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판에 눈이 내린다. 그 곳엔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마치 엉크린 사람들 같다. 그 뒤로 봉분들이 즐비하다. 검은 통나무는 묘비인가. 어느 순간부터 바닥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은 바다였다. 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내어 말했다. ‘왜 이런 데다 무덤을 쓴거야?’ 무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 그리고 꿈에서 깬다. 



소설은 경하의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5월의 광주를 소재로 소설을 쓴 이후에 시작된 꿈이었다. 길몽은 아니다. 악몽이라고 치부하기엔 무언가 찝찝하다. 아마도 경하의 꿈은 살아남은 자가 느끼는 죄책감,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미안함, 국가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무의식중에 발현된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꿈은 경하만의 꿈이 아닌, 제 2의 경하, 제 3의 경하가 꾸었을 꿈이기도 하다. 어쩌면 5월의 광주를 소재로 소설을 썼던, 한강 작가가 꾸었을 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5월의 광주에 메여있던 한강 작가가 제주 4.3에 눈길을 돌린 건 필연이었다. 그리하여 한강 작가는 제주 4.3을 주제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했다. 다만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극한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 책 저변에는 정말 사랑이 깔려있었다. 진짜로 지극한 사랑이야기가. 그렇다. 이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은 증언문학이기 이전에, 정말 지극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인 경하도 작가처럼 제주 4.3에 다가섰다. 인선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선, 그녀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인선은 자신을 향한 부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의 뜻모를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부모의 감정이 자신에게 옮겨지는게 두려웠다. 그래서 인선은 제주를 떠났다. 그렇게 육지에서 인선은 경하와 만났고 친해졌다. 경하는 인선에게 꿈 이야기를 했고, 자신의 꿈을 영상으로 만들기로 했다. 인선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각박한 현실을 살아내느라 경하와 인선은 잠시 멀어져있었다. 그 사이에 인선은 다시 제주로 돌아갔다. 자신이 업으로 삼던 일조차 뒤로한채.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겨울, 경하는 인선의 연락을 받았다. 병원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그렇게 경하는 인선을 찾아 병원으로 갔고, 인선의 요청으로 제주로 내려갔다. 눈이 세차게 내리던 겨울 날에. 그날 경하는 마주하고야 말았다. 제주에서 벌어졌던 참극과, 그 참극으로 인해 무너져내렸던 인선의 가족사를. 



인선의 엄마는 한날 한시에 부모와 동생을 잃었다. 겹겹이 쌓인 시신들 사이에서 부모 시신을 찾겠다고, 시신에 쌓인 눈을 쓸어 내리는 열 일곱 살 언니 옆에 붙어서, 열 세살 동생은 시신들 얼굴을 확인했다. 부모 시신은 찾았으나, 동생은 보이지 않아서 불타 무너져 내린 집으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 숨만 붙어있던 동생을 발견했다. 동생이 살아나길 바라며,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동생 입에 물렸다. 그저 살아나기만을 바랐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생사확인이 안된 오빠를 찾고자 노력했다. 오빠가 주정공장에 갖혀있었단 사실을 알았고, 잠시나마 오빠를 만났다. 하지만 오빠는 대구로 이감되었다. 그렇게 인선 엄마의 오빠, 인선의 외삼촌은 영영 실종상태다.



인선의 아빠는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예비검속(보도연맹)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산에 숨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주민 명부에 있는 사람이 집에 없다는 이유로, 남은 가족들이 군경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렇게 인선의 할아버지가 죽었다. 인선의 아빠도 결국은 예비검속으로 끌려갔다.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러다 대구로 이감되었다. 대구로 이감된 대다수의 재소자들은 학살되었지만, 형기가 길었던 인선의 아빠는 살아남았다.



오빠를 찾던 인선의 엄마는, 그렇게 인선의 아빠와 만났다. 오빠 소식을 듣기 위해. 그렇게 몇 년 후 그들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인선이다. 인선이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었던, 인선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의 행동과 감정. 인선은 성인이 되어, 어머니가 성치 않아 돌보기 위해 제주로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의 부모가 그런 행동을 보인건, 자신을 진정 사랑해서였노라고. 다만, 인선을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날 겪었던 참극이 그러한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 냈을 뿐이라고.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던 인선 또한, 부모를 사랑했기에, 부모의 사랑을 알았기에, 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뿐이라고.



