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평점 :
1. 어른들이 그럽디다.. 정말 징하게도 우려먹는다고(사골도 아니고 뭘 우려먹는다는건지),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 허구헌 날 지나간 일을 부여잡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나라 탓만 하고 있다고 말이죠, 이게 다 지금 정권에서 만들어놓은 프레임이고 언론 통제로 쟤네들이 정신 못차리고 끊임없이 이 시기만되면 니네 잘못으로 아이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으니 책임지라는둥, 잘못한 자들을 처벌하라는 둥 이제는 좀 놓아주고 넘어가도 될 법한데 너무 징하게 우려먹고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를 이번 선거 전후로 도대체 몇번을 들었는 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정말 징할 정도로 끊임없이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느냐, 제가 전에도 몇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겠지만 이 분들에게는 저들에게 닥친 지옥같은 고통과 이별의 아픔이 좀체 공감되지 않는 것이죠, 단순하게 멀리서 대중적인 관심만으로 그들이 당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공감만 있을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과 가슴깊은 공감까지는 그들에게는 사치였을겝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1년, 2년이라는 시간들이 흘러가면서 자신과 무관한 고통은 망각하기 마련이고 망각은 언제나 인간의 제1순위의 자기보호의 본능입죠, 누구나에게 그렇습니다.. 탓할 수는 없는 일이죠, 허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상의 누군가의 아픔을 이제는 잊었다치더라도 그들을 향해, 그분들의 아픔을 바라보며 시간이 흘렀는데, 세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세상과 사회와 나라를 탓하고 책임을 지라고 억지부리는 일을 하지말아야된다는 그따우 빌어먹을 망발은 하지말아야죠, 절대로,
2. 나라고 정권이고 나발이고 뭔 상관입니까, 내아이, 내가족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판에 당연히 책임을 져야될 필요가 있는 사람을 죄값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벌이 주어져야하지만 누가 제대로 이 상황에 대한 처벌이나 탓에 대한 어떠한 책임이라도 진 사람이 있습니까, 대통령이요, 그 사람이 지금 이 문제로 처벌을 받았나요, 어느 누가 우리의 아이들 수백명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그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나요, 세상은 죽음보다 더한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못한 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부모와 가족에게 그 처벌과 상처와 고통의 무게를 덧씌운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1일이든, 10년이든, 삶이 남은 모든 매순간의 시간들이 지옥이고 고통이고 아픔이고 눈물이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시간은 의미조차 없는 것이겠죠, 징하게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징하게 못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색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으로서, 무엇보다 국민을 대변하는 공감받은 대리인들로서 그들이 끄집어내는 말 하나에도 의미를 두어야할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자기 만족과 자기 위주와 보수와 기득권의 표상인 사회의 주변인들의 삶에서도 그따우 말같잖은 소리로 우려먹는다는 둥,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냐는둥의 토로는 하지말아야하는 거죠, 생각이야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말로 튀어나오면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시쳇말로 자기 새끼, 자기 가족이 아니니 함부로 말할 수도 있을거라는 누군가의 한섞인 분노가 어지간히도 공분되는 며칠간의 시간동안 하필이면 읽은 작품이 또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절한 심리를 그려낸 북유럽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작품이군요, 스티나 약손의 "실버로드" 부제가 사라진 소녀들입니다..
3. 렐레의 딸 리나는 3년전 아침 자신이 직접 내려준 버스 정류장에서 단 몇분만에 실종됩니다.. 그리곤 현재까지 찾지 못한 체 미결로 남겨진 체 여전히 리나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녀를 찾기 위해 렐레는 변함없이 매일 실버로드의 길을 나섭니다.. 그동안 렐레는 자신의 삶과 모든 것을 리나를 찾기위해 바치죠, 아내는 끝까지 리나를 지키지 못한 렐레를 탓하고 경찰들은 오히려 마지막 리나를 내려준 렐레를 의심하고 주변은 모든 사람들은 리나의 실종에 단서를 제공하지 못하죠, 끝없은 자괴감과 죄책감과 책임감에 고통받으며 죽음보다 더한 삶의 나락속에서 렐레는 하루하루 죽어가는 자신의 삶의 애착을 리나의 수색에 쏟아붓고 있는 거죠, 그렇게 렐레는 축축한 북스웨덴의 노를랜드의 실버로드의 숲과 습지속의 폐가와 어두움속에서 자신의 딸의 흔적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메야가 등장합니다.. 메야는 스톡홀름의 남쪽지방에서 북으로 올라온 어머니와 함께 실버로드의 축축한 습지에서 살아가는 한 남성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미혼모인 자신의 엄마의 정신적 문제를 관리하는 메야는 아직 열일곱살의 어린 소녀이죠, 음침한 남자 토르비요른과 살게 된 메야는 얼른 성인이 되어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죠, 그러던 어느날 숲속에서 자신 또래의 한 무리의 남자 아이들을 만납니다.. 칼 요한을 비롯한 남자 형제들은 메야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죠, 이들은 예란이라는 맏형과 페르라는 둘쨰, 그리고 칼 요한의 삼형제로서 숲의 외진 곳에서 현대 문물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만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였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메야는 칼 요한에게 빠져들고 그들과 가까워 집니다.. 이렇게 렐레와 메야는 동일한 시간속에서 실버로드의 삶속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이들에게는,,,,,,
