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저희 아버지는 대식가이십니다. 가끔씩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무언가를 요란하게 만드시는데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편이 차라리 좋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막연하게 불안합니다. 엉망인 요리가 나올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된장찌개가 그렇습니다. 평소에 음식을 짜게 드시는 편이라 풀어놓은 된장이 멸치와 만나 간장인지 무언지 알 수 없을 맛의 액체가 만들어 집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로 짜고 쓴 어떤 물의 맛. 찌개에 된장 이외에 들어간 것은 썰어놓은 감자 조각들이 유일한 것이라 마치 바닷물에 한번 담근 된장과 어디선가 떠내려 온 감자를 건져먹는 느낌이 납니다. 맛도 맛이지만 더 큰 문제는 만들어 놓은 음식의 양이 엄청나다는 데 있습니다. 그 많은 걸 누가 다 먹어야 합니까. 결국에는 제가 다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출생 자체가 비극인 음식에도 아직 소생 가능하다는 한 가닥의 희망이 존재합니다. 그저 된장을 풀어 놓은 듯한 수상한 액체도 신기하게 어머니의 손을 한번 거치면 된장찌개로 변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매우 맛있는 된장찌개로.

 


    대단히 특별할 건 없습니다. 물을 조금 추가하여 살살 끊이고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애호박과 양파, 버섯, 두부가 송송 들어갑니다. 보통의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된장찌개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옆에 서서 변신하는 된장찌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선 낮은 감탄의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호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운한 향을 낼 방아잎이 조각조각 들어가면, 긴 여정을 거친 된장찌개가 부활하여 새 생명을 얻습니다. 아! 맛있습니다.

 


    오가와 이토『따뜻함을 드세요』는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과연 얼마나 맛있는 글일까, 설마 맛은 없고 양만 많은 음식은 아니겠지, 하는 약간의 불안을 갖고서 첫 장을 떠먹어 보았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는 약간의 불안과 부재, 상실을 느낀 우리들이 음식을 만들고, 만든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서 무언가가 치유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맛있게 먹고, 배불러서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배부른 글.

 


    따뜻한 음식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먹는다는 것은 꽤나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라 현재로선 무언가 그 맛이 어떻다고 말로 표현하여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그 맛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될 먼 훗날이 온다면 분명 그 음식을 그리워하며 그 음식만이 갖는 특별한 맛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당연히 미식가는 아닐 테지만 마치 대단한 미식가가 된 것처럼. 그런데 그것은 단지 그리운 맛을 찾기 위한 수색이 아니라 사람과 기억을 쫓는 서글픈 몸부림일 겁니다. 몸이 기억하는 익숙함을 쫓는 당연한 행위. 사람에게 길들여진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집에 가면 익숙한 느낌의 찌개그릇과 기억을 담은 밥그릇부터 찾습니다. 일단 부엌에서 들려오는 크고 요란한 소리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합니다. 아버지께서 무언가를 준비하시며 낸 소리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굉장히 짜고 쓴 어떤 정체 모를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날 것입니다. 된장인 것 같은데… 뭐, 괜찮습니다. 두 번 끓여 더욱 맛있는 전통의 맛이라고나 할까요. 조금 있으면 어머니께서 된장찌개를 다시 손봐 줄 것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됩니다.

 


    저는 두 분이 함께 만든 된장찌개가 좋습니다. 함께 만들지 않으면 이런 맛의 된장찌개가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된장찌개, 오래오래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맛있어서 감사합니다.

 

 





 

    반짝거리는 입술 끝을 내 오른손 검지로 닦아서 혀에 대보니 달콤한 맛이 났다. 빙수 시럽의 달콤함이 아니었다. 뭐랄까, 더 복잡한 맛이었다. 역시 할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콤하게 발효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할머니의 빙수, 26쪽)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사소한 행복을 느꼈다. 순간, 벅찬 감정이 세차게 몰아칠 것 같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배가 너무 불러 그저 애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 45쪽)

 


    이 순간이 미칠 것 같다. 쾌락이란 통증과 괴로움 속에 꽂힌 한 가닥의 감미로운 빛 같은 것이리라. (폴크의 만찬, 110쪽)

