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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남긴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

(백범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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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눈이 내려 눈이 내려 생각이

끝났을 땐 눈보라 무겁게 차는 밤이었다.인적이 드문, 모

든 것이 서로 소리치는 거리를 지나며 나는 단념한 여인

처럼 눈보라처럼 웃고 있었다.

  내 당신은 미워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

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2

 

   내 꿈결처럼 사랑하던 꽃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에게 왔던

   그 막막함 그 해방감을 나의 것으로 받으소서.

나에게는 지금 엎어진 컵

빈 물주전자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는 닫혀진 창

며칠내 끊임없이 흐린 날씨

이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곤 세 명의 친구가 있어

하나는 엎어진 컵을 들고

하나는 빈 주전자를 들고

또 하나는 흐린 창 밖에 서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소서

이들에게서 잠깐잠깐의 내 이야기를 들으소서.

이들에게서 막막함이 무엇인가는 묻지 마소서.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맡기소서.

 

3

 

한 기억 안의 방황

그 사방이 막힌 죽음

눈에 남는 소금기

어젯밤에는 꿈 많은 잠이 왔었다.

내 결코 숨기지 않으리라

좀더 울울히 못 산 죄 있음을

 

깃대에 달린 깃발의 소멸을

그 우울한 바라봄, 한 짧고 어두운 청춘을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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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2015-09-04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젊은 시절 추운 한강을 건널 때마다, 눈이 내리던 겨울 밤마다 나를 회오리속에 몰아 놓은 시 입니다
지금도 나를 지켜주는 시 입니다. 40년을 나를 지탱하게 했으니 기도를 넘어 종교가 되었죠.
특히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난 한강이 몹시 그리울때 ,,, 얼음이 언 한강이 너무 보고 싶을 때 ......,,

쥴리엣 2015-09-22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이 너무나 詩 같아서..미국에 살고 있지 않은 저마저 한강이 그리워지네요..

이 가을이 지나면 곧 얼음 언 한강을 볼 수 있는 겨울이 오겠네요..

한국은 이번주말부터 추석이예요. 벌써부터 살짝 기름냄새가 온 몸을 휘감는 느낌이..^^

미국에서도 기름냄새 질펀한 전 드시면서 고국생각 하시기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시 읽기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을 뭐가 좋아서 읽는담?” 앨리스는 혼자 중얼거린다. 언덕 위, 언니 옆에서. 그때 말하는, 거기다가 조끼에 회중 시계까지 가지고 있는 토끼가 나타나고, 앨리스는 토끼를 쫓아 토끼 굴로 뛰어든다. 이때부터 앨리스의 신나고 환상 가득한 여행은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환상문학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최근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기까지 앨리스가 가지고 있는 수학적 상상적과 환상은 끊임없이 차용되고 변이되어왔다. 루이스 캐럴의 환상은 어쩌면 고도의 환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이제는 멀티가 된 문화의 한 장르에 너무도 절묘하게 흡수되어 있다. 그만큼 앨리스는 디지털적 사고를 자극하는 텍스트이다. 때문에 『앨리스』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자, 우리 시대의 가벼운 선지자인 셈이다.

환상과 광기, 유머와 풍자로 가득 찬 『앨리스』에 대한 최고의 찬사

마틴 가드너는 루이스 캐럴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연구가 중 한 사람이다. 1960년 처음 출판된 『주석 달린 앨리스』가 출간되자 수많은 『앨리스』 독자들은 물론 연구가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루이스 캐럴의 두 고전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던 수많은 수학적 수수께끼와 말장난들을 처음으로 해석해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 『Alice』(『주석 달린 앨리스』 결정판, 2000년)는 40여 년 전 최초의 『주석 달린 앨리스』가 출간된 이후 마틴 가드너가 줄곧 가져왔던 꿈을 실현시킨 필생의 역작이며, 루이스 캐럴 연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기도 했다. 『주석 달린 앨리스』(1960년), 『좀더 많은 주석 달린 앨리스』(1990년)를 거쳐 결정판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가드너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여러 가지 내용들이 덧붙여졌으며, 존 테니얼의 사랑스런 원본 삽화와 최근에 발견된 그의 연필 스케치들이 들어 있다. 또한 존 테니얼의 반대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 첫번째 판본에 실렸다가 삭제된 「가발을 쓴 말벌」도 실려 있다. 어린아이들이나 일반 독자들은 물론 학자들이 읽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 매력적이고 위대한 『Alice』는 마틴 가드너가 루이스 캐럴의 걸작에 바치는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헌정물이 될 것이다.

