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의 생애

 
그림 형제는 형 야콥 그림(Jacob ludwig karl Grimm, 1785~1862)과 동생 빌헬름 그림(Wilhelm Karl Grimm, 1786~1859)을 말한다. 이 두 형제는 독일의 대학 교수였으며 언어학자로서 독일의 옛날 이야기를 수집하여 독어의 문법과 역사를 연구하였고 사전과 문법책도 만들게 되어 《어린이와 가정의 옛날 이야기》를 각각 1812년과 1815에 두 편의 책으로 내었는데 근대 아동 문학의 소중한 모태가 되었다.

그림 형제는 민화나 전설 속에 독일의 민족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일의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국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던 민화나 전설을 모아서 정리하였다. 따라서 그림의 동화는 민족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동화집에는 《백설공주》,《헨젤과 그레텔》,《브레멘의 음악대》,《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가 있다.

▶ 그림 형제의 생애

그림 형제는 독일 헤센 주의 하나우라는 작은 도시에서 5남 1녀 가운데 첫째와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그림 형제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졌으며, 1808년 어머니마저 죽게 되어 당시 23세의 야콥은 4명의 남동생과 여동생 1명을 부양해야만 했다. 학자풍이었던 야콥은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한데다 얼굴 생김새가 날카로운 반면에, 빌헬름은 키가 크고 인상이 부드러웠으며 사교적이고 모든 종류의 예슬을 좋아했다.

1802년 야콥이 마르부르크 대학교에 들어가고 이듬해에 빌헬름도 입학했다. 처음에 형제는 독일 법률을 연구하기로 했다. 1806년에 독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싸움에 지고, 어머니가 사시는 카렐 시는 나폴레옹의 아우가 다스리는 나라의 서울이 되었다. 박사가 된 형제는 그런 가운데서도 독일 고대 문학과 어학 연구를 계속했다.

야콥은 한 때 외교관이 되어 헤르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외국에 나가 있기도 했다. 그 후 두 형제는 1830년에 게팅겐 대학에서 사서에 이어 교수가 되었고 1841년에 베를린으로 옮겨가서 프로이센 학사원의 회원이 되었다. 그동안 꾸준히 가까운 헤센 지방과 베스트팔렌 지방을 여행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들은 것을 토대로 이를 재미있게 다시 엮었다. 어릴 때부터 한 방에서 자고 먹고 또 같은 복장을 하고 쌍둥이처럼 자란 다정한 형제는 함께 뜻을 모아 동화집을 꾸몄다. 이것은 민족 설화를 모으는 작업이기도 했으며 언어 연구의 일부이기도 했다. 13년의 긴 세월간 수집된 자료를 기초로 하여 1812년에 85편을 제 1집에 1815년에 70여편을 제 2집에 모아 출판했다.

그림 형제가 모은 250편의 이야기 중 지금 동화로서 완성되어 내려오는 것은 약 200여편 된다. 낭만주의 동화가 지닌 허황된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 실린 200편의 이야기는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 상상력, 신념을 전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구사하는 단어와 방식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였다. 뛰어난 점은 옛날이야기의 민담적 성격을 바꾸지 않고서도 읽기 쉬운 형태로 만든 데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독일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널리 보급되어 지금은 70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모든 곳에서 민담수집의 모범이 되었다.

그림 형제 (Grimm)

독일의 언어학자ㆍ형제작가. 형 야콥(Jacob Grimm.1785∼1863), 동생 빌헬름(Wilhelm Grimm.1786∼1859). 하나우 출생. 형은 위대한 연구가였으며, 아우는 우수한 교사였다.

