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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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은 오지않는 지독히도 추웠던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날따라 길거리에는 넘쳐나는 연인들로 가득차고 갈 곳 없는 솔로들은 끼리끼리 모여 술 한잔 걸치고 불콰하게 차오른 취기를 즐기며 술도 깰겸 걷는 길이 그렇게 나쁘지가 않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골목길 어귀 옆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만 내 일도 아니니 크게 신경쓰진 않는다.. 시린 귀를 매만지며 담배 한대를 다시 꺼내 물지만 바람에 불이 쉬이 붙지는 않고 고개를 숙여 애꿎은 라이터만 탓하는 사이 한 여성이 내가 지나쳐온 골목길에서 힘겹게 뛰어나온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도움을 청한 여성을 따라 나온 힘깨나 쓰게 생긴 남자, 얼굴도 지랄같이 무섭게 생겼다.. 젠장할, 하필이면 이럴때 사달이 날 상황이 발생하다니, 그런데 어쩌나, 난 혼자가 아니라 친구가 두명이나 함께 있는걸, 아무말 없이 쳐다보고 있는 우리를 보곤 혼자서 온갖 쌍욕을 씨부리다가 알아서 꺼져주신다.. 바닥에 주저앉은 체 멍하니 있는 여성에게 그제서야 신경이 쓰인 친구가 자기 돕바를 벗어 덮어준다.. 아, 눈치 빠른 새끼, 그렇게 난 항상 늦다... 그리곤 혹시 담배 태우시냐고 묻곤 자기 담배 한대를 입에 물려주곤 불을 붙여준다.. 역시 빠른새끼,


    2.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다.. 그때는 그랬다.. 아니 난 그랬다.. 우리들은 그냥 그러려니했다.. 자주 보아왔던 일들이고 그건 상황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까지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았다.. 그날도 그렇게 서로 담배를 나눠 태운 후 여성분은 택시를 타고 자신의 길을 갔다.. 물론 친구는 그새 여성분의 삐삐번호를 낼름 받아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심각한 폭력이 벌어지진 않았고 그런 상황을 모면하긴 했지만 지금 그때 그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귀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바람이 불던 도롯가 전봇대에 주저앉아 온몸을 떨던 여성에게 있어서 조금전의 폭력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와달라는 비명소리에도 지나가던 어느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그 순간 그녀는 어쩌면 죽음의 두려움까지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지나면 잊혀지고 머리속에서 사라질 기억뿐일테지만 지금 이순간 그 여성의 떨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건 그녀 못지않게 그 폭력적 상황을 뇌리속에서 잊지 못하는 공감이 있기 때문일게다.. 비록 당해보지 않았다손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인간에게 있어 굴복하고 반항하지 못한체 극악한 폭력속에 놓여지는 공포는 평생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억속 생채기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비록 흔한 과거의 기억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지만 그런 상황을 경험한 그때 그 여성에게는 어쩌면 지금 이순간도 어두운 밤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3. 노라는 언니를 만나기위해 런던에서 말로행 기차를 탑니다.. 어릴적부터 언니인 레이첼과의 관계가 워낙 돈독하다보니 서로 의지하고 기대는 자매인게죠,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들의 인생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물론 어머니는 돌아가셨구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런던을 벗어나 조용한 언니의 집으로 향하던 노라에게 있어 언니는 안식처와 다름없는 공간입니다.. 그런 언니와 함께 많은 시간을 지내왔고 또 앞으로의 공유에 노라는 삶의 위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집에 도착한 노라에게 닥친 것은 언니의 죽음이죠, 누군가에게 살해된 언니를 모습과 함께 과거 무차별적 폭력에 평생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노라와 언니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누군가가 강도짓을 하고자 살해한 것이 아닌 어떤 분노와 집착과도 같은 폭행적 의도가 엿보인 언니사건에 대해 노라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진 그들의 혼란스러운 삶의 이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니와 관련된 인물들, 특히 남성들에 대한 노라만의 상상적 추리가 이어지죠, 마지막 언니의 모습을 보았던 키스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15년도 지난 폭행사건으로 죽음을 당하기전까지 그들을 폭행한 인물을 찾고 그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던 이 자매의 삶의 파편이 조금씩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노라의 진실찾기속에서도 경찰들이 보여준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죠, 오로지 그녀만이 언니와의 삶의 답을 찾아나길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알게되는 진실은, 헉.....


