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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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문학과 SF소설을 읽을 때 흔히 사람들은 소설의 리얼리티를 기대하고 보진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속도감있게 잘 다루었으면 하는 기대를 할 것입니다. 소설마다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을 터이지만, 지금까지 제가 읽어본 장르소설은 특정한 독자에 맞추어져 있었고, 소설 또한 독자에게 특별히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성을 따져가며 장르소설을 읽기 보다 소설이 만들어낸 공간과 사건 속에서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며 보여주려 하는 것이 무언인가를 따져가며 소설을 읽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소설의 리얼리티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재미있게 지어낸 이야기 안에서 그것을 찾아야만할 이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장르문학에서 어설프게 현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소설을 보면 일단 우습게 보였고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권위있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장르문학을 바라보는 바로 그런 시선으로 말이죠. 소설은 소설일뿐이라는 생각을 갖고서 소설 속의 현실이 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거대한 제방을 만들어 완강하게 버티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읽기를 잠시 쉬고 소설이 담고 있는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해 나름의 조사를 해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작가가 소설에서 만들어 놓은 치밀한 현실성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어집니다. 완강하게 버티고 서있던 거대한 둑에 금이가고 물이 새어나와 현실의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이후에 소설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소설속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믿으려 듭니다. 소설이 보여준 생생한 현실에 벌벌 떨다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바로 소설 속의 세계와 다를바가 없구나를 느끼기도 합니다.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소설이 되는 것입니다.



    『13계단』을 읽었을 땐 다카노 가즈아키가 사회부 기자이거나 법률 관련 일을 했던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노사이드』를 읽고 나니 이 분의 진짜 정체가 무엇일까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조사와 연구를 거쳤으며 다시 그것을 다방면에 걸쳐 고증하려 했던 노력이 소설에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래서 조금 엉뚱해보일지 모르지만, 다카노 가즈아키의 정체는 역시 작가였구나 라는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들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과 치열한 문제의식들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대단한 소설의 형태로 이렇게 연이어서 제게 다가오니,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생겨납니다. 제방이 한번 터져버리니 이제는 걷잡을 수 없어진 것입니다.



    '제노사이드'는 종의 말살을 의미합니다. 소설에서 말하길,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의 눈에는 인간이 신과 같은 존재로 비칠 것이라 합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수한 지능과 기술력을 갖고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을 능가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면 인간의 눈에 그 새로운 종이 다시 인간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 『제노사이드』는 그런 상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종이 현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인간이 그 종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강행한다는 전개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새로운 종과 제노사이드에 대한 SF적 요소가, 사실은 현재까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빈번히 발생했던 일이었고, 또 가까운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사회에서 자주 발생했던 일이라, 이때부터 SF소설이 더 이상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감을 갖고서 치밀함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의 확장을 통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잔혹한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가 다른 미지의 생명체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잔혹함이 그 어떤 공포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잔혹한 모습들, 이율배반적인 배타성이야 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모습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크게는 인종에 대한 배타적인 말살, 그리고 이어서 문화, 민족, 국가, 종교, 정치집단, 이익단체 등등의 이름으로 개인적인 종을 구획지어 놓은 인간끼리의 잔혹한 싸움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종으로서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진 인간사회 이면의 어두운 모습이 소설속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니, 점차 인간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절대신에 의한 강압적인 평화 뿐이란 생각에까지 미칩니다.



    하지만 신에 거의 다다른 새로운 종, 진화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근본은 인간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은 어쩔 수 없음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비관론자는 아닙니다만 소설에서 보여준 인간들의 모습을 토대로 보자면, 인간의 노력이 결국 무의로 그치고 무한히 반복되는 역사와 함께 지구가 여전히 종말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 역시 신과 같은 우수한 사고와 기술력을 갖췄다 한들 신과 같은 절대적인 도덕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설 속에서 새로운 종이 우리가 혼란이라고 여길 일련의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미리 손써둔 잔혹한 짓들을 생각해보면, 역시 종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라는 것을 느낍니다. 만약 우리가 신을 통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가능하다면야 도덕적으로 긍정적인 유전자만을 이어받아 진화한 종이 우리의 신이 되어서 지구를 지배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설령 더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쓰고 버리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손에 쥐어진 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누군가를 죽인다 할지라도 총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던가. 죄는 방아쇠를 당기는 인간, 살인을 명령한 당사자에게 있었다. (27쪽)



    때때로 자연은 인간에게 잔혹할 정도로 차별 없이 불평등을 안겨 주었다. (138쪽)



    다른 민족에대한 차별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면 그들 안의 잔인한 감정이 폭발하여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포와 아픔은 어떤 것일까? 일본인의 무서움을 일본인은 알지 못한다. (171쪽)



    그럼 새로이 탄생한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할까? 우리를 멸망시키려 들리라는 것은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인류와 다음 세대의 인류, 이 두 종의 생태적 지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한 그들의 생식 장소는 확보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본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의 나날을 보내는 데다 지구 환경을 파괴하기만 하는 과학 기술을 갖고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한 하등 동물이다.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생물종은 보다 고도의 지성에 의해 말살된다. (247쪽)



    루벤스가 보기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경쟁의 원동력은 단 두 가지 욕망으로 환원되는 듯했다. 식욕과 성욕. 인간은 타인보다 많이 먹거나 혹은 저장하고,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 했다. 짐승의 본성을 유지한 인간일수록 공갈이나 협박 같은 수단을 쓰며 '조직'이란 무리의 보스로 올라가려 안달했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경쟁이야말로 이러한 폭력성을 경제 활동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법으로 규제하고 복지 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짐승의 욕망을 억누르기는 불가능했다.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251쪽)



    만약 이곳에 기자가 있었다면 학살 현장을 문장으로 적고 있으리라. 그 기사가 읽는 사람의 마음에 평화에 대한 소망을 싹트게 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운 것을 보고 싶은 엽기적인 취향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고 저열한 오락의 발신자와 수신자는 학살자들과 똑같은 생물종이면서도 자기만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입으로만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만족을 느낄 터였다. (376쪽)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415쪽)



    20만 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 중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약 100년 전까지 현생인류와 현저하게 용모가 다른 신생아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살해되었으리라. 인위적인 도태. 그중에서는 진화한 개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없애려는 인간의 습성이 진화의 싹을 속아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471쪽)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물론 이것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습성이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준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473쪽)



    진화한 존재로부터 보면 인간은 불쌍해 보일 정도로 하찮은 지력 정도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눈살을 찌푸리고 싶을 정도로 야비한 생각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주어진 모든 생물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획득한 최선의 능력이었다. 최선을 다해 이 불완전한 뇌를 연마하며 여러 곤란한 상황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68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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