4. 실종된 딸의 생사를 찾아 나서는 한 아버지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절절히 그려낸 심리스릴러라고 보셔도 무방하겠군요, 3년동안 어떠한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홀로 딸을 찾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아버지의 모습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심지어 아내조차도) 그의 행동과 삶을 동정하고 이제는,,, 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하지만 리나의 생사조차 알 지 못하는 렐레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조차 모른거죠, 그는 자신의 삶과 리나의 삶을 동일시하는 듯 합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본 리나의 모습이 그대로 그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녀의 숨소리를 찾기 위해 끝없이 실버로드를 달려가죠, 하지만 그의 주변과 사람들은 리나가 아닌 그를 바라봅니다.. 그들의 눈과 생각속에서 어느듯 리나는 망각이라는 본능적 치유속에서 차츰 스며들게 되는거지요, 그래야지만 그들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렐레는 그렇게 살아갈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리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렐레의 고통을 놓아줄 생각이 없나봐요, 끊임없이 렐레를 몰아부치고 사건을 끌여들여서 혼란에 이르게 합니다.. 새로운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3년전의 리나와 비슷한 실종으로 한나라는 아이가 사라집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북스웨덴의 노를랜드의 실버로드라는 공간속에서 펼쳐지는 축축한 습지와 진흙과 모기때와 함께 여름의 백야와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내뿜는 고통의 입김이 느껴지는 감성이 매우 감각적입니다.. 렐레의 심리를 통해 보여지는 감성적 심리가 이러한 공간적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거죠,
5. 이 작품은 렐레와 메야라는 캐릭터를 교차시키며 진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렐레는 딸의 행방을 찾고 아버지가 없는 메야는 자신의 삶을 고민하죠, 그리고 이들은 결국 그들의 길에서 마주칩니다.. 좋은 구성입니다.. 렐레는 끊임없이 슬퍼하고 고통받고 아픔속에서 리나의 생사를 찾기위해 자신을 몰아가죠, 메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의 삶속에서 자신을 찾기위해 자신을 몰아가죠, 그렇게 이들은 각자의 삶에 대한 목적으로 삶을 몰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그들의 삶의 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느끼게 해줄 가족의 위안과 평화와 안락이라는 것이죠, 렐레는 리나를 찾음으로서, 메야는 자신이 받지못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살아감으로서 기나긴 고난의 아픔이 사라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시작점에서 마지막점까지 이러한 두 인물의 심리와 혼란을 고심하면서 놓질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소설은 두 인물의 이야기를 한데 뭉쳐가는데에 대한 곤란함을 느끼게 되죠, 사실 메야의 스토리는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속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서사의 중심인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사건의 영역과 미스터리조차 이들의 심리적 불안함과 의되속에서 묻혀버리기 십상입니다.. 2부에 들어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긴 하지만 그조차도 크게 반전의 방식이나 의도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이 작품의 미스터리적 측면은 조금 많이 아쉽습니다.. 게다가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서 독자로서 설마하고 그렇게 진행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방식의 해결점이 그대로 그려지는 측면과 함께 마무리의 허전함은 전반적인 이 작품의 감성적 분노에 대한 답으로서의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물론 제가 렐레라는 인물을 통해 느꼈던 절절함과는 별개로 말이죠,
6.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한 미스터리한 스릴러의 감성과 인물의 심리적 내면을 그려내는 끈끈함을 아주 매력적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의 절절한 심리적 극단성을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공감의 형태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는 쉽게 포기하고 치유하게 될 지는 몰라도 가장 아픈 당사자로서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그려낸 작품인 듯 싶어서요, 드러내지않고 보여지진 않지만 자신의 아이를 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렐레의 행동과 마음과 모든 아픔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신의 어린시절의 렐레의 삶과 자신이 받은 기적같은 하늘의 선물인 아이를 대하는 그의 삶의 이유를 알게됩니다.. 유일한 삶의 목적이라고 단정킨 어렵겠지만 렐레에게는 자신과 다름아닌 아이의 생명인 것이지요, 아이의 실종이 생과 사의 답을 주지 않으니 그로서는 자신이 살아갈 목적이 리나라는 아이의 행방을 찾아서 살려내는 것인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살아갈 명분과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세상의 부모들이 모두 그러하진 않겠지만 대다수의 부모는 그렇게 자식을 죽는 그순간까지 놓질 않습니다.. 행동하지 않을 뿐이지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잊어야하니, 그만 울궈먹어라니, 이제는 놓아주라느니, 더이상은 끄집어내지말라느니, 자식 목숨값으로 산 생명이라도 좀 편안하길 바란다느니, 이런 개쓰레기같은 망발은 그만 좀 하면 어때, 여하튼 자신의 아이를 찾는 부모의 절절한 심리와 내면을 이렇게 멋드러지게 그려내는 작품, 나쁘지 않습니다.. 미스터리의 흐름이 조금 빨랐으면 더 좋았겠고 교차된 이야기가 서로 호기심을 조금 더 이끌어내었으면 더더 좋았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난 제법 좋았던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절절한 공감도 마찬가지고..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