집담과 밭담들, 돌로 된 집들의 벽체들만 남기고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어. 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 마당 가득 붉은 게 흩어져 있어서 놀랐는데, 달아오른 고추장 장독이 터진거였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총소리가 들렸던 팽나무 아래로 달려가보니 일곱 명이 죽어 있었대. 그중 한 사람이 할아버지였어. 가호마다 주민 명부를 대조한 군인들이, 집에 없는 남자는 무장대에 들어간 걸로 간주하고 남은 가족을 대살한 거야. p 218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p 220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p 251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 삼 년 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가 정기적으로 그 광산을 방문했다는 걸 나는 몰랐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p 288


잠들어 던 내 입에 손가락을 물리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울었어. 짜고 끈끈한 그 손가락을 억지로 빼내지 못하고 나는 견뎠어. 장사처럼 힘이 세진 엄마가 숨을 못쉬도록 나를  껴안을 때는 다른 길이 없어서 마주 껴안았어. 엄마는 나를 죽어가는 동생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어. 언니라고 믿을 때가 더 많았고. 어떨 때는 낯선 사람으로 여겼어. 자신을 구하러 온 모르는 어른. 무서운 악력으로 내 손목을 붙잡고 엄마는 말했어. 구해줍서. p 312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다. 하지만 책 속 인선의 가족들이 겪었던 일들은, 1947년 4월 제주도민이 겪었던 일들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실화다. 제주 4.3은 국가의 주도하에 일어난 국민 학살극이었고, 국가의 주도하에 잊혀져야 했다. 그렇게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간인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제주 4.3는 언급할 수 없었다.


난 제주도를 갈때마다 4.3유적지를 찾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학살된 북촌, 터진목, 광치기해변, 성산일출봉, 서우봉, 종남밭, 당오름, 섯알오름, 화북동 등.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 곳에서 죽어간 그들을 추모했다. 내가 제주 4.3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설 속 경하가 꿈을 꿨듯,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모르고 살았던 미안함, 국가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연장선상에서 블로그에도 제주 4.3과 관련된 글을 자주 올렸다. 그래서 누군가 제주 4.3이 왜 일어났냐고 물어본다면, 당장이라도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제주 4.3의 배경과 도화선, 국군과 미군정의 제주도 초토화 계획, 제주도민을 학살하기 위한 국군과 미군정의 사기극까지. 그 뿐만인가? 한국전쟁 당시 제주에서 자원입대자가 많았던 이유가, 빨갱이라는 굴레를 벗기 위해서라는 것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는 여전히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다. 그저 제주 4.3이다. 제주4.3 평화공원기념관에 있는 백비에 비문이 새겨질 날이 언제쯤 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
조현철 지음 / 파람북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에 사는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현재 생존에 빨간불이 켜졌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가 시작했다. 더운 나라에는 폭설이, 추운 나라에서 폭염이 일어났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선 계절 구분이 희미해졌다. 더운 계절은 폭염이 지속되었고, 추운 계절에는 혹한의 날씨가 지속된다. 기후재난이 시작된 것이다.


다들 ‘기후위기’라고 말한다. ‘탄소중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말 쉽게 말한다. 쉽게 말한 것 치고는, 이를 이겨낼 해결 방안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전 인류가 해결 방안을 알고는 있다. 머리로 알고 있지만, 몸으로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이를 실행하는 순간 인간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편리함’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놓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 이런 이기심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남는게 더이상 당연한게 아닌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생존게임’이 인간에 한정된게 아닌,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대상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만든 기후위기. 그 업보를 지녀야할 대상은 인간이어야 함이 마땅한데,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나눠지게 되었다. 


