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레드 로드
모이라 영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블러드 레드 로드』는 정식 출간 전부터 리들리 스콧 감독이 판권을 사들여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보다 더 영화다울 수 있는 소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제작에 딱 알맞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제작사 측에서 이 소설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닌 듯해 보입니다. 




 


    『블러드 레드 로드』는 스트랜드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도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모험을 떠날 것이고 그들이 지나온 '길'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이번 이야기가 피빛의 붉은 길이었다면 다음 이야기는 '포레스트 그린 로드' 혹은 '데저트 옐로 로드'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름이야 가져다 붙이면 그걸로 그만일 것이고, 제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신선한 모험담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죠.



    작가 모이라 영은 여러 판타지 영화들에 꽤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은 츤데레한 숲 속의 소녀가 위기에 다다르자 람보같은 여전사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한 명의 여주인공이 있습니다. '헝거 게임'의 캣니스처럼 말이지요. 그러다 '워터 월드'에서 봤을 법한 모래 위를 달리는 거대한 노예상선에게 붙잡혀 '글라디에디터'의 검투사가 됩니다. 그래서 콜로세움에서 생사를 건 혈전을 벌입니다. 그때 만난 남자주인공과 그후로 운명적인 사랑의 밀당을 시작하는데요, 그 모습이 마치 '트와일라잇'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판타지 영화들보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영화는 '반지의 제왕'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구해야되는 반지는 여주인공의 오빠입니다. 오빠를 구하기 위해 조직된 원정대는 여정을 계속해나가다, 함께 모험을 할 원정대 구성원 몇 명이 그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야기의 최절정에 이르렀을 때 도움을 줄만한 아군을 미리 준비해두며 일종의 복선이 될만한 모험이 이어집니다. 동트는 쪽을 바라보면 백색의 간달프가 나타나고, 아군의 저주받은 병사들이 적군을 휩쓸어 버리듯이 말입니다. 잠시 도움을 받으며 몸을 위탁할 땐 숲 속의 엘프 여왕같아 보이는 인물이 도움을 주고, 적들 중엔 나즈굴같은 느낌의 톤톤이라는 추격자가 등장합니다. 또한 소설의 거대한 괴물 벌레들과의 전투에선 '반지의 제왕'의 고대 괴물과의 전투 장면이 연상됩니다. 주요 인물들이 희생되어야만 하는 슬픈 장면들까지 꽤 많은 부분이 흡사합니다.



    '반지의 제왕'과 다른 점은, 『블러드 레드 로드』의 세계는 마법을 쓰지 않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블러드 레드 로드』에서 말하는 세계관은 어딘가 모르게 조금 엉성해 보입니다. 완벽하게 만들어져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만같은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머나먼 미래의 시간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암시하는 몇몇의 증거들을 흘려놓고 있는데, 굳이 미래의 이야기라고 정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라면 만들어 놓은 세계관이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는데 반해, 『블러드 레드 로드』의 세계관에서는 그런 메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찰'이라는 마약이 미래에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다만, 이야기의 흐름에 큰 관련이 없다는 듯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아서 조금 생뚱맞게 느껴졌습니다. 프랑스의 루이16세를 언급하며 '피치'라는 이름의 이 시대의 왕과 동일시하려는 부분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장면의 전환들이 좋았습니다.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따지지 않고, 가볍게 보기에 좋은 영화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스릴 넘치는 모험에 풋풋한 십대의 사랑이야기가 가미된 판타지소설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반지의 제왕도 1편까지는 반지 원정대가 무엇인지, 왜 그들이 계속해서 모험을 떠나야만 하고 길을 가야만 하는지, 이유를 잘 알지 못한 채 이야기를 지켜봐야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그들이 모험을 통해 세상의 위기를 인지하는 과정과 세상을 구할 인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좋아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블러드 레드 로드』이 앞으로 어떤 전개를 보일지 그건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론 인물들이 모험을 통해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또한 넓어진 그들의 세상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바를 뚜렷하게 지지해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시대가 원하는 문제의식과 주제를 읽을 수 있는 모험이 이어진다면 다음 이야기를 계속 기대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움직이는 거야. 우리 인생은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 계속 흘러가고 또 흘러가는 거라고……. 그게 전부야.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66쪽)



    3의 법칙이라고 들어봤어? (…) 누군가의 목숨을 세 번 구해 주면, 그 사람의 목숨이 너한테 속하게 된다는 거야. 네가 오늘 내 목숨을 구해 줬으니까 이제 한번이야. 두 번 더 구해주면 난 네 게 되는 거야. (236쪽)



    일어날 일이라면 일어나게 될 거야. 전부 다 별에 쓰여 있어. 모든 게 운명이야. (236쪽)



    조심하라고, 천사님. 그런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면 남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하게 되거든.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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