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생활백서, 어두운 숲을 지나는 방법 폐교생활백서
로서하 지음 / 드루이드아일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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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폐교생활백서 출간! 예약 주문하고, 책을 받고 읽는 과정에서 여러번의 이슈가 있었다. 예컨데 폐교생활백서는 프로개님, 지박령님 각각의 시선으로 쓴 두 권이 세트인데, 서점 실수로 지박령님 책만 2권 받았다던가 하는 첫 번째 이슈. 이스터 에그 찾는답시고 하루동안 에세이를 1n차례 여러방법으로 무한 정독했다는 두번째 이슈. 하지만 결국 스스로 이스터 에그를 못찾고, 프로개님 힌트를 보고나서야 찾고나서 몰려드는 허무감이 세번째 이슈. 


첫번째야 어쩔수 없지만, 두번째는 내 스스로 이토록 추리력이 없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고, 세번째는 정말 프로개님을 원망...ㅎㅏ..ㄴ. 아니 진짜!! 이건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보는 사람은 절대 찾을 수 없는 이스터에그인데?! 내 책은 늘 새책이었는데, 이스터에그 때문에 헌책이 되버렸다. 보고있어요 프로개님^_T? 

이스터 에그가 아니었다면 정말 에세이 자체를 곱씹고 또 곱씹을 정도로 마음이 몰캉몰캉해졌던 지박령님 글이었는데! 정말 순수하게 공감하며, 나를 이입해가며 읽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스터에그 존재를 잊고, 짧은 시간동안 있었던 이슈들도 잊고, 폐교생활백서를 처음 만났다고 나 자신을 속이고(....) 다시 읽기로 했다. 

내 마음을 몰캉몰캉하게 만든 지박령님의 힐링 에세이를..!





안식년이 주어진 프로개, 프리랜서였던 지박령. 식물들 사랑하면서도 실험정신이 투철했던 프로개와, 프로개가 하는 일을 반대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봐주던 지박령. 그런 그들의 행보는 결국 폐교 생활로 이어졌다. 누가 봐도 불편함이 예견된 폐교생활. 

마트나 병원, 카페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차타고 기본 30km는 나가야 하는 불편함. 행여나 생필품이 떨어지면, 남들처럼 쿠ㅍ 로켓배송을 시키지 못하고, 차를 타고 30km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곳. 심지어 생활 폐기물 같은 일반적인 쓰레기 처리도 어려울 뿐더러, 치안도 좋지 않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도 망설임없이 폐교 생활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아파트에 살 때도 하늘은 있었어요. 작가가 되기 전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도 내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었죠. 어쩌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에도 큰 심상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하늘을 마주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폐교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에요. 굉장히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5년은 내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주었어요. 그리고 나는 오후 2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p 032


보통 불편함을 대하는 자세는 두 가지로 나뉜다.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편리한 생활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불편함을 겪으며 이전에는 몰랐던, 생활 속 편리함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불편함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프로개와 지박령은 후자에 속했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소소한 행복을 주는 현실에 감사하며 그들만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폐교생활을 수호하고(?) 챙김받고(??) 응원하던 존재들(!). 사방신과 수많은 식물들, 그리고 뒤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알았을까? 자신들의 삶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프로개 블로그에서 보던 사방신들! 책 속에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평균 수명이 짧은 가재는 이미 용궁으로 가버렸다지만, 남은 사방신 친구들은 아직도 폐교를 수호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식물들. 이들이 폐교생활을 하려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한게, 바로 이 식물들이다. 음, 정확히는 수많은 식물을 가지고 오만가지 실험을 해보고자 한 프로개의 도전정신이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그러고 보니 폐교에서 식물이 가장 많았을 때가 화분이 5천 개 가까이 되었던 때라고 한다. 와, 지박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등짝 스매싱이 뭐야! 내 가족이었으면 날 쫓아냈을지도 모르는 스케일이다.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닌데, 그 화분이 5천개 가까이. 심지어 같은 식물이어도 A는 이렇게 키우고, B는 저렇게 키우며 실험까지 하고 있었으니. 이쯤되니 식물 장인, 드루이드 프로개보다 그런 프로개를 옆에서 지켜보고 돌본(?) 지박령이야 말로 진짜 드루이드가 아닐까 싶다. 



