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까지만해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사회적 문제였다. 따라서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개량하고, 대체 음식을 만드는 게 화두였다. 그런 과정에서 장기 보관이 쉽고, 이동이 쉽고, 그 자리에서 먹기 쉬운 가공식품들이 무수히 개발되었다. 문제는 가공식품을 만드는데 있어서 수많은 합성첨가물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보존제, 발색제, 방부제, 합성 조미료등은 기본이고 설탕 및 소금이 과하게 들어간다. 이런 가공 과정에서 식품 원형의 맛이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다량 섭취했을 때 몸 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가공식품이 일상화되기 전,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1970년대까지만해도 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질병은 코로나19처럼 결핵, 천연두, 콜레라 같은 감염성 질병이었다. 하지만 가공식품이 일상화된 지금, 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질병은 당뇨, 류머티즘, 치매, 각종 염증성 질병이다. 너무 흔하게 발병하는 위염, 장염, 치주염, 피부염 기타 등이 모두 염증성 질환이다. 이렇게 염증성 질환이 일상화가 된 이유는 위에서도 말한 합성 가공식품의 대중화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서구적인 식습관이 있다.


다시 가공식품이 일상화되기 전으로 돌아가보면,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찌고 삶고 데치는 요리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았기에, 먹는 음식도 한정적이었고, 먹는 시간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가공식품의 일상화되는 그 시점에 발맞춰 전 세계적으로 보다 빠르고 편리한 삶을 지향하고, 식량난이 사라지며 잉여 농산물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먹는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노동을 하기 위해 먹었다면, 지금은 즐기기 위해 먹는다. ‘먹는 행위’가 노동이 아닌 여흥을 위한 행위로 바뀐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먹방’, ‘미식’, ‘맛집찾기’ 등이다. 


거기다 요즘 사람들에게 핫한 음식들은 위에서도 말한 서구적인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들이다. 기름으로 볶거나 튀기고, 직화로 한 요리들. 혹은 정말 맵거나, 달거나, 짠 요리들. 먹방 프로그램에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요리들이 주로 나온다. 요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불맛이 중요하다며 직화를 하거나, 튀기거나 볶는다. 거기다 설탕을 과하게 넣기도 한다. 직화든 튀기든 직접 조리한 요리는 가공식품보단 몸에 좋겠지, 하고 안심하고 먹기엔 이런 요리들도 건강에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이라고 기름에 볶고, 직화한 요리를 안먹었을까? 옛날 사람들도 분명 먹었다. 다만 그때는 식량 자체가 귀했을뿐더러, 넘쳐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요즘처럼 무분별하게 먹지 않았을 뿐이다. 귀한날, 잔칫날이나 되야 먹던 음식이었다. 반면에 현대인들은 이런 류의 요리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


그렇게 가공식품과 서구식 음식에 길들여진 우리 몸에 남은 건.... 독소다. 당독소. 이름부터 ‘독’이 들어간다. 이름값을 하려는건지 모르겠지만, 당독소는 몸에서 각종 염증질환을 일으키는 대표주자였다. 


 

당독소가 혈액이나 조직에 축적되면 우리 몸에 교란이 일어나 과도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심혈관 질환, 당뇨, 암 등과 같은 만성질환을 유발한다. 그뿐만 아니라 백내장, 황반변성, 녹내장, 제3신경통, 치주질환, 역류성 식도염, 위무력증, 수전증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독소의 해로움이 신체적 영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을 심화시키고 불안을 높이며 학습능력을 떨어뜨리는 등 심리적 정신적 인지적 문제와도 연관이 깊다. 당독소라는 단어에 독소, ‘독성물질’이라는 의미의 ‘toxin’이 포함된 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정직한 용어인 셈이다. p 035


당독소는 조리 방법의 문제와 서구화된 식습관과 연결되어 있다.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습관적으로 먹어 과잉 에너지가 누적되면 당독소, 활성산소, 염증이 많아진다. 정제된 탄수화물 같은 당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할 때 남은 당과 찌꺼기들이 혈관과 체내의 곳곳에 쌓여 당독소가 된다. 그런데 당독소는 자연적으로 소모되지 않고 체외로 잘 배출되지도 않는다. 분해가 잘 되지 않는데다 체내에 머물면서 활성산소를 만들어내기 바쁘다. p 054



당독소는 도파민 수용체를 자극하기 때문에 중독이 되기 쉽고 탐닉을 일으킨다. 끝없는 자극 추구와 즉각적인 보상 체계는 뇌의 도파민을 과도하게 활성화시켜 자제력을 약화시킨다. 당독소가 높은 음식들은 쉽게 중독되는 특성이 있다. ‘아는 맛이라 더 맛있는 맛’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킨다. 당독소 자체가 마약처럼 중독성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당독소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탐닉하게 만들고 대사질환과 퇴행성질환 발병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연구가 유명 저널에 발표되었다. p 065