앨리스의 신나고 환상 가득한 여행

『앨리스』 시리즈에는 대단히 흥미롭고 복잡한 종류의 말장난이 등장한다. 게다가 그것은 지금과는 다른 세기에 살았던 영국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재미와 맛을 완전히 즐기고 싶다면 텍스트 이외의 다른 많은 것들을 알아야만 한다. 캐럴의 어떤 농담들은 오직 옥스퍼드에 사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훨씬 더 개인적인 또 다른 농담들은 오직 리델 학장의 사랑스런 딸 앨리스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캐럴의 말장난들은 오늘날 『앨리스』를 읽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터무니없고 황당한 것이 아니다.

『앨리스』가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물론 아이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어른들의, 심지어는 학자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각주는 바로 그런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앨리스』 시리즈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또 대강의 이야기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새롭게 읽을 만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쉽다. 그러나 『앨리스』는 읽을 때마다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책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텍스트이다. 1960년부터 ‘앨리스’는 전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라디오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어 왔다. 이미 지어진 지 100년이 지난 이 이야기가 왜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지 그 매력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 캐롤과 앨리스

옛날 옛적 어느 왕국에, 그러니까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 예쁜 어린 여자아이들을 위험할 정도로 좋아했고, 실력 있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였고, 말더듬이 목사였고, 발명가였고, 괜찮은 수학교수였던 찰스 러트위지 도지슨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운명이 허락했다면 평생동안 편안한 독신생활을 누리다가 가끔 수학자로서 자잘한 업적이나 남겼을 이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독신 남성이 영문학상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1862년 7월 4일, 도지슨 목사는 옥스퍼드 트리니티 대학 학장의 세 딸들과 함께 템즈강에 뱃놀이를 떠났습니다. 그 중 그가 유달리 예뻐했던 둘째 딸 앨리스 리델이 그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도지슨 목사는 어떻게 이야기를 맺을 지 생각도 하지 않고 앨리스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줄줄 읊어갔습니다. 이 작품은 나중에 앨리스의 생일을 위해 [지하세계의 모험]이라는 작은 책으로 만들어졌고 그 책은 다시 다듬어져 루이스 캐롤이라는 필명을 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 뒤에 나온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영문학 사상 가장 중요한 환상 문학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그는 그 뒤에도 [실비와 브루노]와 같은 작품들을 썼지만 그의 명성은 대부분 두 편의 [앨리스] 동화를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고로 자연인 도지슨 목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예쁜 애들을 미치게 좋아한 걸 빼면 그렇게 역동적인 삶을 산 사람도 아니었거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초기 평가는 아동문학의 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앨리스] 시리즈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 어린이 작가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교훈적인 내용과 상관 없었습니다. 캐롤은 종종 잔인할 정도로 막나가는 상상력을 예의차리지 않고 마구 풀어놓았고 그런 스타일이 당시 어린 독자들에게 제공한 자유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앨리스]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현대 환상문학에 끼친 캐롤의 1차적인 업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앨리스]는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은 성인 문학작품으로 읽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종종 고전이 된 환상문학에 닥치는 운명이 [앨리스]에게도 떨어집니다. 소설의 환상적인 요소들이 모두 캐롤이 살았던 실제 세계의 은유로 읽혀지는 것이죠. 환상 문학 장르 고유의 성격인 의미의 애매모호함 덕택에 해석의 여지는 충분했고 [앨리스] 시리즈는 가장 많이 분석되는 영문학 작품으로 떠올랐습니다. 정신분석에서부터 종교적 해석까지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케빈 스미스의 영화 초반부에서 타락 천사 로키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바다 코끼리와 목수]에 독특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했는데, 캐롤의 의도는 절대로 아니었겠지만 아직도 이 텍스트의 해석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흥미로운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앨리스] 비평가들은 한동안 마땅히 언급되고 분석되어야 할 부분들을 지나쳐갔습니다. 나라 사랑에서 번역 출판된 두 편의 주석판 [앨리스] 동화 뒷표지에는 라즈니쉬의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라는 책에서 뽑아온 인용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라즈니쉬는 한심하게도 이렇게 운을 뗍니다. '수학자인 루이스 캐롤이 이토록 아름다운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는 루이스 캐롤의 이 짧은 동화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보다 몇 백배 뛰어난 작품이니, 무한한 영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허풍을 떨었지만 정작 [앨리스]의 정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글이 실린 책이 라즈니쉬의 입장과 거의 반대되는 입장의 마틴 가드너가 주석을 단 번역본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정작 출판 기획자들도 자기가 출판하는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말이 되는군요.

