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
박성욱 지음 / 파람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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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돌아가는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늘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를 고민한다. 파람북에서 출간된 박성욱 작가의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바로 그 고민의 출발점을 뒤흔드는 책이다. 저자는 동양고전의 지혜를 빌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고질적인 불안과 고립감의 원인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책은 우리가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단한 자기다움을 회복하여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묻는다. 소유와 경쟁 대신 공존과 상생을, 고립 대신 따뜻한 연결을 제안하는 이 책은, 쉼 없이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을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존재에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그 이름은 한결같이 지속되는 이름은 아니다. 『도덕경』 1장


한결같이 지속되는 본질은, 바라는 바가 없으면 그 묘함을 볼 수 있지만, 바라는 바가 있으면 바라는대로 보이게 된다. 『도덕경』 1장


있음과 없음이라는 것은 생겨남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어려움과 쉬움은 이루어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며, 긴 것과 짧은 것은 형태를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높음과 낮음은 기울어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며, 음악과 소리는 조화로움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앞과 뒤는 따라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다. 『도덕경』 2장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은 이름을 짓고, 기준을 정하고, 무언가를 규정하고 분류하는 일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무언가를 명확히 규정해야만 사회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생활 규범이 되었고, 신분 체계나 사회적 지위가 되기도 했다. 형태가 무엇이든 이러한 ‘개념화’와 ‘분류’ 덕분에 인류는 혼란을 줄이고 사회 질서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확실히 대상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행동의 기준을 정하는 행위는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이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주어진 이름과 기준에만 맞춰 살아가야 할까? 편리를 위해 만든 ‘이름’이라는 틀은, 역설적으로 대상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당장 나의 삶만 보아도 그렇다. 딸을 키우는 나는 사회로부터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표가 나라는 존재의 전부를 규정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 ‘ㅇㅇㅇ 매니저’라는 명함을 내미는 직장인이다. 그뿐인가. 친정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내 어머니의 ‘딸’이라는 이름표로 갈아입는다. 이처럼 상황마다 나를 지칭하는 파편적인 이름표들만으로 나의 본질을 온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름은 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그 존재의 역할을 단편적으로 고정해 버린다. 그리고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 고정관념이라는 부정적인 반대급부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극에 갇히는 순간,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할 때 우리는 이유 없는 불안감이나 죄책감마저 느끼게 된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한결같이 지속되는 이름은 없다"고 통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은 여러 이름을 동시에 지니며 다양한 역할을 하지만, 특정 이름에 갇히는 순간 그 존재의 다채로움과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진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이라는 이름표가 개인의 모든 면을 규정하고, 심지어 그 역할을 벗어날 때 불안감이나 죄책감마저 느끼게 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름에 잡혀 대상에 대한 선입관이 생기거나, 의도나 욕망이 개입되면 이름과 대상을 동일시하는 잘못이 일어날 수 있다.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인 이름 때문에, 오히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 050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 개념을 정의하고 만들어낸다. 개념화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단순화하고 구조화하는 인식의 도구인 것이다. ‘아름답다’, ‘선하다’, ‘크다’, ‘작다’와 같은 표현들 모두 존재를 이해하고 분류하기 위한 인식의 도구들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개념화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흐리고 왜곡하는 결과를 자주 보게 된다. 단순화된 그 틀이 때로는 존재의 본래 모습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개념은 분류를 낳고, 분류는 차이를 만든다. 이렇게 생긴 차이를 불필요한 평가와 차별로 일어가는 일이 쉽게 일어난다. ‘도덕경’에서는 개념과 분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 059



비단 이름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개념화’하는 일 역시 서늘한 부작용을 낳는다. 개념은 분류를 낳고, 분류는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떠한 것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이면에는 ‘추함’이 동시에 생겨난다. 어떤 행동을 ‘선하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와 반대되는 행동은 고스란히 ‘악’이 된다.



일단 사회적으로 개념이 합의되고 규정되면, "과연 그것이 진짜 아름다운가? 착한 행동이 맞나?"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는 이런 규정들은 사실 그 당대의 관념과 욕망에 의해 결정된 것들이 대다수다. 노자의 말대로 '바라는 바(의도와 욕망)'가 개입되어 세상을 보기 때문에, 본질이 왜곡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개념과 규정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곤 한다. 멀게는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재판에 대한 당대의 찬사가 후대에 이르러 가장 잔혹한 악행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가깝게는 과거의 기준에 묶여 현재 우리의 삶을 억죄고 있는 오래된 법 조항이나 규제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대에는 질서를 위한 최선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낡은 틀이 되어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을 짓누를 뿐이다.



