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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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선생님의 책을 처음 읽었다.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이다.'라고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빈민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어른의 시각이 아닌 아이들의 일상과 아이들의 눈으로 어려운 현실과 상황을 접하게 된다. 등장인물도 단조롭고 스토리도 복잡하지 않다. 그들의 피폐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삶에 비하면. 

숙자,숙희 쌍둥이네, 동수 동준이네,  유도 아저씨 영호와 김명희 선생님이 주된 등장인물이다. 후반에 동수친구 말더듬는 명환이와 크리스마스에 버려진 아이가 한명 등장하는 정도로 인물구성이 단조롭다. 

주정뱅이 아버지와 집을 나간 엄마, 돈을 벌러 나간 아빠와 소식을 알 수없는 엄마,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처참하게 죽은 아빠와 동생을 임신한 엄마. 크리스마스 전날 남의 집앞에 아들을 버린 아빠. 죽을 만큼 매일 두드려 패는 아빠와 차라리 밖에서 살고 들어오지 말라고 만류하는 엄마. 이런 부모를 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생활은 비참한데도 아이들은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힘으로 삶을 지탱해 나간다. 좁디 좁은 골목에서 서로의 삶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가족이 되고 살아 나가는 끈이 된다. 이 아이들의 한 가운데에 최근에 어머니와 사별한 유도아저씨 영호가 있다.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영호가 보여준다. 아이들이 보아 아저씨이지 영호도 사실은 20대의 젊은 청년이다. 자궁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영호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대신 마을에 사실상 버려진 아이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거두어 사람으로 만들어 나간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춘기 아이들과 부모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정을 주고 가족이라는 개념을 준다. 

영호의 초등학교 동창이던 선생님이 된 명희가 괭이부리말로 이사를 오는 장면은 정말 뜻하는 바가 크다. 숙자네 다락방으로 이사오던 날 명희가 한 얘기가 인상 깊다. "다시는 혼자만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말 이었는데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두도두고 이 말이 떠올랐다. 다시는 괭이부리말로 고개조차 돌리고싶지 않았던 명희가 스스로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괭이부리말 아이들에게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사람은 변할 수 있다'와 '사람을 변화 시키는 힘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의 삶이 주는 배움이 크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니 이 아이들의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닐것을 나는 믿는다. 어려움을 뚫고 추위를 뚫고 피어난 열매와 꽃이 더 크고 달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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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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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책표지 겉장에 큼직한 blood가 뚝 한 방울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이 한 방울의 피는이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장 까지 내내 진한 감동을 뿌리며 날 붙잡아 두었다. '허삼관'이란 인물 위로 내가 본 많은 중국인들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낡고 허름한 생활 속에서도 강인함과 여유가 돋보이던 곳..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어느 누구하나 뛰지 않고 느긋하게 걷던 모습..아직도 참 생생하다.

허삼관 이란 인물이 겪어낸 모진 삶은 단지 중국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우리의 아버지들의 삶의 모습이면서도 생활을 부지하며 연명해 가는 도구로 매혈을 선택한데서 오는 가슴 뻐근한 긴장감을 중국인만의 그 특유의 낙천성으로 거뜬하게 이겨내는 과정은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가진 것 없고 무기력하며 가난하기만 한 아버지가 몸 속의 피를 덜어내 가며 변해 가는 세 상에서 생명을 연명해 가는 처절한 모습과 함께 전개되는 과정은 오히려 코믹하기까지 하여 너무나 슬픈 장면에서 동시에 웃을 수밖에 없는 기이한 상황을 연출하게 하는 것이다. 피를 팔고 또 팔아 더 이상 팔 수 없는 상황에까지 치닫다가 이제 겨우 피를 팔지 않아도살수 있게 되었을 때 옛날 생각하며 유쾌하게 피를 팔러 갔다가 이제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게 된 자신의 늙은 모습을 깨닫게 된 허삼관이 느낀 북바치는 슬픔과 허무함을 삶을 함께 한 늙은 아내가 위로 해 주는 장면은 가히 이 책의 절정이라고 생각된다.