[앨리스] 시리즈는 수학자가 쓴 작품이며, 이 작품의 진짜 매력도 여기에 있습니다. 캐롤에 매달린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이 쓸데없는 정신분석에 매달리며 시간 낭비를 하느라 정작 중요한 핵심을 무시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캐롤의 작품에 나오는 환상의 매력은 그 절묘한 부조리에서 나옵니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환상물의 주인공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는 모양만 다르고 초자연적인 존재들만 돌아다닐 뿐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앨리스]의 캐릭터들은 그 부조리를 전면으로 끄집어냅니다. 캐롤의 부조리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것으로, 모두 논리와 수학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의 고안품입니다. 

 이러는 동안 캐롤은 두 종류의 독자들을 얻게 됩니다. 위에서 인문학자들이 점잔을 빼며 작품에 문학적 주해를 가하는 동안, 논리학자/수학자/자연과학자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독자군이 나타나 앨리스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자신들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롤의 자연과학자적 영감은 종종 20세기의 난해한 현대 과학을 설명하는 데 너무나도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볼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병들에 대해 읽고 나서도 이 에피소드를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써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물리학 교수들은 많지 않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캐롤의 이러한 매력은 다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연과학자의 측면에서 두 권의 [앨리스]에 흥미로운 주석을 제공한 수학자 마틴 가드너의 업적을 먼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D. 호프스타터를 포함한 수많은 과학저술가들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앨리스의 친근한 이야기를 다시 끌어온 것도 캐롤 세계의 새로운 이해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150년전, 10살배기 여자 친구를 위해 말더듬이 목사가 들려준 이 정신나간 이야기는 점점 새로운 의미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대중들이 동시대의 지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복잡한 현대에 와서 루이스 캐롤 연구의 중요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 가득 찬 작가들이 종종 그렇듯 캐롤의 작품은 오래 전에 작가 자신의 이해를 벗어났습니다. 
 

- 한국 창의독서 연구소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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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의 생애


평생을 아동 문학에 바친 이원수는 1911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생하였다. 1925년 15세 때 신화소년회원이 되어 소파 방정한을 처음 만났다. 그 이듬해에 남과 북에서 누구든지 즐겨 부르는 동요 《고향의 봄》이 당선되어 〈어린이〉4월호에 실리게 되었다. 그는 〈어린이〉를 통해 아동 문학을 시작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방정환이 중심이 되었던 〈어린이〉의 영향을 많이 받다가 점점 방정환이 동심 천사주의 문학관을 버리고, 현실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린이의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갖는 등 그 나름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펼쳤다.

그는 평생 동안 296편의 동요 동시와 160여 편에 이르는 동화를 남겼다. 1981년 1월 24일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이원수의 작품 세계 *

그의 작품에는 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고난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고, 부유한 아이들에게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해와 같이 달과 같이〉에 나오는, 가난한 가정을 돌보느라고 구두닦이를 하면서도 밝고 씩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아이들에게 많은 용기를 줄 것이다.

--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다. 〈잔디숲 속의 이쁜이〉에는 주인공인 이쁜이라는 개미가 규범으로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자유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를 찾아가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개미의 생태나 삶의 모습이 과학적으로 그려진다.

--- 그의 동화를 읽는다는 것은 곧 우리 역사를 읽는거나 마찬가지이다. 이원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첨예하게 갈등하며 흘러온 귀중한 순간순간의 흐름을 전혀 놓치지 않고,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 고 있다. 〈5월의 노래〉는 이원수가 해방 이후에 일제 시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년소설이다. 일제 시대라는 어둡고 쓸쓸한 공간에서 일본인의 탄압을 받아야만 했던 경험은 그대로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혀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호수 속의 오두막집〉에는 북으로 갔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물 속에 잠겨 버리는 집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즉 분단으로 인해서 우리 겨레가 겪는 아픔을 통해 통일의 당위성을 깨달아 가도록 한다. 불의한 힘을 멀리하고 정의를 옹호하는 마음을 길러 가게 하는 〈명월산의 너구리〉, 전태일의 삶을 다룬〈불꽃의 깃발〉, 4·19 혁명을 다룬〈벚꽃과 돌멩이〉 등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그가 동화에서 다루는 주제는 통일, 민주주의, 생명 존중, 더불어 사는 삶, 정의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 부딪치는 모든 문제이다. 그는 이 모든 문제를 아이들의 눈으로 다룬다. 투철한 역사 의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뼈대이다.