인문학책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삶은 짓밟고 올라서는 경쟁이나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축적하는 소유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이라고 말이다.



수많은 이름표에 갇혀 세상이 나눈 이분법적 기준에 헐떡이며 '살아지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 틀을 깨고 나와 단단해진 자기다움으로 세상과 따뜻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을 살 것인가. 내 가슴에 붙은 수많은 명함과 이름표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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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과학 공부 - 볼 것 많은 요즘 어른을 위해 핵심 요약한 과학 이야기
배대웅 지음 / 웨일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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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문과 출신이다. 문/이과를 가르기 전까지 공통과학도 좋아했고 수학도 좋아했지만, 그보다 더 역사를 좋아했고, 독서를 좋아했다. 문/이과 갈림길에서 더 좋아한 문과를 선택했다. 물리나 미적분 등 골머리 쓰는 이과 과목들을 배우고 싶지 않은 이유도 한 몫했다. 시간이 흘렀다. 최근 십 여년간 취업시장에서 문과생들이 빠르게 도태되기 시작했다. 문과생들은 닥남했다. 그들은 말했다. 



“문송합니다.”



문과가 점점 위축되는 시대가 오다보니, 반발심일까? 과학을 더 멀리하고, 역사 및 문화, 철학 등 인문학을 더 가까이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도구들이 과학 발전으로 생겨난 것들인데 과학을 멀리하는게 맞는가? 아프면 병원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과학의 발달로 가능한게 아닌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질문들이 들고 일어섰다. 



거기다 요즘은 과학적 사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금이야 어려서 엄마, 아빠 말이 다 맞다고 하는 우리 상전이지만, 몇 년 뒤 커서 질문을 했을 때, 나는 과학적 사고에 입각하여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떠오른 순간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과학과 친해져야겠다고 말이다. 



물론! 바로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 과학 학문을 공부한다는 말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건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나름대로 짱구를 굴려봤다. 다름아닌 내가 좋아하는 분야로 과학에 접근하는 법! 한마디로 ‘역사’를 중심으로, 과학에 접근하는거다! 따지고보면 이런식으로 과학서적(?)을 많이 읽긴 했다. 뭐 대게 의학, 약학 관련 책이긴 했지만. 이번엔 전반적인 분야에서(?) 과학에 접근해보자 싶어서, 책을 찾아봤다.



그렇게 내 눈에 띈 과학책 『최소한의 과학공부』. 내가 원하는 느낌의 과학도서다. 다 읽고보니, 과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청소년 과학도서 추천용으로도 제격이다.



과학 발전은 정치, 사회, 경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페니실린 개발(의학), 원자폭탄 개발(화학), 아폴로 계획(우주과학)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회적 배경과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페니실린과 원자폭탄이 개발되었다. 소련과 미국 냉전체제라는 정치적 배경과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지구 너머, 달에 사람이 발자국을 찍게 되었다. 



과학사적으로 페니실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페네실린으로 거대과학 연구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페니실린 개발사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의 직업적 정체성은 다양하다. 예컨데 플레밍은 과학적 발견에 천착한 과학자였고, 히틀리는 경제 기술을 개발한 엔지니어였으며, 케인은 대량생산을 조직한 기업가였다. 이렇듯 페니실린은 정부, 기업, 재단, 대학 등을 망라하는 직단작업의 결과였다. 또한 페니실린을 계기로 과학 연구에서 국가 역할이 부각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페니실린 대량생산의 결정적 순간은 미국 정부가 화이자의 제조법을 (특허 따위는 무시하면서) 공유하고, 엄청난 자금과 자재를 지원한 데에 있었다. 이는 과학 발전이 국가 규모의 지원이 필요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함의한다. 이후 맨해튼 계획, 아폴로 계획 등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과학과 국가는 불가분의 파트너십을 맺게 되었다. p 064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모든 것을 정당화했다.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을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만들기로 한 뒤에는 약간의 가능성만 보여도 인력과 물량을 쏟아부었다. 난다 긴다 하는 과학자들도 그렇게 조건 없는 대규모 지원을 받으며 연구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계획은 단 3년 만에 성과를 냈다. 1945년 7월 뉴멕시코 앨라모고도에서 테스트에 성공했고, 한 달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방의 폭탄이 떨어졌다. 1억 총옥쇄를 외치며 결사항전을 준비 중이던 일본은 곧바로 항복했따. 3년간 총 13만명의 인력와 2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된 결과였다. 2023년 기준 330억 달러, 원으로 환산하면 약 39조 9600억 원이다. 이러한 대규모 물량과 천재적 두뇌의 조합은 맨해튼 계획의 성공,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전 세계에서 오직 ‘천조국’ 미국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p 121