하늘을 강조했지만, 이곳에는 초록 또한 가득합니다. 자연적으로 자라는 초록과 남편이 키우는 초록이죠. p 083

바람이 불어 포르르 흔들리며 햇살에 반짝이는 폴리안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p 088

막 수확한 깻잎의 향기가 얼마나 강렬한지 아세요? 한 말만 먹어도 입안에 가득 퍼지는 딸기 맛은 어떻고요. p 172

이곳에는 내가 심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다람쥐와 바람이 씨앗을 부지런히 다르거든요. 옮겨진 씨앗들이 피워낸 꽃은 예상치 못한 순간 기쁨을 주는 것 같아요. p 130




종종 “네가 그렇게 사는 걸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살지 않으니까요. 또 모든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 역시 압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고, 모두가 내가 쓴 글을 재미있게 읽지 않는 것처럼이요. p 140




폐교로 이사 오기 이전에는 날 전혀 돌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단지 자연 속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변할 수 있냐고요? 자연보다는 거리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모든 것들이 멀어졌잖아요. 다른 가족도, 친구들도, 도시도. 한 발 떨어져서 가만히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p 150


나를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한 선택은 굳이 거창할 게 없어요. 더 나은 걸 고르면 되니까요. 당장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그렇게 조금씩 더 좋은 걸 골라 나가면 되는거더라고요. 나와 친해지는 건 그래서 중요해요. 내가 어떻게 하면 기쁘고, 어떻게 하면 슬프고, 어떤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지를 알아야 나를 잘 돌볼 수 있으니까요. p 178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어두운 숲을 지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숲의 깊이와 어두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숲을 피해갈 수는 없어요. 그런데 내 숲은 유독 크고 울창해 보였어요. 어둡고 울창한 숲.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숲. 빛조차 들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런 숲이었죠. 하지만 불혹을 넘어선 지금은 알고 있어요. 어두운 숲 자체가 내 인생이라는 것을요. p 177



누구나 어두운 숲을 지나게 된다. 숲의 끝에 다다랐다고 하더라도, 언제고 또 다시 마주하게 될 어두운 숲. 그 숲 자체가 내 인생이라는 말에 지극히 공감했다. 나 역시 3n년을 살아오면서 어두운 숲을 수차례 헤쳐나왔기에. 더이상 숲에서 헤매지 않으리라!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 다시 숲 한 가운데 들어가있곤 했다. 


과거에는 수많은 이유로 어두운 숲에 빠져 헤매는게 너무 고단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더이상 숲에서 헤매는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숲에서 헤매는 과정이 썩 나쁘지많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연하게 날 힘들게 한 어두웠던 숲이, 사실은 내가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해주는 숲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두렵지 않다. 언제 어느순간에 힘에 부쳐 쓰러지도라도, 나만의 숲은 내가 스스로 일어나길 기다려줄테니까.



그리고 프로개의 연애 편지는...... 아아.... 보면 안될 혈육의 연애사를 본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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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 나만의 취향으로 가꾸는 작은 공간
지은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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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취향’ 뜻을 찾아보면 이렇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취향’의 뜻을 알았으니 이제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바로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왜? 자신의 취향을 바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본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뜻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취향을 바로 대답한다. 그 누군가는 연예인, 가족, 친구 등 모두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바로 대답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르는 모순을 안고 있다. 타인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를 추천하고 싶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취향’ 덕분에 금방 회복한다. 위에서도 말했듯 취향은 본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또는 좋아하는) 이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하다보면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취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이야기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취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얼마 보내지도 못하고 잠든다는 게 억울해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오기를 부리며 매일 늦게까지 시답잖은 일로 시간을 보내다 잠들었고, 아침이면 피곤해서 오늘은 진짜 진짜 일찍 잘 거라고 울먹이며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점점 흐려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자기 일에 불평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p 026


차오르는 감정을 다 쏟아 내고 싶은 날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 앱을 연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소리를 뭉뚱그리지 않고 직시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마음을 마주하면 감당하기 힘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다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에 계속 썼다. 하루는 마음이 울적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문득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쓰면서 풀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내 머릿속 생각을 씀으로써 나와 떼어 놓을 수 있다는 건 나만의 피난처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p 047


현재 ‘취향껏 살고 있다’는 저자는 처음부터 취향이 확고했을까? 아니다. 저자도 그랬다. 시련에 맞닥뜨렸을 때, 훌훌 털어내지 못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뭘 어떻게 해야 내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지 몰랐던거다. 그래서 주저 앉았고, 치열하게 고민해고, 찾아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힘든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이 정도면 괜찮다’와 ‘여기라서 행복하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나의 돌파구가 이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p 112


저자가 찾아낸 자신의 취향은, 본인이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을 바꿔나가는 것. 한마디로 살고 있는 집 인테리어다. 마음속 여유가 없을 때마다,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곳을 조금씩 꾸미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인테리어! 저자는 인테리어를 하며 안정을 찾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에세이 곳곳에 멋진 사진으로 실려있다. 흡사 ‘오늘의 Home’에서나 볼법한 멋진 인테리어 사진들. 저렇게 멋진 집으로 꾸며낼 수 있었던 건, 저자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는 내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취향’을 물어보면 즉답할 정도로,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비교적 빠르게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안으로 눌러담고 있다. 언젠간 이마저도 무뎌질 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고요하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잠시 할 일로부터 떨어져 말랑해질 시간이 꼭 필요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에는 과거의 일에 집착하지도, 오지 않는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현재에 머물렀다. (…) 한때는 그런줄 모르고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수없이 자책했다.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해서 잠시 멍하니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된 지금은 오히려 나에게 시간을 쥐여 주려고 노력한다. p 153