과일을 몸에 좋은 것으로만 인식하고 건강을 위해, 체중조절을 위해 섭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과일은 초콜릿과 다를 바 없는 당 덩어리다. 달달한 음식이 없었던 100년 전 사람들에게 과일은 귀하고 좋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칼로리가 풍요롭게 남아도는 잉여 시대에 살고 있다. 끼니마다 몸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이상을 섭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일이 몸에 좋다는 옛말만 믿고 따르는 것은 몸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p 083


과당은 우리 몸에 물과 영양이 부족할 때 저장모드로 바뀌는 데 필요한 일종의 메신저다. 그런데 우리가 밖에서 필요 이상으로 이 신호를 많이 보내면 일련의 작용이 계혹 쌓여 탈수가 가속화되고 당독소가 누적되어 피로해질 뿐만 아니라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뱃살이 는다. 세포 바깥에 있는 물이 자꾸 줄어들어 피부와 점막이 건조해지고 갈증과 식욕이 촉진된다. 몸에서 발생하는 대사열을 식힐 물이 사라져 열증과 메마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탈수, 열압 상승, 염증이 반복되면 신장 또한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단맛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p 084



요근래 스트레스를 푼다고, 입이 심심하다고, 별별 이유로 단걸 너무 많이 먹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에, 이 책 『당독소 쇼크』는 말 그대로 정말 쇼크였다. 정제 탄수화물이 몸에 안좋다는 사실도 알고, 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안좋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몸은 왜 자꾸 몸에 안좋은 음식만 탐닉하는지, 하.


당독소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삶고 찌고 데치는 요리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러한 요리 방법으로도 맛있는 식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쉬운 예로 흔한 음식 재료인 달걀부터 바꿔보자. 달걀은 어떻게 해 먹어도 맛있지만 내 몸을 생각한다면 프라이보다 삶아서 먹는 것이 좋다. 스크램블을 볶을때보다 쪄먹을 때 당독소 함량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프라이와 스크램블은 물론 튀기고 볶은 음식을 아예 먹지말라는 게 아니다. 기존의 방식을 조금만 더 줄이는 대신 삶아먹고 쪄먹고 데쳐먹는 방식을 늘려보자. 내 몸이 먼저 좋은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p 071


날 닮아서 뿡뿡이가 계속 단걸 찾는건가 싶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식습관을 조금씩 바꿔나가야하는데, 이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가 않는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건강한 돼지가 되려면..... 단것 2개 먹을 때 1개 먹는거로 줄여나가는 것 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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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산책시키기 - 당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10가지 방법
벤 알드리지 지음, 김지연 옮김 / 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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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손 꼽을 만큼 적게 읽는 책이 있다. 근데 매 년 꼭 한 권씩은 읽는다. 바로 철학책이다(근데 리뷰는 잘 안올림^_T ). 


오늘 읽은 철학책은 『바나나 산책시키기』. 제목부터 남다른 이 책 탄생과정은 이렇다. 저자는 오랜기간 신경발작과 불안증세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다 ‘스토아 철학(스토아주의)’을 만나면서, 일상이 달라진다. 저자는 일상속에서 ‘스토아 철학’을 실천하였고, 그로 인해 저자를 괴롭히던 신경발작과 불안증세는 사라졌다. 


스토아주의는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걸 목표로 한다. 스토아 철학에는 여러 가지 위대한 사상이 담겨있지만 ‘잘 사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최대한 잘 살아 내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인생의 파고를 헤려 나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 이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다. p 035


일반적으로 ‘철학’이라고 하면 일단 ‘어려운 학문’, ‘졸린 학문’ 같은 편견과 함께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그런 편견을 바꾸기 위해 저자가 철학 입문서를 썼으니, 그게 바로 이 책 『바나나 산책시키기』다. ‘스토아 철학’에 보다 쉽게 다가가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철학책 입문서인 것이다.


나 역시 철학책이라곤 입문서 몇 권 읽어본게 다지만, 지금까지 읽어본 철학책 중에선 이 책이 제일 쉽고 다가가기 쉬웠다(그래서 리뷰도 쓰고!). 학창시절 세계사 및 윤리 공부할 때 미친듯이 외웠던 시험 암기용 ‘스토아 철학’이 아니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행복’이란 개인의 내면과 책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교의 그것과도 비슷해서 그런지, 스토아 철학이 더 쉽게 다가왔다.


스토아 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래 4가지 기본 덕목이 필요하다.



※스토아 학파 4가지 기본 덕목※

1. 지혜: 분별력이라고도 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 또한 살면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이다.