이 인문학책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는 기후위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인간을, 기후위기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적한다. 기후위기는 비단 환경 문제가 하나만이 아니라고. 기후위기는 노동의 위기,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 등 사회 전반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자본주의는 언제나 ‘최대화의 원칙’으로 자연에 개입해왔다. 자본은 더 큰 이윤을 얻으려고 자연에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추출하며 배타적 자기 증식을 거듭한다. 하지만 힘이 아무리 커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채,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 다 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몰라도 결국은 탈이 난다. 기후를 비롯한 오늘의 총체적 위기가 잘 보여준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자발적 자기 제한의 겸손과 지혜가 필요한다. 이제라도 비인간 생물과 공존하는 쪽으로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 p 047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_미국 예술가 ‘바버라 크루거’


미국의 시인이나 농부 웬델 베리는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직접 “찾아내거나 만들거나 기르기보다는 사는 게 낫다고 여기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소비주의가 강해질수록 직접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만들고 길러내는 능력은 줄고, 사서 쓰고 버리는 소비 과정은 확대 재생산된다. 삶이 상품 소비에 잠식될수록 우리는 사서 쓰고 버리는 데 길든다.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소비자가 된다. 소비자는 결국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p 024


21세기,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시대다. 한마디로 말해 ‘초연결 사회’다. 덕분에 우리가 사는 지금은 그 어떤 시대보다 역대급으로 ‘편리’한 삶을 영유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터치 또는 클릭 한 번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쉽게’ 살 수 있다. 옛날처럼 물건 하나를 구하는데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원하는 제품군을 모아서 가격까지 비교해주는 쇼핑몰, 터치 또는 클릭 한 번이면 구입 끝! 다음 날이면 집 앞에 내가 구매한 물건이 도착한다. 이처럼 원하는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 동, 서양을 막론하고 역대 모든 전제군주들 조차도 원하는 것을 바로 이렇게 바로 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초연결은 이렇듯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회로 이끌었다. ‘쉽게’ 구할 수 있자, 사람들은 ‘쉽게’ 버리기 시작했다. 왜? 원하면 언제든, 다시 구매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 ‘초연결’ 사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쓰레기’라는 무서운 그림자를 숨기고 있었다. 쓰레기가 된 물건들. 우리는 그저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하지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것들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쓰레기들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누구도 쓰레기의 종착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전인류적인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올 여름이 당신 생애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


이번 더위는 언제 수그러들지에 관심이 크다. ‘지금 당장’을 견디기도 힘든데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 지 몇 년 전 일본 정부는 에어컨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을 폭염 대책으로 내놓았다. 올여름에 우리 정부도 폭염은 상시적인 자연재난이고 냉방기기 사용은 국민의 기본적 복지라며, 에어컨 사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전기 요금 누진에 완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p 049



에어컨. 여름에 없어서는 안되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캐리어 아저씨에게 감사해요’라는 말이 여름마다 나오기도 한다. 에어컨을 키게 되면, 당장 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에어컨의 이면을 보자. 에어컨과 같은 공간에 있는 나는 시원하지만, 에어컨 가동열이 배출되는 실외기가 있는 공간은 덥다. 폭염 그자체다. 쉽게 말하면 에어컨은 A라는 공간에 있는 열을 흡수하여 시원하게 해주지만, 그 흡수한 열을 B라는 공간에 배출하는 것이다. 에어컨이 열을 배출하는 공간은 당연히 바깥, 외부다. 그 열을 흡수하는 것은 지구다. 결국 에어컨을 키면 그 공간은 시원해지지만, 에어컨 열을 흡수하는 지구 전체적으로는 더 뜨거워지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폭염 대비에 대한 불평등 이다.에어컨의 냉방혜택은 에어컨을 소유한 사람만 누릴 수 있다. 에어컨이 없는 가정은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에어컨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사용하며 폭염에 일조하고, 에어컨이 없는 사람들은 그 폭염에 노출되어 더 많은 피해를 본다. 폭염에 노출된 사람들은 심할 경우 온열질환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잊지 말자. 올 여름 맞이한 폭염은, 작년 여름 내가 켰던 에어컨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폭염으로 인해 가깝게는 우리나라에, 멀게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나부터 시작하자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기술과 설비의 ‘절대 안전’은 모순이다. 원인이 실수든 재해든 사고는 일어나는 법이다. 이에 반해,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원인 석탄화력발전소 공사 ‘중단’이나 정치적으로 밀어붙인 가덕도나 새만큼 공항 건설 계획 ‘포기’는 안전 문제가 전혀 없을뿐더러 당장 효과가 있는 확실한 탄소 감축 방안이다. 지난 해 2월 영국 법원은 런던 히스로공항 제3활주로 건설계획이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를 위반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2월 프랑스는 기후변화 대응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5월 기차로 2시간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의 항공기 운항 금지를 포함한 ‘기후와 복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저들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할지’ 골몰한다. p 058