민요와 민담집은 고전이 되었으며, 특히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1812∼22)가 유명하다. 이 책은 보통 <그림 동화>로 알려져 있으며 민속학의 연구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야코프는 역사언어학과 게르만 문헌학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야코프 루트비히 카를 그림과 빌헬름 카를 그림은 5남 1녀 가운데 첫째와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필리프 빌헬름은 법률가로서 하나우의 시청 서기관으로 일하다가, 그 뒤에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칼뱅주의 개혁교회의 목사로 있는 헤센의 다른 소도시 슈타이나우에서 사법관직을 맡았다. 1796년 아버지가 죽자 그림 형제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졌으며, 1808년 어머니마저 죽게 되어 당시 23세의 야코프는 4명의 남동생과 여동생 1명을 부양해야만 했다. 학자풍이었던 야코프는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한데다 얼굴 생김이 날카로운 반면에, 빌헬름은 키가 크고 인상이 부드러웠으며 사교적이고 모든 종류의 예술을 좋아했다.

카셀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뒤 형제는 공무원이 될 생각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르부르크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1802~06). 마르부르크에서 그림 형제는, 그들에게 민간전승시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준 클레멘스 브렌타노와 법학에서 역사학파의 창립을 도운 프리드리히 카를 폰 자비니의 영향을 받았다. 자비니는 뒤에 그들의 모든 작품의 실질적 토대가 될 고서학(古書學) 탐구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밖에도, 민간전승시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1744∼1803)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 형제는 독자적으로 각기 자신의 원칙에 따라 창작활동을 했다. 1805년 형 야코프는 중세의 법률에 관한 필사본들을 연구하기 위해 자비니를 따라 파리로 가서 이듬해에는 카셀의 육군성 사무관이 되었다. 동생 빌헬름은 건강 때문에 1814년까지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1806년 프랑스 침공 뒤, 야코프는 1808년 베스트팔렌의 제롬 왕의 전속 사서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국무원의 회계감사관이 되었으나, 나폴레옹이 패전한 뒤 1813년 다시 헤센의 일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1814∼15년 프랑스인들이 헤센과 프로이센에서 빼앗아간 값진 책과 그림들을 되찾기 위한 사절단의 서기관 자격으로 2차례 파리에 다녀왔으며, 빈 회의(1814. 9∼1815. 6)에도 참여했다. 한편, 그동안 빌헬름은 카셀의 선제후(選帝侯) 도서관의 사서가 되었고(1814), 1816년 야코프가 그와 합류했다. 그 무렵 형제는 법조계 대신 순수한 문학연구의 길을 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 뒤 몇 년 동안 검소하게 살면서 꾸준한 작업을 통해 평생에 걸친 관심사를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그들의 총체적인 사고는 당대 사회·정치적 변화들과 그로 인한 문제들에 뿌리 박고 있었다. 야코프와 빌헬름도 18∼19세기를 풍미한 '고딕' 낭만주의와는 전혀 무관하였으며, 정신적인 면에서도 낭만주의보다는 사실주의에 가까웠다. 그들은 먼 과거를 탐구하였고, 과거 속에서 당대의 모든 사회제도를 이루는 토대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러한 토대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림 형제는 독일을 넘어선 자료들, 즉 스칸디나비아ㆍ스페인ㆍ네덜란드ㆍ아일랜드ㆍ스코틀랜드ㆍ영국ㆍ세르비아ㆍ핀란드의 문학전통까지도 포용하고자 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민요와 민담을 수집한 것은 1805년 문학적 가치가 있는 민요를 수집하고 있던 친구 아힘 폰 아르님과 브렌타노를 위해서였다. 나아가 형제는 몇몇 비평문을 통해 민속문학과 다른 글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검토했다. 그들에게 있어 민간전승시는 인류의 영원한 기쁨과 슬픔, 희망과 두려움을 표현한, 유일하게 진정한 의미의 시였다.

그림 형제는 아르님의 격려에 힘입어, 수집한 민담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 이야기>로 출판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낭만주의 동화가 지닌 허황된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 실린 200편의 이야기(몇몇은 인쇄된 자료에서 얻은 것이지만 대부분은 구전된 것임)는 시대가 흘러도 변치않는 사람들의 영혼, 상상력, 신념을 전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구사하는 단어와 방식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빌헬름의 뛰어난 점은 동화의 민담적 성격을 바꾸지 않고서도 읽기 쉬운 형태로 만든 데 있다.

