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사전 -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사물들의 이야기
홍성윤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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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목부터 아주 획기적이고 기똥찬 인문학책 한 권을 읽었다. 진짜 뭐랄까, 몰라도 삶에 지장은 없지만 알면 어쩌다 한번 쯤 “난 이런 것도 알고 있어! 알려줄까?” 하고 으스댈 수있는 류의 인문학책이랄까? 진짜 말그대로 ‘알쓸신잡’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인문학책이다. 제목부터 정말 기똥찬 이 책 제목은 『그거 사전』.



“너 그거 알아?”



할 때 바로 ‘그거’다. 진짜 ‘그거’!!!! 뭔지는 알겠는데, 이름이 딱 떠오르지 않는, 내 삶에서 무수히 마주친 그것들. 저자는 그것들을 한데모아 책으로 엮었다. 



나도 꽤 잡학지식이 많은 편이라, 사람들이 말하는 ‘그거’ 이름을 꽤 아는 편이다. 예컨데 피자세이버 같은거. 근데 와 ㅋㅋㅋ 이 책을 읽고보니 최소 반 이상의 그것들 이름을 모르고 있었네..? 심지어 그것들 이름도 이름인데, 비하인드 스토리 왜이렇게 재미있는지! 



특히 소주 병뚜껑 꼬투리 그거! 아래에 내용에 자세히 적긴 했지만, 와. 소주 병뚜껑 제조업이 국세청 지정 독과점 사업이라는거에 일차 충격. 전직 국세청 간부들이 현직 병뚜껑 업체 간부로 자리를 옮겨간다는 사실에 이차 충격. 그놈의 채용비리는 정말. 없는 곳이 없구나? 




1. 과일이 손상되지 않도록 감싸는 그거 

팬캡, 과일망이다.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완충 포장재의 일종으로, 외부 충격으로부터 과일을 보호한다. 과일 일부 혹은 전체를 보호하는 그물 모양 포장재는 과일망(그물망)이라고 하고, 과일 밑부분을 감싸는 형태의 꽃받침 모양 포장재는 팬캡이라고 부른다. 팬캡이나 과일망 외에 종이 혹은 플라스틱 판에 과일이 흔들리지 않도록 여려 개의 반구 모양으로 틀을 잡은 ‘그거’는 난좌다. 바닥 완충재, 트레이라고도 한다.p 027


과일 포장재는 재활용 난도를 확 끌어올리는 ‘킬러 문항’ 쓰레기다. 팬캡과 과일망은 촉감부터 물성까지 스티로폼 같지만 실은 발포 폴리에틸렌으로, 다른 재질이다. 환경부 자원순한정책과와 한국폐기물협회에서는 재활용 가치가 낮고 수거가 어려운 팬캡과 과일망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하는 것을 권장한다. p 027



죄송합니다. 지금껏 과일 포장재 스티로폼 재활용에 버렸습니다. 반성합니다. 근데 진짜 몰랐습니다. 하...아니! 이런건 과일 포장상자에 재활용 여부 로고 박아주면 안되나? 다른 제품포장지들은 죄다 재활용 여부 로고를 박아주면서, 이런것들은 왜 안해줄까.




2.열지 않고 마실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컵 뚜껑 그거

커피 리드다. 커피 전문점에서 테이크아웃 컵에 음료를 받으면 플라스틱 뚜껑이 함께 딸려온다. 점원이 깜빡했다면 “컵뚜껑 주세요”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정확한 명칭은 커피 리드다. 트래블러 리드, 드링킹 리드, 돔 리드라고도 부른다. 리드가 ‘뚜껑’을 뜻하는 단어이므로 컵 뚜껑이라고 지칭해도 문제는 없다. p 101


커피 리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음료가 나오는 구멍 반대편에 작은 구멍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공기 유입구다. 이 작은 구멍이 없으면 음료가 차지하던 공간을 대체할 공기가 제대로 유입되지 않아 액체의 흐름이 방해받는다. 그 과정에서 뜨거운 음료가 갑자기 쏟아지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공기 유입구는 음료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배출해 커피 리드가 고온에 오래 노출돼 변형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p 102


테이크아웃 컵 뚜껑 이름은 커피 리드! 근데 이건 좀 봐줘야 한다. 리드가 뚜껑이잖아? 커피 리드라고 부르나, 컵 뚜껑이라고 부르나 도긴개긴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커피 리드 구멍막는 그거, ‘스플래시 스틱’ 은 오우 완전 처음 듣는 이름이라 신기방기 그자체!