기후, 자본, 노동, 정책, 불평등 거창한건 다 모르겠고,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시작하자. 소비부터 줄여보자. 편리함을 쫓던 이기심을 버리고,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자.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에코프랜들리’한, 매우 친환경적인 소비자라는 사람들. 대표적인 사례가 텀블러와 에코백이다. 과연 텀블러와 에코백이 친환경적일까? 환경오염의 지표로 ‘탄소발자국’이라는 게 있다. 어떤 제품의 생산부터 시작해서 소비자에게까지 도달하는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말한다. 텀블러와 에코백은 탄소발자국이 높은 제품 중 하나다. 우리가 그렇게 사용을 지양하던 일회용 종이컵과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매우 높은 탄소발자국을 가지고 있다.


텀블러의 탄소발자국은 일회용종이컵보다 월등히 높다. 심지어 텀블러는 버릴 때 분리수거가 어렵기에, 그대로 지구를 오염시키는 쓰레기가 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쓰고자 한다면 적어도 하나의 텀블러를 1일 1회, 최소 6개월 이상을 사용해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회용 종이컵은 사용하지 않아야한다. 이정도를 사용해야 텀블러 탄소발자국 수치가, 일회용 종이컵 1회 사용한 것과 비슷해진다. 에코백도 그렇다. 동일한 에코백을 비닐봉지 대신 최소 130회 이상을 사용해야, 일회용 비닐봉지 1회 사용한 것과 같아진다. 



이 사실을 알고난 뒤 나는 텀블러와 에코백을 직접 산 적이 단연코 없다. 사은품으로 받은 텀블러와 에코백은 주변에 사용하라고 나눠준다. 심지어 지금 출퇴근 가방으로 사용하는 에코백은 벌써 8년째 사용중이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기후위기 해결방안.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것 부터 실천하기를 바란다. 소비를 지양하고 편리함을 조금 내려놓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성찰하여,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날의 세계사 -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365장면 속으로!
썬킴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 스토리텔러 썬킴 교수님의 신간이 나왔다. 한 때 스브스 러브에펨 쳐돌이를 하며, 라디오를 들을 적 《허지웅쇼 - 히스토리 월드》 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고 들었던 나다. 오죽하면 《허지웅 쇼》가 끝난 뒤에는, ‘히스토리 월드’ 만큼은 팟캐스트로 무한 정주행을 했다. 원래 역사더쿠였던 나였지만, 히스토리 월드에서 정말 맛깔나게(?) 이야기해주는 썬킴 교수님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죽하면! 썬킴 교수님이 말하는 세계사를 듣다보면 분명 아는 이야기인데, 왜이렇게 처음 듣는 이야기(?) 같은지!! 들어도 들어도 새롭기 그지 없었다.



각설하고! 그런 썬킴 교수님의 세계사책 신간을 소개한다. 제목은 『그날의 세계사』. 정말...진짜.. 제목 그대로 그날의 세계사다ㅋㅋㅋ. 아니 교수님, 어쩜 이렇게 직관적인 제목을 쓸 수가 있죠? 정말 책 내용이 진짜로 완전 ‘그날’의 세계사...아 이걸 더 어떻게 설명해야해 ㅋㅋㅋ



『그날의 세계사』 내용 자체는 지면 하나당, 말 그대로 ‘그날’에 있었던 일화가 적혀있기에, 막힘 없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 책이다. ‘그날’에 따라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거시적인 역사 일화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매니아 조차도 모를만한 미시적인 일화가 적혀있기도 하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세계사 책인가! 


어떤 날은 1537년, 또 어떤 날은 1983년. 일화에 따라 해당 사건이 발생한 연도가 다르기에, 당연히 책 내용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끊어읽기에 아주 제격인 세계사책이다. 만약 내가 태어난 달, 날에 일어난 사건이 궁금하면 해당 지면만 찾아서 읽어도 무방하다. 정말 쉽게 읽을 수 있는 세계사책으로 추천추천 왕추천이다!