그 결과는 3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이 책은 독일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널리 보급되어 지금은 7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둘째, 모든 곳에서 민담수집의 모범이 되었다. 셋째, 그림 형제가 각 이야기에 붙인 주석은 다른 연구논문들과 더불어 민간설화학, 더 나아가 민속학 연구의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이야기들은 최초의 '과학적' 민담집으로 남아 있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에 뒤이어 독일의 역사와 각 지방에 얽힌 전설을 모은 <독일의 전설>(1816∼18)을 펴냈는데, 이 책은 문학과 민간설화 연구에 영향을 미쳤으나 폭넓은 인기는 얻지 못했다.

형제는 그 뒤 1826년 토머스 크라프턴 크로커의 <아일랜드 남부의 요정 전설과 구전설화> 번역판을 내면서 요정 연구에 대한 긴 소개문을 직접 써 서문으로 내놓았다. 이와 동시에 고대문학의 문자화된 기록에도 관심을 기울여 독일어와 그밖의 언어로 쓰여진 고대 원문들을 새로 편집해 출판했다. 빌헬름의 남다른 업적은 6∼16세기의 문학과 미술에 언급된 영웅전설에 나오는 주제와 이름을 모아, 사가(Saga)라는 문학형식에 대한 평론을 덧붙여 <독일의 영웅담>을 펴낸 데 있다.

20년 동안(1806∼26) 이러한 주제들을 함께 연구하면서 야코프는 언어학에도 손을 대 <독일어 문법>(1819∼37)이라는 방대한 문법서를 냈다. 이 책 제목의 'deutsch'란 말은 엄격하게 '독일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공통적인'이라는 어원학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게르만족의 모든 언어에 적용하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이 책은 처음으로 여러 게르만제어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야코프는 여러 언어에 나타나는 음운변화(모음과 자음 모두)의 자연법칙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적 어원학의 방법론, 즉 언어와 의미변천 사이의 관계연구를 위한 토대를 놓았다. 나중에 '그림 법칙'으로 알려지게 된 이론을 통해, 야코프는 발생학적으로 연관된 언어들에서는 자음들 사이에 규칙인 대응관계가 있다는 덴마크의 라스무스 라스크가 앞서 발견한 원칙을 입증했다. 야코프의 문법서는 당시 게르만어·로망스어·슬라브어 등의 언어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824년 야코프 그림은 친구인 V. S. 카라드지치가 쓴 세르비아어 문법서를 번역하면서 슬라브어와 문학에 대해 박학한 서문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야코프는 독일의 민간문화에까지 연구영역을 넓혀, 고대의 법 관행과 신조에 대한 연구서 <독일 법제사 자료>(1828)를 펴냈다. 이 책은 체계적인 자료를 제공하나 실행법은 다루지 않고 있다. 이 연구서의 출판에 자극받아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남부 슬라브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책들이 나왔으나 아직까지 야코프의 연구서를 능가할 만한 책은 없다.

▶ 작품

【그림동화집】

독일에 전해 오는 민간실화를 그림형제가 수집하여 편집한 민화집, 원제는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그림형제는 민족적 민중적인 것을 강하게 지향하는 낭만주의의 흐름 속에서 민족의 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학문적 목적으로 민간에 구전되어 오던 옛날 이야기를 채집하였고 또 고문헌에서도 채록하였다.

1812년 86편을 수록하여 제1권을 출판한 뒤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수록하여 발행하였으며, 57년 〈그림동화〉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제7판에는 마법동화, 동물동화 등 다양한 200 여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백설공주〉〈빨간모자〉〈헨젤과 그레텔〉〈늑대와 7마리 어린 왕〉〈황금거위〉〈엄지공주〉등이 유명하다.