2. 정의: 타인을 친절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능력이다. 나에게 목소리를 높힌다 하더라도,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다.

3. 용기: 집념과 인내, 정신력으로 대표되는 능력이다. 고난과 역경을 마주할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킨다. 

4. 절제: 자기 통제력이다. 본인의 감정을 다스릴줄 안다.



어찌보면 스토아 철학을 떠나서,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기본 덕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21세기에 이런 기본 덕목들을 모두 갖춘 사람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도 기본 덕목 4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더욱 스토아 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일어난 사건을 마주할 때 어떤 행동을 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실제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 지는 분명 내가 통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다음 단계에 집중해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제쳐두고 어떻게 대응할지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을 때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p 047


스토아주의자들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만으로 본질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똑같이 어마어마한 부를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누구는 극악무도한 인간이 되기도 하고 누구는 선하고 자비로운 인간이 되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다. 스토아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의 됨됨이, 즉 인격이다. p 050


사람들은 실제보다 인생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 막상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 좌절하고 실망하게 된다. 스토아 철학은 이에 대해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인생에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계획은 언제든지 어그러질 수 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p 052


스토아 주의가 알려주는 좌절과 실망을 피하는 법은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거나 미리 어떤 결과가 나와야 마땅하다고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이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되 언제나 결과는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떻게 대응할 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 p 053



스토아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불편함’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발적 불편함’. 일부러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는거다. 예컨데 침대가 편한 사람이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잔다거나, 숨쉬기 운동이 다인 사람이 고강도의 운동을 한다거나 뭐 그런 것.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문물을 발달시켜, 겨우 편리한 삶을 영유했는데 다시 불편하게 살라고? 잘 생각해보자. 불편하게 살았을 땐, 사람들은 불편함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게 편리해지면서, 사람들은 조금만 불편해도 이를 참아내지 못한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요즘 사람들은 힘든일, 고난이나 역경에 대처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자발적 불편함’ 실천은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릴 실패와 거절, 고난과 역경에 대한 예방접종이다. 



요즘 두돌 아가를 키우고 있어서, 육아 관련 정보를 많이 보는데 유독 뇌에 내리 꽂힌 문장이 있었다. 하정훈 쌤이 한 말인데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안나지만, 요점은 이랬다. 아이는 불편하게 키워야 한다고. 근데 정말 맞는 말이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게 되면 나중에 커서 불편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이를 이겨낼 힘이 없다. 간혹 신입사원 부모가 회사로 전화해서 “우리 애가 어쩌고저쩌고”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게, 바로 아이를 너무 편하게만 키웠기 때문은 아닐런지.



자발적 불편함은 스토아 철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개념이자 내가 스토아주의에 입문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개념은 단순하다. 일부러 자기 자신을 힘든 상황에 노출시켜 미래의 고난과 역경에 대비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인생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p 087


나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이 개념을 각자의 삶에 적용할 때 발휘한 창의성이 마음에 든다. 정신력을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스토아 철학자들은 온갖 기상천외환 일들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고, 일부러 추위나 더위를 견디며, 물과 음식을 섭취하지 않거나, 고강도의 운동을 하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행위들이 그렇다. p 088


하지만 결코 가학적인 형태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발적 불편함은 우리가 강인해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며, 미래를 준비하고 앞으로 닥쳐올지도 모를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p 090



‘자아 성찰’도 스토아 철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다. 어찌보면 거창해보이지만, 알고보면 제일 쉬운 일이 바로 ‘자아 성찰’이다. 아침에 눈떠서, 혹은 저녁에 자기전에. 나는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낼건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냈는가, 후회된 일은 없었는가, 이 일에서 내가 얻은 바가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명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글을 쓸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모닝 루틴’, ‘미라클 모닝’. 이 역시 ‘자아 성찰’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다. 아침에 눈 떠서 아침 밥을 먹기 전에, 운동을 가기 전에, 출근 전에 등 무언가를 계획하고 꾸준히 그 일을 하는 것. 이런 모닝 루틴 하나만으로도 하루를 시작함에 있어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기 성찰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정기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리와 개인의 행동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선하고 덕 있는 인격을 기르는 것은 스토아 철학의 필수 요소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다. p 158


본질적으로 자기 성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지혜, 즉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상과 가치를 탐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사상과 가치에 부합하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p 159


나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격언이 자기 성찰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스토아학파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했기에 자기 성찰은 스토아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동시에 지혜도 키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독서다. p 161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살아있다는 것이,

숨쉬고, 생각하고, 즐기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특권인지 생각하라.