이 세계사책을 펴서 제일 먼저 찾아본건, 내 생일이다. 나도 궁금했다구. 내 생일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읽고 나서 실망했다. 에이, 내가 푸이와 생일이 같다니. 썩 유쾌하진 않다. 차라리 그 다음날인 표트르 1세 사망일과 같았다면 좋았을 것을. 적어도 표트르1세는 촌동네 러시아를, 유럽의 최강국으로 만든 대제가 아닌가! 쳇. 아쉽다 아쉬워.



기세를 몰아 신랑 생일도 찾아봤는데 에잇, 여기도 썩 유쾌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상전 생일은? 허허허. 이번엔 유명인 사망일과 같다. 심지어 그 사람은 ‘전설’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아주 유명인!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이번엔 개인적으로 궁금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날을 찾아봤다. 예컨데 발렌타인 데이라던가, 메이 데이 같은...?



1863년 1월 1일,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북부의 링컨 대통령은 그 유명한 노예 해방 선언을 했다.


1766년 2월 14일, 영국의 인구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태어났다.


1879년 3월 14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독일에서 태어났다.


1865년 4월 14일, 미국 제 16대 대통령 링컨이 암살 저격을 당했다(저격 다음날 사망).


1865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노동절의 시작).


1821년 5월 5일, 전직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서아프리카 앞 대서양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사망했다.



오 뭔가 세계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도 있고, 매니아들만 알법한 사건도 있다. 신기하다 신기해. 이번엔 12월로 넘어가보자! 



노벨상의 ‘노벨’인 알프레드 노벨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중국의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가 사망한 달도 12월이었다. 죽기만 했는가? 12월엔 누군가 태어나기도 했다. 중국의 마오쩌둥,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 에펠탑의 구스타브 에펠, 대한제국 의병장 최익현 선생이 태어난 달도 12월이다. 하룻강아지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침공한,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날도 12월이다. 그 일본이 중국에서 일으킨 난징대학살도 역시나 12월이었다. 


31건이나 되는 12월에 일어난 모든 역사적 사건 중 내 눈에 들어온 사건은 1956년 12월 30일에 일어났던 일이다. 나라에서 버림받았던 섬 독도. 오랜기간 백성들이 지켜온 섬 독도. 그 독도를 나라에서 직접 지키기로 결정했던 그 날이 바로 12월 30일 이다.



▶ 1956년 12월 3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해체되고 그 자리에 독도경비대가 들어갔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울릉도민들이 독도를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결성한 민간인 경비대다. 경찰의 독도경비대 창설로 임무를 끝맺었다. 자, 독도는 누구 땅? 당연히 우리 땅이다. 그럼 이유를 설명해보라. 대부분 정광태의 노래 <독도는 우리 땅>만 부르고 끝이다. 자, 일본과 독도 논쟁이 벌어지면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1877년 태정관지령. 책 앞에서 언급했는데(8월 28일 글) 독도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므로 또 짚고 가자.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후 신일본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지도 작성에 들어간다. 시마네현으로 파견된 지도 제작팀이 일본 태정관(일본 정부)에게 문의한다. ‘동해(자기들 표현으론 일본해)상의 두 섬(독도, 울릉도)은 누구 섬인가?’란 문의를. 여기서 태정관은 답변한다. ‘그 두 섬은 일본과 아무 관계가 없는 섬이다. 명심하라.’ 라고! p 4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 인문 기행 2 그리스 인문 기행 2
남기환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 인문 기행2』가 출간되었다. 1권을 올 여름에 읽었는데, 반 년 만에 2권이 나온 것이다. 앞서 1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은 그리스 여행에세이라는 옷을 입은, 술술 읽히는 인문학 책이다. 그리스 고전을 독파한 저자가, 그 고전 속에 나온 지역들을 따라 인문학 여행을 나섰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그저 여행에세이 라고 치부하기에는, 내용이 깊다. 모든 챕터마다 그리스 신들이 살아숨쉬고, 그리스 고전의 향기가 난다. 


