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6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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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숑눈숑 밀푀유님의 신간,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시계사」.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나 「은밀한 세계사」를 너무 재밌게 봤기에 이 책 역시 당연히 재밌을 거라 생각하고 구입했다. 그리고 역시나 재밌었다 ㅋㅋㅋ 정말 밀푀유님은 말솜씨가 기똥차다. 한 번 읽으면, 끊을 수 없다. 완전 중독성 갑!! (밀푀유님 블로그.. 왕좌의게임 포스팅 이후로 업데이트가 안되서 슬픔 ㅠㅠ)


이번 세계사 이야기는 앞선 세계사 시리즈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지금까지 역사 이야기를 읽노라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사람이었다. 근데 이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동물, 그것도 반려동물 이야기다. 심지어 종류도 다양하나. 언제든 친숙하게 볼 수 있는 개와 고양이, 비둘기를 시작으로 앵무새, 코끼리, 기린, 코뿔서, 북극곰 등등등. 더 놀라운건 이런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보면 기원전 1세기까지도 올라간다는 사실!


앞선 세계사 시리즈 처럼 이 책 역시 단편들을 한 데 엮은 책이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 감안해야 할 부분이...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 고로 지금 처럼 ‘반려동물’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거다. 동물별로 다르긴 하지만 어떤 시대에서는 ‘신’으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었고, 또 어떤 시대에서는 ‘악마’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대게는 ‘주인을 기쁘게 하는 애완동물’인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반려동물 관련 사업은 핫한가보다. 요새도 길가는 반려견을 보면 각종 옷, 목걸이, 심지어 가방까지 수 많은 장식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근데 이게... 옛날부터 그랬다는게 넘나 소오름이다.

기원전 1401년부터 기원전 1391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던 제18왕조 제8대 왕인 투트모세 4세 시절 살았던 왕실 부채관리인이자 24살쯤에 사망한 마이헐프리라는 사람의 무덤에서는 유리잔, 도자기, 화살통 2개, 화살 75개, 고기, 빵과 더불어 개목걸이 2개가 출토되기도 하였습니다. 선인장 꽃과 말들이 그려진 개몰걸이에는 황동 단추가 장식되어 있고, 아이벡스와 가젤을 사냥하는 개들이 그려진 다른 목걸이네는 개의 이름인 ‘탄타누트’가 새겨져 있습니다. _P 016

유럽의 왕족들은 반려동물들을 호화롭게 장식하는 데 특히 공을 들였습니다. 개들은 세밀하게 장식된 밥그릇에서 고급 음식을 먹었고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하인들이 있었으며 벨벳이나 실크로 만든 쿠션, 또는 아예 왕의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곤 했습니다.
프랑스의 샤를 5세는 작은 강아지를 위해 종이 달린 은목걸이와 백합문양을 금실로 수놓고 금으로 만든 걸쇠를 단 파란 비단 목걸이를 주문했습니다. 파란 천 위의 금색 백합은 프랑스 왕실의 상징이니 누가 보아도 왕의 기앰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왕 루이11세의 그레이하운드는 무려 20개의 진주와 11개의 루비가 장식된 붉은 목걸이를 하고 다녔습니다. _P 022


와... 정말 그야말로 ‘개팔자가 상팔자’다. 심지어 이건 개에 한정된 게 아니다. 왕족/귀족들의 사랑을 받은 다양한 새, 족제비, 다람쥐 등도 이런 호화스런 장신구를 달았다고 하니, 와. 왕족/귀족만 살기 편한 시대인 줄 알았더니, 왕족/귀족이 키우는 애완동물까지 살기 편한 시대였다. 이런 동물들을 보는 서민들은 얼마나 박탈감이 느껴졌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불만을 품던 서민들은 불만의 칼끝을 귀족이 키우는 애완동물에게 향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죽어라 일만 하며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이던 일꾼들은 신이 나서 나무 몽동이와 쇠막대를 들고 길거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란 고양이는 죄다 잡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마님이 애지중지하던 라그리즈도 예외는 아니었죠. _P 065


정말이지 난 강형욱 훈련사 같은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진짜 본인 스스로 강아지‘강’씨라고 할 만큼 강아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니까(과거에 세나개 본방사수하며 겁나 팬이 된1인). 헌데 왠걸? 과거에도 있었다. 심지어 이 사람은 개 뿐만 아니라 각종 동물들을..ㄷㄷ

아 물론 동물을 극심하게 사랑한다고 하기엔 어패가 있.......긴 하지만, 뭐 그래도 동물을 사랑하기는 엄청 사랑한 사람이었나보다.

