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생활백서, 어두운 숲을 지나는 방법 폐교생활백서
로서하 지음 / 드루이드아일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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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폐교생활백서 출간! 예약 주문하고, 책을 받고 읽는 과정에서 여러번의 이슈가 있었다. 예컨데 폐교생활백서는 프로개님, 지박령님 각각의 시선으로 쓴 두 권이 세트인데, 서점 실수로 지박령님 책만 2권 받았다던가 하는 첫 번째 이슈. 이스터 에그 찾는답시고 하루동안 에세이를 1n차례 여러방법으로 무한 정독했다는 두번째 이슈. 하지만 결국 스스로 이스터 에그를 못찾고, 프로개님 힌트를 보고나서야 찾고나서 몰려드는 허무감이 세번째 이슈. 


첫번째야 어쩔수 없지만, 두번째는 내 스스로 이토록 추리력이 없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고, 세번째는 정말 프로개님을 원망...ㅎㅏ..ㄴ. 아니 진짜!! 이건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보는 사람은 절대 찾을 수 없는 이스터에그인데?! 내 책은 늘 새책이었는데, 이스터에그 때문에 헌책이 되버렸다. 보고있어요 프로개님^_T? 

이스터 에그가 아니었다면 정말 에세이 자체를 곱씹고 또 곱씹을 정도로 마음이 몰캉몰캉해졌던 지박령님 글이었는데! 정말 순수하게 공감하며, 나를 이입해가며 읽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스터에그 존재를 잊고, 짧은 시간동안 있었던 이슈들도 잊고, 폐교생활백서를 처음 만났다고 나 자신을 속이고(....) 다시 읽기로 했다. 

내 마음을 몰캉몰캉하게 만든 지박령님의 힐링 에세이를..!





안식년이 주어진 프로개, 프리랜서였던 지박령. 식물들 사랑하면서도 실험정신이 투철했던 프로개와, 프로개가 하는 일을 반대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봐주던 지박령. 그런 그들의 행보는 결국 폐교 생활로 이어졌다. 누가 봐도 불편함이 예견된 폐교생활. 

마트나 병원, 카페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차타고 기본 30km는 나가야 하는 불편함. 행여나 생필품이 떨어지면, 남들처럼 쿠ㅍ 로켓배송을 시키지 못하고, 차를 타고 30km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곳. 심지어 생활 폐기물 같은 일반적인 쓰레기 처리도 어려울 뿐더러, 치안도 좋지 않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도 망설임없이 폐교 생활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아파트에 살 때도 하늘은 있었어요. 작가가 되기 전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도 내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죠. 어쩌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에도 큰 심상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하늘을 마주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폐교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에요. 굉장히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5년은 내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주었어요. 그리고 나는 오후 2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p 032


보통 불편함을 대하는 자세는 두 가지로 나뉜다.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편리한 생활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불편함을 겪으며 이전에는 몰랐던, 생활 속 편리함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불편함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프로개와 지박령은 후자에 속했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소소한 행복을 주는 현실에 감사하며 그들만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폐교생활을 수호하고(?) 챙김받고(??) 응원하던 존재들(!). 사방신과 수많은 식물들, 그리고 뒤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알았을까? 자신들의 삶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프로개 블로그에서 보던 사방신들! 책 속에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평균 수명이 짧은 가재는 이미 용궁으로 가버렸다지만, 남은 사방신 친구들은 아직도 폐교를 수호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식물들. 이들이 폐교생활을 하려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한게, 바로 이 식물들이다. 음, 정확히는 수많은 식물을 가지고 오만가지 실험을 해보고자 한 프로개의 도전정신이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그러고 보니 폐교에서 식물이 가장 많았을 때가 화분이 5천 개 가까이 되었던 때라고 한다. 와, 지박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등짝 스매싱이 뭐야! 내 가족이었으면 날 쫓아냈을지도 모르는 스케일이다.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닌데, 그 화분이 5천개 가까이. 심지어 같은 식물이어도 A는 이렇게 키우고, B는 저렇게 키우며 실험까지 하고 있었으니. 이쯤되니 식물 장인, 드루이드 프로개보다 그런 프로개를 옆에서 지켜보고 돌본(?) 지박령이야 말로 진짜 드루이드가 아닐까 싶다. 



하늘을 강조했지만, 이곳에는 초록 또한 가득합니다. 자연적으로 자라는 초록과 남편이 키우는 초록이죠. p 083

바람이 불어 포르르 흔들리며 햇살에 반짝이는 폴리안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p 088

막 수확한 깻잎의 향기가 얼마나 강렬한지 아세요? 한 말만 먹어도 입안에 가득 퍼지는 딸기 맛은 어떻고요. p 172

이곳에는 내가 심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다람쥐와 바람이 씨앗을 부지런히 다르거든요. 옮겨진 씨앗들이 피워낸 꽃은 예상치 못한 순간 기쁨을 주는 것 같아요. p 130




종종 “네가 그렇게 사는 걸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살지 않으니까요. 또 모든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 역시 압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고, 모두가 내가 쓴 글을 재미있게 읽지 않는 것처럼이요. p 140




폐교로 이사 오기 이전에는 날 전혀 돌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단지 자연 속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변할 수 있냐고요? 자연보다는 거리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모든 것들이 멀어졌잖아요. 다른 가족도, 친구들도, 도시도. 한 발 떨어져서 가만히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p 150


나를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한 선택은 굳이 거창할 게 없어요. 더 나은 걸 고르면 되니까요. 당장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그렇게 조금씩 더 좋은 걸 골라 나가면 되는거더라고요. 나와 친해지는 건 그래서 중요해요. 내가 어떻게 하면 기쁘고, 어떻게 하면 슬프고, 어떤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지를 알아야 나를 잘 돌볼 수 있으니까요. p 178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어두운 숲을 지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숲의 깊이와 어두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숲을 피해갈 수는 없어요. 그런데 내 숲은 유독 크고 울창해 보였어요. 어둡고 울창한 숲.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숲. 빛조차 들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런 숲이었죠. 하지만 불혹을 넘어선 지금은 알고 있어요. 어두운 숲 자체가 내 인생이라는 것을요. p 177



누구나 어두운 숲을 지나게 된다. 숲의 끝에 다다랐다고 하더라도, 언제고 또 다시 마주하게 될 어두운 숲. 그 숲 자체가 내 인생이라는 말에 지극히 공감했다. 나 역시 3n년을 살아오면서 어두운 숲을 수차례 헤쳐나왔기에. 더이상 숲에서 헤매지 않으리라!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 다시 숲 한 가운데 들어가있곤 했다. 


과거에는 수많은 이유로 어두운 숲에 빠져 헤매는게 너무 고단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더이상 숲에서 헤매는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숲에서 헤매는 과정이 썩 나쁘지많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연하게 날 힘들게 한 어두웠던 숲이, 사실은 내가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해주는 숲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두렵지 않다. 언제 어느순간에 힘에 부쳐 쓰러지도라도, 나만의 숲은 내가 스스로 일어나길 기다려줄테니까.



그리고 프로개의 연애 편지는...... 아아.... 보면 안될 혈육의 연애사를 본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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