요컨데 아폴로 계획은 과학이 정치, 경제의 전폭적 지원으 받으면 어떤 위업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다. 순수하게 과학 연구만의 목적만 있었다면 아폴로 계획은 시작조차 못했거나, 금방 좌초되었을 것이다.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시대적 목표가 있었기에 반대 여론과 천문학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수 있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아폴로 11호로 목표의 상당부분을 이뤘기에 더 이상 계속되기 어려웠음을 함의하기도 한다. 원래 아폴로 계획은 20호까지 계획되었으나,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17호로 끝났다. 그리고 냉전질서가 완전히 해체된 이후, 더 이상 달에 가려고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을 이유도 없어져 버렸다. p 149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많다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돈’이다. 기본적으로 연구는 돈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백날 연구만 하는 과학자들이 연구할 돈은 어디서 구하는가? 돈 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투자다. 투자자들은 아무 이유없이 지원을 하는가? 아니다. 그 기술이 돈을 벌어다준다는 확신이 있어야 투자를 한다. 특히나 페니실린/원자폭탄 개발, 달탐사 계획은 일반적인 투자가 아닌, 범국가적 투자가 필요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실패했을 경우 n년치 국정 운영예산을 날리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막대한 비용을 지원했다. 물론 이 프로젝트들을 지원 결정을 하기까지 과정은 지난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냉전체제에서의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서. 그렇게 일단 지원을 결정한 순간, 미국은 이 프로젝트에 경제적 지원, 세계 여러나라에 있는 인재 포섭, 각종 규제완화등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성공했다. ‘천조국’의 시작이다. 결과적으로 과학의 발달은 국가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학도 입문은 보통 ‘이과’를 선택하며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이과생들이 과학도의 길로 들어서는가? 아니다. 공부머리가 있는 이과생 대다수는 ‘의사’를 목표로 이과를 택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방영된 여러 대중매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실제로 난다긴다하는 이과생들의 최종 목적지 역시 의과대학이다. 심지어는 공과대학에 갔던 학생들조차도 수능을 다시 보고 의대를 가거나, 졸업후 의전원을 선택한다. 



물론 이과생 일부는 순수 과학 분야를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겠으나, 의과대학을 노리는 학생들에 비하면 그 수는 턱없이 적다. 이러한 추세는 순수 과학분야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적고, 의사들에 비해 과학도의 수입이 적은 이유가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은 어렵지 않을까(일본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스무명이 넘었다).




뢴트겐은 강직한 지식인이었다. 누가 봐도 X선의 특허는 떼돈을 벌 기회였다. 독창적 아이디어를 특허로 독점해 돈을 버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니었다. 예컨데 영국은 1623년 일찌감치 확립한 특허법 덕분에 산업혁명에서 다른 나라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뢴트겐은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X선의 특허 제안을 끝까지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랬다. “X선은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자산이어야 한다.” 카피레프트라는 용어도 없던 시절에 그 철학을 앞장서 실천한 것이다. 만약 X선의 사용권이 독점화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거대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기업들만 주로 썼을 것이다. p 050 


여담이지만, 뢴트겐의 이러한 행보는 과학도를 넘어 모든 이가 본받아야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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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스토리텔링의 재탄생
김태원 지음 / 파람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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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스토리 창작은 작가가 자신의 영혼을 깎아내어 한 세계를 구축하는 고독하고도 숭고한 작업이었다.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텅 빈 백지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인간 창의성의 상징과도 같았다.