3. 소주 병뚜껑에 꼬리처럼 달린 그거

스커트다. 국내 제조현장에서는 간단히 링이라고 부른다. 공식 명칭이 낯설다 보니 주류 업체 홈페이지나 SNS계정에서는 ‘병뚜껑 꼬리’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스크루 형태의 뚜껑을 비틀어 열면 밑부분만 뜯어지는데 이 스커트 상태에 따라 개봉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개봉 확인 밴드라고도 한다. 소주병 뚜껑처럼 알루미늄을 재료로 하는 병바개는 ROPP 캡이라고 한다. 스크루 캡이라고도 부르는 ROPP 캡은 녹이 슬지 않고, 별다른 도구 없이 손으로 개봉할 수 있다보니 널리 활용된다. 페트병 뚜껑으로는 위조 방지 스커트가 달린 플라스틱 PP캡이 주로 쓰인다. p 108


국세청 입장에서는 술 병뚜껑은 실제로 중요한 영수증이다. 소주와 맥주 뚜껑에 인쇄된 ‘납세필’이라는 글자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병뚜껑을 통한 납세 증명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4년부터는 1만 킬로리터 이상 출고하는 막걸리(탁주)에도 증지 부착을 의무화했다. 덕분에 소자와 맥주 병뚜껑의 세법상 이름은 ‘납세병마개’가 되었다. 납세병마개는 ‘40년간 밀봉된’ 권력이기도 한다. 주류세 납부의 영수증인 만큼 국세청이 병마개 제조 업체를 별도로 지정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p 109



와, 진짜 이 책 『그거 사전』 읽으면서 제일 큰 충격을 받은 구간이다. 소주 병뚜껑 자체가 납세 영수증이라는 사실도 신기한데, 이 납세 병뚜껑 제조업을 국세청에서 지정 관리하고 있다니. 심지어 40년이 넘도록 계속!!!! 국세청 관할하에 있는 대놓고!!! 독과점!!! 심지어 병뚜껑 제조업체 요직에 전직 국세청 고위관직자들을 두루두루 앉혀놓았다고. 하 정말 이렇게 짜고치는 고스톱, 민망하지도 않나? 국민들이 모르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하는건가. 하 정말!!!!!!!!!!!!! 



여기서 주목! 소주, 맥주 금속 병마개 제조업체는 지금까지 단 두 곳^^! 40년 넘은 시간동안 돈을 얼마나 쓸어담았을까...



4. 두루마리 화장지 다 쓰면 나오는 종이 심 그거

지관이다. 종이로 만든 원통형의 심을 뜻한다. 흔히 휴지심이라고 하지만 제조 현장에서 쓰이는 공식 명칭은 지관이다. 한뼘도 안되는 짧은 심을 왜 ‘관’이라고 부를까. 두루마리 화장지의 제조과정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먼저 대형 화장지 원지를 풀어 무늬를 인쇄하고 오돌토돌한 엠보싱 패턴을 입힌다. 그러고 나면 화장지를 긴 지관에 일정한 길이로 감고 똑같은 길이로 끊어낸다. 김밥을 만드는 과정과 똑 닮았다. 사실 지관이라는 단어는 없다. 땅속에 파묻은 관을 뜻하는 지관, 골무를 뜻하는 지관, 불교에서 천태종을 다르게 부르는 지관은 표준국어 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만 두루마리 화장지의 심을 뜻하는 지관은 없다. 다만 한자 생활권인 한국에서 ‘종이로 만든 관’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오랫동안 쓰이면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p 199


미국의 사업가 조지프 가예티는 1857년 최초의 사용 휴지를 발명했다. 이 휴지는 알로에가 함유된 마닐라삼 재질로, 낱장 500장을 상자에 담은 현재의 갑 티슈와 비슷한 형태였다. 목적은 치질을 예방하는 치료용 제품이었다. 가예티는 발명품이 자랑스러웠는지 한 장 한 장마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덕분에 가예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엉덩이를 닦아준 영예로운 이름이 됐다. p 200


뉴욕주의 소도시 올버니 태생의 세스 휠러는 휴지가 쉽게 끊어지도록 돕는 절취선을 넣고, 지관을 중심으로 둥글게 말린 형태의 화장지를 발명한 두루마리 휴지의 아버지다. 하지만 당시 대중은 ‘뒤처리’를 창피하게 여겼던지라 지금처럼 생필품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꽤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p 201



화장지. 그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소모품이지만 알고보면 인생에서 절대 없으면 안될, 아주 중요한!!!! 제품이다. 그런 화장지 역사를 이제서야 알게되다니. 허허허. 아 물론 몰라도 사는데 전혀 지장없는 그런 내용이긴하다. 하하하.