* 작품 목록 *

- 소년소설

<지혜의 언덕>(1979), <해와 같이 달과 같이>(1979초판, 1990개정판)

- 장편 동화

<숲 속 나>(1995), <잔디숲 속의 이쁜이>(1998)

- 중·단편 동화

<나의 그림책>(1976), <루루의 봄>(1976), <미동이의 모험>(1975), <희수와 일락>(1976), 불새의 춤>(1970), <희야의 소라고동>(1957), <쑥>(1975), <바람과 소년>(1976), <불꽃의 깃발>(1969), <꼬마옥이>(1953~55), <갓난 송아지>(1973), <여울목>(1979), <엉겅퀴>(1969), <밤안개>, <도깨비와 권총왕>  

- 한국 창의독서 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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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의 생애

 
그림 형제는 형 야콥 그림(Jacob ludwig karl Grimm, 1785~1862)과 동생 빌헬름 그림(Wilhelm Karl Grimm, 1786~1859)을 말한다. 이 두 형제는 독일의 대학 교수였으며 언어학자로서 독일의 옛날 이야기를 수집하여 독어의 문법과 역사를 연구하였고 사전과 문법책도 만들게 되어 《어린이와 가정의 옛날 이야기》를 각각 1812년과 1815에 두 편의 책으로 내었는데 근대 아동 문학의 소중한 모태가 되었다.

그림 형제는 민화나 전설 속에 독일의 민족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일의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국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던 민화나 전설을 모아서 정리하였다. 따라서 그림의 동화는 민족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동화집에는 《백설공주》,《헨젤과 그레텔》,《브레멘의 음악대》,《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가 있다.

▶ 그림 형제의 생애

그림 형제는 독일 헤센 주의 하나우라는 작은 도시에서 5남 1녀 가운데 첫째와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그림 형제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졌으며, 1808년 어머니마저 죽게 되어 당시 23세의 야콥은 4명의 남동생과 여동생 1명을 부양해야만 했다. 학자풍이었던 야콥은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한데다 얼굴 생김새가 날카로운 반면에, 빌헬름은 키가 크고 인상이 부드러웠으며 사교적이고 모든 종류의 예슬을 좋아했다.

1802년 야콥이 마르부르크 대학교에 들어가고 이듬해에 빌헬름도 입학했다. 처음에 형제는 독일 법률을 연구하기로 했다. 1806년에 독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싸움에 지고, 어머니가 사시는 카렐 시는 나폴레옹의 아우가 다스리는 나라의 서울이 되었다. 박사가 된 형제는 그런 가운데서도 독일 고대 문학과 어학 연구를 계속했다.

야콥은 한 때 외교관이 되어 헤르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외국에 나가 있기도 했다. 그 후 두 형제는 1830년에 게팅겐 대학에서 사서에 이어 교수가 되었고 1841년에 베를린으로 옮겨가서 프로이센 학사원의 회원이 되었다. 그동안 꾸준히 가까운 헤센 지방과 베스트팔렌 지방을 여행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들은 것을 토대로 이를 재미있게 다시 엮었다. 어릴 때부터 한 방에서 자고 먹고 또 같은 복장을 하고 쌍둥이처럼 자란 다정한 형제는 함께 뜻을 모아 동화집을 꾸몄다. 이것은 민족 설화를 모으는 작업이기도 했으며 언어 연구의 일부이기도 했다. 13년의 긴 세월간 수집된 자료를 기초로 하여 1812년에 85편을 제 1집에 1815년에 70여편을 제 2집에 모아 출판했다.

그림 형제가 모은 250편의 이야기 중 지금 동화로서 완성되어 내려오는 것은 약 200여편 된다. 낭만주의 동화가 지닌 허황된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 실린 200편의 이야기는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 상상력, 신념을 전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구사하는 단어와 방식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였다. 뛰어난 점은 옛날이야기의 민담적 성격을 바꾸지 않고서도 읽기 쉬운 형태로 만든 데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독일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널리 보급되어 지금은 70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모든 곳에서 민담수집의 모범이 되었다.