    4. 노라라는 여성의 시점에서 보여지는 이 소설은 무척이나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고민스럽습니다.. 노라라는 인물을 실제 피해를 당한 당사자라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공감자로서의 모습이죠, 오히려 극악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소외와 편견에 대한 이야기라고봐도 될까요, 하지만 직접적이지않다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죠,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고 믿는 사람이 받는 상처와 두려움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대상이기 때문이죠, 그녀의 언니 레이첼이 당한 폭력적 트라우마는 노라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그녀의 삶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니가 아니기때문에 자신에게 투영된 언니의 모습과 감성만 느낄 뿐이지 레이첼이 되질 못하죠, 그렇게 뒤늦게 조금씩 알아가는 레이첼이라는 존재가 안고 살아온 세상의 온갖 혼란과 두려움을 노라는 언니의 죽음으로부터 하나씩 이해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피해자입니다.. 사회적 피해자들이죠, 이들의 시선속에서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올바르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맞춰진 것이 없어 보이죠, 세상의 모든 남성들은 그렇게 포용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않죠, 편견과 이기심과 폭력과 분노와 특권이라는 사회적 권리속에 적응되어 차별적 시선으로 여성을 대하는 인물이 될뿐입니다.. 그들에겐 그럴지도 모를일이죠, 그들이 당한 사회적 불합리와 폭력적 범죄가 여전히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그렇게 남성들은 단죄보다는 또다른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일겝니다.. 그로 인해 레이첼은 불필요한 죽음을 당했을 지도 모르죠, 노라는 그렇게 생각한 모냥입니다.. 대단히 세밀하고 농밀한 여성적 관점의 심리스릴러라할 수 있겠습니다..


    5. 이렇듯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 주는 영향으로 한 여성이 심리적으로 대단히 위태로워지는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조금은 적응이 더딜 수도 있을테고 때로는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을겝니다.. 특히나 남성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속의 노라의 감성은 무척이나 예민하다는 인상까지 주기도 합니다.. 집착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테죠, 저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상황적 시각속에 놓인 노라의 시선은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집요하기까지 하니까요, 언듯 노라의 주변에서 노라를 대하는 태도가 어느순간 변해지는 것과 다르지않게 저의 독서상의 심리적 상태로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끈질기고 집요하게 상황적인 예민함과 감성적 집착으로 주변에서 고립될 필요가 있을까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듭디다.. 소설속의 노라의 추리와 단서찾기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입니다.. 또한 개인적 상상력과 의도한 집착으로 보여지기까지 하죠, 그러한 노라의 심리와 압박에 대해 스스로 과거를 들추며 자신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와 합리화를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문장의 이어짐은 심리스릴러의 끈끈함같은 스릴감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좀 지리해지는 경향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저같은 진득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빠른 속도감과 흐름상의 단서찾기가 어느정도 드러나면서 이어지는것이 가독성에 좋거덩요, 하지만 작품은 끈기있게 노라의 심리와 시선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똭, 제가 예상하고 미스터리독자라면 한번씩 상상해보는 추리의 끄내기가 떡하니 펼쳐집니다.. 일종의 흔한 반전이죠, 하지만 이 흔한 반전의 전개와 함께 그제서야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면서 물벼락을 쏟아놓기 시작합니다..


    6. 조금은 여성적 심리스릴러로서 개인적인 심리와 여성적 관점의 폭력적 트라우마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미스터리물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어떤 상황에 대면한 당사자라기보다는 그 범죄의 중심에 놓인 관계자로서의 한 여성이 보여주는 서사는 대단히 농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심리적 불안과 상황적 혼란을 그려냅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의 객관적 주관화는 살해된 대상이 가졌던 심리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객관화시켜 보여주면서 그와 함께 공감한 주관적 감성까지 혼합되어 나타나게 되죠, 문장이 이어질수록 독자들의 사고가 소설속 인물의 심리적 공감과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전혀 과학적이지도 추론이 구체적이지도 않은 일반적인 한 여성적 관점속에서 그녀가 경험하고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그 대상들의 모습들이 우리네 삶과 인생속의 흐름과 다르지않다는 것에 독자로서 동조하게 되는 것이죠,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한 여성의 죽음으로부터 밝혀지고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진실에 다가가는 가족이라는 대상의 심리와 그 아픔의 투영은 죽음을 당한 존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살아있으나 죽은 이로부터 전해받은 모든 기억의 파편들은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언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와 아픔과 사랑으로 점철되어 소설속에서 끊임없이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레이첼이, 노라가 살아오고 살아가는 인생의 울타리가 얼마나 허술하고 위험하고 위태로운가를 알려줍니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모든 여성들이 감내해야할 지도 모를 삶의 위태로움을 말이죠,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많은 것을 얻지 못한 체 여전히 부족한 삶의 허전함과 공허한 거짓 배부름속에서 이를 감내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죠, 그러니 남성들이여, 가진자들이여, 배려하고 베풀고 포용하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무엇보다 사랑하라,,, 이야 이거 내가 적고도 좀 멋있다이..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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