19C 중반에 세상을 떠난, 그의 이름은 윌리엄 버클랜드. 그는 웨스트 민스터의 주임 사제이자 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이자 광물학자이자 신학자이자 동물수집가이며 동물학자였다. 그가 발견한 것 중 제일 유명한 건 ‘메갈로사우르스’. 당시에는 공룡이라는 존재 자체도 없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버클랜드가 발견한 거대한 뼈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오죽하면 그 이름을 ‘거다란 도마뱀(메갈로사우르스)’라고 붙였겠나. 근데 뭐 이건 고생물학자로써 버클랜드이고, 동물학자로써의 버클랜드는 또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동물이라면 살아 있는 것도, 갓 죽은 것도, 죽은 지 아주아주 오래된 것도 모두모두 좋아했던 버클랜드의 집은 동물원을 넘어서 거의 야생수준이었습니다. (중략) 버클랜드 부부는 이 동물들과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연구하고 먹었습니다. 응? 잠깐 멈칫한 당신을 위해 다시 말씀드리면, 버클랜드는 자기가 키운 동물은 물론, 곤충까지 대부분 먹어치웠습니다. _P 112


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물을 정말 사랑해서 동거동락하지만, 그 동물을 먹어치웠습니다. 정말 난 무엇을 읽었나 싶었지만, 뭐 지금 우리 가치관으로 당시의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면 안되는거니까. 하 ㅋㅋㅋㅋㅋㅋ그래도 뭔가 막, ...하 ㅋㅋㅋㅋㅋㅋ근데 버클랜드는 동물이나 곤충만 먹은게 아니었다.

버클랜드는 동물한테서 나온 거라면 고기뿐만 아니라 피도 먹고 배설물까지 먹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일화도 있답니다._P113


강형욱 훈련사도 과거에 강아지 배설물을 직접 맛봤다고 했었는데, 하...... 버클랜드는 종류 불문, 동물한테 나오는 거라면 죄다 맛을 봤다. 이거 참 뭐라해야할지, 참ㅋㅋㅋㅋ 건강에도 안좋을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73세까지 산 거 보니 건강했었나 싶고. 동물학자, 훈련사 등등 관련 직업을 가지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나 싶고.......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에는 고양이에 대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야기가 몇 편 나온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으로 추앙받았고,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가 키우는 동물이라며 악마취급을 당했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특히 뱃사람들 사이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추앙받았다. 정말 고양이만큼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가진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그리스 역사가인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따르면 만약 이집트에서 누군가가 신성한 동물들, 고양이라든가 따오기 등을 살해할 경우 무조건 사형에 처했습니다. 군중은 고양이 살해자에게 손톱만큼의 자비도 보이지 않고 아주 잔인한 처벌을 요구했으며 가끔은 재판조차 치르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_P 033


이렇게 고대부터 신으로 추앙받던 고양이들. 이후에는 농사꾼의 천적인 쥐를 잡아먹는 다는 것이 알려진 뒤 이집트를 떠나 전 유럽에서 사랑받았다.

그런데..! 문화적 발전이 엄춰버린 암흑기, 중세유럽인들은 고양이를 이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고양이의 생활습관 및 사냥습관, 심지어는 아름다운 눈동자까지 악마와 연결시키며, 잔혹한 대 학살극까지 벌어진 것이다.

‘내가 돼지우리에 고양이가 있기에 그 고양이의 오른쪽 뒷다리를 곡괭이로 후려쳤더니, 저쪽 오솔길에 혼자 사는 수상한 여자가 다음날 오른쪽 다리를 절고 다니더라! 마녀가 고양이로 변신했던 것이 틀림없어!’. ‘얼마전에 숲의 노파한테 비키라고 욕을 했는데, 얼마 뒤에 왠 고양이가 우리 집 소 등위에 앉아있더라. 그 소는 다음 날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었어. 마녀가 저주를 내린거야!’ _P 054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9세는 1233년 6월 13일에 교서를 발표했다. 악마 숭배자들에겐 철퇴를 내려야한다고. 당시 고양이는 마녀가 키우는 동물이라는 풍조가 팽배하였므로.. 길거리에 있는 모든 고양이들은 그렇게 참혹하게 죽어갔다. 책 속에는 당시 중세유럽인들이 어떻게 고양이를 죽었는지 자세하게 나와있지만, 차마 포스팅으로 옮길 수가 없을 정도로 잔혹한 죽음이다. 정말 중세 유럽은 암흑기다. 문화적으로만이 아니라 정말 모든 분야에서.

그래도 꽤 오랜시간이 흐른 덕분인지, 중세시대가 종말을 고했기 때문인지 알수는 없으나 고양이에 대한 평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세유럽에서는 악마로 보였던 고양이의 쥐 사냥이, 근대에 들어와선 사람들에게 정말 유익한 행동으로 변한 것이다. 심지어 악마 그 자체라고 했던 검은 고양이는 근대에 와서는 행운의 여신이 되었다.