본디 그리스 고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조차도,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런 고전을 토대로 여행을 하고, 다시 책을 쓴다? 그건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해냈다. 어려운 그리스 고전과 여행에세이를 합쳤다. 그렇게 저자가 쓴 이 책 『그리스 인문 기행』은 그리스 고전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트로이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 오디세우스. 그의 귀향길은 힘겨웠다. 항해 중에 제우스의 폭풍을 만나 표류하였고, 부하들을 잃기도 하고, 괴물도 만났다. 심지어 저승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힘겨운 고난과 역경에도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야 한다는 다짐 하나로, 끊임없이 앞으로 향했다. 그러다 불멸의 존재인 칼립소를 만났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며, 그를 사로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우스는 유혹을 뿌리쳤다. 이런 오디세우스를 지켜보던 그리스 신들이, 신탁을 내렸다. 오디세우스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20일 만에 스케리아 섬에 도착하면, 그에게 명예와 재물은 물론 편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오디세우스는 신탁에 따라 20여일을 표류하였고, 결국에는 신들이 말한 스케리아 섬(현 케르키라로 추정)에 도착했다. 그 섬에서 오디세우스는 한 소녀를 만났다. 소녀의 이름은 나우시카. 이 스케리아 섬을 다스리는 알키노오스 왕의 딸이었다. 왕은 오디세우스를 사위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 역시 거부했다. 오디세우스는 표류하기 전 부터 지금까지 늘 단 한가지만 생각했다.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오디세우스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케르키라 섬이다.



고난과 역경은 신들의 뜻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그 고난을 극복하고 계속 나아가는 것은 인간 오디세우스의 의지였다.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이들 고통에 또 다른 고난이 추가되어도 상관없다’는 호메로스의 명문은 ‘불운한 일은 언제나 다른 불운과 함께 닥치기 때문에, 한 가지 불운만 온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크레타 속담과 이어진다. p 036


인간의 강한 의지는 신 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꺾을 수 없는, 그야말로 불멸이다. 드라마 《도깨비》 주인공인 지은탁도 그러지 않았는가. 하물며 오랜 기간 고난과 역경, 유혹을 견디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오디세우스는 정말, ‘의지’가 인간으로 태어난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케르키라 섬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빌미가 된 섬이기도 하다. 기원전 448년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라는 두 도시가 권력을 나눠가졌다. 두 도시는 상호 평화조약을 맺었고 잘 지켜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아테네가 케르키라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함선을 파견하면서 평화에 균열이 생겼다. 이후의 결과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27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시간을 건너 뛰어 중세로 가보자. 이번엔 케르키라 섬에 지어진 견고한 요새에 대한 이야기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세 차례나 케르키라 요새를 함락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은, 그 성채의 위엄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채는 오직 ‘선택된 자들’만을 보호했다고 한다. 성 밖에 남겨진 여성, 어린이, 노인들은 죽거나 노예로 전락했다. 성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인함만 드러낸 셈이다. p 055


오디세우스의 강한 의지가 남겨있는 케르키라 섬.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었던 케르키라 섬. 아이러니하게도 오디세우스 이후의 케르키라 섬은 그 ‘의지’가 나쁜 방면으로 작용했다. 권력을 향한 끊임없는 탐욕. 이런 인간의 질 나쁜 의지는 케르키라 섬을 전쟁으로 이끌었고, 약자들을 학살로 내몰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러했고, 오스만 제국 침공 당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쓸모없는 존재’라 치부하며 성밖으로 내보내 죽어가게 버려둔 것이 그러했다.