 


    어째서 그럴까. 잃어버린 뒤가 아니면 소중한 것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때아닌 계절에 기리탄포,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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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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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아! 강태식『굿바이 동물원』을 읽다가 얼마나 웃다 울기를 반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요. 아니면 우리 인생은 무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요. 아무튼 이 소설은 따뜻한 느낌의 행복, 웃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개그, 작은 위안을 줄 희극임과 동시에 떠올리기 싫은 현실, 고독한 처지, 절망과 고통 등을 보인 비극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고, 우는 게 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크게 웃다가도 어느새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아아! 내 똥꼬털, 캐어가 필요합니다.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굿바이 동물원』에서 보이던 다양한 인생의 우울한 이야기에 오백 배 공감합니다. 아마 요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소설을 보고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누구나가 쉽게 공감하며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을 매우 작은 사건, 사소한 감정,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분까지 잡아내어 묘사합니다. 섣불리 맞아 맞아, 하며 공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 숨기고 싶고, 두렵고 나약하기까지 한 감정들을 보입니다. 그래서 보고도 아무런 말없이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묘하게 불안합니다. 소설이 불안을 직접적으로 보이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만 묘하게 그러합니다. 겉만 보자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로 치자면 <인생은 아름다워>같습니다. 그만큼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씁쓸하게도 현재의 우리로선 충분히 보편적이라 여길만한 이야기입니다.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웃기려는 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는 곧바로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한 불안이 생겨날 때마다 수면제를 한 알씩 모으다 보니, 제 옆에는 어느덧 치사량을 넘을 만큼이 수면제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소설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우리를 소설 밖의 현실로 내몹니다. 이것이 묘하게 사람을 불안을 만듭니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을 읽는 동안 크게 웃고 크게 운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마치 봉지에 가득 짜놓은 본드가 만든 환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한꺼번에 밀어닥칠 현실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내 앞에 놓인 현실을 지우기 위해 축 처진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흐릿한 눈을 뜨고서 이어 읽을 다음 소설을 허겁지겁 찾아야만 했습니다. 웃고 울면서 반쯤 열린 입에서 흘러나온 침을 닦고, 산만하게 떨리던 왼손을 오른손으로 세게 잡아 진정시키며 말입니다.

 


    솔직히 산다는 것이 많이 힘듭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그런 문제도 아니어서 그냥 삽니다. 웃을 일도 없지만 그다지 크게 울만한 일도 없어서 그저 그렇게 삽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분명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삽니다. 문제도 모르면서 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말입니다. 그건 단지 착한 아내를 얻어서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거나, 철밥통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고기집 사장님이 되어서 떼돈을 벌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무언가 다른 근본적인 해결책이 분명 있을 텐데, 설마 그 해결책이 콩고의 밀림으로 가서 자연을 벗 삼아 다른 고릴라 무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아닐 테지요. 진정으로 그 방법뿐이라면, 어서 힘차게 가슴을 두드려 '우후후후'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법을 익혀야겠습니다. 아아! 세게 두드려 멍든 내 가슴, 캐어가 필요합니다.

 



 

 


    우리 함께 꿈과 환상의 나라로 떠나요. (29쪽)

 

 

    그날은 하루 종일 강한 바람이 불었다. 대장 고릴라 만딩고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기어오를 때도, 여자 고릴라 앤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정상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할 때도, 내 마음속에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몸을 가누기가 힘겨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폭풍우에 휩쓸린 난파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어두운 밤바다를 표류했다. 등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와 갑판을 후려치는 험한 파도, 그리고 나라는 난파선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는 바람뿐이었다. (128쪽)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 점처럼, 취직을 하는 게 어떻겠소? 연락책의 말은 고즈넉하게 들렸다. 반지하 단칸방이 고즈넉해졌고, 둘 사이에 머물러 있던 어둠과 침묵, 곰팡이 냄새 같은 것들이 고즈넉해졌으며, 그 속에 마주앉은 두 당사자 역시 10초쯤, 어쩌면 1분 가까이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취직이라……. 이렇게 고즈넉한 말이 또 있을까. (253쪽)

 

 

    제3국! 나를 콩고의 밀림으로 보내주게. (287쪽)

 

 

    나도 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또 안다, 내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인간이라는 것도. 그래서 그때는 인생이 외로웠다.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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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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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선거때가 되면 지나간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마법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주위사람들이 품은 불만과 저항의식을 볼 때 이 정도라면 앞으로 우리의 정치는 크게 변화하고 무한히 발전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변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을 기다리는 시간만이 무한히 길게 느껴질 뿐입니다. 한 사람이 나서서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듯합니다. 힘을 모아 무리지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란 말입니까.

