔직한 느낌이 들었으며,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몸이 오싹하다. (269쪽)



    동생에게 남편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내가 부러운 건, 음, 뭐라고 말해야 하나, 동생은 집을 떠났어요. 그리고 나는 남았고요. 완전히 정체된 상태로 말이죠. (296쪽)



    언제부터 당신이 그런 사회의 일원인 걸 좋아했어요? 사회가 무슨 생각을 하든 당신이 왜 신경을 쓰지요? 우리는 그 모든 것에서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을거예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살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어요. 제가 하게끔 되어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을……. (390쪽)



    내 영혼이 나를 떠났다. 나의 영혼이 나를 떠나 그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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