‘배를 탄 고양이는 태풍을 몰아낸다’, ‘검은 고양이를 키우면 그 힘이 바다에까지 미친다’, ‘고양이 꼬리에는 태풍을 불러낼 수 있는 마법이 있다’, ‘고양이가 다가오면 행운이지만 오다가 돌아가면 불운이다’ _P 164

1900년대 후반, 바다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던 미신이다. 바닷사람들이 배를 탈 때는 고양이를 배에 두는 것이 필수였고, 배에 고양이가 없다면 쥐가 화물을 갉아 먹었을 경우, 화물 주인은 배의 주인에게 고소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고양이는 바다사람들의 축복이자 신이었다.

그리고 지금, 고양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나만 없어, 고양이!!!” 라는 영화와 명언까지 만들어 냈으니 말 다 했다. (나도 없다, 고양이 ㅜㅜ)


이 책에는 두 마리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 코끼리는 이름이 점보, 또 다른 코끼리의 이름은 메리이다. 이 두 코끼리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동물은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뇌에 선명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아기코끼리 점보. 점보는 사냥꾼들에게 가족을 잃고 홀로 서커스단에 팔려왔다. 점보는 서커스 상품으로써, 수많은 아이들을 자기 등에 태웠다. 서커스단은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당시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에, 점보의 사육환경은 상상이상으로 최악이었다. 서커스단 단장은 더이상 점보를 케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는 데, 때 마침 그 시기에 점보가 기차에 치어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황상 사고보다는 서커스단에서 고의로 죽인 것으로 보이지만, 뭐. 그래도 죽어서나마 자유로워지려나 싶었던 점보는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사람들은 죽은 점보의 시신을 박제하여 역시나 돈벌이로 사용하였다. 상아는 조각내어 팔았고, 고기는 정육점에다 팔았으며, 내장은 불태웠다. 심지어 점보의 기름은 진통제라며 병에 담겨 팔려 나갔다. 당시 점보의 뱃속에는 호루라기, 동전, 열쇠 등 별의별 물건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기 코끼리 메리. 메리 역시 점보처럼 사냥꾼에게 잡혀와 서커스단에 팔려왔다. 점보와 똑같이 서커스 상품으로써 활용되었다. 역시나 ‘동물 보호’는 개나 줘버리는 인식이 팽배했다. 당시 메리에게는 오래된 충치가 있었는데, 하필 조련사가 이 부분을 건드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메리는 몸부림을 쳤고, 조련사는 메리의 발에 치여 사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사람을 죽인 코끼리를 죽여야 한다고 강하게 외쳤고, 실제로 메리를 죽였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메리를 죽이기 위해 수 많은 살해방법이 거론되었는데 하나 같이 잔인하기 그지 없는 방법들이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채택된 방법이 철도 조차장에 있는 기중기에 목을 매다는 것. 메리가 죽어가는 과정 역시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어린 코끼리가 두려움에 떨다가 식음을 전폐하면 억지로 입을 열고 위스키를 강제로 먹였고, 훈련 중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이니 불훅같은 도구로 피부가 찢어지고 뚫리도록 인정사정없이 폭행했습니다. 피부가 두꺼워 보인다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닌데도요. 불훅은 코끼리를 사람의 입맛에 맞게 움직이게 할 때 사용하는 잔인한 도구로, 새의 부리처럼 휘어진 뾰족하고 날카로운 쇠가 막대 끝에 달려있습니다. 코끼리 조련사들은 갓 잡혀 온 아기코끼리의 온몸을 묶고는 귀 뒤, 항문, 무릎, 정수리, 코, 잎, 눈가를 세게 찔러대며 불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불훅 트라우마에 몸부림치던 아기 코끼리는 훗날 4톤이 넘는 강한 어른 코끼리가 되어서도 불훅 앞에서 공포에 떨며 반항하지 못하고 인간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되지요. 이러한 끔찍한 도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니 코끼리가 묘기를 부리는 서커스나 코끼리를 탈 수 있다는 관광상품을 보신다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_P 215


이 지구상에서 제일 위험하고 무섭고 잔인한 동물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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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던 우리에게
이창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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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까지만 해도 읽지 않던 장르 중 하나가 #에세이 였다. 올해들어서 독서편식을 줄여보고자 에세이도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까지 읽은 에세이는 일종의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이창현 에세이 「아름다웠던 우리에게」 역시도 그런 류라고 생각했는데, 웬 걸!

이 에세이는 짧은 글이라고 해야할까, 감성 시(詩) 라고 해야할까, 뭐 여튼 그런 형식의 에세이였다. 뭐 독서편식을 타파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에세이니까. 긴 글이면 어떻고 짧은 글이면 어떠하랴. 다만 감성적인 짧은 글은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시(詩)’에 대해 배울 때 유독 어려웠던 나였다. 그나마 이해했던 분야는 시대 불문 ‘정형시’로 적힌 것들. 그 외의 시는... 하....