아이들은 세상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처음 경험하는 것투성이라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배워 나간다. 누구에게나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의 마음을 쉽게 잊곤 한다. 여러 번 해 본일은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고, 현실의 중압감에 시달려 어린 시절에 무엇을 좋아했는 지 떠올릴 겨를조차 없다. 나 역시 세상이 놀이터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거 간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채, 바쁘다는 걸 위안 삼아 살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무감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세상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p 170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하루가 견디기 버거워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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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1 : 몰락의 시대 - 진실을 밝혀내는 박종인의 역사 전쟁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1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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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기자님의 역사책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책 오자마자 바로 읽고 리뷰쓰고 그랬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이다보니 책 읽는 것도 한 나절, 포스팅도 한 나절이다. 일단 1권 다 읽었으므로! 1권만 빠르게 리뷰하자면, 아니 근데 이 책을 빠르게 리뷰하는게 맞나 싶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곱씹어서 읽어야 하는 역사책인데! 대신 교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공무원 시험을 앞둔 수험자들은 당장 이 책을 읽으면 안된다. 왜? 이 책은 기자님 말마따나 불온한 역사서니까.



이 책 제목은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이다. 부제는 ‘이거 보고 공부하면 시험 다 떨어지는’ 근대사 강좌다. 그런데 대학 합격, 공무원 수험 시험에 합격한 다음에는 꼭 읽어라. 그래야 똑바른 대학생이 되고 나라를 생각하는 경찰과 공무원으로 살 수 있다. 그때는 시험에 붙으려고 외웠던 교과서 속 역사는 다 잊어버려도 좋다. 아니 잊어버려라.p 005 서문 中




서문에서 훅 들어온 경고! 당장 대학이나 공무원 시험을 앞둔 사람들은 절대 읽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혹자는 역사를 왜곡했나? 하는 우려를 할 수도 있겠으나, 대답은 NO다. 오히려 이 역사책은 왜곡과는 동 떨어진, 진실만은 이야기하는 책이니까. 고로 수험생들이 보는 교과서에 있는 진실도 분명히 이 책 속에 있다. 다만, 교과서에 없는 진실‘도’ 담겨 있다는게 문제다. 교과서에서 삭제된 역사, 하지만 실제 있었던 이야기. 아니? 왜곡도 아니고 분명한 사실인데 왜 교과서에는 없다는 말인가? 아래 내용을 보자.​




1.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있는데 ‘최초의 국한문 혼용 신문을 만든 사람은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라는 말은 없다.

2. ‘문예부흥을 일으킨 위대한 군주 정조’라고 적혀 있는데, 그 정조라는 인물이 ‘성리학 이외 학문은 철저하게 탄압하고 사상 검열을 한 지식 독재자였다’는 사실은 없다.

3. 청일전쟁 때 “철수하겠다”는 일본군을 고종이 소매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는 사실은 적혀있지 않다.

4. ‘명성왕후를 간악한 일본인이 잔혹하게 죽였다’는 있고 ‘동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민비 암사를 시도했다’는 없다.

5. ‘고종이 헤이그밀사를 파견했다’는 있는데 이보다 10년 전 고종이 민영환을 러시아에 보내서 ‘조선은 러시아 보호국이 되기를 원한다’고 애원한 사실은 없다.

6. ‘을사조약을 고종이 결사반대했다’라고 적혀 있는데, ‘을사조약 직전 고종이 일본 공사 하야시로부터 뇌물 수수’라는 사실은 없다.

7. ‘고종이 조약체결을 두고 이토 히로부미와 담판을 벌였다’라고는 적혀 있는데, 정작 조약 체결 뒤 ‘고종이 “절대 돌아가지 말고 나를 위해 일해달라”고 이토 히로부미 소매를 붙들고 늘어진 사실’은 적혀 있지 않다.