아우렐리우스


이 외에도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챕터가 있었으니, 바로 격렬해진 감정 다스리는 법이다. 격렬한 감정이라고 하면 분노, 우울, 슬픔 여러 감정을 들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역시 ‘분노’가 아닐까? 최근 몇년간 사회면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분노’ 조절을 못해서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정말 비일비재했으니까.


스토아 철학에서는 격렬한 감정이 일어났을 때, 이를 억누르지 말라고 한다. 어떤 감정이든 억압하게 되면, 반작용으로 인해 더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런 해결책을 내놓았다.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그 기미를 빠르게 포착하라는 것이다. 포착했다면, 그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주의를 다른데로 돌리면 된다. 아래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사례처럼.


물론 이렇게 주의를 분산하는게 근본적인 대처 방법은 아니다.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일 뿐이다. 따라서 이렇게 감정 조절이 가능해졌다면, 그 후에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내면의 감정에 집중해야, 격렬한 감정을 일으킨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 아테노도루스는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 아테노도루스는 황제에게 분노를 다스리는 비법을 전수했는데, 화가 나면 일단 알파벳을 거꾸로 외운 다음에 반응하라고 했다. 그야말로 사건과 반응 사이에 쉼표를 찍는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p 228


어려울거라 생각했던 철학은, 생각보다 쉬웠다. 아니 오히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일부는 이미 내 삶에 녹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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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2 : 반동의 시대 - 진실을 밝혀내는 박종인의 역사 전쟁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2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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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1』에 이어 2권 리뷰 시작!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역사책은 수험생들에겐 권장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시험을 합격하고 난 후에는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왜? 시험공부 중에 이 책을 읽으면 교과서와 모순된 사실에 혼란스러운게 첫번째. 두번째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우리 근대사가 전부가 아닌게 두번째. 분명 교과서에 실린 근대사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 사실은 만들어진 사실이라는 점을 수험자들은 모르기에 이 역사책은 절대적으로 모든 시험이 끝나고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데 ‘A가 B해서 C를 했다’라는 사실이 있다고 하자. ‘A가 C를 했다’는 말은 듣기가 좋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보기에 좋지 않은 ‘B를 해서’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 우리 국사 교과서 특징이 나타난다. 보기 좋지 않은 ‘B를 해서’를 삭제하고, 바로 ‘A가 C했다’라는 문장으로 수정하는 것. B를 삭제하긴 했지만, 여튼 ‘A가 C했다’는 말도 맞는 말이니까.


자, 이제 본격적으로 교과서가 은폐한 우리 근대사를 살펴보자. 2권은 동학농민전쟁부터 해방이 된 1945년까지다. 




만국박람회가 공식 개막하던 바로 그날, 조선에서는 복잡한 이력을 가진 공무원 하나가 전라도 고부군수로 임명됩니다. 이 하찮은 지방 관리는 이후 조선은 물론 동아시아 역사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신임 군수 이름은 ‘조병갑’ 입니다. 5년 뒤 조선팔도를 뒤흔든 동학 농민 전쟁의 불씨가 된 사람입니다. 조병갑은 훗날 영의정이 된 조두순의 서조카입니다. p 027


부정부패 탐관오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일까? 바로 조두순이 아닐까? 물론 그 시대 양반네들 대다수가 부정부패로 찌들어있었기에, 조두순보다 더한 인간도 분명 많았다. 조두순 이전에 세도정치하던 양반네들이 그랬고, 조병갑 이후에는 여흥민씨들이 그랬으니까. 그렇게나 탐관오리가 많았음에도, 유독 조병갑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병갑이 중요한 이유.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우는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조병갑의 학정이 동학 농민 전쟁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국사책에는 없으나, 사실인 이야기 하나 더. 못살겠다 들고 일어난 백성들과 달리 고종은 끊임없이 조병갑을 감싸며, 조병갑을 최고중의 최고 수령이라 극찬했다. 왜? 고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조대비의 양자로 들어갔기에 가능한거였으며, 따라서 풍양조씨 일가는 고종의 (새로운) 외가였다. 세도정치를 끊어낼줄 알았던 고종시대는 놀랍게도 앞서 세도정치의 세력이었던 풍양 조씨와, 고종의 처가댁인 여흥 민씨 세력이 부정부패라는 말 조차도 그들에겐 먼지가 될 정도로 탐학과 비리, 가렴주구에 점철된 시대였다. 


조병갑을 끊임없이 감싸던 고종. 동학을 역당으로 치부하고 이들을 처단하고자 청나라 군사를 스스로 불러들였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청나라군이 조선땅에 들어온 이유다. 청군이 조선땅에 들어오니, 텐진조약에 의거하여 일본군도 조선 땅에 들어왔다. 동학은 당연하게도 섬멸되었고, 남은 청군과 일본군은 조선 땅에서 전쟁을 벌였다. 조선을 니가갖니 내가갖니 하는 이유였다. 바로 청일전쟁이다. 여기서 일본이 승리했다. 그렇게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는데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게된다. 