과거 바둑계를 뒤흔들었던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AI가 그저 계산과 수치, 법률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영역에만 머물 것이라 믿었다. 기계가 인간 특유의 미묘한 감수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의 AI에게 창작을 맡기면 돌아오는 것은 조악하고 파편화된 문장들뿐이었기에, 우리는 ‘창작은 인간 고유의 성역’이라며 안심하곤 했다.


하지만 찰나와 같은 시간이 흐른 지금,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성형 AI는 이제 인간의 영감과 상상력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독자의 감정을 파고드는 정교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AI가 쓴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감행한다. 동일한 주제로 AI에게 스토리 창작을 제안하고, 1년이라는 시간차를 두어 그 진화의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저자의 치밀한 비교 끝에 현재 스토리텔링의 승기는 '클로드(Claude)'에게 돌아갔지만,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역시 매서운 추격세를 보여주었다. 이 두 모델을 제외한 다른 AI들이 아직은 창작의 보조 도구로서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저자의 기록은 AI 시대 스토리텔링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관통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사용자가 올곧게 집중해야 할 것은 ‘후크’일 뿐이다. 스토리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다듬고 내가 이 스토리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주제)과 카타르시스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놓치지 않도록 집중하라는 뜻이다. ‘플롯’에 대해서는? AI에게 시키면 된다. 시키는 것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AI가 내놓은 답(결과물)을 판단하고 수정의 지침을 주고 최종 결정을 하는 일은 오직 사용자의 몫이다. (…) AI가 해주는 일이란게, 사용자가 때로는 불필요하게 소모적으로 쏟아부어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시켜 주는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플롯’에 관한 한 사용자가 직접 하는 작업보다 생성형 AI가 조금 더 정확한 결과물을 만들어 줄 것이다. p 029


‘프롬포트’ 사용자가 AI에게 원하는 작업이나 응답을 요청하기 위해 입력하는주문(질문)이다. 프롬프트의 품질이 결과물의 품질을 크게 좌우한다. 어떤 이는 프롬프트가 구체적일수록 좋은 결과(답변)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처음부터 구체적인 프롬프트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첫 질문과 결과에 발목이 잡혀, 스토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차단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 번의 질문으로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 처음에는 다소 커다란 덩어리를 주고받은 후에, 한 걸음 더 깊고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한 결과물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p 081



"스토리 창작의 주도권은 반드시 사용자에게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게 새긴 문장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가벼운 호기심으로 AI를 마주한다. '기계가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창작을 얼마나 흉내 내겠어?'라는 의구심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AI가 쏟아내는 정교한 문장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희망과 위기를 동시에 느낀다. 창작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달콤한 희망,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창작자로서의 위기감이다. 저자는 이 혼란스러운 지점에서 창작자가 지켜야 할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준다.


창작자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핵심은 스토리의 아이디어, 즉 '후크'다.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독자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구조를 짜고 살을 붙이는 '플롯'의 영역은 과감하게 AI에게 맡겨도 좋다. AI는 사용자가 소모적으로 낭비해야 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AI가 내놓은 결과물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AI가 제안한 길 중 어느 곳으로 갈지 판단하고, 수정 지침을 내리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디렉터'의 역할은 여전히 창작자의 몫이다.



흔히 프롬프트가 구체적일수록 좋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의외의 조언을 건넨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스토리의 확장성을 가로막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정답을 맞히는 수식 계산이 아니다. 처음에는 큰 덩어리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가능성을 탐색하고, 점진적으로 깊게 파고드는 '빌드업' 과정이 필요하다. 한 번의 질문으로 완벽한 답을 얻으려는 욕심을 버릴 때, 비로소 AI와 진정한 협업이 시작된다.