그림 형제 (Grimm)

독일의 언어학자ㆍ형제작가. 형 야콥(Jacob Grimm.1785∼1863), 동생 빌헬름(Wilhelm Grimm.1786∼1859). 하나우 출생. 형은 위대한 연구가였으며, 아우는 우수한 교사였다.

민요와 민담집은 고전이 되었으며, 특히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1812∼22)가 유명하다. 이 책은 보통 <그림 동화>로 알려져 있으며 민속학의 연구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야코프는 역사언어학과 게르만 문헌학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야코프 루트비히 카를 그림과 빌헬름 카를 그림은 5남 1녀 가운데 첫째와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필리프 빌헬름은 법률가로서 하나우의 시청 서기관으로 일하다가, 그 뒤에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칼뱅주의 개혁교회의 목사로 있는 헤센의 다른 소도시 슈타이나우에서 사법관직을 맡았다. 1796년 아버지가 죽자 그림 형제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졌으며, 1808년 어머니마저 죽게 되어 당시 23세의 야코프는 4명의 남동생과 여동생 1명을 부양해야만 했다. 학자풍이었던 야코프는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한데다 얼굴 생김이 날카로운 반면에, 빌헬름은 키가 크고 인상이 부드러웠으며 사교적이고 모든 종류의 예술을 좋아했다.

카셀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뒤 형제는 공무원이 될 생각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르부르크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1802~06). 마르부르크에서 그림 형제는, 그들에게 민간전승시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준 클레멘스 브렌타노와 법학에서 역사학파의 창립을 도운 프리드리히 카를 폰 자비니의 영향을 받았다. 자비니는 뒤에 그들의 모든 작품의 실질적 토대가 될 고서학(古書學) 탐구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밖에도, 민간전승시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1744∼1803)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 형제는 독자적으로 각기 자신의 원칙에 따라 창작활동을 했다. 1805년 형 야코프는 중세의 법률에 관한 필사본들을 연구하기 위해 자비니를 따라 파리로 가서 이듬해에는 카셀의 육군성 사무관이 되었다. 동생 빌헬름은 건강 때문에 1814년까지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1806년 프랑스 침공 뒤, 야코프는 1808년 베스트팔렌의 제롬 왕의 전속 사서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국무원의 회계감사관이 되었으나, 나폴레옹이 패전한 뒤 1813년 다시 헤센의 일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1814∼15년 프랑스인들이 헤센과 프로이센에서 빼앗아간 값진 책과 그림들을 되찾기 위한 사절단의 서기관 자격으로 2차례 파리에 다녀왔으며, 빈 회의(1814. 9∼1815. 6)에도 참여했다. 한편, 그동안 빌헬름은 카셀의 선제후(選帝侯) 도서관의 사서가 되었고(1814), 1816년 야코프가 그와 합류했다. 그 무렵 형제는 법조계 대신 순수한 문학연구의 길을 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 뒤 몇 년 동안 검소하게 살면서 꾸준한 작업을 통해 평생에 걸친 관심사를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그들의 총체적인 사고는 당대 사회·정치적 변화들과 그로 인한 문제들에 뿌리 박고 있었다. 야코프와 빌헬름도 18∼19세기를 풍미한 '고딕' 낭만주의와는 전혀 무관하였으며, 정신적인 면에서도 낭만주의보다는 사실주의에 가까웠다. 그들은 먼 과거를 탐구하였고, 과거 속에서 당대의 모든 사회제도를 이루는 토대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러한 토대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림 형제는 독일을 넘어선 자료들, 즉 스칸디나비아ㆍ스페인ㆍ네덜란드ㆍ아일랜드ㆍ스코틀랜드ㆍ영국ㆍ세르비아ㆍ핀란드의 문학전통까지도 포용하고자 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민요와 민담을 수집한 것은 1805년 문학적 가치가 있는 민요를 수집하고 있던 친구 아힘 폰 아르님과 브렌타노를 위해서였다. 나아가 형제는 몇몇 비평문을 통해 민속문학과 다른 글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검토했다. 그들에게 있어 민간전승시는 인류의 영원한 기쁨과 슬픔, 희망과 두려움을 표현한, 유일하게 진정한 의미의 시였다.

그림 형제는 아르님의 격려에 힘입어, 수집한 민담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 이야기>로 출판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낭만주의 동화가 지닌 허황된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 실린 200편의 이야기(몇몇은 인쇄된 자료에서 얻은 것이지만 대부분은 구전된 것임)는 시대가 흘러도 변치않는 사람들의 영혼, 상상력, 신념을 전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구사하는 단어와 방식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빌헬름의 뛰어난 점은 동화의 민담적 성격을 바꾸지 않고서도 읽기 쉬운 형태로 만든 데 있다.