동학농민전쟁을 시작으로 조선의 식민지화까지. 조병갑이 바로 그 시작점에 위치한, 그래서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거기다! 국사책에서 배운 동학 농민 전쟁의 발단은 분명 조병갑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2020년에 제정된 동학 특별법에선 그를 가해자 신분에서 제외시켰다. 근대사 뿐만 아니라 현대사에서 조병갑이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특별법에 따르면, 조병갑 학정에 분노하여 처음 들고 일어난 고부봉기 참여자는 동학군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2020년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2조에는 이렇게 규정돼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란 1894년 3월에 봉건체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1차로 봉기하고, 같은 해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참여자를 말한다.”


1894년 2월 고부관아를 습격해 조병갑이 만든 만석보를 부순 첫번째 거병은 ‘동학농민전쟁(혹은 혁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조병갑 또한 동학 농민 전쟁 가해자 명단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와 관계가 있으니, 입을 다물겠습니다. p 036




고종은 전제군주권을 제한하려는 일본의 개혁안(갑오개혁안)을 끊임없이 반대하다가, 일본군이 철수한다고 하니 돌연 개혁안을 받아들이며 일본군 철수를 반대한다. 국사책에서 배우던 ‘일본군 철수를 요구했지만, 일본군이 거부하고 되려 경복궁을 점거하여 고종을 협박하며 친일정권을 세웠다’ 등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왜? 국사책에 실린 내용도 분명 사실이지만, 중간 중간에 지워진 사실들 때문이다. 고종이 부도덕하고 능력없는 지도자로 보이는 사실들을 생략하고, 남은 사실들로만 끼워맞추다보니 발생한 현상이다. 이 얼마나 기이한 역사인지. 



청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청나라와 일본은 이른바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 1조의 내용은 이렇다. ‘청은 조선국의 완전무결한 독립자주를 확인한다’. 공식적으로 청나라는 조선에서 손을 뗐으며, 일본은 조선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한다.



동학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궤멸되고 청일전쟁 전선도 대륙으로 넘어가고 일본 승리가 확실시되던 그 겨울, 일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일본 공사에게 “남아서 민란을 진압해 달라”며 소매를 붙잡고 있는 어느 유력인사의 육성입니다. 공사 이노우에는 며칠 줄다리기 끝에 이 요청을 수용합니다. 그 어느 교과서에서도 이 발언과 발언 주인공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일본군은 철수하지 말라’고 요청한 이 사람은 ‘조선국 국왕 고종’ 입니다. p 088



일본이 어디 조선이 예뻐서 자기네 병사를 희생했겠습니까. 더 이상 1876년 수신사 김기수에게 함께 근대화를 하자고 권했던 일본이 아닙니다. 여관방에 앉아 있으려는 김기수를 끌고 나가 견학을 시키며 “함께 나아가는 게 소망”이라고 역정 내던 이노우에 가오루는 없습니다. 1894년 12월 4일 일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고종을 ‘협박’했던 이노우에 가오루는 협박이 성공한 뒤 본국에 ‘임무 완수’ 보고서를 보냅니다. p 097



청이 조선에 손을 떼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조선 식민지화 첫삽을 뜨게 한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졌던 그 해변가. 그 해변에는 기념비 하나가 세워져있다. 기념비 이름은 ‘조선통신사 상륙엄지지’. 선진국인 조선 사절단이 세련된 학문과 예술문화를 일본에 전해주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고대에는 도래인이, 중세에는 통신사가 일본 땅에 수많은 선진문물을 전해주었는데, 그 관계가 이렇게 역전될 수가 있다니. 이게 오로지 침략한 일본 탓이라고 하기엔, 조선의 위정자들의 잘못된 선택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서양의 문물을 습득할 기회가 수차례 있었지만 이를 스스로 날렸고, 날릴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명나라에 사대하며, 끊임없이 쇄국으로 치달았던 조선.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를 할 수 있었음에도 이 역시 날리고 쇄국에 박차를 가했던 조선. 쇄국을 했으면 자국민을 위한 정치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백성들은 굶어죽어도 본체만체 지식탐구조차 못하게 했던 조선. 동시대 바다건너 유럽에선 시민혁명,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과 너무 대조되지 않은가. 



“작년 6월 이후 칙령과 재가 사항은 어느 것도 내 의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철회한다.”