〈개구리왕자〉-- 동물의 모습으로 되어 있는 왕자를 사위로 삼는 것을 줄거리로 한 혼인담의 하나이다. 이 동화는 세계 각지에 퍼졌는데, 터키의 비슷한 이야기들도 그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것이라 한다. 한국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우렁각시〉가 있다.

〈헨젤과 그레텔〉-- 그림동화집의 15번째 이야기. 그림형제가 헤센에서 구전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백설공주〉-- 그림동화집의 53번째 이야기. 유럽, 그리스, 터키, 러시아 등에 분포되어 있는 민화의 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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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정받는 변함없는 가치

한 남자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 살배기 아들에게 선물할 동화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맞는 좋은 책이 눈에 띄지 않았지요. 실망한 남자는 동화책 대신 빈 노트 한 권을 사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자는 노트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고, 비어 있던 노트는 금세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평범한 노트 한 권이 재미있는 글과 섬세한 그림이 담긴 멋진 그림책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지요.

그 책은 이듬해에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자신의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랑으로 쓰고 그렸던 단 하나뿐인 그림책이 세상 모든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 된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정신과 의사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더벅머리 아이』는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그 때가 1845년,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담아, 자신의 외로웠던 유년에 바치는 이야기

『더벅머리 아이』는 열 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이야기마다 용모가 단정치 못한 아이, 난폭한 아이, 친구를 놀리는 아이 등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호프만 박사는 못된 주인공과 동화를 읽는 착한 어린이들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어법을 사용했습니다. 못된 주인공들이 자신의 나쁜 행동으로 인해 벌을 받는 인과응보의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했죠. 또한 그러한 결말을 통해 자신의 나쁜 습관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소한 용모에 대한 배려부터 식사 예절, 다른 존재에 대한 사려 깊은 행동, 위험한 장난에 대한 경고 등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 속에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무조건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을 치기보다는 나쁜 습관을 가진 주인공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잘못을 고치기 바라는 아버지의 자상한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또한 『더벅머리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 채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호프만 박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등장하는 더벅머리 아이는 몹시 헝클어진 머리에 손톱 또한 일 년은 깎지 않은 듯 무척 지저분합니다. 모두가 그 아이에게 흉측하다고 한마디씩 하지요. 그런데 더벅머리 아이는 무척 침울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못된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호프만 박사가 왜 슬픈 표정의 더벅머리 아이를 그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어머니를 여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호프만 박사의 어렸을 적 모습이 더벅머리 아이에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날개를 뜯어내고 그레트헨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못된 프리드리히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마음을 닫아버린 호프만 박사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자책감과 양심의 가책이 다른 것들을 괴롭히고 못되게 구는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죠. 식탁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식탁보와 함께 뒤로 넘어져 음식을 뒤집어쓰는 말썽쟁이 필립은, 아버지의 재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호프만 박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더벅머리 아이』는 석판화 인쇄를 통해 그림의 형태와 색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호프만 박사가 밤을 새워 가면서 하나하나 정성스레 찍어낸 것이지요. 어쩌면 호프만 박사는 그림의 형태와 색깔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를 향한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무엇보다 간절히 사랑 받기 원했지만 항상 외로움을 느꼈던 호프만 박사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호프만 박사는 ‘아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갈등을 일으키는 마녀나 사악한 동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이 책이 한 세기 반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야기에 담긴 실생활과 관련된 직접적인 교훈,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림에 새겨진 호프만 박사의 바래지 않는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

하인리히 호프만 글·그림 심동미옮김

2004년 7월 15일 발행 isbn 89-8281-847-2

150x225 32 페이지, 6800원 (문학동네어린이)

실생활과 관련된 직접적인 교훈,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림에 새겨진 호프만 박사의 바래지 않는 사랑. 한 세기 반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에 담긴 10개의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아니타 엑슈태트(Anita Eckstaedt)의 『더벅머리 아이:작품과 해석(“Der Struwwelpeter”: Dichtung und Deutung)』/ 문학동네

 - 한국 창의독서 연구소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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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정받는 변함없는 가치

한 남자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 살배기 아들에게 선물할 동화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맞는 좋은 책이 눈에 띄지 않았지요. 실망한 남자는 동화책 대신 빈 노트 한 권을 사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자는 노트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고, 비어 있던 노트는 금세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평범한 노트 한 권이 재미있는 글과 섬세한 그림이 담긴 멋진 그림책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지요.