 

 

    로저 오스본『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는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발전해온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꾸준히 발전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운 법과 정치가 교묘하게 권력과 부의 중앙집권을 도와 스스로 퇴보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중은 그러한 역사 속에서 어떻게든 결국 체제 전복을 이루어 냈고, 민주주의 역시 그 안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한 결과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로마, 중세 유럽, 아메리카, 근대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세계역사에서 민주주의가 움직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안에서 만든 민주주의가 아니라 밖에서 만들어진 민주주의입니다. 뭔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고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얼떨결에 남들이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에 착오만을 겪으며 현재까지 온 듯합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깨어나는 민주주의에 대비하여 무언가를 방어할만한 충분한 구조를 마련한 뒤 발전을 가장한 민주주의의 먹이를 우리에게 던져주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한국형 민주주의가 만들어질 시간을 갖춘 듯합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저만의 생각입니다.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과 상상을 토대로 쓴 소설이나 다름없는 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조금 더 써보자면, 한일 문제는 당시 집권한 무리들의 사고에 의해 광복과 동시에 제대로 청산할 수 없는 민감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토록 문제가 되어 최근의 갈등과 분쟁을 만들어 낸 듯합니다. 무언가를 쥐고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놓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으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습니다. 일본이 현재와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는 밑바탕엔, 우리 정부가 그동안 안일하게 대처한 외교와 내부에서 권력과 결탁한 부에 있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우선적으로 필요한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교묘하게 언론은 그런 비판의 목소리보다 일본 정부의 반응에 대한 자극적인 뉴스만을 우리들에게 보이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이런 식의 민주적 선동은 사람들을 조종하기에 매우 편리한 수단이 됩니다. 정부와 은행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나라가 망했을 땐 '국가 부도, 파산 한국'과 같은 단어보다 'IMF사태'라는 단어를 사용해 교묘히 잘못을 외부로 돌리면 됩니다. 마치 국제통화기금이 우리나라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 것처럼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일어나려 하면 탱크를 앞세워 언론을 통제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수근거리며 나라가 어수선해지면 프로야구를 만들어 사람들을 경기장에 밀어넣고 그 안에서 소리지르도록 하면 그만입니다. 올림픽 때문에 사람들이 밤새도록 열광할 땐 게눈감추듯 공항을 매각해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음날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인터넷으로 금메달 집계현황만 찾아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부터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 백의민족이라 길거리 한복판에서 AK47나 RPG7을 든 민주적 분노의 암살극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테니 자리 보존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괜히 세계역사 속의 민주주의와 한참 비교된 우리의 상황 때문에 욱해져 책의 내용과 많이 벗어난 이야기까지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유라는 착각에서 민주적이라고 오해했던 개인의 소설을 혼자 보고 있으려니 분통터질 일뿐이라 언성이 조금 높아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민주주의는 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경써서 잘 가꾸면 깊게 뿌리박고 넓게 번창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대한 숲을 이룰 테지만, 조금만 신경쓰지 않으면 금세 시들고 죽어버려 그 자리에 그대로 썩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속의 우리가 이런 식으로 착오만을 경험하며 쇠퇴를 거듭하다간 나중에는 정말로 화분째 갈아버려야 할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 전에 미리미리 신경써서 제때 물을 주고 좋은 거름을 챙겨주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정성스레 잘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역사의 결정판을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기보다 민주주의의 과거에서 다양한 측면을 개관해보고, 오늘날 덧없는 민주주의의 기저에 깔린 복잡성과 다양성, 창의성을 고루 밝혀봄으로써 민주주의 자체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 책을 쓴 목적은 민주주의에 대해 확실하게 매듭을 짓거나 아예 밀쳐두자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의 통치 방식에 대해 고민할 때 양분을 제공해줄 만한 역사적 밑거름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19쪽)