갑오개혁정부가 내놓은 200여 가지 개혁안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신분제가 부활하고 문무 차별이 부활하고 연좌제가 부활하고 과부가 다시 평생을 수절해야하고 노비가 주인집으로 돌아와야하고 과거가 부활하는 끔찍한 세상이 돌아온 겁니다. 물론 이 같은 선언이 이 모든 구악의 실질적 부활을 뜻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동력을 잃은 갑오개혁정부로부터 고종에게 역류하기 시작합니다. p 102



일본군을 붙잡기 위해 승낙했던 군주권을 제한하는 갑오개혁안. 일본군 잔류가 결정되었으니, 고종은 다시 군주권을 찾고자 한다. 왜? 고종은 언제나 왕인 본인만을 생각했던 사람이기에. 그리고는 대사면령을 내린다. 겨우 겨우 잡아들였던 민영휘, 민영주 등 여흥민씨 척족과, 동학농민전쟁의 근원인 조병갑을 포함한 풍양 조씨들.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던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자기 측근으로 앉혔다. 예컨데 그 조병갑! 조병갑은 대한제국 법부 민사국장이 되었다.



이후에도 고종은 끊임없이 본인 안위만을 위한 정치를 한다. 그 중 고종의 이기심이 똘똘 담겨있는 아주 적은 일부를 아래에 옮긴다. 이것만 읽어도 속에 분노가 들끓지만, 슬프게도 이는 발톱의 때만한 분량일 뿐이다. 이 이후의 내용은 부디 이 책을 읽어보시길. 



아관파천을 포함해 고종은 1907년 황제 퇴위까지 모두 일곱 차례 외국 공관으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 와중에 미관파런과 영관파천 미수 각 1회, 1896년 왕비 민씨 살해사건 직후 성공한 아관파천 1회,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직후 미관파천 미수 1회, 1904년 러일전쟁 직전 미관파천 미수 1회화 1905년 러일전쟁 도중 미관파천과 불관파런 미수 각 1회, 도합 4개국 7회. 국가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마다 고종은 외국에 피난처를 의뢰합니다. 아관파천은 그 ‘7관 파천’ 가운데 유일한 성공 케이스입니다. 이를 ‘훗날을 도모한 망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관 1년 동안 팔려나각 수많은 국가 이권사업과, 도주 생활 청산 후 고종이 한 일들을 보면 ‘훗날 도모’ 같은 비전은 보이지 ㅇ낳습니다. 그저 그가 즐겨 쓰는 ‘이권 판매 조건부 권력 유지’ 거래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p 115



1885년 묄렌도르프를 시켜서 러시아 보호국을 요청했던 그 짓을 또 합니다. 그리고 민영환은 ‘최대한 빨리 귀국해 보고해야 한다’며 즉답을 요구합니다. 개인 민영환이 아니라 ‘고종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민영환이 내놓은 조선정부 공식 요청입니다. 500년 대중 사대에 찌든 나라가 근대라는 격랑을 맞아 러시아로 사대 본국을 바꾸려고 합니다. 관모를 고집하며 대관식 참석을 거부하고 사요의 장인 식사 자리를 거부한 전권공사가, 곧바로 황제와 대신에게 보호령 본국이 돼달라고 거듭 요청합니다. p 123



민영환이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던 4월 22일 고종은 러시아인 니시켄스키에게 함경도 경원과 종성 사금광 채굴뤈을 허용합니다. 민영환이 귀국길에 들른 연해주에서 조선 동포들을 만나고 있던 9월 9일 고종은 연해주 상인 보리스 브리네르가 설립한 합성조선목상회사에 압록강 유역과 울릉도 벌목과 양목 권한을 허가합니다. 숱하게 판매된 이권 가운데 일부입니다. 아, 보리스 브리네르는 러시아계 미국 영화배우 율 브리너의 아버지입니다. p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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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생활백서, 어두운 숲을 지나는 방법 폐교생활백서
로서하 지음 / 드루이드아일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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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폐교생활백서 출간! 예약 주문하고, 책을 받고 읽는 과정에서 여러번의 이슈가 있었다. 예컨데 폐교생활백서는 프로개님, 지박령님 각각의 시선으로 쓴 두 권이 세트인데, 서점 실수로 지박령님 책만 2권 받았다던가 하는 첫 번째 이슈. 이스터 에그 찾는답시고 하루동안 에세이를 1n차례 여러방법으로 무한 정독했다는 두번째 이슈. 하지만 결국 스스로 이스터 에그를 못찾고, 프로개님 힌트를 보고나서야 찾고나서 몰려드는 허무감이 세번째 이슈. 


첫번째야 어쩔수 없지만, 두번째는 내 스스로 이토록 추리력이 없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고, 세번째는 정말 프로개님을 원망...ㅎㅏ..ㄴ. 아니 진짜!! 이건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보는 사람은 절대 찾을 수 없는 이스터에그인데?! 내 책은 늘 새책이었는데, 이스터에그 때문에 헌책이 되버렸다. 보고있어요 프로개님^_T? 