내가 이해 못할 것들은 ‘시적 허용’이라는 이름 하에, 시에서만 허용이 되는 것들이었다. 물론 같은 시적 허용이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는 시는 예외다.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읽을 때 흐름이 끊기지 않는 시라면 좋았다. 어떤 시든 좋았다. 대표적인게 윤동주님의 시랄까?


하지만 ‘틀’에서 벗어나고, 읽을 때 흐름이 끊기는 시는 이래저래 불편했다. 이런 시가 그렇다. 시라고 해야하나, 짧은 글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나의 편협한 생각과는 다르게 이 분도 이런 글을 쓰며 누군가에는 감성 깊은 시, 좋은 시라고 박수를 받았을 거다. 그렇게 박수를 받고 호응을 받았기에, 자신의 글을 모아 에세이집을 발행했겠지. 무엇보다 이 책은 저자의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지금에 와서 깨달은 건 이런 짧은 글이나 시는 분석하려는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감성’이라는 눈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 난 심지어 문과생이었는데, 감수성이 메말랐는지ㅜㅜ 수련이 부족한가보다.



나름 틀에서 벗어나서, ‘감성’이라는 눈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다보니 꽤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뭔가 생각을 할 수 있는 구절이랄까?


당신이란 꽃은 아름다워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예쁘게 피어난 이 꽃 처럼
내게 항상 예쁜 사람이 되어주세요.


사람은 저마다 꽃을 피울 꽃봉오리와 같다. 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물도 주고, 벌레도 쫓아내는 등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듯, 나를 위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내 자신에 대해 먼저 알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등 나를 알아가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를 위한 이 꽃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피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꽃을, 자기가 원하는 데로 피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여유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물론 온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를 위한 꽃을 피우려면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이 힘든 세상을 살아내는데 내 온 힘을 쏟게 마련이다. 나를 돌아 보며 내 자신을 알아가야 하는 그 시간에,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바쁜 일상을 보낸다. 아마 그게 나를 포함한 모든 현대인이 겪는 일이 아닐까.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쯤 우리 모두가 나만을 꽃을 피우기 위해, 내 자신을 온전히 바라 볼 수 있을까?

(뭐지????! 난 ‘감성’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맞는건가. 이건 감성의 눈으로 보는게 아닌 것 같은데 ㅠㅠㅠㅠ... )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좋은 날만 가득하길 바란다.
가끔은 슬픈날도 있겠지만, 오래 슬프지 않기를 바란다.

(아..... 역시 이런 감성글은 나랑 거리감이 있..다......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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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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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 일본인에 대해 제일 객관적인 저서로 꼽히는 책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일본과 일본인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인용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덕분에 이 책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를 쉽게 알 수 있었고, 꼭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단 한 번도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오판이었다. 나는 단순하게 이 책은 일본인의 이중성 내지는 양면성, 혼네/타테마에 등에 저술했다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의 의도가 단순히 일본인의 이중성을 밝히는 거라고 단언하기에는,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이 책,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에 대한 내용을 쓰면서, 정작 일본에는 단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었다.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기록할 수가 있지? 싶었다. 이 책은 서양인의 눈으로 본 일본인이되, 그 일본인을 아주 오랫동안 옆에서 관찰하고, 그들과 동거동락하며 기록한 내용처럼 정말 세밀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세하게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헌데도 이렇게 방대한 양을 기록했다는 건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본에 관한 많은 서적을 읽었고, 일본은 가지 못했지만 일본이 아닌 제 2국에 있는 일본인을 만나서 관찰했다는 거다. 루스베네딕트, 그녀는 정말 대단한 문화인류학자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미국 정부의 요청이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이 생각했던 것 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전쟁에 임했기 때문이다. 분명 전세는 미국으로 기울었는데, 일본은 계속 죽음을 불사하며 전쟁에 임했다. 전세를 바꾸는 데 1도 도움이 되지 않았음에도, 일본은 자살특공대를 활용했다. 심지어 일본의 자살특공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봐도 충격적인데, 당시 이런 일본을 상대한 미국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래도 일단 전세는 미국쪽으로 기울었으니, 일본이 패전하게 될 경우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지 연구도 필요하고 그렇기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게 시급했다.

 

일본에 대해 연구한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기 위해 연구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답을 찾았다. 대체 무엇으로 일본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지, 일본인을 지배하는 관념이 대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녀가 찾은 해답은 바로 이 것들이다.

