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정받는 변함없는 가치
한 남자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 살배기 아들에게 선물할 동화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맞는 좋은 책이 눈에 띄지 않았지요. 실망한 남자는 동화책 대신 빈 노트 한 권을 사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자는 노트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고, 비어 있던 노트는 금세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평범한 노트 한 권이 재미있는 글과 섬세한 그림이 담긴 멋진 그림책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지요.
그 책은 이듬해에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자신의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랑으로 쓰고 그렸던 단 하나뿐인 그림책이 세상 모든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 된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정신과 의사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더벅머리 아이』는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그 때가 1845년,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담아, 자신의 외로웠던 유년에 바치는 이야기
『더벅머리 아이』는 열 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이야기마다 용모가 단정치 못한 아이, 난폭한 아이, 친구를 놀리는 아이 등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호프만 박사는 못된 주인공과 동화를 읽는 착한 어린이들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어법을 사용했습니다. 못된 주인공들이 자신의 나쁜 행동으로 인해 벌을 받는 인과응보의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했죠. 또한 그러한 결말을 통해 자신의 나쁜 습관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소한 용모에 대한 배려부터 식사 예절, 다른 존재에 대한 사려 깊은 행동, 위험한 장난에 대한 경고 등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 속에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무조건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을 치기보다는 나쁜 습관을 가진 주인공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잘못을 고치기 바라는 아버지의 자상한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또한 『더벅머리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 채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호프만 박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등장하는 더벅머리 아이는 몹시 헝클어진 머리에 손톱 또한 일 년은 깎지 않은 듯 무척 지저분합니다. 모두가 그 아이에게 흉측하다고 한마디씩 하지요. 그런데 더벅머리 아이는 무척 침울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못된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호프만 박사가 왜 슬픈 표정의 더벅머리 아이를 그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어머니를 여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호프만 박사의 어렸을 적 모습이 더벅머리 아이에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날개를 뜯어내고 그레트헨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못된 프리드리히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마음을 닫아버린 호프만 박사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자책감과 양심의 가책이 다른 것들을 괴롭히고 못되게 구는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죠. 식탁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식탁보와 함께 뒤로 넘어져 음식을 뒤집어쓰는 말썽쟁이 필립은, 아버지의 재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호프만 박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더벅머리 아이』는 석판화 인쇄를 통해 그림의 형태와 색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호프만 박사가 밤을 새워 가면서 하나하나 정성스레 찍어낸 것이지요. 어쩌면 호프만 박사는 그림의 형태와 색깔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를 향한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무엇보다 간절히 사랑 받기 원했지만 항상 외로움을 느꼈던 호프만 박사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호프만 박사는 ‘아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갈등을 일으키는 마녀나 사악한 동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이 책이 한 세기 반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야기에 담긴 실생활과 관련된 직접적인 교훈,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림에 새겨진 호프만 박사의 바래지 않는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
하인리히 호프만 글·그림 심동미옮김
2004년 7월 15일 발행 isbn 89-8281-847-2
50x225 32 페이지, 6800원 (문학동네어린이)
실생활과 관련된 직접적인 교훈,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림에 새겨진 호프만 박사의 바래지 않는 사랑. 한 세기 반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에 담긴 10개의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아니타 엑슈태트(Anita Eckstaedt)의 『더벅머리 아이:작품과 해석(“Der Struwwelpeter”: Dichtung und Deutung)』/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