위 문장들은 전부 진실이다. 다만 각 문장의 앞 내용은 국사책에서 많이 본 내용이고, 뒷 내용은 초면일 것이다. 왜? 우리는 언제나 모든 문장의 앞 내용만 배웠기 때문이다. 왜? 문장의 앞 내용만 공부하면 한글을 창제하고 문예를 부흥했던 찬란한 조선을 간악무도한 일본이 침략했다라는 역사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문장의 뒷 내용까지 같이 공부하면 배움이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이 무자비하게 쳐들어오며 시작된 전쟁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사실이 있다. 임란이 일어나기 전 명종때 조선에 이미 조총이 들어왔다. 심지어 대마도인은 원하면 조총기술을 전수하겠다고 했다. 거기다 대마도와 류큐에서 일본이 조선으로 쳐들어올것 같다는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이백년 평화에 찌든 조선과 위정자들은 이를 무시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전쟁. 하지만 우리는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이 쳐들어왔다는 것만 배웠을 뿐, 뒷 내용은 배우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임진/정유재란 7년 전쟁은 오로지 간악한 일본인 탓이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뒷 내용까지 배우게 되면 여기에 무능력한 조선 위정자들의 책임도 들어간다. 찬란한 선비의 나라 조선에 오점이 생기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많다. 조선은 사실 세계와 교류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번째 병자호란 이후 청에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들어왔을 때, 두번째 하멜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세 번째 천주교(서학)이 퍼졌을 때, 네번째 제너럴 셔먼호가 강화도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 조선은 세계와 교류하고, 자발적인 근대화를 할 수 있는 여러차례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기회는 매번 조선의 왕과 양반들이 반기지 않았다. 반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나라 문을 꽁꽁 걸어 잠궜다. 



만약 이 네 번의 기회 중 한번이라도 조선의 왕이, 양반들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 백성들을 생각했다면, 우리 근대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도 없었을 것이며, 당연히 이념논쟁과 한국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슬픈 가정이지만. 



이제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1 - 몰락의 시대』를 살펴보자. 1권은 영정조 시대부터 고종시대까지를 다룬다. 리뷰에선 조선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영조, 정조시대. 정말 ‘르네상스’ 였는지, 그 속살만 살짝 벗겨보고자 한다.




숙종이 망하고 사라진 명나라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 숙종의 아들 영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갔다. 중원 문화가 오랑캐에 의해 파괴되었으니, 중원을 조선이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그 날이 1749년 5월 9일이다. 이때부터 조선은 명나라 계승국, 소위 황제국이 되었다. 그리고 1776년 4월 22일, 영조가 죽자 정조가 즉위했다. 어떻게? 청나라 황제에게 허가 칙령을 받아서.



술을 금하고 사치를 금함으로써 영조시대 50년은 마진을 남길 상품 생산이 금지되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고급 생산기술 개발 작업도 정지돼버렸습니다. 영조는 왕실 비단 생산을 금지시킵니다. 금실로 수놓은 비단 옷감도 금지됐습니다. 왕실에서 비단을 생산하는 기계 문직기를 아예 폐기해버립니다. 무늬비단 제조 기술은 조선이 망할 때 까지 복원되지 못합니다. 여자들은 화려한 가체를 버리고 족두리를 써야했습니다. 가체 금지령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조치였는지 결국 7년 뒤에 해제합니다. (…) 값비싼 청화안료를 쓰는 청화백자를 금지하고 질 낮은 철화백자만 생산하라고 명합니다. 금주령도 강화합니다. 앞으로 제사상에 술대신 예주를 올리라 합니다. 예주는 식혜입니다. (…) 영조는 국정지표 이행 여부를 점검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인 날이면 신하들과 차를 마시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차 이름은 ‘송절차’ 입니다. 그런데 이 차를 마시면 영조는 늘 취해버렸다고 합니다. 이름만 차 였고 실제로는 술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p 028~029



각종 산업을 막고, 경제행위조차 막아버린 결과 조선은 가난해졌다. 얼마나 가난해졌는가? 어사 박문수가 청나라 밀수 어선 단속을 위한 군함을 조성한다고 하니 돈 없다고 짤렸다. 가까웠던 과거에 호란이 있었고,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면 왜란이 있었던 나라에서 말이다. 가난해지기만 했느냐? 아니다. 지성도 없었다. 조선은 서점이 없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선 책을 읽어야 했는데, 책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책을 구했는가? ‘책쾌’라는 책장사치를 통해서 구했다. 영조는 책쾌 금지령을 내렸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새로운 지식까지 얻을 수 없게 막아버렸다. 



비단 영조만 그랬는가? 아니다. 정조도 그랬다. 아니, 정조는 영조와 조금 달랐다. 새로운 지식을 들여오돼, 정조 본인이 독점했다. 독점한 지식을 꽁꽁 숨겼다가, 필요한 범위에 한해서 신하들에게 찔끔찔끔 알려주었다. 



정조는 4품 이하 당하관에게만 호박 갓끈을 일체 금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이라는 공동체에서 사치 풍조가 만연했다고 하는 계층은 ‘신분이 낮은’ 계층에 한정돼 있습니다. 당상고나 이상에게는 이 ‘사치’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여자들은 사치를 명목으로 한 겹 더 심한 차별과 규제에 얽매입니다. 재질이 뭐가 됐든 남자들은 갓끈을 맬 권리를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가체가 아예 금지되고, 아무런 장식 없이 허연 족두리만으로 미모를 자랑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p 071~072



지도자가 권력과 지식을 독점했다. 백성에게는 사치를 규제하다는 미명하에 모든 경제활동을 막아버렸다. 여기서 함정이 있다면, 영조의 금주령에는 본인은 제외였고, 정조가 말하는 사치 규제는 신분이 낮은 계층과 조선 여자 전원에게만 해당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조선 르네상스의 속살이다. 