 

일본인이 사용하는 범주와 상징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일본인의 많은 행동적 모순은 이미 모순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 할 것이다._ P 043

 

알맞은 위치 - /(/, /) - 의리/義理 - 수치/- /- 인정/人情

 

우리가 알고 있는 수 많은 일본인의 이중성, 모순된 행동은 위의 다섯가지 항목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은()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은()이 다르고, 우리가 생각하는 의리(義理)와 일본인이 생각하는 의리(義理)가 다르다는 점이다. 수치, , 인정도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평생 일본을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어떤 포로는 죽여 달라고 요청했고, “그러나 당신들의 관습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범적인 포로가 되고싶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범적인 포로 이상이었다.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극단적인 국가주의자였던 그들은 탄약고의 위치를 알려 주고, 일본군의 병력 배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미군의 선전문을 쓰고, 미군의 폭격이에 동승하여 군사 목표로 유도해주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것 같았다. 새로운 페이지에 쓰인 것과 낡은 페이지에 쓰인 것은 정 반대였지만, 그들은 새 페이지에 쓰인 구절을 한결같이 충실하게 실천했다. 물론 포로 전부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_P 071

 

미국은 이러한 일본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죽창을 들고 자기를 죽이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오던 일본군이 그 태도를 180도 바꾸는 모습, 근데 심지어 그 모습이 정말 진실된 모습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하지만 포로로 잡혔던 저 일본군 입장에서는 그 나름대로 자기가 현재 처한 알맞은 위치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끈임없이 죽여달라고 요청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포로들은 자기 위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죽고자 했던 포로는 당시 일왕에 대한 으로, 적군에게 잡힌 수치심으로, 자기 이름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죽고자 한 것이다. 정말 소름돋게도 서로 다른 행동을 한 일본군 포로들이지만, 이 포로들은 전부 본인들의 살면서 새겨온 그 가치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알맞은 위치라는 가치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는 일본이 자국 국민들에게 태평양전쟁에 대해 가르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은 자기네 나라가 아시아에 있는 여러 국가들의 형이라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형이라는 위치는 동생들을 잘 돌보아야 하는 법이다. 일본의 가정은 아버지(연장자)가장이 되어 가정을 진두지휘한다. 아버지가 가장의 위치에서 내려오면, 다음 가장은 장남이된다. 일본은 자기들이 말하는 대동아 공영권에서, 지네 나라가 형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 가장의 역할을 하려고 한거다. ‘가장의 대표적인 역할이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인데, 이 때 일본이 말하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서양이었다. 그러니 일본은 형(가장)이라는 위치에서 동생들과 힘을 모아 외세와 맞서 싸웠다는 이론이다. 이게 일본이 말하는 태평양 전쟁, 아니 대동아전쟁이다.

 

그렇다면 저 가장의 알맞은 위치, 일본이 규정하는 알맞은 위치는 대체 무엇일까.

 

그 어떤 나라든 근대화가 되기 이전에는 전부 계급제가 있었다. 일본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계급제도가 여타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나라는 을 비롯하여 귀족, 백성, 천민 으로 구성된다면, 일본은 그렇게 간단히 말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왕은 있는데 그 왕이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 근데 또 그 왕을 무시하자니, 그 왕이 정치를 하는 쇼군을 임명했다. 그러면 쇼군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스렸나? 그건 또 아니다. 이라 부르는 지역별로 다이묘(영주)들이 있었다. 각 번에는 다이묘를 모시는 가신집단이 있었고, 그와 별도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있었다. 물론 고대, 중세, 근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본의 계급제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렇든 저렇든 계급제 국가에서는 쿠테타 내지는 혁명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한국의 역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가깝게는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조금 더 올라가면 고려시대 만적의 난 등.. 하층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일본은 그런게 없었다. 일본에도 분명 하층계급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걸 당연시 했다. 불합리하다는 의문을 갖지 못했다.

 

이렇든 저렇든 일본에서도 서민 계급은 분명히 있었다. 높으신 분들에게 피 쪽쪽 빨리는 계급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그게 본인들의 위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말 쉬운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저들이 말하는 천황이다. 만세일계 현인신이라는 천황은 일본의 국교인 신토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일본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신토, 그 중 최고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직계 후손이 바로 천황가라는 것이다. 3자의 눈으로 봤을 땐 뭐 저런 제도가 있지? 싶을 수 있는 그 천황제가 일본인에겐 태어나면서 접하는 살아있는 인간신 이라는 이야기다. 신이 우리 곁에 있으니, 우리도 당연히 이 자리를 지켜야된다. 라는 거랄까.