그 책은 이듬해에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자신의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랑으로 쓰고 그렸던 단 하나뿐인 그림책이 세상 모든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 된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정신과 의사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더벅머리 아이』는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그 때가 1845년,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담아, 자신의 외로웠던 유년에 바치는 이야기

『더벅머리 아이』는 열 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이야기마다 용모가 단정치 못한 아이, 난폭한 아이, 친구를 놀리는 아이 등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호프만 박사는 못된 주인공과 동화를 읽는 착한 어린이들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어법을 사용했습니다. 못된 주인공들이 자신의 나쁜 행동으로 인해 벌을 받는 인과응보의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했죠. 또한 그러한 결말을 통해 자신의 나쁜 습관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소한 용모에 대한 배려부터 식사 예절, 다른 존재에 대한 사려 깊은 행동, 위험한 장난에 대한 경고 등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 속에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무조건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을 치기보다는 나쁜 습관을 가진 주인공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잘못을 고치기 바라는 아버지의 자상한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또한 『더벅머리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 채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호프만 박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등장하는 더벅머리 아이는 몹시 헝클어진 머리에 손톱 또한 일 년은 깎지 않은 듯 무척 지저분합니다. 모두가 그 아이에게 흉측하다고 한마디씩 하지요. 그런데 더벅머리 아이는 무척 침울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못된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호프만 박사가 왜 슬픈 표정의 더벅머리 아이를 그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어머니를 여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호프만 박사의 어렸을 적 모습이 더벅머리 아이에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날개를 뜯어내고 그레트헨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못된 프리드리히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마음을 닫아버린 호프만 박사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자책감과 양심의 가책이 다른 것들을 괴롭히고 못되게 구는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죠. 식탁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식탁보와 함께 뒤로 넘어져 음식을 뒤집어쓰는 말썽쟁이 필립은, 아버지의 재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호프만 박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더벅머리 아이』는 석판화 인쇄를 통해 그림의 형태와 색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호프만 박사가 밤을 새워 가면서 하나하나 정성스레 찍어낸 것이지요. 어쩌면 호프만 박사는 그림의 형태와 색깔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를 향한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무엇보다 간절히 사랑 받기 원했지만 항상 외로움을 느꼈던 호프만 박사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호프만 박사는 ‘아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갈등을 일으키는 마녀나 사악한 동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이 책이 한 세기 반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야기에 담긴 실생활과 관련된 직접적인 교훈,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림에 새겨진 호프만 박사의 바래지 않는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

하인리히 호프만 글·그림 심동미옮김

2004년 7월 15일 발행 isbn 89-8281-847-2

50x225 32 페이지, 6800원 (문학동네어린이)

실생활과 관련된 직접적인 교훈,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림에 새겨진 호프만 박사의 바래지 않는 사랑. 한 세기 반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에 담긴 10개의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아니타 엑슈태트(Anita Eckstaedt)의 『더벅머리 아이:작품과 해석(“Der Struwwelpeter”: Dichtung und Deutung)』/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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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생애와 작품 

권정생은 우리 아동 문학사에서 불행한 이들과 버림받은 소외된 존재들을 본격적인 작품 소재로 다루어 낸 최초의 작가이다. 그리고 유년기와 소년기에 걸쳐 대동아 전쟁과 6·25 전쟁을 직접 겪은이로 그 체험을 본격적인 아동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세인의 주목을 끈 유일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일본 도쿄의 변두리 셋집에서 거리의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헌책을 가려내어 다락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두면 그 쓰레기 더미에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찾아 내어 읽곤 했다.