5. 전자제품이나 문구의 뜯기 어려운 포장 그거 

블리스터 포장이다. 가열한 플라스틱 시트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여 금형에 밀착시키고 두꺼운 판지나 알루미늄 포일, 플라스틱 시트 등을 부착해 밀봉하는 포장 방법이다. p 241


문제는 이 재료들의 강도가 무척 높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해 이를 고열로 녹여서 열접착 방식을오 밀봉하면 손아귀 힘만으로 뜯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겨우 뜯어내도 날카로운 단면에 다치기 일쑤다. 가위나 칼을 이용해 뜯다가 다치거나 제품이 손상되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악마의 포장’이라는 세간의 비난이 과하지 않다. 하지만 블리스터 포장은 튼튼하고 저렴하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로 진행돼 생산성도 높다. 금형을 만드는 비용과 시간, 품이 적게 들어 다품종 생산에 적합핟. 다른 포장방식에 비해 부피도 작은 편이라 물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투명한 플라스틱 안으로 제품이 한 눈에 보여 판촉에 유리하다. 뜯기 어렵다는 단점마저 ‘도난이 어렵다’, ‘재포장으로 인한 내용물의 변경, 위조가 어렵다’는 장점으로 치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단순 변심으로 인한 환불을 방지하는 효과도 탁월하다. p 242


블리스터 포장 때문에 태어난 영어표현도 있다. 바로 ‘wraprage(포장 분노)’다. 포장, 그 중에서도 블리스터 포장을 뜯지 못해 분노와 좌절이 극도로 치솟는 상황을 뜻한다. 2003년 영국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이 용어는 언어학 교수와 작가 등으로 구성된 미국방언학회에서 2007년 가장 유용한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p 243



그렇구나. 3n년 동안 많은 소비를 하며, 포장지를 뜯을 때마다 피를 봤던 최악의 그 포장, 하지만 흔하디 흔한 그 포장법 이름이 바로 블리스터 포장이구나. 이제서야 이름을 알게되다니 감회가 새롭......기는 개뿔! 



소비자중심경영(CCM)이 요즘 시대 최고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왜 저 포장법 만큼은 변하지 않는가 했는데! 이 책 덕분에 앞으로도 블리스터 포장은 계속될 거라는 확신만 얻게 되었다. 후, 어쩌겠나. 자동화에 비용절감에, 부피도 작은데다가 심지어 도난, 위조방지가 된다는데! 어떤 공급자가 이렇게 좋은 포장방법을 포기할까. 그냥 내가 저런 포장을 뜯을때 안전장갑 끼고, 가위로 조심스럽게 뜯어내야지^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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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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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여러국가가 등장한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소련이다. 소련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1922년에 세워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준말이다. 러시아 영토를 비롯하여 북유럽, 중앙아시아 내부까지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던 인류사 최초 공산주의 연방국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을 장악한 히틀러 조차 막아냈던 나라가 소련이었다. 이렇게 보면 소련이라는 나라가 우리 근현대사와 무슨 연관이 있나 싶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상기해보자. 



1945년 해방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은 미군이 통치했다. 북한은 어땠을까? 바로 소련이 통치했다. 무엇보다 소련은 냉전 시절 공산주의 종주국이기도 했다. 지금에야 공산주의 종주국을 중국이라 생각하지만, 중국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만해도 공산주의 종주국은 거대한 영토를 가진 소련이었다. 그런 소련이 1991년에 붕괴되었다. 12월 25일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 사임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소련 붕괴를 세계사적 흐름에 따른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다. ‘제국’이라는 정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제국’을 표방한 소련은 붕괴될 수 밖에 없었다고. ‘제국’에 반발한 연방국가들의 민족주의적 독립 열망도 거기에 더했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고르바초프라는 위대한 인물이 소련에 민주주의 라는 대의를 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고 미국 역사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말했다. 



그렇게 소련 붕괴는 당연한 역사적 흐름이며, 대의를 위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위대한 희생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혔다. 많은 학생들이 교과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배웠다. 정말일까? 소련은 역사적인 흐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붕괴된 것이며, 고르바초프는 소련에 민주주의 씨앗을 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위대한 영웅인걸까? 이 세계사책 『소련 붕괴의 순간』 저자는 그런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인정받는 고르바초프의 공인 전기를 쓴 미국 작가 윌리엄 타우브먼은 “고르바초프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타우브먼은 고르바초프가 러시아를 변화시키려고 했으며,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지만 새로운 국가, 사회, 경제를 건설하는 데는 당연히 실패한 유례없는 “비극적 영웅”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p 041



미국과 서방에서 가르친 고르바초프와 실제 책 속에 비친 고르바초프는 극과 극을 달린다. 개인적으론 책 속에 보여지는 고르바로프가 사실에 가까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고르바초프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이 만들어난 환영이다. 오롯이 소련 붕괴를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눈으로 만들어낸 환영인 것이다. 고르바쵸프의 헛발질이 소련에 암울한 미래를 가져다주든 말든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관심없었다. 심지어 고르바초프가 소련에 민주주의를 일으키고자 미국의 도움을 원했음에도, 미국은 그저 관망했다. 미국 입장에선 ‘이념’에 따라 공산주의는 사라져야했으며, 따라서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미국은 소련을 해체한 고르바초프를 위대한 영웅이라 일컫고,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저자는 이 책 『소련 붕괴의 시간』을 쓰기에 앞서 무려 30여년간 자료를 모았다. 출처 미국, 러시아 문서고 등 정부기관에서 확인한 각종 보고서를 포함해서 과거 KGB 및 MIC 요원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 인터뷰를 망라했다. 