창작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창작자의 스토리가 서 있어야 할 출발선은, 세상이 앓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간과 시대의 결핍에 대한 관심과 걱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핍을 위로하고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건강한 욕망을 응원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 위로와 응원이 스토리의 출발점이고, 기획의도와 주체를 구축한다. 사실 이 도전과제는 한순간에 뚝딱 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창작자는 언제나 시대를, 세상을 여행하고 탐험하는 사람이다. 그 여행/탐험의 과정에서 다양한 영혼과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지켜보고 탐구하며,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모자란 것, 비뚤어진 것, 잘못된 것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한다. p 094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출발선'이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지만, 시대의 결핍을 아파하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려는 '선의'를 가질 수는 없다. 진정한 창작물은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곳, 잘못된 것들을 성찰하는 창작자의 건강한 욕망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여행하고 탐험하며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창작자의 시선이 없다면, AI가 만든 스토리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뚜렷한 주관 없이 AI에게 끌려다니며 만든 결과물은 결코 자신의 작품이라 할 수 없다. 비록 제작 과정을 숨길 수는 있겠지만, 진정성을 고민하는 창작자라면 그 공허함에 끊임없이 후회하게 될 것이다. AI는 훌륭한 파트너이자 조언자일 뿐이다. 이 도구를 부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도구의 편리함에 매몰되어 창작자의 영혼을 잃어버릴 것인지. 그 갈림길에서 이 책 『AI시대, 스토리텔링의 재탄생』은 '인간 창작자의 존엄'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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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천하는 세계사책은 『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를 살펴본다. 이 세계사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수도’의 역사=‘나라’의 역사라는 사실을. 


수도는 이동하는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권력’의 흐름을 기준으로 써내려간다. 누가 왕이 되었는지, 왕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등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라의 수도를 결정하는 것 역시 권력을 지닌 왕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게 수도는 권력에 반응하며, 권력에 따라 이동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나라의 수도들은 대부분 왕정시대에 설정되었다. 그렇다면 왕정시대에 수도를 어떻게 결정했는가? 단순하다. 최고 권력을 가진 왕이 거처하는 궁궐 위치에 따라 정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사로 예를 들자면, 고려는 정궁이 있던 개경이 수도였고, 조선은 정궁(경복궁)이 있던 한성(현 서울)이 수도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프랑스 수도는 파리지만, 역대 프랑스 왕들은 거처를 수시로 이동했다. 좋은 말로 하면 권력 분산을 막기위한 전국 순회라고 하겠다. 반대로 순회하지 않고 정착한 프랑스 왕 루이16세때는 어땠을까? 물론 수도는 파리였다. 하지만 루이16세는 안전을 이유로 파리가 아닌, 베르사유 궁에 정착했다. 결과적으로 오랜시간 프랑스 파리는 ‘왕이 없는 수도’ 였다.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도시 ‘수도’



한국은 서울, 일본은 도쿄, 프랑스는 파리 등 보통 수도는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핵심도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간혹 수도로 오인받을 정도로 유명한 핵심도시가 여럿 있는 나라도 있다. 예컨데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지만, 어떤 사람들은 뉴욕을 미국의 수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여, 이 책 저자는 수도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중핵 수도: 역사적으로 불변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심도시이자 핵심도시다. 로마, 파리, 런던 등이 해당된다.


-신중핵 수도: 중핵 수도가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새로운 도시가 급부상하며 수도 자리를 꿰찬 경우다. 인도의 뉴델리가 대표적이다. 인도가 영국령이었을 무렵 수도는 콜카타였다. 영국은 인도를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 델리로 수도를 옮겼으나, 영 마뜩치가 않아서 델리 외곽에 신도시를 지어 수도로 삼았으니 바로 뉴델리다. 


-이중핵 수도: 한 나라에 수도를 차지하기 위해 경합을 벌였던 두 개의 도시가 있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일본을 양끌이하는 도쿄와 교토, 러시아를 양끌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가 있다.


-다중핵 수도: 한 나라에 수도와 맞먹는 핵심도시가 다수인 경우다. 독일은 긴 역사동안 여러 도시들이 돌아가며 수도가 되며 많은 핵심도시가 생겼다. 스위스도 수도 베른을 포함하여 취리히, 제네바 같은 여러 중핵도시들이 있다. 




이 책이 두께가 얇은 편은 아니라, 선뜻 읽기를 주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달라진다. 원하는 내용만 골라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통 세계사책은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다보니 중간만 골라서 읽기가 어렵지만, 이 책은 아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시간대 순서로 구성되지 않았다. 대륙별로, 나라별로 구성되어있다. 언제든 원하는 나라 이야기만 골라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번외로 실린 한국의 수도 서울 이야기까지. 가볍게 읽을만한 세계사책 입문서로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TMI이긴 한데, 번외편 한국의 수도 서울 이야기에 내 눈에 확 들어온 소제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수도를 버리고 떠난 군주’ 이야기.