이렇게 조선을 빈국이 되어가고 있을 때, 바다건너 영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국에선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하여 관성, 가속도, 작용과 반작용의 원칙을 발견했다. 영국은 과학이 발전하고 있었고, 과학이 발전하자 자연스레 상업도 발전하며 결국엔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냈다. 그 옆나라 프랑스는 어땠는가?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다. 시민 동의 없는 세금 징수는 불가하다며,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다. 조선에서는 생각치도 못할 일이다. 왜? 출판, 인쇄, 독서의 자유가 보장된 유럽과 달리 조선에선 그 모든게 불법이었으니까. 어쩌다 책쾌에게 책을 사서 읽다가 걸리면 바로 사형이었으므로.



8년 전 《북학의》에 부국강병책을 쏟아부었던 검서관 박제가가 기회를 놓칠리가 없었습니다. 박제가가 올린 병오소회는 이러합니다.


‘지금 나라의 큰 폐단은 가난이다. 다른 나라는 사치로 인하여 망한다지만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하여 쇠퇴할 것이다. 비단옷을 입지 않으니 비단 짜는 기계가 없다. 여인들은 일이 끊겼다.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목욕시키지 않은 말을 타고 찌그러진 그릇에 담긴 밥을 먹고 진흙더미 집에서 지내니 온갖 제조업이 끊겼다. ‘세상이 나빠져서 백성이 가난하다’고 하는데, 이는 나라가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p 062 



정조가 아끼던(?) 북학파에선 여러 개혁안을 올렸다. 위 내용은 북학파로 유명한 박제가가 쓴 개혁안 중 일부다. 북학파가 올린 개혁안은 대체로 중국과 통상하고, 서양인에게 기술을 받고, 상업을 장려하자 였다. 하지만 정조는 이런 개혁안들을 모두 거절했다. 외려 북학파와 다른 개혁안들을 채택했다. 중국인과 왕래금지, 이단 서적 수입 금지 같은 폐쇄적인 개혁안을. 그와 함께 당시 들어오던 서학(천주교)를 핍박&학살하고, 성리학 외의 학문은 모조리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이른바 조선판 분서갱유, 문체반정이다.



조선의 르네상스의 속살이다. 슬프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조가 직접 선택한 며느리는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이다. 심지어 정조는 김조순을 순조 옆에 찰싹 붙여놓고 죽었다. 조선 백성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안좋아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더 안좋다 못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김조순을 필두로 한 세도정치 시작이다. 백성들이 죽지 못해 살던 세도정치가 끝났다 싶었더니, 이번엔 여흥 민씨들이 세도정치 때보다 더한 패악질을 시작한다. 서글프게도 이게 바로 우리나라 근대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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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셀프트래블 - 기타큐슈·벳푸·유후인, 2024-2025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수정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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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 셀프트래블 시리즈 신간이 나왔다. 이번엔 일본 후쿠오카 편!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을 즐겨했던 지라, 신간이 너무 반갑다. 왜? 지금은 육아로 인해 일본여행을 못.......하^_T. 그래도 내년 이맘땐 우리 뿡뿡이와 함께 일본에 있을거니까^^ 그걸 목표로 여행적금도 들어놨고!!


뿡뿡이와 일본 여행을 가게 된다면 후쿠오카 or 오키나와를 생각중이나, 아무래도 가본 곳이 더 나을 것 같아서 후쿠오카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후쿠오카 여행책이 내 손에 딱! 이거슨 필시 후쿠오카 여행을 가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내가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시기는 2019년 4월이었다. 동행자는 신랑과 친정부모님. 그렇다.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금물! 난 워낙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자주 다녔었고, 부모님 모시고 일본 여행도 처음이 아니었기에 여행은 내내 즐거웠다는 스아실! 무엇보다 난 파워 계획형에, 융통성 오조오억개에다가, 관관통역사(일본어) 면허를 소지한 일본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이라는 것!



어머! 여긴 꼭 가야 해 !!
 