 

그래서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천황제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이용했다. 일본인은 천황이 하라고 하면 당연히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천황이라는 존재가 계속 있어야만 전쟁 후 일본을 통치하는데 수월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12세기 이래 쇼균이 실권을 박탈당한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를 통치했던 것이다. 어떤 시대에는 직능이 극단적으로 분할되어, 유명무실한 주권자인 천황이 세습의 세속적 수장에게 위탁한 실권이, 그 수장의 세습적 정치 고문에 의해 행사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 권력은 항시 이중 삼중으로 위탁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명백이 끊어지려는 최후의 시기까지도, 페리 제독은 일본 권력 구조의 배후에 천황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라지 못했다. _P 102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이라도 온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국기를 정중하게 다룬다. 그런데 일본인은 더없는 상징성을 지닌 인간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국민은 공경을 다하고 천황은 거기에 응답했다. 그들이 천황이 국민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황송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온 몸을 희생했다. 일본처럼 완전히 개인적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치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 _P 178

 

일본인의 삶은 태어나면서 짊어지는 의무가 있다. 그게 바로 은혜()이다. 이 은혜가 무엇인고 하면, 평생 다 갚지 못하지만 갚아야 하는 부채이다. 그럼 대체 무엇이 은인가?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황에 대한 보은()이다. 부모에 대한 은()이다. 이 두 가지는 일본인으로 태어났다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개념이다. 특히 일본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가치관 중 제일 우선시 되는 것이다. 만약 충과 효에 충돌이 생긴다면, 당연히 충을 따라야한다. 물론 여기에 함정이 있긴 하다. 충을 따르면서 효를 저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효를 저버렸다는 것만으로 자기 이름 내지는 명예를 모욕한 것이 되버린다. 그럼 그 끝은? 결국 할복이다. 두 가지의 가치관이 충돌할 경우, 그 끝이 할복(자살)로 끝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충도 지키고 효도 지켰다는 명예를 얻게 된다. 일본인들이 유독 자살에 열광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다. 사무라이 할복, 연인의 자살, 전쟁의 자살특공대 등, 유독 자살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미화가 되는 이유는 이러한 점에서 기인한다.

 

국화와 칼164P - 일본인의 의무 및 반대 의무 일람표

 

일본인에게 형성되는 이런 가치관을 보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저런 이론이라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했을 때, 당시 천황은 할복했어야 했다. 일본 전국시대에서 각 다이묘들의 전쟁만 봐도, 전쟁에서 질 경우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을 한다. 일개 다이묘들도 그랬는데, 일본을 대표한다는 천황이 전쟁에서 졌고, 자기 나라의 명예를, 본인 이름의 명예를 더럽혔다. 일본인의 가치관으로 보면 더럽힌 명예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할복 밖에 없는데, 천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천황의 태도 역시 일본의 가치관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거다. 바로 알맞은 위치’. 전쟁에서 졌고, 본인은 패전국의 수장이라는 위치를 지키며 유례없이 미국에 충성을 했다. 정말 반항 1도 없이..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 천황의 목소리가 방송되기 전에 강경한 반대자들은 궁성 주위에 비상선을 치고 정전선언을 저지하려 했다. 그런데 그 선언을 일단 발표한 다음에는 모든 사람이 그것에 승복했다. 만주나 자바의 현지 사령관도, 일본에 있던 도조(도조 히데키, A급 전범), 누구 하나 그것을 거역하려 하지 않았다. 미군은 비행장에 착륙하여 정중한 환대를 받았다. 한 외국인 기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며 착륙했지만, 점심 때는 총을 치워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해드렸다. 1주일 전까지 그들은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죽창으로라도 오랑캐를 격퇴하기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P_181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한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의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_P 225

 

일본은 시작부터 모순적이었다. 모순은 그 땅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우리가, 주변의 여러국가가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삶이었다. 그건 일년이 흐르든, 십년이 흐르든,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은 그 모순을 들먹이며 이웃나라를 침략하였으며, 침략한 사유를 모순적인 가치관을 들어 정당화시켰다. 아니 지금도 정당화시키고 있다.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이라도 온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국기를 정중하게 다룬다. 그런데 일본인은 더없는 상징성을 지닌 인간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국민은 공경을 다하고 천황은 거기에 응답했다. 그들이 천황이 ‘국민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황송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온 몸을 희생했다. 일본처럼 완전히 개인적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치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 - P178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한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의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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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초라한 스물아홉이 되었다
김세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 제목을 보자 느꼈다. 이 책은 꼭 읽어봐야 된다고 .

 

반짝 반짝 빛나던 나의 10대 때, 난 지금 이 나이가 된 내 모습이 어떨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적어도 10대의 내가 생각했던, 지금의 내 모습은 언제나 당당했다. 적어도 지금처럼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며 사회에 굽신거리는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올해 들어 유독 삶이, 정확히는 회사에 찌들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는 내 삶이 너무 힘들었다. 아니지, 지금도 힘들다.