케르키라 섬은 알려준다.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또한 그 의지가 마냥 좋은 길로만 안내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스 고전은 흔히들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가 아니다. 아니, 반은 맞다. 다만 반이 틀릴 뿐.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 고전은, 어린이 만화에서 본 올림푸스가 고작이 아닌가. 이는 그리스 고전을 사유하기는 커녕,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조차 없다. 그렇기에 이 인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으로 하여금 그리스 고전을 어떻게 사유하는지 경험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머니즘의 세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이상화 지음 / 노마드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잊을만하면 읽게 되는 책 중 하나가 민속신앙(샤머니즘) 관련 책이다. 민속신앙은 거대 종교로 인해 많이 잊혀졌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명맥이 남아,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쳐 휩쓸려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민속신앙. 역사 속에서, 구전 설화에서, 각종 유물에서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민속신앙. 심지어 민속신앙은 인문학적 사고의 토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샤머니즘의 원형이 잘 보존된 지역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일대다. 학계에서는 시베리아의 정통 샤머니즘이 아시아 일대를 시작으로 세계 전역에 전파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전파된 샤머니즘은 각 지역 특성에 맞게 변화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종교로 발전하기도 했다. 시베리아에서 샤머니즘이 태동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류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고대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찾기 위해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이들중 일부가 시베리아로 북상했다. 그렇게 바이칼 호수에 다다랐을때, 영하 70도라는 신빙하기가 찾아왔다. 극한의 추위로 인해 더이상 이동이 어려웠던 이들은, 바이칼 호수 일대에 흩어져, 서로 무리 지어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이칼 호수 일대에는 수많은 소수민족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곳. 추위로 인한 굶주림과 질병 같은 고난이 따라왔다. 이들이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하늘에 기도를 하는 방법밖에 없던 것이다. 그렇다. 바이칼 일대에서 샤머니즘이 태동한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점은 바이칼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서로 교류가 없었기에 언어마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샤먼이 등장했다. 비단 바이칼 호수 일대 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4대 문명이 탄생했다. 각 문명들 모두 하늘신이든, 태양신이든 숭배하는 신이 있었다. 이는 여러나라에서 발견되는 고대 유물인 ‘비너스상’ 처럼 ‘문화의 보편성’의 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샤머니즘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초자연현상을 믿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나 초능력이나 초자연현상을 일으키는 신이 있으며, 살아 있는 동식물에는 정령, 죽은 자에게도 혼령이 있어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것이다. p 016


정통 종교가 탄생하고 여러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면서 샤머니즘과 결부되고 타협했다. 정통 종교도 신을 숭배하며 사후 세계를 존중하고 강조하기 때문에 샤머니즘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정통 종교의 기도와 샤머니즘의 주술, 예배의식과 샤머니즘의 의례의식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부두교와 같은 종교는 샤머니즘에서 파생됐다고 할 수 있다. p 022








여기서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TMI를 풀어보자면.


무엇보다 바이칼 호수 일대는 우리와도 어느정도 연관이 깊은 곳이다. 왜? 한국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바로 신빙하기 때 바이칼 호수에 갇혀, 극한의 추위를 이겨낸 인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북방계’ 인류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화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바이칼 호수 일대 원주민과 우리나라와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역사/문화적 증거로 한 바이칼 호수 일대 원주민과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이다. 우리나라에 세워졌던 여러 고대국가중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가 있었다. 바로 신라다. 다른 나라와 달리 신라는 황금문화(+사슴뿔모양 금관)는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확인한 결과, 고대 신라와 동일한 문화를 가졌던 곳을 찾아냈다. 바로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일대였다. 황금문화 말고 하나 더. 고대 신라인은 자작나무를 이용한 생필품을 사용했다. 남부지방인 신라에는,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인들은 바이칼 호수 원주민들처럼 자작나무 생필품을 사용했다. 이 외에도 문무대왕릉비에 기록된 신라 김씨 기원이라는 ‘투후’도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이러한 유물만으로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일대와 우리나라가 큰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샤먼의 역할과 기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신 또는 죽은 자의 영혼과 살아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중개자라고 할 수 있다. 샤먼이 인간 사회에 가장 먼저 나타났다는 시베리아, 북아시아에는 튀르크족을 비롯해서 알타이족, 야구트족, 예벤크족, 부랴트족, 몽골족 등 100여 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퉁구스어로 ‘무아지경’, ‘몰아지경’, ‘망아지경’ 상태에서 지식을 얻는 사람을 ‘사만’이라고 한다. 샤먼은 이 ‘사만’에서 유래했다. 물론 샤먼이 인도 고어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여러 견해가 있지만 퉁구스 토착어라는 견해가 가장 지배적인 학설이다. p 040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는 18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유일한 유인도가 ‘올혼 섬’이다. 한 때는 러시아 정치범 유배지이기도 했던 올혼 섬은 아주 오래전 부터 샤먼의 고향, 신들의 고향이라 불렸다. 올혼 섬에는 샤머니즘 유적이 곳곳에 있는데, 일부 유적은 우리나라 솟대와 서낭당과 비슷한 형태도 볼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샤머니즘의 기원이 바이칼 호수 일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파된 샤머니즘이 각 나라 특색에 맞게 변형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서낭당이나 솟대 역시 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올혼 섬에선 매년 7월이 되면 ‘국제샤먼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렇게 샤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대체적으로 발원지인 시베리아를 비롯한 아시아 일대 사례가 나오곤한다. 그러다보니 샤머니즘이 아시아권의 고유 민속신앙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절대로 아니다. 역시나 위에서 언급했듯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샤머니즘은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권역까지 전파되었다.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직접적으로 전파되지는 않았더라도, ‘문화의 보편성’에 따라 동 시간대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같은 여러 신앙이 나타났다. 그 중 대표적으로 켈트족 신화가 있다. 켈트족은 게르만족과 함께 유럽인의 뿌리다.