    민주주의는 무미건조한 지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 문화에 뿌리내린 온갖 믿음과 가정들을 한데 묶은 것이며 그만큼 싸워서 지켜낼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비록 불완전하긴 해도 인간 삶의 커다란 딜레마, 즉 어떻게 해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재하는 인간이 개인적으로도 번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22쪽)



    우리가 겪는 불행의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리는 만민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도리어 만인의 불만을 샀다. 우리는 왕의 비위를 맞추려 애썼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 모두의 목을 베는 것 말고는 그를 기쁘게 할 방도가 없는 듯하다. 우리는 또 썩어빠진 자들의 집, 그러니까 의회를 지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온통 썩어빠진 의원들로 가득했다. (156쪽)



    수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제 한 나라의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인가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민주적이냐가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석가들은 민주주의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485쪽)



    민주 사회는 수많은 삶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늘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또 공동체적 창의성의 줄기찬 발로다. 그런 창의성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에너기자 필요하며, 이를 막으려는 세력 또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러다 보니 편가르기, 뒤봐주기, 이기주의, 냉소주의, 무관심, 조용한 삶 등의 꼬임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는 번성하려면 우리가 기필코 극복해야 할 유혹들이다. (4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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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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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이튼 로슨『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1930년대 작품입니다. 영미권 추리소설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절의 소설이고, 개인적으로 뜻 모를 로망을 품고 있는 시대의 글이라 애착을 갖고서 무척 기대하며 읽어 보았습니다. 아마도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이 시대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갑고 행복한 일이라 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소설이 거의 비슷한 형태를 보여서 괴목떡판으로 떡 찍어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존 딕슨 카의 소설과 닮아도 너-무 닮은 듯합니다. 오마주는 분명 아닐 테고, 이토록 비슷한 소설이 나올 수 있는 게 가능한가 하며 궁금해 하던 찰나에 이 둘이 굉장히 친한 친구 사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 그래서 이토록 닮은 소설을 쓸 수 있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친구 따라서 강남 간다 하더니, 로슨 강남 스타일을 추구하며, 내 친구는 나의 거울이요, 하는 추리소설이었을 줄이야.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특히 존 딕슨 카의 대표작, 『세 개의 관』과 닮았습니다. 그 소설이 갖는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합니다. 가끔씩 소설에서 기드온 펠 박사가 했던 대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괜히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존 딕슨 카가 그의 소설에서 밀실 강의를 했다면, 클레이튼 로슨은 추리소설의 형태와 살인수법, 범인유형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두 소설 간의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나는 시점, 탐정과 경감이 이동하는 부분과 그때 나누는 대화, 범죄 현장의 모습과 단서를 던져놓는 방식, 밀실을 구성하는 요소, 몇몇 등장인물의 개성 있는 모습과 그들을 묘사하는 방식 등, 소설 간의 닮은 부분을 굉장히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방 속에서 클레이튼 로슨만의 재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술사 겸 아마추어 탐정 멀리니와 뉴욕시 살인반 개비건 경감이 말끝마다 투닥거리며 옥신각신하는 대화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 시대에 이미 꽤 유명해진 명탐정들을 거론하며 추리소설 자체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가 오가는데, 이때 어떤 추리소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소설의 트릭은 마술에서 쓰이는 트릭처럼 굉장히 기계적인 느낌의 것이라 저는 이부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추리소설 매니아들이 이런 기계적인 트릭을 실제로 실험해보고 동영상을 찍어놓기도 하던데 아마 저만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충분히 실현 가능한 트릭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제가 풀지 못했던 그 트릭은 이 소설의 일부분일 뿐이고 그 밖에 많은 부분에서 추리해야할 요소들을 던져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그 부분을 다시 정리해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역시나 대단한 소설이었단 생각만 마술처럼 남습니다. '여긴 어디, 난 누구'하며 모자 속에서 튀어나온 토끼의 어리둥절해할 심정이 이해됩니다.