이스터 에그가 아니었다면 정말 에세이 자체를 곱씹고 또 곱씹을 정도로 마음이 몰캉몰캉해졌던 지박령님 글이었는데! 정말 순수하게 공감하며, 나를 이입해가며 읽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스터에그 존재를 잊고, 짧은 시간동안 있었던 이슈들도 잊고, 폐교생활백서를 처음 만났다고 나 자신을 속이고(....) 다시 읽기로 했다. 

내 마음을 몰캉몰캉하게 만든 지박령님의 힐링 에세이를..!





안식년이 주어진 프로개, 프리랜서였던 지박령. 식물들 사랑하면서도 실험정신이 투철했던 프로개와, 프로개가 하는 일을 반대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봐주던 지박령. 그런 그들의 행보는 결국 폐교 생활로 이어졌다. 누가 봐도 불편함이 예견된 폐교생활. 

마트나 병원, 카페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차타고 기본 30km는 나가야 하는 불편함. 행여나 생필품이 떨어지면, 남들처럼 쿠ㅍ 로켓배송을 시키지 못하고, 차를 타고 30km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곳. 심지어 생활 폐기물 같은 일반적인 쓰레기 처리도 어려울 뿐더러, 치안도 좋지 않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도 망설임없이 폐교 생활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아파트에 살 때도 하늘은 있었어요. 작가가 되기 전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도 내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죠. 어쩌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에도 큰 심상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하늘을 마주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폐교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에요. 굉장히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5년은 내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주었어요. 그리고 나는 오후 2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p 032


보통 불편함을 대하는 자세는 두 가지로 나뉜다.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편리한 생활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불편함을 겪으며 이전에는 몰랐던, 생활 속 편리함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불편함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프로개와 지박령은 후자에 속했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소소한 행복을 주는 현실에 감사하며 그들만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폐교생활을 수호하고(?) 챙김받고(??) 응원하던 존재들(!). 사방신과 수많은 식물들, 그리고 뒤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알았을까? 자신들의 삶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프로개 블로그에서 보던 사방신들! 책 속에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평균 수명이 짧은 가재는 이미 용궁으로 가버렸다지만, 남은 사방신 친구들은 아직도 폐교를 수호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식물들. 이들이 폐교생활을 하려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한게, 바로 이 식물들이다. 음, 정확히는 수많은 식물을 가지고 오만가지 실험을 해보고자 한 프로개의 도전정신이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그러고 보니 폐교에서 식물이 가장 많았을 때가 화분이 5천 개 가까이 되었던 때라고 한다. 와, 지박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등짝 스매싱이 뭐야! 내 가족이었으면 날 쫓아냈을지도 모르는 스케일이다.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닌데, 그 화분이 5천개 가까이. 심지어 같은 식물이어도 A는 이렇게 키우고, B는 저렇게 키우며 실험까지 하고 있었으니. 이쯤되니 식물 장인, 드루이드 프로개보다 그런 프로개를 옆에서 지켜보고 돌본(?) 지박령이야 말로 진짜 드루이드가 아닐까 싶다. 



하늘을 강조했지만, 이곳에는 초록 또한 가득합니다. 자연적으로 자라는 초록과 남편이 키우는 초록이죠. p 083

바람이 불어 포르르 흔들리며 햇살에 반짝이는 폴리안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p 088

막 수확한 깻잎의 향기가 얼마나 강렬한지 아세요? 한 말만 먹어도 입안에 가득 퍼지는 딸기 맛은 어떻고요. p 172

이곳에는 내가 심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다람쥐와 바람이 씨앗을 부지런히 다르거든요. 옮겨진 씨앗들이 피워낸 꽃은 예상치 못한 순간 기쁨을 주는 것 같아요. p 130




종종 “네가 그렇게 사는 걸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살지 않으니까요. 또 모든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 역시 압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고, 모두가 내가 쓴 글을 재미있게 읽지 않는 것처럼이요. p 140




폐교로 이사 오기 이전에는 날 전혀 돌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단지 자연 속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변할 수 있냐고요? 자연보다는 거리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모든 것들이 멀어졌잖아요. 다른 가족도, 친구들도, 도시도. 한 발 떨어져서 가만히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p 150


