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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초라한 스물아홉이 되었다
김세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 제목을 보자 느꼈다. 이 책은 꼭 읽어봐야 된다고 ….
반짝 반짝 빛나던 나의 10대 때, 난 지금 이 나이가 된 내 모습이 어떨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적어도 10대의 내가 생각했던, 지금의 내 모습은 언제나 당당했다. 적어도 지금처럼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며 사회에 굽신거리는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올해 들어 유독 삶이, 정확히는 회사에 찌들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는 내 삶이 너무 힘들었다. 아니지, 지금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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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나는 얼마나 일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29살, 10년 (120개월) 동안 내가 일한 기간이 얼마나 될까?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는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평생 이렇게 한량으로 지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대충 주말, 파트타임, 단기 아르바이트 등 전부 합쳐 55개월 (4년 7개월) 정도 일했더라. _P 021
30살이 가까운 성인이 돼서도 10대 때와 변함없이 부모님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 비참한 거더라. 나이 먹을 만큼 먹어 놓고도 여전히 자기 인생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어쨌든 나는 부모님의 삶을 지불하고 나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_P 025
저자는 스물 아홉인 지금 백수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가 백수인 이유는 딱 두가지다. 반은 사회를 쉽게 바라보고 하루하루를 보낸 탓, 나머지 반은 어쩔수 없는 저자 본인의 건강 탓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겪는 희귀병, 이러한 건강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 일단 그 부분은 잠시 뒤로 하고 그 외의 저자의 삶을 보자. 저자는 정말 사회를 쉽게 바라본 듯 하다. 그저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적인 문구를 믿었고, 그에 수반되는 노력을 등한시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뭐든 될 거래 생각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본인이 그 노력을 안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저자 본인이 치열하게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후회하며, 한창 잘 살아야하는 그 10년을 아무 생각없이 보내면 어떤 모습이 되는 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20~24살 조금더 놀고, 이 고민 저 고민 하면서 정신 못 차리고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오래 딴짓을 해도 여전히 20대 초반일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분득 내 나이가 몇인가 생각해 보니 어느새 20대 중반이 돼 있었다. … 20대 초반에 쌓았어야 할 스펙과 경력이 텅텅 비니까 20대 중반부터 줄줄이 안좋은 상황이 터지기 시작했다. _P 104
난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지방 세무서 인턴을 반 년 정도 하다가,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벌써 만 9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사대보험을 따박 따박 내면서 경제생활을 한 지가 벌써 10년. 물론 그 이 전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한 것 까지 생각해보니, 정말 난 언제나 돈을 벌며 하루 하루를 살아왔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생활하기 어려운 집안도 아니었다. 우리집은 어느 집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맞벌이 가정이었고, 두 분은 나와 내 동생을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다. 그저 나를 너무 강인하게 키우신 부모님 덕택에, 내 용돈은 내가 벌어 써야될 것 같았고, 학자금도 내 돈으로 내야 될 것 같았으며, 결혼자금과 집 구매도 내 돈으로 해야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또래보다 경제생활을 더 빨리 시작했고, 덕분에 또래보다 수중이 넉넉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뭐든 ‘때’ 이라는 게 있다. 공부를 열씸히 해야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그 날을 즐기며 놀아야 할 때,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때. 하지만 나는 그 ‘때’를 잘 못 맞췄던 것 같다. 특히 ‘놀아야 할 때’를 말이다. 청춘이 빛나는 시기라는 20대. 나의 20대는 전부 지금의 회사였다. 그저 회사에서 열씸히 일했다. 아! 그 중간 중간에는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며 몇몇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방통대 편입을 하여 2년만에 졸업하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많은 친구들이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그래서 더욱 학업에 대한 욕심이 생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공부를 좀 하고 보니, 이제는 놀고 싶어지더라. 내 또래 친구들이 놀러다니던 시간에도 나는 회사였으니까. 그래서 또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20대 중반 이야기다.
예전에 나는 20대 후반에도 20대 초반처럼 능숙하게 할줄 아는 일이 없어도 신입이어도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전공으로 배운 것도 없다 보니 언제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23살에 하는 공부, 하는 일들이 20대 후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뭔가 하나를 특별히 배워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_P 108
20대 후반이 되었다. 또래보다 빠르게 경제생활을 한 덕택에 대출없이 내 집 마련을 했다. 내 힘으로 결혼도 했다. 결혼까지 하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놀고 싶어지더라. 결혼 전에는 대게 부모님 의견을 따랐다면, 결혼 후인 지금은 오로지 내 의사대로 결정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주말마다 치열하게 놀러다녔다. 물론 그 사이에 이런 저런 일도 많았다. 내가 살던 집이 재건축이다 뭐다 하면서 부서지고, 팔자에도 없는 전세살이. 그러다 또 다른 새 아파트 청약 당첨 기타 등등등. 어라, 이렇게 보니 내 20대 후반은 썩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우와,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책을 읽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20대 때 내가 부러워하던 사람은 저자같은 삶을 살던 사람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저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동갑 친구가 0명,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은 1명이다. 대인관계가 1명이라는 소리다. 너무 심한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가치관 차이, 오로지 가치관의 차이로 하나 둘 멀어져 갔다. _P 198
나 역시 대인관계가 너무 좁다. 핸드폰 연락처를 보면 가족을 포함하여 몇 안되는 내 사람들과 회사사람들이 끝이다. 뭐, 원체 폭 넓게 사람 사귀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향이 일부 있기도 했다. 가족들과도 가치관이 안맞아 다투는 경우가 허다한 데, 생판 남인 사람들은 더 심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 사귀는 데도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사람과는 오래갈 인연, 이 사람은 이 곳을 떠나면 연락이 금방 끊어질 인연, 이렇게 판단했다. 후자에 대한 인연은 정말 알아차리기 쉬웠다. 그래서 나 역시 딱 그 정도로만 사람을 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전자는 반반이었다. 정말 오래갈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니 그 때 그 때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예를 들어 나는 또래들 보다 경제생활을 먼저 했고, 결혼도 빨랐다. 반면 동 시간대 내 또래들은 학교를 다니거나, 놀러다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당연히 만나도 서로 대화가 안 통할 수 밖에. 행여 놀기만 하는 친구들이, 사회를 쉽게 보는 친구들이 걱정되 하는 내 말을 고깝게 들으면 어쩌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정말 걱정어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쉽게 받아치는 친구들을 보며, 이후 더 이상 깊은 말을 안하게 되었고, 그냥 멀어지기로 했다.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거다.
주변에 꼭 이런 사람 있다.
1. 기승전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인 사람
2. 심하게 부정적인 사람
3. 불행한 얘기만 하는 사람
그들은 일상에서 생긴 작은 스트레스부터 저 깊숙한 곳에 꾹꾹 눌러 있던 시커먼 고민까지 잔뜩 쏟아 놓고는 한다. _P 202
위 대인관계의 연장선 인 것 같다. 저렇게 고민을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이야기를 하면, 외려 화를 낸다. 넌 잘 모른다고, 이해 못할거라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행한 사람인데 왜 이해를 못하냐고. 그래서 그냥 내가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연락을 끊었다. 무엇보다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저 아이들을 보면서, 난 그저 그들이 사치를 부리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불행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 내 하루하루 삶이 정말 치열하고, 고단하며, 쉴 틈이 있을 때 정말 온전히 쉬기 바쁜 사람들은 불행을 느낄 시간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뭐 그렇다.
누구든 무조건 어른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게 되어 있다.
그 책임이라는 게 별것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무엇이든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다 보니 초라한 스물아홉이 되었다_ P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