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해보고 말겠다는 것들 중에 미국의 'AT&T파크에 방문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곳은 펜웨이 파크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AT&T라는 이름은 미국의 거대 통신회사의 이름과 같습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AT&T가 구장을 소유하고 있던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곳에 AT&T파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름이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런 변경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며,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런 사연을 알게되니 무언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불쾌한 기분도 듭니다. 더군다나 이런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제 버킷리스트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의 원리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야구장의 이름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곳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거시기한 거기 파크'에 방문하기로 바꾸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AT&T파크라는 이름의 유래와 비슷한 형태의 특수 광고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이 하고 있지만, 저는 이전까지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런 것들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특정 목적을 지닌 어떤 행위에 대해 인센티브 형식으로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걸로 괜찮고 여겼으며, 또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돈을 얹어서라도 가능하다면 유명 야구 선수의 사인을 얻고 싶었고, 암표를 구입해서라도 줄을 서지 않고 야구장에 입장하고 싶었습니다. 또 비싼 비용을 들여 스카이라운지 좌석에 앉아서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었던 부자들에 대해 별달리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얄미운 모습을 하고 있었던 시장에 대해 요모조모 뜯어서 살펴보니 묘하게 기분이 나빠집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제목과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여기까지는 괜찮다라고 여기며 선을 그어놓고 허용했던 문제들에 대해 마이클 샌델은 조금씩 영역을 확장시켜가면서 "그럼 이것도 괜찮습니까, 저것도 괜찮습니까, 이런 예는 어떻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던 우리사회의 문제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장경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시장사회가 되어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사회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시장의 원리가 점점 사회 전반에 파고들면서 이제는 모두가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돈을 준다면 당연히 따라올 혜택이라 여겼고, 또 거기에서 더 얹어 준다면 더이상 고려할 필요도 없다고 여기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들을 조금 달리 해야겠습니다. 시장의 논리대로 재화화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할 가치있는 것을 단순한 재화로 여기지 않고, 시장으로부터 지켜야할 도덕적 재화로 여겨야겠습니다. 



    참으로 얄미운 세상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그런데 그동안 그런 사실도 전혀 모르고 지냈던 제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권리를 찾지 못하고,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했으며, 무엇이 어떻게 부당한가에 대한 것조차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회, 경제, 정치 뿐만아니라 철학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공부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이 이제는 '정의가 무엇인지' 알 것이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것이기에 이로운 방향으로 우리 사회에 그 만큼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동안 부당하다고 느꼈던 미묘한 문제들에 대해 철학적인 토론을 거쳐서 명제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결론은 충분히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사회에서 시장의 논리로 적용해선 안되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삶과 시민생활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을 어떤 가치로 지배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사색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27쪽)



    경제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결혼에서 기대하는 효용이, 독신으로 남거나 좀 더 나은 짝을 찾는 경우에 기대하는 효용을 초과할 때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이와 비슷하게 기혼자는 독신이 되거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에 기대하는 효용이, 자녀와의 물리적 별거, 공공 자산의 분리, 법률 비용 등 이별로 상실하는 효용을 초과할 때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많은 사람이 배우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 결혼에도 시장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79쪽)



    미덕에 대한 경제주의의 견해는 시장에 대한 신념을 불타게 하고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시킨다. 하지만 비유가 잘못되었다. 이타주의 · 관용 · 결속 · 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180쪽)



    때로 우리는 시장이 제공하는 사회적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하는 시장 관행을 감내하겠다고 결정한다. 생명보험은 이런 식의 타협으로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겨날 수 있는 재정적 위험에 대해서 가족과 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지난 두 세기 넘게 한 개인의 생명에 피보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사망을 놓고 도박을 벌이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마지못해 결론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투기를 향한 유혹을 억제하기는 어려웠다. (222쪽)



    시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저런 시장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경기의 선(善)을 향상시키는지 훼손시키는지 여부다. (246쪽)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 · 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27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