그 결과는 3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이 책은 독일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널리 보급되어 지금은 7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둘째, 모든 곳에서 민담수집의 모범이 되었다. 셋째, 그림 형제가 각 이야기에 붙인 주석은 다른 연구논문들과 더불어 민간설화학, 더 나아가 민속학 연구의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이야기들은 최초의 '과학적' 민담집으로 남아 있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에 뒤이어 독일의 역사와 각 지방에 얽힌 전설을 모은 <독일의 전설>(1816∼18)을 펴냈는데, 이 책은 문학과 민간설화 연구에 영향을 미쳤으나 폭넓은 인기는 얻지 못했다.

형제는 그 뒤 1826년 토머스 크라프턴 크로커의 <아일랜드 남부의 요정 전설과 구전설화> 번역판을 내면서 요정 연구에 대한 긴 소개문을 직접 써 서문으로 내놓았다. 이와 동시에 고대문학의 문자화된 기록에도 관심을 기울여 독일어와 그밖의 언어로 쓰여진 고대 원문들을 새로 편집해 출판했다. 빌헬름의 남다른 업적은 6∼16세기의 문학과 미술에 언급된 영웅전설에 나오는 주제와 이름을 모아, 사가(Saga)라는 문학형식에 대한 평론을 덧붙여 <독일의 영웅담>을 펴낸 데 있다.

20년 동안(1806∼26) 이러한 주제들을 함께 연구하면서 야코프는 언어학에도 손을 대 <독일어 문법>(1819∼37)이라는 방대한 문법서를 냈다. 이 책 제목의 'deutsch'란 말은 엄격하게 '독일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공통적인'이라는 어원학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게르만족의 모든 언어에 적용하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이 책은 처음으로 여러 게르만제어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야코프는 여러 언어에 나타나는 음운변화(모음과 자음 모두)의 자연법칙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적 어원학의 방법론, 즉 언어와 의미변천 사이의 관계연구를 위한 토대를 놓았다. 나중에 '그림 법칙'으로 알려지게 된 이론을 통해, 야코프는 발생학적으로 연관된 언어들에서는 자음들 사이에 규칙인 대응관계가 있다는 덴마크의 라스무스 라스크가 앞서 발견한 원칙을 입증했다. 야코프의 문법서는 당시 게르만어·로망스어·슬라브어 등의 언어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824년 야코프 그림은 친구인 V. S. 카라드지치가 쓴 세르비아어 문법서를 번역하면서 슬라브어와 문학에 대해 박학한 서문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야코프는 독일의 민간문화에까지 연구영역을 넓혀, 고대의 법 관행과 신조에 대한 연구서 <독일 법제사 자료>(1828)를 펴냈다. 이 책은 체계적인 자료를 제공하나 실행법은 다루지 않고 있다. 이 연구서의 출판에 자극받아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남부 슬라브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책들이 나왔으나 아직까지 야코프의 연구서를 능가할 만한 책은 없다.

▶ 작품

【그림동화집】

독일에 전해 오는 민간실화를 그림형제가 수집하여 편집한 민화집, 원제는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그림형제는 민족적 민중적인 것을 강하게 지향하는 낭만주의의 흐름 속에서 민족의 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학문적 목적으로 민간에 구전되어 오던 옛날 이야기를 채집하였고 또 고문헌에서도 채록하였다.

1812년 86편을 수록하여 제1권을 출판한 뒤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수록하여 발행하였으며, 57년 〈그림동화〉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제7판에는 마법동화, 동물동화 등 다양한 200 여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백설공주〉〈빨간모자〉〈헨젤과 그레텔〉〈늑대와 7마리 어린 왕〉〈황금거위〉〈엄지공주〉등이 유명하다.

〈개구리왕자〉-- 동물의 모습으로 되어 있는 왕자를 사위로 삼는 것을 줄거리로 한 혼인담의 하나이다. 이 동화는 세계 각지에 퍼졌는데, 터키의 비슷한 이야기들도 그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것이라 한다. 한국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우렁각시〉가 있다.

〈헨젤과 그레텔〉-- 그림동화집의 15번째 이야기. 그림형제가 헤센에서 구전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백설공주〉-- 그림동화집의 53번째 이야기. 유럽, 그리스, 터키, 러시아 등에 분포되어 있는 민화의 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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