 

그 동안 나는 얼마나 일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29, 10(120개월) 동안 내가 일한 기간이 얼마나 될까?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는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평생 이렇게 한량으로 지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대충 주말, 파트타임, 단기 아르바이트 등 전부 합쳐 55개월 (47개월) 정도 일했더라. _P 021

 

30살이 가까운 성인이 돼서도 10대 때와 변함없이 부모님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 비참한 거더라. 나이 먹을 만큼 먹어 놓고도 여전히 자기 인생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어쨌든 나는 부모님의 삶을 지불하고 나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_P 025

 

저자는 스물 아홉인 지금 백수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가 백수인 이유는 딱 두가지다. 반은 사회를 쉽게 바라보고 하루하루를 보낸 탓, 나머지 반은 어쩔수 없는 저자 본인의 건강 탓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겪는 희귀병, 이러한 건강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 일단 그 부분은 잠시 뒤로 하고 그 외의 저자의 삶을 보자. 저자는 정말 사회를 쉽게 바라본 듯 하다. 그저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적인 문구를 믿었고, 그에 수반되는 노력을 등한시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뭐든 될 거래 생각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본인이 그 노력을 안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저자 본인이 치열하게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후회하며, 한창 잘 살아야하는 그 10년을 아무 생각없이 보내면 어떤 모습이 되는 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20~24살 조금더 놀고, 이 고민 저 고민 하면서 정신 못 차리고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오래 딴짓을 해도 여전히 20대 초반일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분득 내 나이가 몇인가 생각해 보니 어느새 20대 중반이 돼 있었다. 20대 초반에 쌓았어야 할 스펙과 경력이 텅텅 비니까 20대 중반부터 줄줄이 안좋은 상황이 터지기 시작했다. _P 104

 

난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지방 세무서 인턴을 반 년 정도 하다가,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벌써 만 9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사대보험을 따박 따박 내면서 경제생활을 한 지가 벌써 10. 물론 그 이 전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한 것 까지 생각해보니, 정말 난 언제나 돈을 벌며 하루 하루를 살아왔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생활하기 어려운 집안도 아니었다. 우리집은 어느 집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맞벌이 가정이었고, 두 분은 나와 내 동생을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다. 그저 나를 너무 강인하게 키우신 부모님 덕택에, 내 용돈은 내가 벌어 써야될 것 같았고, 학자금도 내 돈으로 내야 될 것 같았으며, 결혼자금과 집 구매도 내 돈으로 해야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또래보다 경제생활을 더 빨리 시작했고, 덕분에 또래보다 수중이 넉넉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뭐든 이라는 게 있다. 공부를 열씸히 해야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그 날을 즐기며 놀아야 할 때,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때. 하지만 나는 그 를 잘 못 맞췄던 것 같다. 특히 놀아야 할 때를 말이다. 청춘이 빛나는 시기라는 20. 나의 20대는 전부 지금의 회사였다. 그저 회사에서 열씸히 일했다. ! 그 중간 중간에는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며 몇몇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방통대 편입을 하여 2년만에 졸업하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많은 친구들이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그래서 더욱 학업에 대한 욕심이 생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공부를 좀 하고 보니, 이제는 놀고 싶어지더라. 내 또래 친구들이 놀러다니던 시간에도 나는 회사였으니까. 그래서 또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20대 중반 이야기다.

 

예전에 나는 20대 후반에도 20대 초반처럼 능숙하게 할줄 아는 일이 없어도 신입이어도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전공으로 배운 것도 없다 보니 언제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23살에 하는 공부, 하는 일들이 20대 후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뭔가 하나를 특별히 배워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_P 108

 

20대 후반이 되었다. 또래보다 빠르게 경제생활을 한 덕택에 대출없이 내 집 마련을 했다. 내 힘으로 결혼도 했다. 결혼까지 하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놀고 싶어지더라. 결혼 전에는 대게 부모님 의견을 따랐다면, 결혼 후인 지금은 오로지 내 의사대로 결정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주말마다 치열하게 놀러다녔다. 물론 그 사이에 이런 저런 일도 많았다. 내가 살던 집이 재건축이다 뭐다 하면서 부서지고, 팔자에도 없는 전세살이. 그러다 또 다른 새 아파트 청약 당첨 기타 등등등. 어라, 이렇게 보니 내 20대 후반은 썩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우와,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책을 읽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20대 때 내가 부러워하던 사람은 저자같은 삶을 살던 사람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저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동갑 친구가 0,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은 1명이다. 대인관계가 1명이라는 소리다. 너무 심한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가치관 차이, 오로지 가치관의 차이로 하나 둘 멀어져 갔다. _P 198

 

나 역시 대인관계가 너무 좁다. 핸드폰 연락처를 보면 가족을 포함하여 몇 안되는 내 사람들과 회사사람들이 끝이다. , 원체 폭 넓게 사람 사귀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향이 일부 있기도 했다. 가족들과도 가치관이 안맞아 다투는 경우가 허다한 데, 생판 남인 사람들은 더 심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 사귀는 데도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사람과는 오래갈 인연, 이 사람은 이 곳을 떠나면 연락이 금방 끊어질 인연, 이렇게 판단했다. 후자에 대한 인연은 정말 알아차리기 쉬웠다. 그래서 나 역시 딱 그 정도로만 사람을 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전자는 반반이었다. 정말 오래갈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니 그 때 그 때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예를 들어 나는 또래들 보다 경제생활을 먼저 했고, 결혼도 빨랐다. 반면 동 시간대 내 또래들은 학교를 다니거나, 놀러다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당연히 만나도 서로 대화가 안 통할 수 밖에. 행여 놀기만 하는 친구들이, 사회를 쉽게 보는 친구들이 걱정되 하는 내 말을 고깝게 들으면 어쩌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정말 걱정어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쉽게 받아치는 친구들을 보며, 이후 더 이상 깊은 말을 안하게 되었고, 그냥 멀어지기로 했다.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거다.