 


    끝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몇 차례에 걸쳐 신경쇠약에 걸릴 뻔 했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아니 할 수가 없다는 듯, 펠 박사를 닮은 멀리니가 사건의 진상을 설명할 때 참고 지식을 장황하게 나열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이러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장문의 대사를 읊으려 하는 멀리니의 말을 미리 자르지 않은 개비건 경감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빨리 해답을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경감의 모습을 변태처럼 즐기는 경향이 있는 겐지, 멀리니는 감칠맛 나도록 일정한 속도로 사건의 풀이를 가능한 한 길 수 있는 가장 긴 이야기로 풀어서 말합니다. 왜 하나같이 명탐정이란 인물들은 이렇게까지 있는 뜸 없는 뜸 다 들여가며, 있는 척 없는 척 다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아오! 뒷골이야. 평소에 피지 않던 담배를 찾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담뱃갑을 찾는다고 아주 혼쭐났습니다. 그건 마치 그의 글을 모방한 이런 제 글과 닮았습니다. 


 




 


    이런 이들이 모두 범인이 되어 왔다. 저마다 또는 함께. 그리고 독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렇듯 많은 작가들이 소재의 고갈이라는 딜레마에서 탈출하려 애쓰다가, 교활하게도 통상적인 용의자 리스트 바깥에서 범인을 만들려 시도하여 그 악역을 탐정과 지방검사, 배심원, 배심원 대표에게 맡기다 보니 결국에는 참신함을 추구하는 마지막 절박한 시도로 서술자 자신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남은 것이라고는 독자뿐이다! (19쪽)

 

 

    멀리니가 진지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와 마술 준비 과정으로 수다를 떨고 있을 때를 구별하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든 팔 수 있다. 그는 불가능을 파는 것이다. (79쪽)

 

 

    어떤 이들은 추리소설이 개연성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론 그렇습니다! 모든 소설이 마찬가지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 간디스토마의 일생에 대해 연구해본 적 있소? 아프리카 영양, 와상 성운, 현미경으로 확대한 파리나…… 아니면 여자의 치마받이 같은 것을 본 적 있소? 이런 것들 모두가 개연성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3쪽)

 

 

    이 사건은 난해합니다. 하도 난해해서 나는 오직 하나의 설명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단히 비현실적입니다. (306쪽)

 

 

    나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경감. 아까부터 알고 있었소.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 발견할 때마다 미스터리가 더욱 깊어집니다. 어쩌면 살인자는 우리가 상대하기에 너무 영리한지도 모르오. 어쩌면…….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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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들의 저택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가 직접 자신의 소설을 보내주며 소설을 읽고서 짧게라도 감상의 글을 남겨주십사 부탁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이 소설을 받아 들었을 땐 굉장히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을 지목해서 부탁했다는 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이런 부탁을 한만큼 계속해서 지목한 대상을 감시하고 있을 것 같다는 수상한 느낌마저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였습니다. 그것은 소설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떠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까요. 저는 한참동안 그 생각에 글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 소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취재하듯 조사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받고 나서부터 소설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하려던 지금까지, 마치 누군가가 저를 미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누가 보고 있나? 누군가가 제 뒤를 쫓다가 때론 가만히 서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대놓고 저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제 등을 향해 날카롭게 찌르면서 끈적하게 들러붙을 시선을 끊임없이 박아 놓습니다. 저는 평소에 이러한 기분을 쉽게 떨쳐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피로을 느끼며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 피로가 느껴질 때마다 갑작스레 한번씩 뒤돌아보곤 했는데, 정말로 만약 누군가가 뒤에 있는 것이라면 그 대상이 미쳐 몸을 숨기지 못하게끔 빨리 뒤돌아봐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인들의 저택』이라는 한 권의 책만이 'HELP'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난 직후라 그랬던 것일까요. 단순한 착각이나 기분 탓이라 여기며 다시 키보드를 손을 얹고 글쓰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또 다시 이상한 기운이 목덜미를 타고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데 몰두하다 보면 어느 쪽이 진짜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경계선상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면서 가까스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이인들의 저택』을 읽으며, 말그대로 그의 현란한 글놀이에 제대로 놀아난 것 같아 더욱 그리 느껴집니다. 그의 글은 서로 한데 어울리지 못할 글조각들을 어떻게든 짜집기하여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놓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이 마치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헝겊 조각을 모아 만든 패치워크같아 보입니다. 재료의 출처부터가 제각각이라 하나로 만들어진 그 모습이 그다지 조화로워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어색한 기운이 감돌며 기이한 형태의 그림이 된 듯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그렇게 이어붙인 이야기들 간의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정교한 바느질을 통해 계속 이어 붙어져 있는데 이 부분이 참으로 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빠른 전개를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느릿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독자를 지치게 만들기 위한 의도된 장치였을지 모릅니다. 솔직히 그의 소설이 갖는 치밀한 복선과 구성이란 것이 사람을 꽤나 지치게 만듭니다. 