신레닌주의적 웅변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집권하고 첫 2년 동안 어떤 개혁 전략을 취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 놀랍게도 안드로포프가 소련의 거시 경제 안정성에 관해 제기했던 시급한 문제는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식량 수입을 줄이고, 무역수지 군형을 회복하고, 그림자 경제를 강력히 단속하고, 노동력을 규율할 필요성 말이다. 고르파초프의 작성문은 소련 경제를 괴롭히는 경제적, 재정적 문제점에 대한 진단은 담지 않았다. p 044



예측에 따르면 5년 내로 소련 경제는 재편되어 국내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고 해외로 수출할 만한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과거에, 소련의 현대화 시도는 서방의 회사를 끌어들여 신규공장을 지었던 1930년대나 1960년대에 최상의 성과를 낳았다. 신규 기업에는 새로 훈련받은 기술자와 노동자가 필요했는데, 그들은 싫든 좋든 외국의 관행과 표준을 따랐다. 이는 경쟁과 여타 시장 추진 요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후한 공정과 화석화된 작업 관행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1986년 고르바초프의 조치는 기존 국영기업의 장비 교체에 돈을 투자했다. 대규모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이었다. 오래된 공장의 경영자와 노동자는 보수적으로 행동하며 혁신에 저항했다. 값비싼 서구 장비는 대부분 구공장과 시설에서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p 047



고르바초프는 레닌을 영웅시하며, 소련을 구할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눈 앞에 보이는 소련의 문제점들을 급진적인 방법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가 끌고가야 했던 소련은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위기에 직면한, 깊숙한 곳까지 뿌리박힌 문제점들을 개혁을 하지않으면 자멸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는 점이다. 누가봐도 시급하게 개혁을 진행해야 했다. 소련의 불행은 그 개혁을 진행할 사람이 고르바초프였다는 점이다. 그는 그야말로 탁상머리 행정가의 표본이었다.



진짜 어둠은 겪어보지 못했으나, 글로써 어둠을 배웠으며, 글로 배운 어둠을 급진적으로 개혁하고자 한 이상주의자 그게 바로 고르바초프였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그의 이상에는 ‘현실(또는 현장)’이 없었다. 그의 이상은 책상위, 책 속에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선호한 정책, 인텔리겐치아를 달래고 공화국의 지배 엘리트에게 책임을 이양하는 정책은 더 나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는 발트 지역과 남캅카스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핵심 슬라브 공화국들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리주의를 가능케하고 정당화했다. (…) 1988년 후반, 고르바초프의 부관들 일부는 세금과 재정을 중앙이 통제하는 단일국가, 최소한 강력한 대통령을 둔 연방을 헌법상으로 긍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 대신, 고르바초프는 눈에 뻔히 보이는 유고슬라비아의 나쁜 사례에도 불구하고 ‘더 강한 공화국들’이라는 치명적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그는 인민대표대회와 최고소비에트같이 대의제 기구지만 다루기 힘들고 통치 능력이 없는 기관의 권한을 강화했다. (…) 당 독재를 대체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은 해방과 자유화를 의미했지만, 견제와 균형을 제공하지 않고 특히 러시아연방에서 악성 포퓰리즘과 민족 분리주의로 가는 관문도 열었다. 유사한 참사가 경제에도 일어났다. p 389



물론 그가 소련을 이끌고 나가는 동안, 무능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그 기회들을 스스로 날려버렸다. 그렇게 무능한 이상주의자가 이끌던 소련은 끝내 회생이 불가능했다. 그의 무능함은 소련에 잘못된 개혁방안, 연방국가들의 민족주의적 독립열망, 포퓰리즘, 발트 3국의 독립투쟁, 막대한 부채, 권위주의, 사회보장제도 파괴, 대규모 탈산업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련은 붕괴했다. 