저자는 수도를 버리고 떠난 군주 두 명을 이야기한다. 선조와 인조.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을 버렸고, 약 30여년 뒤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한양을 버렸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대 명제를 불과 30여년반에 증명한 것이다.  할아버지 선조와 손자 인조. 그들은 수도만 버린게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백성까지 버렸다. 


저자는 두 명을 거론했지만, 사실 조선에서 수도를 버린 군주는 한 명 더있다. 바로 고종이다. 혹자는 ‘고종이 한양을 떠난 적이 있었나?’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을 떠난적이 없었다. 다만, 한약에 위치한 러시아 관할 건물로 떠났을뿐이다. 아관파천이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이야기해보면, 고종은 아관파천을 비롯하여 미관파천, 영관파천까지 7회에 걸쳐서 타국가 관할 건물로 도망갔다. 그가 파천을 감행했던건 단 하나였다. 자신의 안전과 권력 유지를 위해. 


역사의 반복이 조선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왕정시대가 종식되고 공화정시대에 이르러서도 수도를 버린 나라의 대표가 다시 나타났다. 언제? 한국전쟁 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선조, 인조, 고종보다 더했다. 겉으로는 수도 서울은 안전하니 서울을 지키라고 방송을하고, 본인은 몰래 부산으로 도망갔다. 그 뿐인가, 혹시나 자기 안전에 위협이 될까봐 한강철교를 폭파하여 자국민을 한강에 수장시켰다.



TMI는...여기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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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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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보이지않는 계급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에 좌절감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인문학책 『인간명품』을 추천한다. 이 책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통해서, 명품을 온몸에 치렁치렁 두르며 무늬만 명품인 사람들이 아닌, 명품이 없어도 충분히 사람 자체로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캐네디의 부인이자 당대 미국인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다. ‘올드머니룩’의 원조이자, 타고난 교양과 품격 그리고 풍부한 지식와 특유의 재치를 바탕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바꾼 사람이다. 그야말로 대체불가능한 여성이었다. 콧대높은 프랑스조차도 고개를 숙였던, 말그대로 걸어다니는 명품, ‘인간명품’이었던 그녀의 품격은 어디서 온 것인가. 


-재클린 사회학: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거듭다는 것


-상속자 정신: 부모로부터만 오는 상속이 아닌, 부모를 뛰어넘어 사회로부터 받는 더 큰 상속


어느시대나 계급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21세기, 신분을 나누는 계급은 없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하게 계급을 나눈다. 옛날처럼 귀족과 양민을 뚜렷하게 가르던 계급사회도 아닌데 어떤 방식으로 계급을 나눌 수 있을까? 



집으로 나누는 계급을 보자. 넓게 보면 일반적인 국민평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간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 좁게 들어가면, 같은 국민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음에도 브랜드 아파트이냐 임대 아파트인지에 대한 차이가 또 다른 계급을 나눈다. 회사는 어떠한가? 공채를 뚫고 사원급으로 입사한 사람과, 오너일가의 한 사람으로 관리자로써 입사한 사람. 그들간에도 보이지않는 계급이 있다. 시작점이 다르기에, 그 끝도 다르다. 어른들 세계만 계급이 있을까? 아니다. 학교 내에도 계급이 있다. 고소득 직종에 종사한 부모를 둔 아이와,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직종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간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



재클린 케네디 오아시스가 살았던 시대에도 계급이 있었다. 혹자들은 그녀 역시 태생부터 상류층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상류층 교육을 받으며 자라지 않았느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녀의 유년시절 삶은 그렇게 풍족하지 않았으며, 가정사 역시 복잡했다. 21세기인 지금도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 어떤집에 사느냐에 따라 아이들끼리도 계급이 갈리는 시대인데, 당대는 어떠했겠는가. 더군다나 이혼이 흠이 되던 시대이기도 했다. 특히나 상류층이라면 더더욱. 그런 시대에 재클린의 부모는 이혼했고, 재클린을 향한 모친의 핍박은 숨쉬듯 늘 있는 일이었다. 유년시절 그녀의 성장과정만 봤을 때, 세상이 알고있는 재클린과는 괴리감이 있을 정도다. 