 

주변에 꼭 이런 사람 있다.

1. 기승전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인 사람

2. 심하게 부정적인 사람

3. 불행한 얘기만 하는 사람

그들은 일상에서 생긴 작은 스트레스부터 저 깊숙한 곳에 꾹꾹 눌러 있던 시커먼 고민까지 잔뜩 쏟아 놓고는 한다. _P 202

 

위 대인관계의 연장선 인 것 같다. 저렇게 고민을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이야기를 하면, 외려 화를 낸다. 넌 잘 모른다고, 이해 못할거라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행한 사람인데 왜 이해를 못하냐고. 그래서 그냥 내가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연락을 끊었다. 무엇보다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저 아이들을 보면서, 난 그저 그들이 사치를 부리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불행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 내 하루하루 삶이 정말 치열하고, 고단하며, 쉴 틈이 있을 때 정말 온전히 쉬기 바쁜 사람들은 불행을 느낄 시간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뭐 그렇다.

 

누구든 무조건 어른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게 되어 있다.

그 책임이라는 게 별것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무엇이든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다 보니 초라한 스물아홉이 되었다_ P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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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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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문집의 저자는 박정민이다. 누군가는 배우 박정민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작가 박정민이라고 말한다. 물론 둘 다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작가 박정민이었다. 내가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배우 박정민이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배우라는 편견없이 이 산문집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에 있듯 이 산문집에는 그럴 듯한 문장이나 서사는 없다. 그저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 낸, 그리고 지금도 살 고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또래의 누군가와 비슷할지도 모르는 그의 삶이 특별해서 책으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이 이겨낸 하루 하루를 자기만의 형식으로, 문자를 빌려 몇 페이지의 글로 옮겨 적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고, 심지어 발간된지 몇년 만에 개정증보판이 나왔다는 건 그 만큼 그의 이야기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 매력이 끌려 그의 이야기를 읽었다. 아니, 들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전부 처음이 있다. 처음으로 학교를 가거나, 처음으로 돈을 벌거나, 혹은 처음으로 사랑을 하거나. 이 처럼 처음이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이 처음은 항상 성공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좌절과 실패를 맛보는 처음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어떤일을 하든 처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건, 언젠가 이 처음으로 한 경험이 익숙한 일이 될 것이며, 내 성장에 자양분이 될 것 임을 알기 때문이다.

 

! 정말 중요하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고 산다. 멀리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웹툰 볼 시간도 있고, 드라마를 볼 시간도 있고, 뉴스를 볼 시간도 있는데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 참 이상하다. 책을 안 읽어버릇 하니 같은 글을 읽어도 내용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늘고, 카톡이나 SNS 등을 보낼 때 간단한 문장을 쓰는 것도 못한다. 인간이란 글과 멀어질래야 멀어질 수 없는 동물인데, 이렇게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니 가끔은 십 년후, 이십 년 후 대한민국이 걱정될 때도 있다.

 

아무튼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 수록 상실하는 것돠 상실되는 것이 하나씩 늘어가는 모양이다.

나에게는 어떤 감정의 알 수 없는 형태일 수도 있겠고 ()

어짜피 끝내는, 다 잘될 거다. _P 084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더라는 것이다._P 097

 

이 책은 저자가 살아가는 이야기지만, 어찌보면 지금을 살고 있는 청년들을 위로해주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읽다보면 꼭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는 뭐가 무섭니?”라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어짜피 다 잘될 거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라는 말은 삶에 지쳤던 저자 본인에게 하는 말이면서, 지금을 사는 모든 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그저,

의 침묵과

그랬구나. 가끔은 그럴 수 있어.”의 동의가 필요한 순간인데 말이다. _P 161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힘들다고, 혹은 오늘은 이런이런 일이 있어서 매우 화가 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얼마나 잘 들어줬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들어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되면 꼭 답을 내려줘야 할 것 같고, 그 상황을 분석해야할 것 같고, 잘잘못을 따져줘야 될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내 인간관계가 좁은 건가 싶기도 하고. 하 뭔가 급 내 삶을 반성하게 된다. 지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야겠다 싶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저자가 이 산문집을 읽는 독자들에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 한 문장 이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바로 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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