연방은 해체되었고, 연방의 중심이었던 러시아는 살아남아야 했다. 온갖 오물을 유산으로 떠안은 러시아가 살아남는 방법은, 놀랍게도 소련 시절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는 길이었다. 그렇기 소련 시절 유산을 물려받은 러시아는 혼란기를 지났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소련의 잔재를 밟고 선 러시아의 현재는 어떠한가. 뭐, 남의 나라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 세계사책 『소련 붕괴의 순간』을 읽다보면,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나온다. 분명 내가 살던 나라도 아니고, 내 조상들이 살던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책 전문가, 관련분야 정치가들은 전부 배제한 채 측근 엘리트, 검사들만 기용하던 대통령. 현실에 눈 돌린채, 자기만의 이상을 펼치려던 대통령. 줄곧 잘못된 정책을 펼치며 자신의 무능함을 자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보이던 대통령. 그 결과, 대한민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곳이 파괴되었다. 그다마 다행인 점은 대한민국은 소련과 달리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고, 정당한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파괴가 되었어도, 어찌저찌 삐걱대며 돌아는 가고 있다. 문제는 이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



언제쯤 대한민국에 진짜 “봄”이 올까.

우리 딸 만큼은 진짜 “봄 날”을 살게 하고 싶은, 간절한 엄마의 소망을 하늘이 들어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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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일주 가이드북 - 도로 따라 펼쳐지는 대한민국 여행지 1300, 2025~2026 전면 개정판
유철상 외 지음 / 상상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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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국내여행책의 바이블! 『전국일주 가이드북』 개정판이 나왔다~♪ 여행러들이여 풍악을 울려라~♬ 


출산, 육아를 기점으로 전생과 현생을 나눈다면, 내 전생은 휴일의 8할은 여행을 다니는 여행러였다. 역사더쿠다보니 전국에 흩어진 유적지 답사를 즐겨했고, 답사만 하고 돌아오기엔 너무 아까우니 최소 1박 이상을 체류하게 되었고, 1박이상 체류하다보니 그 도시 전체를 훑기 시작했고, 훑다보니 자연스레 인접 도시로 넘어가게되었고, 그렇게 또 2박을 하게되는 아주 바람직한 선순환!!!! 그렇게 난 오랜기간 여행러로 살았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도권과 충청도를 먼저 돌고, 친척이 산다는 이점을 이용해 전라권(남해안 제외)을 돌고, 비수기 때마다 강원도 뿌시고, 가끔 테마 잡아서 경북도 돌고. 이제 남은 지역이라곤 집에서 제일 먼 경상/전라 남해안권(가야문화권)!!! 만 돌면 진짜로 전국일주 재패가 코 앞이었다. 하지만 후후후후. 출산, 육아를 기점으로 내 전생은 전국일주 실패!!!! 하 아쉬버라!


그렇게 한동안 여행암흑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언제나 암흑기일 수는 없는 법!!! 드디어 여행의 날개를 활짝 필 수 있는 시기가 돌아왔다. 전생처럼 휴일의 8할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 왜? 이제 우리 상전이 좀 컸으니까! 이제 휴일에 안나가면, 진심 더 힘드니까..!!


고로 이제는 상전과 함께 하는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여행 경력이 많은 나라지만, 그땐 어디까지나 아이가 없을 때였고. 아이가 있을 땐 또 다르니. 무엇보다 여행지 선택하는 기준 자체도 달라졌고.



이 여행책 『전국일주 가이드북』이 주는 여행정보는 고속도로 기준이다. 따라서 차량이 없는 뚜벅이에겐 조금 불친절 여행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마음만 먹으면 렌트카 이용해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자차 없이는 여행이 어려운 지역이 많다. 고로 국내 여행은 차량이 필수!!


본격적인 여행정보에 들어가기에 앞서, 워밍업이다. ‘사계절 드라이브 코스’, ‘바닷길‘, ‘꽃놀이 여행지’, ‘지역별 맛집 정보’, ‘국내 세계문화유산’, ‘아이와 함께가는 여행지’ 등 많은 사람들이 여행 테마로 잡는 기본 정보들이 예비 여행객들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련 여행테마들은 분명 각기 다른 테마지만, 잘 분석하면 한번에 묶어서 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1. 봄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 ‘충복 제천 청풍호반’. 봄 벚꽃놀이 여행지인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는 청풍호반을 끼고 있는 여행지다. 


2. 여름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 ‘영광 백수해안도로’. 여기는 가을에 불갑사와 묶어서 가면 좋다. 왜? 불갑사는 가을에 피는 꽃무릇 명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닷길은 계절 상관없이, 언제달려도 절경이 펼쳐져있지않나!


3. 가을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 ‘강릉 헌화로’. ‘바닷길’ 여행지인 정동진이 바로 헌화로에 위치해있다. 헌화로는 흔히들 7번 국도라 부르는 도로의 한 구간인데,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7번 국도가 정말 알짜배기 드라이브 코스다.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어지는, 동해안을 끼고 있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하여 가을뿐 아니라, 계절 무관하게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달려도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진다. 팁이 있다면, 여름은 피하라는 것. 동해안은 제일 인기많은 여름휴가 여행지이다보니, 여름에 7번 국도를 달리면... 달리는게 아니라 기어가게 될 것이다.