광복이 되고 열 살이 되던 해 1946년 봄에 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10명이나 되는 식구가 생계를 유지할 길이 막연하여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6·25 전쟁을 겪게 된다. 이 때 작가는 피난지를 떠돌며 담배 장수 등 막일을 전전하다 19세 나이에 늑막염에다 폐결핵이 겹쳐 몸져 누웠다. 그리하여 병은 더욱 악화되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10년째 앓으며 병든 몸으로 무작정 집을 나와 그가 마지막으로 의탁한 것이 기독교 신앙이고 아동 문학이다. 그는 작은 시골집에서 종지기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작가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9년에 제1회 기독교 아동 문학상에 동화〈강아지똥〉이 당선되고, 1971년 대구「매일신문」신춘 문예에 동화〈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로 당선하면서 본격적인 동화 작가로 입신하게 되었다.

* 권정생의 작품 세계

-- 그의 작품 중에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거나 그에서 받은 상처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사는 이들에 대한 작품들이 많다.

<바닷가 아이들>, <몽실언니>, <점득이네>, <별똥별>, <패랭이꽃> 등의 동화를 통해 전쟁의 비참함이나 통일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 그의 동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깜둥바가지, 흙먼지 아이들,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 가는 똘배, 강아지똥,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할머니 할아버지 등 온갖 고난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 거의 반평생을 병고로 시달려온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병고와 실향 및 결손 가정의 여건 등 사회적인 그늘에서 소외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갈등과 문제 의식을 다루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용기와 사랑을 주며 고통을 이겨나간다.

<몽실언니>는 모진 고난 속에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주인공 몽실이를 통해 욕심으로 가득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 소년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온 병마와 싸우면서도 주옥같은 작품을 써 내는 권정생은 어떤 의식의 흐름 속에서 글을 쓰는지 그의 이야기 중 간략히 추려 보면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어른들도 읽게 된 것은 아마 한국인 이면 누구나 체험한 고난을 주제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동화에다 무리한 설교조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과연 그런 동화가 우리 인간에게 얼마만큼 유익한지 난 알 수 없다. .....중략.....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권의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중략..... 내가 왜 동화를 쓰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누구나 가슴에 맺힌 이야기가 있으면 누구에게나 들려주고 싶듯이 그렇게 동화를 썼는지도 모른다."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가운데 )

* 작품 목록 *

- 장편소년소설

<몽실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을>, <하느님은 옆집에 살고 있네요>

- 단편 동화집

< 사과나무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달맞이 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할매하고 손잡고>,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팔푼돌이 삼형제>, <짱구네 고추밭 소동>, <강아지똥>, <꽃님과 아기양들>, <까치 울던 날>

-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참고 자료

* 작가 권정생 선생님은 우리나라 대표 동화작가이십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1937년에 태어나 2007년 5월17일에 돌아가셨어요.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셨다고 해요. 그러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고물상에서 주워 온 책을 읽으며 이겨냈고, 결국 어린이를 위해 책을 쓰시는 일을 하셨어요. 선생님은 많은 책을 내서 유명한 작가 선생님이셨는데도 시골의 작은 마을의 교회 종기기로 지내시며 5평 남짓한 오두막에서 소박하게 사셨어요. 사시는 동안도 책을 팔면 나오는 인세의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셨다고 해요. 돌아가실 때에는 전 재산과 앞으로 나올 인세를 모두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는 말씀과 당신이 살던 작은 오두막집도 불태워 자연으로 돌려 보래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해요.

권정생 선생님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물을 보듬는 따뜻하고 진솔한 글을 써왔던 것처럼 자신의 삶도 힘들고 어려운 이웃과 어린이를 생각하며 사신 훌륭한 분입니다.