자주 '피'를 만지는 나로선 새삼스레 '피' 한 방울이 주는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인간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 어떤 것으로도 '피'를 대신 할 순 없다.생명의 근원이며 인간이 최소한 살아갈 밑천으로 보유한 피를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치열한 일생은 단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으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이 책을 덮으며 피를 뽑으러 가기 전에 배를 움켜쥐고 다리를 꼬면서 마셔댔던 무지막지한 물의 양이 떠올라 슬그머니 또 웃음이 난다.우리의 이웃 아저씨만 같은 허삼관은 참으로 유쾌하고 눈물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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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기술 -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양장본)
사카토 켄지 지음, 고은진 옮김 / 해바라기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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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메모를 해왔다. 이 책의 저자처럼 전문적으로 체계를 갖고 정리하면서 하는 메모는 아니었지만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생각의 편린들을 그대로 버리기 아까워 한 두 단어라도 적어두는게 습관이되면서 늘 무엇인가를 적을 마음준비는 하고 사는 편 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얼마전부터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게되면서 앉아서 하는일보다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횟수가 빈번해진 업무를 하면서 그 아쉬움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메모의 체계화, 메모의 정보화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하룻동안 한 메모는 한 개인의 정보로 자료가되고 그 자료는 개인 데이터베이스로까지 발전했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는것은 어렵지만 그들에 관한 기억, 그들과 나눈 얘기, 그들의 가족관계와 증상. 이런 구체적인 메모들은 나와 내가 만난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끈한 고리의 역할을 해준다. 나는 수시로 정리한 노트를 보면서 그들을 기억해낸다. 그들에게 안부전화도하고 그들과 마주앉았던 집 모양도 떠올리며 전혀 타인같지않은 친숙함을 느끼는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간사한것이서 기억이 있는한 잊혀지지 않는법 이기 때문이다.

한장 한장 조그만 주머니수첩에 적혀있던 메모는 이제 대학노트 몇권의 분량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록하면서도 미심쩍어 하던 부분에대한 확신을 갖게되었고 이런식의 메모를 더욱 즐기게되면서 좀더 구체적인 메모법으로 발전시켜가고있다. 신문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낯선곳을 방문하거나 영화서평을 보면서도 내가 생각지못한 부분을 일깨워주거나 내게 정보로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은 분야별로 따로 메모를 하게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아이러니한 얘기를 하고있다. 메모를 하는것은 메모한 내용을 모두다 기억하기 위함이아니라 그것들을 잊기 위함이라고..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메모한 후 메모한 것들을 잊어버려라. 필요할때 언제든 꺼내어 사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가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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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마녀
박경리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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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작가로 알려진 박경리의 단행본 책을 접하게 되어 우선 반가움이 앞섰다.박경리하면 26년에 걸쳐 쓰신 '토지'라는 대작을 떠올리게 되는데 예전에 '김약국집 딸들'을 읽었을때의 신선함이 박하사탕같은 알싸함으로 다가들었고 오랫만에 연애소설을 읽게되었다는 조금은 낭만적인 기대도 하게되었다.

문체가 구문이라서 옛날 생각이나는 재미도있고 제법 쉽게 읽히기는 하는데 읽을수록 전개되는 상황이 그리 편안치만은 않았다. 모두가 사랑은 하고있는데 모두가 행복 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랑의 본질이 갈등과 괴로움을 안고있긴 하지만, 모두가 다른곳을 보고 선채로 엇갈린 사랑을 하는 답답한 운명에처한 등장인물들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면성이 있다.
하란에게서 보여지는 성스러움과 형숙에게서 나타나는 파괴적인 자의식. 이 둘은 별개의것이 아니라 샴쌍둥이같은 관계일지도 모른다. 형숙이 지독하게도 자신과 타인에게 가학적인 모습만으로 일관한것이라든지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끝내 솔직하지못한 하란의 모습은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김약국집 딸들에서 나타난 여성의 바람직한 자의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 책이 1960년에 발표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그 시대의 상황으로 이해하기로한다. 60년대식 연애관으로 보자면 굳이 이해하지못할것도 없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다고 해도 답답함이 쉬이 가시는건 아니다.

애정의 문제에 있어서 사람의 의지가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하지만 사랑의 결과가 다분히 운명적이고 감정적인 선에만 국한되고 치우친 것은 나로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애정이나 결혼에 관한 의견은 모두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긴 하지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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