▶ 천혜의 아름다움_ 15번 서해안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경부고속도로 다음으로 긴 고속도로다. 1980년부터 서해안고속도로의 건설은 논의되었지만 구체화된 것은 1987년부터다. 서해안 지역의 자원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이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태안, 서산, 변산반도 등 아름다운 풍경을 조금 더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태안 부근을 서울에서 2시간 안팎이면 갈 수 있게 되어 신년이나 연말이면 낙조나 일출, 일몰 등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찾는다. p 264



요번엔 조만간 내가 상전과 떠날 여행지를 미리 알아보는 시간이다. 조만간 내 외가집(영광)도 들를겸, 전남 고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당연히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여행이다. 전생에 제일 즐겨갔던 여행지가, 서해안 고속도로 상에 위치한 지역들이다보니, 이쪽은 그냥 아주 내 손마닥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명/시흥/안산/화성/평택→당진/예산→태안/서산→홍성→청양/보령/부여→서천→군산/익산→김제→부안→고창→영광→함평→무안→목포



위 지역들이 서해안 고속도로 상에서 지나가는, 또는 인접한 여행지다(서울은 당연히 제꼈다). 이야 전생에 다가봤어!!! 근데 이제 리셋되었으니, 현생에서 다시 다 가봐야할 지역들이기도 하다. 아! 그러고보니 당진은 제작년에 아이와 함께 갔었으니, 여긴 건너뛰어도 될것 같다. 정말 다 가본 곳이기에 우리 상전 성향을 고려한 여행지를 바로 추리기 쌉가능이다. 



1. 서천 해양생태박물관, 장항 스카이워크, 동백나무숲(바다, 물고기, 꽃)

2. 태안 천리포수목원(바다, 꽃)

3. 보령 상화원, 대천해수욕장(바다)

4. 고창 상하목장(상하목장 두말하면 입아픔!!)

5. 영광 마라난타사, 백수해안도로(바다)

6. 군산 고군산군도(바다)


아.........? 그냥 바닷가만 가면 되는구나.. 그렇네. 바닷가만 가면되네? 지역을 따질 필요가 없었네? 그냥 외가친척들 사는 지역 바닷가만 들르면 될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하하하. 엄마가 좋아하는 역사여행, 사찰여행은 앞으로 한 10년은 더 지나야 가능할 것 같으니, 패스!!!



대충 이렇게 상전이 좋아할 만한 여행지를 추려놓았다면, 그 다음은? 이 여행책 『전국일주 가이드북』 펼쳐서 여행정보 도움을 받는 것이다. 왜? 코로나 전/후로 꽤 많은 것이 변했으니까. 예컨데 코로나 전에는 핫했던 여행지나 맛집이, 팬데믹 기간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반대로 팬데믹 이후 새로 생긴 곳도 많다. 거기다 아이랑 함께 갈만한 숙박시설 찾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이 책에 의존해야할 부분이 많다는 것!!


그나저나 정말 개정판이 시기적절하게 나왔다. 어쩜 딱 영광&고창 여행 계획하는데 나오다니! 정말로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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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예술로 여행하기
함혜리 지음 / 파람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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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목적있는 여행을 추구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뼛속까지 J인 나는 주제를 정하고, 주제를 토대로 어디를 갈지 계획하고, 뭘 먹고, 어디서 잘지를 완벽하게 정해놔야 마음이 가벼워진다. 심지어 돌발상황을 대비한 대체안 두어개를 더 만들어둔다. 예컨데 휴관일이 아닌데 휴관한다거나. 실외장소인데 갑자기 비가 와서 보기가 어려워진다거나 뭐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이 여행책 『프랑스, 예수롤 여행하기』 저자도 그렇다. 나처럼 여행 목적이 명확하다. 내가 역사라면, 저자는 ‘예술’. 역사나 예술이나 인문학 하위분야이고, 예술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역사가 들어오고, 역사를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레 예술작품이 나온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곳에시, 저자와 취향이 겹쳐지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들 하지만 사진을 곁들여 글을 쓰면 그 순간의 감동이 더욱 오래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정을 짜면서 봐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 때 1차 자료 조사를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는 사진기에 담고 매일 저녁 다녀온 장소를 기록하면서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한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글로 정리하면서 예술가에 대해서,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고 가져온 자료와 책을 찾아보게 된다. 이렇게 글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여행에 깊이가 생기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다. 그리하여 내게 여행기를 쓰는 것은 또 다른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p 006


이 여행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예술’ 여행이라는 관점하에 쓰여진 여행에세이다. 무엇보다 프랑스는 유밍한 미술관, 박물관이 즐비한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유명 미술관, 박물관 대다수가 프랑스 수도 파리에 있다. 파리가 괜히 세계 문화수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이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여행에세이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저자는 파리를 비롯하여 남프랑스까지 전부 섭렵했다. 거기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뿐만 아니라, 과거 예술 거장들의 흔적까지 아우르는 예술 여행 에세이다. 