선생님이 지은 책으로는『강아지똥』,『사과나무밭 달님』,『오소리네 집 꽃밭』『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휠훨간다』『길 아저씨 손 아저씨』『황소 아저씨』『아기 너구리네 봄맞이』『비나리 달이네 집』『깜둥바가지 아줌마』『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밥데기 죽데기』『먹구렁이 기차』『하느님의 눈물』『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짱구네 고추밭 소동』『우리들의 하느님』『슬픈 나막신』『몽실언니』,『점득이네』외에 다수의 동화집이 있고, 시집『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산문집『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등이 있어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싶은 친구들은 선생님 책을 읽으며 선생님의 마음을 느껴 보세요.

  - 한국 창의 독서 연구소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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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4-02-0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방학숙제로 권정생의 작품 세계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는데, 정말 도움 많이 됐어요!ㅎㅎ감사합니다~
 

안데르센 상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s)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을 기리는 아동문학상으로,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가 1956년에 제정되었어요. 이 상은 전 세계 아동 문학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를 대상으로 주는 상이며 2년에 한 번씩 짝수 해에 수여됩니다.

이 상은 저작에 주는 상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서

작가가 평생 동안 작업한 모든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답니다.

그야말로 믿을 만한 작가에게 수상하는 상이지요.

그래서 이 상을 "작은 노벨문학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안데르센상 수상작 중에는 그림책과 동화책이 골고루 들어 있어요.

특이 <내이름은 삐삐 롱스타킹>과 같은 어린이 책의 고전이라 할 만한 책도 들어 있으며,

<무민 골짜기 시리즈>처럼 만화영화화 되어 어린이에게 인기를 끌었던 책들도 있답니다.


* 안데르센상 잘 골라보려면 연령을 고려하고 고르세요.

또 작가에게 주는 상인 만큼 한 작가가 정해지면

그 작가가 쓴 책을 모두 읽어보는 것도 좋답니다.

*국제아동도서협의회의 홈페이지입니다. - http://www.ibby.org/

 


● 수상작가

 

* 1956년 수상작가

"엘리너 파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작은 책방』

* 1958년 수상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날아가는 교실』

* 1960년 수상작가

"에리히 캐스트너" 『무민 골짜기의 겨울』

* 1966년 수상작가

"토베얀손" 『꼬마 백만장자 팀 탈러1』

* 1968년 공동수상작가

"제임스 크뤼스" 『괴물들이 사는 나라』

* 1970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모리스 샌닥" 『하늘을 나는 케이크』

* 1970년 수상작가

"잔니 로다리" 『라몬의 바다』

* 1972년 수상작가

"스콧 오델" 『안데르센 동화

(전6권)』

* 1972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이브 스팡 올센" 『나는 잡동사니 대장』

* 1978년 수상작가

"폴라 폭스" 『수호의 하얀 말』

* 1980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아카바 수에키치" 『노랑 가방』

* 1982년 수상작가

"리지아 보중가 누니스"

『학교 가기 싫어!』

* 1984년 수상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여행 그림책』

* 1984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안노 미쯔마사" 『살아 있는 모든 것은』

* 1986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로버트 잉펜" 『십이 월의 친구들』

* 1988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두산 칼라이"

『안데르센 동화』

* 1990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리즈베스 츠베르거"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 1994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요르크 뮐러" 『뜨개질 할머니』

* 1996년 수상작가 "우리 오를레브"

『두 여우 이야기』

* 1996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클라우스 엔지카트"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 1998년 수상작가

"케더린 페터슨" 크릭터』

* 1998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토미 웅거러"

『비자비아, 비자 벨』

* 2000 년 수상작가

"아나 마리아 마샤두" 『고릴라』

* 2000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앤서니 브라운" 『앵무새 열마리』

* 2002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퀜틴 블레이크 " 『잠이 안 오니,

작은 곰아? 』

* 2004년 수상작가

"마틴 위델" 『사랑에 빠진 개구리 』

* 2004년 수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막스 벨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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