 
▶ 후쿠오카 대표 명소 베스트 8
1. 하카타역: 유후인, 벳푸, 나가사키 등 규슈 곳곳으로 향하는 다양한 열차가 오가는 역, 하지만 단순한 기차역이라기보단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결합된 복합쇼핑센터다.
2. 커낼시티 하카타: 여행 목적이 쇼핑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방문해봐야 할 필수 코스. 건물 중앙엔 180m의 인공운하가 만들어져 있으며 중앙 무대에선 다양한 문화이벤트가 열린다.
3. 텐진: 후쿠오카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다. 후쿠오카의 최신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텐진역 주변의 상점을 둘러보자.
4. 나카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카스강을 따라 알록달록한 포장마차 ‘야타이’가 하나둘 나타난다.
5. 오호리 공원: 후우오카의 오아시스. 거대한 호수를 중심으로 일본정원과 후쿠오카 성터를 산책할 수 있다.
6. 후쿠오카 타워: 해변가에 자리잡은 일본 타워 중 최고 높이를 자랑한다.
7.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는 자연친화적 공원이다.
8. 다자이후: 1,300년 전부터 규슈를 관할하던 관청이 있던 곳으로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인 ‘다자이후 텐만구’, 일본 4대 박물관으로 알려진 ‘규슈 국립박물관’,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고묘젠지’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 후쿠오카 근교 명소 베스트 5 
1. 벳푸 지옥온천: 뜨거운 증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무시무시한 지옥을 닮았다고 해서 지옥온천이라 불린다. 에메랄드빛 바다 같기도 하고 새빨간 핏물 같기도 한 일곱 가지 각기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온천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2. 모지코 레트로: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JR 모지코역. 아인슈타인 박사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 숙박했다는 모지 미츠이 클럽. 오렌지색 팔각탑이 아름다운 오사카 상선 건물 등 메이지시대부터 쇼와시대까지 번성했던 모지코의 과거 건물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3. 코구라성: 에도시대 초기 건축물로 1608년에 완공되었다. 성 내부에는 고쿠라성과 기타큐슈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최상층인 5층 전망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고쿠라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따.
4. 하우스텐보스: 커다란 풍차와 색색의 튤립이 가득한 정원까지. 중세 네덜란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일본의 3대 테마파크 중 한 곳이다.
5. 긴린코: 후쿠오카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이동하면 만나게 되는 작은 온천마을 ‘유후인’을 대표하는 명소다. 호수 바닥에서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온천수가 솟아나고 있다.


셀프트래블 후쿠오카에서 말하는 명소는 어지간해선 한 두 군데는 꼭 가보자. 아니 가볼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특히 대표명소는. 왜? 후쿠오카 도심 관광지는 하카타역과 텐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안갈래야 안갈 수가 없게 되어있는 그런 구조랄까? 보통 숙소(호텔)나 쇼핑몰도 하카타, 텐진 주변에 많다보니 더욱 그렇다. 내가갔던 호텔도 텐진에 있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하카타역 보단 텐진을 추천!! 나카스강, 텐진중앙공원이 바로 옆에 있어서 낮에 산책하기 딱 좋고, 밤에는 야타이(포장마차)가 우루루 나타나서 구경하고 현지인 체험하기도 최고다.



이번엔 후쿠오카 먹거리 편! 
후쿠오카! 바로 먹방여행의 성지다. 왜? 돼지 뼈를 진하게 우려내,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맛는 돈코쓰 라멘. 돈코쓰 라멘이 시작된 곳이 바로 후쿠오카다. 그 유명한 이치란 라멘 본점이 바로 이 곳에 있다. 일명 곱창전골(!)인 모츠나베도 후쿠오카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뿐만인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이 후쿠오카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명란젓은, 지금은 일본인 밥도둑 멘타이코가 되었다. 

돈코쓰 라멘, 모츠나베, 멘타이코. 모두 내가 후쿠오카 여행을 갔을 당시 꼭 먹고 말리라! 생각했던 음식들이다. 그리고 전부 먹고왔다♡ 위 세 음식에 더해 호르몬 정식까지! 역시 후쿠오카는 먹방 여행의 성지!!! 



하우스 텐보스
한창 일본 여행을 다니던 n년 동안, 굳이 일본 테마파크를 왜 가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 테마파크도 뒤지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음.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알겠다. 가야돼... 외국 여행을 가면 꼭 그나라 테마파크를 가야해... 고로 우리 뿡뿡이와 후쿠오카를 가게되면 나는 무조건!!! 하우스텐보스는 필수다. 숙소도 하우스텐보스 안에 있는 호텔을 이용할거야!!!!!!