나를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한 선택은 굳이 거창할 게 없어요. 더 나은 걸 고르면 되니까요. 당장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그렇게 조금씩 더 좋은 걸 골라 나가면 되는거더라고요. 나와 친해지는 건 그래서 중요해요. 내가 어떻게 하면 기쁘고, 어떻게 하면 슬프고, 어떤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지를 알아야 나를 잘 돌볼 수 있으니까요. p 178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어두운 숲을 지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숲의 깊이와 어두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숲을 피해갈 수는 없어요. 그런데 내 숲은 유독 크고 울창해 보였어요. 어둡고 울창한 숲.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숲. 빛조차 들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런 숲이었죠. 하지만 불혹을 넘어선 지금은 알고 있어요. 어두운 숲 자체가 내 인생이라는 것을요. p 177



누구나 어두운 숲을 지나게 된다. 숲의 끝에 다다랐다고 하더라도, 언제고 또 다시 마주하게 될 어두운 숲. 그 숲 자체가 내 인생이라는 말에 지극히 공감했다. 나 역시 3n년을 살아오면서 어두운 숲을 수차례 헤쳐나왔기에. 더이상 숲에서 헤매지 않으리라!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 다시 숲 한 가운데 들어가있곤 했다. 


과거에는 수많은 이유로 어두운 숲에 빠져 헤매는게 너무 고단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더이상 숲에서 헤매는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숲에서 헤매는 과정이 썩 나쁘지많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연하게 날 힘들게 한 어두웠던 숲이, 사실은 내가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해주는 숲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두렵지 않다. 언제 어느순간에 힘에 부쳐 쓰러지도라도, 나만의 숲은 내가 스스로 일어나길 기다려줄테니까.



그리고 프로개의 연애 편지는...... 아아.... 보면 안될 혈육의 연애사를 본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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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 나만의 취향으로 가꾸는 작은 공간
지은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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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취향’ 뜻을 찾아보면 이렇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취향’의 뜻을 알았으니 이제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바로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왜? 자신의 취향을 바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본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뜻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취향을 바로 대답한다. 그 누군가는 연예인, 가족, 친구 등 모두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바로 대답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르는 모순을 안고 있다. 타인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를 추천하고 싶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취향’ 덕분에 금방 회복한다. 위에서도 말했듯 취향은 본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또는 좋아하는) 이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하다보면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취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이야기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취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얼마 보내지도 못하고 잠든다는 게 억울해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오기를 부리며 매일 늦게까지 시답잖은 일로 시간을 보내다 잠들었고, 아침이면 피곤해서 오늘은 진짜 진짜 일찍 잘 거라고 울먹이며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점점 흐려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자기 일에 불평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p 026


차오르는 감정을 다 쏟아 내고 싶은 날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 앱을 연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소리를 뭉뚱그리지 않고 직시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마음을 마주하면 감당하기 힘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다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에 계속 썼다. 하루는 마음이 울적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문득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쓰면서 풀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내 머릿속 생각을 씀으로써 나와 떼어 놓을 수 있다는 건 나만의 피난처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p 047


현재 ‘취향껏 살고 있다’는 저자는 처음부터 취향이 확고했을까? 아니다. 저자도 그랬다. 시련에 맞닥뜨렸을 때, 훌훌 털어내지 못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뭘 어떻게 해야 내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지 몰랐던거다. 그래서 주저 앉았고, 치열하게 고민해고, 찾아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힘든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이 정도면 괜찮다’와 ‘여기라서 행복하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나의 돌파구가 이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p 112


저자가 찾아낸 자신의 취향은, 본인이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을 바꿔나가는 것. 한마디로 살고 있는 집 인테리어다. 마음속 여유가 없을 때마다,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곳을 조금씩 꾸미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인테리어! 저자는 인테리어를 하며 안정을 찾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에세이 곳곳에 멋진 사진으로 실려있다. 흡사 ‘오늘의 Home’에서나 볼법한 멋진 인테리어 사진들. 저렇게 멋진 집으로 꾸며낼 수 있었던 건, 저자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는 내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취향’을 물어보면 즉답할 정도로,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비교적 빠르게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안으로 눌러담고 있다. 언젠간 이마저도 무뎌질 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고요하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잠시 할 일로부터 떨어져 말랑해질 시간이 꼭 필요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에는 과거의 일에 집착하지도, 오지 않는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현재에 머물렀다. (…) 한때는 그런줄 모르고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수없이 자책했다.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해서 잠시 멍하니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된 지금은 오히려 나에게 시간을 쥐여 주려고 노력한다. p 153


아이들은 세상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처음 경험하는 것투성이라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배워 나간다. 누구에게나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의 마음을 쉽게 잊곤 한다. 여러 번 해 본일은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고, 현실의 중압감에 시달려 어린 시절에 무엇을 좋아했는 지 떠올릴 겨를조차 없다. 나 역시 세상이 놀이터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거 간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채, 바쁘다는 걸 위안 삼아 살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무감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세상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p 170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하루가 견디기 버거워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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