    아무튼 오버랩된 이야기들이 독자의 머리 위를 자유자제로 넘나들며 어느 순간부턴 독자를 대놓고 우롱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부분도 정말로 그렇다고 단정지어 말하기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인데, 이쯤 되면 눈치채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늬앙스를 풍기며 결국 독자 스스로 뭔가를 풀이해낸 듯한 착각에 빠지게끔 유도합니다. 그때 또 다시 미리 잘라놓고 준비해둔 결말을 덧붙이면서 누더기 기운 옷처럼 이야기가 덕지덕지 보태어집니다.



    제가 조사하며 찾아낸『이인들의 저택』에 대한 감상글은 이런 내용의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똑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길을 걸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서술하는 방식에 약간의 차별화를 두어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또 다른 형태의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꽤 오랫동안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제 뒤에서 저를 향해 다가오는 수상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뒤돌아보려 할 때, 저는 잠깐 멈칫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등 뒤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공포를 확인해야만 하는 공포.



    그런데 다행히 제 뒤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역시 착각이었나 봅니다. 여름에 읽는 미스터리 소설은 이래서 좋습니다. 위험한 이야기를 이야기 밖에서 안전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부탁받은 『이인들의 저택』에 대한 감상글은 그런 내용의 글를 한번 써보려 합니다. 아직 단 한 문장의 내용도 써내려가지 않았으나 이런 생각을 하고 방향을 정한 것 만으로도 거의 다 쓴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약간 더 추가해야할 내용이 필요할 것도 같으니 취재와 조사가 필요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써둔 내용을 참고해서 단어와 문장만 조금씩 바꾼다 하더라도 괜찮아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글의 방향이 그쪽으로 향하게끔 조정하고, 키보드에 올려둔 손을 움직여 마침내 글쓰기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뒤를 타고 도는 빨간 색의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무언가가 스르르 목을 감아 타고서 올라오는 듯한 새하얀 느낌. 그래서 뒤돌아…….







    어쩌면 이건 재미있는 스토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방 전체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인물의 고동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58쪽)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챘을 텐데요. (107쪽)



    당신들이 취재하러 온 뒤로 자꾸 준이 생각나네요. 잊으려고 했는데 망각의 문을 억지로 따고 들어오는 바람에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당신들을 원망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렇게 된 바에야 차라리 모든 걸 밖으로 드러내 마음속에 고여 있는 고름을 남김없이 짜내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342쪽)



    "뭐, 추리 동아리라고?" 지역 경찰서 형사는 우리를 수상쩍은 눈으로 쳐다봤어요. "그럼 항상 사람을 죽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겠네. 이번엔 타살을 사고사로 위장한 건가?" (358쪽)



    "작품을 보는 그들의 안목이 부족한 거예요. 솔직히 그들이 쓴 추리소설은 대부분 형편없잖아요."

    (…)

    "그건 독자가 멍청한 거죠. 머잖아 금방 질려버릴걸요. 그건 추리소설 흉내만 낸 거지 추리소설이 아녜요."

    (…)

    "편집자가 형편없는 작가들에게 그렇게 관대하다니 국내 추리소설도 앞날이 캄캄하네요." (394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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