중세시대 네덜란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대형 테마파크로 규모나 시설, 만족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의 3대 테마파크로 불리는 곳이다. 파크 사이사이로 로맨틱한 운하가 흐르며 운하를 따라 멋스러운 유럽식 건축물들이 줄을 잇는다. 봄이면 플라워 로드에 튤립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화원이 펼쳐지며 여름엔 파크 곳곳에서 시원한 물 폭탄이 터진다. 가을에는 핼러윈 축제, 겨울엔 크리스마스 축제까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특별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추천한다. p 054 (시즌별 특별공연, 각종 어트랙션, 어드벤쳐 파크, 크루즈 등)



여기서부턴 내 추억여행이 가미된(?)
후쿠오카 여행 이야기



1. 도심: 하카타, 텐진
후쿠오카 여행 시작은 명실공히 하카타, 텐진 도심여행이다. 내가 다녀온 곳은 (식당 제외)하카타역과 텐진역은 기본으로 찍고 하카타 아사히 맥주공장, 나카스강변(+영빈관), 텐진공원, 스미요시 신사, 라쿠스이엔, 오호리 공원(+후쿠오카 성터) 이다. 그때가 겹벚꽃이 한창이던 시기다보니, 나카스 강변과 텐진공원, 오호리공원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텐진공원에서 자그마한 지역 축제가 열려서, 열씸히 구경하고! 무엇보다. 부모님 동반 여행이었기에 일부러 자연친화적(?)인 곳을 찾아다닌 면도 있다. 

물론 하카타 아사히 맥주공장은 예외ㅋ. 일본을 가면 꼭 그 곳에 있는 맥주공장을 가야하는 그런게(?) 있다보니, 이건 순전히 내 사심이 오백프로 반영되었던 여행지다. 다만 그때는 사전 예약을 해야만 관람가능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고....?


2. 외곽1: 다자이후, 유후인, 벳푸
렌트카를 이용한 여행이었으면 좋았으련만, 후쿠오카는 처음이었던 나. 신랑과 둘이서 일본을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해서 외곽여행도 자주 했는데 후쿠오카 만큼은 조금 어려웠다. 차마 부모님 모시고 저~~ 멀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쿠루쿠루 버스’ 예약이었다. 일종의 당일치기 패키지 상품이랄까? 결과적으로 대 성공이었던!

역사더쿠로서 다자이후는 내가 너무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유후인과 벳푸는 부모님께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었다. 당시 쿠루쿠루버스 노선에 다자이후, 유후인, 벳푸 세 곳을 하루에 갈 수 있는 노선이 있었던건 나에겐 정말 천운이었던 셈. 

물론 패키지다보니 시간적 제약은 있었다. 예컨데 난 다자이후에서 다자이후 텐만궁 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 미즈키 유적을 꼭 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건 답사를 목적으로 신랑과 둘이 왔을때나 가능한 목적지^_T. 패키지 여행에선 다자이후 텐만쿵이 고작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이었으니까. 

쿠루쿠루 버스가 아니었으면 힘들게 대중교통 이용해야했을 유후인과 벳푸도 편하게 왔으니 얼마나 좋던지. 유후인 긴린코 호수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벳푸 지옥온천 규모에는 다른 의미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내가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온지가 벌써 5년이나 지났다니. 요즘 강산은 5년 마다 한번 씩 변한다던데? 그래서 이 책에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구나!! 새로운걸 보니 더더 후쿠오카 여행을 가고 싶고. 하.... 뿡뿡이 얼른 크자 ㅠㅠㅠ 엄마 손잡고 후쿠오카 가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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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힐링하우스 - 내가 만난 고양이, 나를 만난 고양이
박미아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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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색다른 에세이를 읽었다. 언뜻 보면 일상 에세이? 포토 에세이? 근데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간다. 바로 ‘고양이’. “나만 없어 고양이!!!”에 바로 그 ‘고양이’다. 무엇보다 나는 고양이가 없기에, 어쩜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아, 나도 고양이...T_T” 하며 읽게 된 에세이였다.




에세이 『미아 힐링하우스』는 저자 박미아가 전원주택 생활하며 만난 고양이들과 인연을 기록한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와 고양이들과 인연은 8년이 끝이 아닌, 현재진행형! 





우리 집에 왜 왔니

2015년, 단순히 ‘내 땅’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아파트에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하고 보니 내 땅인 줄로만 알았던 주택 마당에 고양이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마당에 자신의 영역표시를 하고, 서로 서열 싸움도 했다. 고양이들을 마당에서 쫓아내려 많은 시도도 해보았지만, 떠날 마음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고양이들을 쫓아내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2016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엄마 고양이 하나가 어디선가 새끼를 낳아 내 마당으로 하나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와 고양이들과의 영역 싸움은 ‘공생’의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기 고양이들의 이름을 짓고, 밥과 물을 챙겨 주는 집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캣 맘”이라 불렀다. p017



전원주택에 고양이와 공존하는 생활. 고양이에 한참 빠져있던 그 때, 내가 엄청 원했던 삶이다. 물론 한참 뒤, 전혀 다른 식집사생활을 하게 되며(?) 전원주택 생활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저 대리만족하기로 결정했지만. 근데 이제 마냥 대리만족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런게, 우리 뿡뿡이 초등학교 입학 전 쯤에 전원주택 월세살기를 생각하고 있기에! 어쩌면 대리만족하던 이 삶을 내가 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생각? ..은 TMI 여기까지!