파리

오랜 세월 공들여 가꾼 도시 파리는 아름답다. 잘 정비된 도로변으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그 모든 길이 만나고 헤어지며 만들어지는 지점에는 광장이나 분수, 조각 같은 역사적 기념물이 있다. 겉만 조형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면 파리가 아니다. 파리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이 소장한 다양한 미술품은 인류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문화와 정신의 빛나는 결정체들이다. 세계의 문화수도라는 자부심 또한 무리가 아니다. p 015


13세기에 지어졌던 루브르궁은, 14세기 베르사유궁이이 지어진 뒤 왕실 소장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되었다. 이후 혁명기를 거쳐, 유럽 최초 근대적 박물관으로 개관했으니 여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루브르박물관의 시작이다. 루브르박물관의 심볼인 유리 피라미드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좌/우파 가리지않고 극심하게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조금 신기했다. 지금 피라미드 없는 루브르는 그야말로 앙꼬없는 찐빵이니까. 심지어 설치하고 있는 중에도 반대가 심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유리 피라미드를 제작하며 박물관을 확장한 결과, 루브르 입장객은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성공스런 리모델링이 아닌가!


루브르에 전시 작품들이나 시대적 구분은 워낙 방대하니 생략! 궁금한 사람들은 이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된다. 예술을 사랑하는 여행자 시점으로 쓴 만큼 정말 자세하게 서술되어있다. 


유리 피라미드에 이어 조금 놀랐던 이야기 하나 더 소개하자면, 바로 루브르 아부다비. 일종의 루브르 체인점이라고나 할까? 프랑스 정부와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협약하여, 아부다비에 설립된 루브르 아부다비점이다. 외관상으로 파리 본점이 역사과 기품이 담긴 고풍스러운 곳이라면, 아부다비 체인점은 모던한 현대 미술을 시각화한 느낌이랄까? 에술알못인 나지만 물을 이용한 외관은, 뭐랄까 원주의 뮤지엄 산 처럼 안도 다다오가 지은 건축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파리는 루브르 말고도 유명한 박물관이 정말 많다.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퐁피두 센터등이 그렇다. 그 뿐만인가? 파리를 대표하는 심볼로도 유명한 에펠탑이나 오페라 가르니에 건축물도 두말 하면 입아프다. 하지만 생략! 자세한 내용은 역시나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대신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파리를 조성하는 거리였다. 생제르망에 있는 카페들. 외관부터 남다른 느낌의 이 카페들은, 알고보면 역사가 깊은 카페들이 태반이다. 특히 해밍웨이,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아르튀르 랭보, 기욤 아폴리네르 등 유명인들이 글을 쓰기 위해, 토론하기 위해, 커피 한잔 마시기 위해 들렀던 곳이다. 문학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야할 성지라고나 할까?!



언젠가 파리에 가게된다면 생제르망 거리만큼은 꼭 거닐어보고 싶다. 저자가 이렇게 친절하게 산책코스까지 만들어줬으니, 응당 걸어줘야지!


아차! 몽마르트를 빼먹을 뻔 했다. 일명 화가의 거리인 몽마르트 언덕이다. 18 ~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복작복작했던 바로 그곳이다. 물론 지금은 다른 의미로 화가들이 복작복작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여기서 초상화를 그려온다지 아마..


몽마르트를 거쳐간 화가들을 나열해보자. 미알못이라도 한 두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마네, 폴 세잔, 에드가르 드가 등을 비롯하여, 나같은 미알못은 잘 모르지만 미잘알들은 잘 알고 있는 클리시 불르바르,  툴르즈 로트레크, 등이 있다.



파리 처럼 이렇다할 유명 미술관은 없지만(아! 몽마르트 박물관이 있긴 하다), 대신 인상파 화가들이 거닐었던 거리, 태어났던 집, n년 간 살았던 집 등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혹시라도 프랑스 여행계획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여행계획 짜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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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작하는 어반 스케치 - 한 권으로 배우는 드로잉 준비부터 완성까지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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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두 권의 드로잉 에세이를 읽었다. 그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단어가 바로 ‘어반스케치’다. 나에게는 생소한 미술 용어. 책을 읽으며, 대략 여행을 하며 그리는 그림, 즉 여행드로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잘못된 판단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어떻게? 오늘 읽은 『오늘 시작하는 어반 스케치』 라는 미술관련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앞서 읽은 두 권의 드로잉 에세이와 동일한 작가가 썼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 두 권은 여행을 하며 때때로 어반스케치를 했던 내용이라면, 오늘 읽은 『오늘 시작하는 어반 스케치』 는 말그대로 ‘어반 스케치’에 대한 실용서다. 



