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남긴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

(백범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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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눈이 내려 눈이 내려 생각이

끝났을 땐 눈보라 무겁게 차는 밤이었다.인적이 드문, 모

든 것이 서로 소리치는 거리를 지나며 나는 단념한 여인

처럼 눈보라처럼 웃고 있었다.

  내 당신은 미워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

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2

 

   내 꿈결처럼 사랑하던 꽃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에게 왔던

   그 막막함 그 해방감을 나의 것으로 받으소서.

나에게는 지금 엎어진 컵

빈 물주전자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는 닫혀진 창

며칠내 끊임없이 흐린 날씨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곤 세 명의 친구가 있어

하나는 엎어진 컵을 들고

하나는 빈 주전자를 들고

또 하나는 흐린 창 밖에 서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소서

이들에게서 잠깐잠깐의 내 이야기를 들으소서.

이들에게서 막막함이 무엇인가는 묻지 마소서.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맡기소서.

 

3

 

한 기억 안의 방황

그 사방이 막힌 죽음

눈에 남는 소금기

어젯밤에는 꿈 많은 잠이 왔었다.

내 결코 숨기지 않으리라

좀더 울울히 못 산 죄 있음을

 

깃대에 달린 깃발의 소멸을

그 우울한 바라봄, 한 짧고 어두운 청춘을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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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2015-09-04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젊은 시절 추운 한강을 건널 때마다, 눈이 내리던 겨울 밤마다 나를 회오리속에 몰아 놓은 시 입니다
지금도 나를 지켜주는 시 입니다. 40년을 나를 지탱하게 했으니 기도를 넘어 종교가 되었죠.
특히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난 한강이 몹시 그리울때 ,,, 얼음이 언 한강이 너무 보고 싶을 때 ......,,

쥴리엣 2015-09-22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이 너무나 詩 같아서..미국에 살고 있지 않은 저마저 한강이 그리워지네요..

이 가을이 지나면 곧 얼음 언 한강을 볼 수 있는 겨울이 오겠네요..

한국은 이번주말부터 추석이예요. 벌써부터 살짝 기름냄새가 온 몸을 휘감는 느낌이..^^

미국에서도 기름냄새 질펀한 전 드시면서 고국생각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