켈트족의 드루이드는 사제, 교사, 법관 등의 역할을 한꺼번에 담당했다. 그만큼 존경받는 최고의 계급이었다. 드루이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제사를 주관했고 젊은이들에게 교사로서 모든 지식을 가르쳤다. 그뿐만 아니라 갖가지 분쟁을 심판해 처벌하는 재판장이었다. 드루이드가 내세우는 삶의 철학은 ‘영혼불멸’이었다. 영혼불멸은 그들이 신봉하는 믿음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이었으며 신앙의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켈트족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의 문화는 드루이드의 구술로 계승되고 전해졌다. p 064


드루이드는 고대 유럽에서 샤먼의 역할과 기능을 했다. 온갖 질병을 고치기도 했으며, 의례/의식을 통해 죽은 자의 영혼과 소통하면서 살아있는 사람과 중개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고대 유럽의 종족들에게 샤머니즘은 절대적으로 삶을 지배하는 신앙이었으며 종교였다는 사실이다. p 066


*‘나무를 보는 사람’이라는 뜻의 드루이드. 지식을 기록하지 않고 말로만 전했기 때문에 그들의 행적이 기록된 문헌은 드물다. 기원전 2세기 무렵 그리스의 소티온이 그의 저서에 이들을 드루이다이로 표기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한마디로 샤머니즘은 시베리아, 아시아를 넘어 동시간대 유럽권역까지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교와 기독교 등 신흥종교가 나타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샤머니즘은 그 입지가 빠르게 좁아졌다. 이들 신흥종교들은 샤머니즘을 ‘미개하다’는 이유로 탄압하거나, 반대로 신흥 종교를 빠르게 전파하기 위해 샤머니즘을 ‘흡수’했다. 예컨대 기독교는 샤머니즘을 탄압했고, 불교는 샤머니즘을 흡수했다. 


샤머니즘을 흡수한 불교의 대표적인 사례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민속신들을 불교신으로 포용하여, 사찰에 그들을 위한 법당을 만들었다(칠성각, 산신각 등). 반대로 샤머니즘을 탄압한 기독교의 대표 사례는 중세시대 유행했던 ‘마녀사냥’이 있다. 대대적인 탄압으로 인해 서양에선 샤머니즘이 그 씨가 말랐지만,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10월 31일 핼러윈이다. 핼러윈은 원래 켈트족의 축제였다. 


켈트족은 10월 31일에 지하세계에 있는 저승의 문이 열려 죽은 자의 영혼과 악령이 이승으로 올라온다고 믿었다. 하여 조상들과 죽은 자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나타난 악령이 자신들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분장을 했다. 뿐만 아니라 순무를 귀신형상으로 파내어, 그 안에 초를 넣고 밝혔다. 제 아무리 샤머니즘을 탄압한 기독교일지라도, 모든 이가 참여하는 축제만큼은 없애지 못했던 것이다. 없앨수 없었기에, 그들은 핼러윈을 기독교로 흡수했다. 




여기까지! 킬링타임용으로 읽은 인문학책 치고는 꽤 내용이 풍부하여, 킬링타임이 아니게 되었..지만. 가끔 생각나면 읽을 책 리스트에 포함할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