어반 스케치의 개념이 무엇인지, 여행 드로잉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반 스케치를 하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어반 스케치를 함에 있어서 주의할 사항이 무엇이 있는지 등등. 




여행드로잉과 결이 비슷하면서도 새롭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개념으로 ‘어반 스케치’가 있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며 그리는 그림으로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을 기록하듯 그리는 회화활동을 말한다. (…) 어반 스케치는 현장성을 중요시한다. 여기서 여행드로잉과 어반 스케치의 작은 차이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드로잉은 현장에서 그린 그림과 스튜디오에서 돌아와 그린 그림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라면, 어반 스케치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린 그림만을 가리킨다. p 025



크게 보면 어반 스케치가 여행드로잉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하위개념인 느낌이다. 하지만 여행 드로잉은 여행 이후에 진행되는 후속작업등도 포함되는 반면, 어반 스케치는 여행 중 현장에서 그리고 땡! 대충 개념이 잡혔다. 



저자는 어반 스케치를 함에 있어서 제일 기본적인 사항 8가지를 말한다. 어반 스케치에 필요한 도구는 사람에 따라 펜 또는 연필 하나로 끝날 수도 있고, 수채물감 풀 세트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정해진 건 없으며, 그저 여행을 할 때 챙길 수 있을 정도의 도구면 되는 것이다. 내가 지니는 여행가방이 작다면 펜 하나면 되고, 엄청 큰 배낭가방을 들고 다닌다면 수채물감 풀세트를 들고가면 된다.



1. 창작 도구 준비: 연필, 펜, 만년필, 수채물감, 붓, 스케치북 등

2. 선을 그을 수 있는 용기

3. 형태적 본질을 찾자

4. 오래된 건물을 그리자

5. 해칭의 이용

6. 풍경의 구성

7. 공간에 입체감을 더하자

8. 투시법 응용




도구를 챙겼다면, 종이를 펼치면 된다. 굳이 스케치북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종이면 되는 것이다. 어반 스케치는 어디까지나 여행의 현장감을 중시하는 그림이 아닌가! 스케치북을 챙길 수 없다면, 여행 티켓 여백에 그리면 되는 것이다.


다만 흰 여백을 보면 뭐 부터 그려야할 지 몰라서, 막연하게 겁부터 먹는 나같은 초보들이 있을 것이다. 건물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그러야할지, 그저 막막한 그 기분! 하지만 이 기분은 초보가 아닌 고수들도 느끼는 긴장감이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게, 어반스케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스케치북을 펼쳐 하얗게 비워진 지면 위에 첫 선을 그을 때의 두려움과 막막함을 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음에도 그 순간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한 번에 긴 호흡의 선을 그릴 때면 그 공포감은 더 커진다. 긴 직선을 편하게 그리고 싶었다. (…) 건물을 그릴 때도 기본 성질을 이용한다면, 체계적으로 형태를 잡아갈 수 있다. 건물의 형태를 이루는 선분들의 출발점과 종착저믈 서로 비교해가며 크기와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p 040



건물기술과 외장재 발전으로 현대 건축물은 외관의 디테일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간소해졌다. 주변 건물의 외모가 깔끔하고 모던해지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마냥 반갑지는 않다.  표현할 외형적 특징이 줄어들어 다소 밋밋한 그림으로 마무리될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종종 한자리를 오래 지켜온 옛 건물들을 그린다. 그중에서도 완성했을 때 남다른 성취감을 주는 한옥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p 051

 


여행 중 다른 도구가 미처 준비되지 않아 스케치 도구로 사용한 펜 한자루 만으로 그림을 마무리해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 사용되는 것이 해칭이다. 해칭은 선이나 점으로 평면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독특하고 조직적인 패턴을 말한다. p 060



말로만 가이드라인을 주느냐?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실습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직접 그려준다.





이 얼마나 친절한가. 이정도는 되야 나같은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육아로 인해 잠시 여행을 멈춘 나지만, 아이 낳기전만해도 주말엔 집에 붙어있던 적이 없었다. 이제와 후회되는게, 여행을 다니며 저자의 말 처럼 ‘어반 스케치’를 남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물론 사진은 많이 찍었다. 하지만 여행 장소에서 내가 느꼈던 현장감을 그대로 담는 건, 아무래도 기계로 찍는 사진보다 내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닐까?




아이가 좀 크고 같이 먼 곳까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아이와 함께 어반 스케치를 해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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