내편 하나 없는 그런 환경에서 그녀가 택한 길은 독서였다.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여자가 책을 가까이 한다는 사실은, 여자는 지성이 아닌 ‘미’를 가꾸고, 귀족 남자와 결혼을 해야한다는 당대 가치관에 대놓고 반기를 든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선택은 집안, 학교, 친구들 내에서 절대 인정받지 못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독서’를 택했고, 그 안에서 진정한 ‘상속자 정신’을 깨우친다.




상속자 정신의 시작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배경, 재능, 노력 등)이 내게 속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누군가에게 전해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겸손해지고 겸손해지는 순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상속자 정신을 되새기게 된다.



물질적인 상속과는 다르다. 재산, 경영권 승계 등 물질적인 상속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통제가 뒤따른다.  그 통제는 인생의 자율권을 막는다. 또한 특권의식에 젖어, 자신이 상속받은 것은 당연한 것인냥 받아들이며 ‘겸손’이라는 가치관에서 멀어진다. 



자기 스스로 정한 것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면 인생의 자율권 승계는 안 한 겁니다. 재클린의 자신감은 상속자 정신의 비밀, 즉 인생의 자율권 승계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p 051


재클린은 좌절을 힘들고 불행한 일로 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작은 성공으로 보았죠. 작은 성공들이 쌓여 큰 성공으로 이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좌절된 꿈 위에 새로운 꿈을 얹었죠. 더불어 평생 발레를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발레리나가 될 수 없다면, 무대를 만드는 일에라도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어쩌면 발레복이나 무대의상을 디자인하는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했어요. 그 꿈을 실현할 방법을 고안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리고 발레 관련 책을 수집해 자기 방 벽 한 면을 채웠어요. p 074


모든 꿈은 계층 상승의 꿈이라 할 수 있죠. 물론 계층 상승이란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보다 나은 상태를 추구하려는 욕망이라고 풀이할 수 있어요. 바로 ‘향상심’이죠. 이는 상속자 정신의 근저에 흐르고 있습니다. 재클린은 자신과 케네디가 “평생 안주하지 않고 높게, 더 높게 오르려고 끝없이 노력했다”고 단언했으니까요. p 079


가짜 상속자는 자신이 물려받은 것을 타인과 함께 성장시키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외모와 사회적 배경이 좋다 하더라도 가짜 상속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왕관의 무게일 뿐이죠. 그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즉흥적이고 무책임합니다. p 086


그렇게 깨우친 상속자 정신은, 물질적인 가짜 상속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가짜 상속자들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인해 인생의 자율권이 제한된다. 심지어는 자신의 자율성이 제한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치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 뿐인가. 넘쳐나는 재산만을 믿고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니, 무책임해지고, 종국에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할 ‘겸손’, ‘배려’, ‘존중’ 같은 가치관을 모르는 삶을 살게 된다. 



예컨데 물질적인 재산만을 쫓으며 최고의 권력자 부인이라는 자리에 심취하여 부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불리고, 매관매직을 하면서도 자신이 행한 일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전직 영부인이었던 김건희 처럼. 이게 바로 같은 영부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명품으로 추앙받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와 범죄자로 전락한 김건희의 차이다.


모르는 척하기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것과 달라요. 자신이 알아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죠. 성공한 삶이란 내 인생에 집중할 것들에 대해 알아 가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 겁니다. 재클린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자신의 인생에 허용했어요. 원하지 않는 것은 무시해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p 096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운명은 이미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고 믿어요. 이런 제한된 믿음은 주어진 상황과 계급에 순응하는 태도를 키우죠. 그리고 쉽게 ‘글쎄, 난 선택의 여지가 없어’ 또는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다’라고 생각하며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없애버려요. 그러나 역사와 독서는 운명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풍부한 사례집이죠. 우리는 선물상자에서 사탕을 고르듯 삶을 창조하기 위해 그 선택지를 늘릴 수 있어요. p167


보이지 않은 계급이 숨쉬는 21세기, 시작조차 못하고 포기부터 배우는 20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눈 앞에 나타날 수도 있었던 일말의 가능성조차 포기하는 건, 미래의 본인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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