이 책에는 저자가 8년간 만난 수많은 고양이들의 족보를 시작으로, 모든 고양이들과 인연이 하나하나 남겨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저자가 직접 고양이를 입양한게 아닌, 고양이들이 저자를 간택했다는 것!! 스스로 저자가 사는 전원주택 마당으로 하나 둘 들어오다가, 아예 터를 잡아버린 것이다.




밤톨이와 점점 더 친해지던 어느 날, 밤톨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임신한 밤톨이에게 약속했다.
“걱정하지마, 너의 아기 고양이들은 내가 돌봐 줄게.”
그 약속으로 나는 ‘캣 맘’이 되었고, 밤톨이의 세 번의 출산으로 태어난 모든 새끼들을 돌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양이에 관해 조금은 무지했기에 할 수 있던 약속이었다. p 033





고양이들에게 마당을 내어주며 공존을 선택한 저자는 그렇게 캣 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캣 맘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일부 몰상식한 캣 맘들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한 적도 많았다. 고양이를 위한 마음을 직접 행동으로 보이는 건 좋은데, 꼭!! 부적절한 행동까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사례는 굳이 언급 안하는 걸로). 


근데 저자는 그야말로 존경받을만한 그런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무늬만 캣맘이 아닌, ‘자기 소유’의 공간을 고양이에게 내어준 사람. 뿐만 아니라 고양이가 본인의 공간에서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자기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한 사람. 저저야말로 진정한 캣 맘이었다.



종종 고양이들이 공동육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고양이들끼리 서로의 새끼를 함께 돌보는 것이다. 고양이들의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배울 모습들이 많다. p 071

고양이들도 가장 좋아했던 친구가 갑자기 떠나면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는 것 같다. 카페는 자신을 키워 주고 같이 자던 레오 형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떤 짐작을 하는지 모르겠다. 먼저 별이 된 레오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하다. p 121

고양이들도 가끔 우울해하는 시기가 있다. 라떼도 그런 시기들이 있다. 온전하게 혼자 사랑받고 싶은 라떼는 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잘 알기 전에는 고양이가 독립적이고, 사랑을 많이 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들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어 한다. p 132



저자가 기록한 마당냥이들의 면면을 보자면 그야말로 애교넘치는 냥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냥이는 절대 곁을 안주는 냥이도 있었다. 정말 하나같이 다른 성격을 가진 냥이들이라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놀랍고 신기했다. 그럴수록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에게 마당을 내어준 저자가 존경을 넘어서,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같은 속세에 찌든 사람은 차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모습. 고양이를 얼만큼 좋아하면,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캣 맘이란 …
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
냥이들을 “애기야~” 라고 부르는 사람
냥이들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사람
냥이들의 눈빛만 봐도 아픈 줄 아는 사람
손등과 팔에 늘 상처가 있는 사람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 p 143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쇼리가 3일 내내 비가 오던 마지막날 나를 찾아왔다. 다리에는 뼈만 남아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스스로 알고 찾아온 것일까…. 쇼리는 만지는 것을 허락하는 듯 내 옆에 편안하게 누웠다. 그렇게 마지막이 되어셔야 쇼리를 만져볼 수 있었다. 캣 맘으로 지낸 8년 동안 많은 고양이가 별이 되기 전이면 집으로 찾아와 마지막을 나와 함께해 주었다. 내가 고양이들을 돌보며 그들을 살리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는 것이다. p 161


온도에 예민한 고양이들이 폭설과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을 스스로 이겨 내기는 쉽지 않다. 사실 나도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던 8년 전만 해도 동물들이 스스로 다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물과 사료를 공급해 주어도 겨울이 지나면 많은 고양이가 면역력이 떨어져 별이 되었다. 이후 미아 힐링 하우스 집 안에 들어오기 원하는 냥이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p 195


2022년 11월부터 미아 힐링하우스 고양이 식구들은 집 안에서 겨울을 지내고 있다. 긴 겨울밤을 피해 집 안으로 들어온 냥이들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하지 않은 식사와 따듯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는 것이다. 모든 고양이가 집 안에 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집 밖 마당에서 겨울을 견디는 냥이들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그들의 선택에 맡긴다. 바깥 고양이들이 따듯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통조림을 벽난로에 데운다. 겨울에는 따듯한 물을 자주 줘야 한다. 나와 반려견 할리, 고양이들은 힘들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밖으로 나갈 봄을 기다린다. p 197


 



 
미아 힐링하우스를 찾아온 고양이들은 저자의 마음을 아는 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곁을 주지 않는 길냥이가 스스로 자신을 돌봐달라고, 내 새끼들을 지켜달라고 찾아오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이런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리고 무늬만 ‘캣맘’을 따라하는 그들까지. 고양이를 진정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에세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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