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 주자
김은하 지음 / 현암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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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가령-해야 해야 >

사실 우리 부모님들 자신을 위해서는 일년에 책 한 두권 사기도 어렵지만 아이들을 위한 책은 아낌 없이 사주고 싶어하고 있지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하는 어린이 책 출판 시장...오늘도 엄청난 양의 어린이 책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린이 책을 고를 때 가장 큰 어려움이 '어떤 책을 사 주어야 할까? 우리 아이에게 어떤 책이 적당할까?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하는 것이겠지요. '잘 고른 아이 책' 이 코너도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워드리면 좋겠다 해서 마련된 것이구요.

'우리 아이, 책 날개를 달아주자' 이 책은 그런 부모님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입니다. 딱딱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한 어린이 책에 대한 이론서가 아니라, 자신이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책과 관련한 경험, 실수담들이 여과없이 이야기되고 있어서 부모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대해서도 어른들의 편견부터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유아들이나 읽는 초보자용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일상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다. 색감이 뛰어난 그림책(제인 레이의『세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단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한 그림책(리즈베스 츠베르거의『난쟁이 코』) 등을 통해 아이는 사물과 관념에 대한 소중한 첫 경험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우습게 보지 말라...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열심히 들으시는 분이시라면 그런 분은 안 계시겠지요만...

또한 200여 권의 책을 등장시키면서 ‘좋은 책’과 ‘질이 떨어지는 책’을 선별해 놓는다. 예컨대, 그림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크리스마스 선물』(두두), 비합리적인 그림이 많은『김치는 싫어요』(보림) 등이 저자가 뽑은 ‘워스트북’에 속합니다.
저자는 나름대로 좋지 않은 어린이책을 가르는 몇 가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발소 그림처럼 그림이 조악하기 짝이 없는 해적판, 빛이 주는 효과를 완전히 무시한 디즈니 그램책 등이 그렇다. 성차별과 아동학대를 당연시하는 꽤 유명한 동화들(『신데렐라』『콩쥐 팥쥐』), 어린이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소설(초등학교 6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도 저자가 못마땅해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책 선정에 고심하는 부모라면 꼼꼼히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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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린다 - 개정판
요쉬카 피셔 지음, 선주성 옮김 / 궁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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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가령-해야해야>

요즈음 가장 각광을 받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하지요?
오늘 가지고 나온 책은 쉽게 말하면 살뺀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귀가 번쩍 뜨이시는 분들 많으실 건데요. (우선 저부터 그렇습니다.....^^*)
이 책은 택시 운전사에서 독일의 외무장관까지를 지낸 요쉬카 피셔가 112kg의 뚱보에서 75kg의 날씬이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112kg에서 75kg으로 몸무게를 뺐다 그러면 경이로운 다이어트 비법이 담긴 책쯤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 책은 '사회적인 성취'는 이루어 냈지만 '삶의 의미'는 잃어버리고 만 한 중년의 남자가 이혼이라는 현실적 계기를 통해 '비만'으로 상징되는 '삶의 비계덩어리'들을 쓸어내버리는 인생의 재정비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피셔는 5년간 택시운전을 하면서 프라크푸르트 전역을 학교로 삼아 인생공부를 합니다. 그런 후 '정치는 망가지면 다시 고칠 수 있지만 한 번 망가진 자연은 고칠 수 없다'는 슬러건으로 녹색당 바람을 일으키며 1983년 연방의회에 진출합니다. 그는 독인 연방의원이 된 후 1996년 아내에게 이혼 당했을 때까지 스스로를 '목적격'으로 살았노라고 고백합니다.'주격'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연방의원으로 주 정부의 장관으로 녹색당의 원내의장으로 화려한 경로를 밟으면서 살아왔지만 어쩌면 등떠밀려서 살아온 세월을 그대로 받아들여왔고 서서히 몸은 망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이혼이라는 현실적 계기를 통해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본 것이지요. 키 181센티에 75kg으로 훤칠하던 그가 112킬로 그램으로 불어난 '맥주통'으로 불어난 자신의 몸을 보면서..그것은 13년간 잘못 된 삶의 방식, 습관, 태도 들이..숨김없이 드러나는 것임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셔는 자신의 인생의 위기가 아주 포괄적 것들 그리고 뿌리깊은 것들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위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삶의 습관들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나 하는 것을 철처히 해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쓰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술과 음식을 먹어댔고 그러다가 보니 어느새 맥주통이 되어버린 자신의 몸.

그는 자신의 삶의 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다시 자기 삶의 주인의 위치를 되찾고자 했습니다. 생활의 프로그래밍을 완전하게 새롭게 했습니다. 삶의 우선 순위를 재배치하고 날마다 달렸습니다. 달리고 달리고 끊임없이 달려서 1년 만에 몸무게를 37kg이나 줄이고 새로운 출발을 한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생활자체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다시 자기 삶의 주인으로 복권시켰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요쉬카 피셔는 비만한 사람들과 나이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40살 이후에도 계속 됩니다. 대단한 의지력을 가지고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자아여행'을 시도해서 엄청난 비만 상태에서 50살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몸 상태로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그의 정신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 나는 과연 내 인생을 '주격'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메를린 올부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기억해 둘 만한 동시대인"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기억해 둘만 한 사람을 하나 만나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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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까 말까
김교현 지음 / 아동문예사(세계문예)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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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동화 / 세계교과서 명작동화 11 / 일과 놀이


조심! 나는 미친 사람처럼 자전거 벨을 울렸습니다. 바보 같으니, 운전도 제대로 못하고 뭐하는 거야? 졸고 있나? 하마터면 앞지르기를 하려던 자동차에 치일 뻔했던 것입니다. 아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면 언짢아지는 모양입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휴우.
조금만 더 가면 집이 나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속도를 내지? 사실은 될수록 천천히 달려야 하는데요. 집에 가면 엄마에게 털어놓아야 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기 싫은 그런 말입니다.
엄마에게 정말로 말을 할까?…… 아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빌어먹을 산수 시험 같으니. 뒤에 놓인 가방 안에는 시험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도 4는 받을 줄 알았는데, 5를 받고 말았습니다.(독일 학교에서 성적은 1부터 6까지 메겨지는데, 1은 최우수, 2는 우수, 3은 양호, 4는 충분, 5는 불충분, 6은 낙제를 의미한다: 역주) 엉엉 울고 싶을 지경입니다.
5를 받은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니면 말아야 하나?
만약 입을 다물게 되면, 학년말 성적표에 나온 산수 성적을 보고 부모님이 놀라실 것입니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로 산수에 5를 받았는데, 처음 것도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너무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무슨 일인가가 생긴다면, 예를 들어 사고가 나거나 하면 시험을 못 본 것 정도는 부모님이 대단치 않게 여기실 것입니다. 이렇게 교통 법규를 무시하고 마구 달리면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우리 집에 다 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지나쳐 가고 싶습니다. 그러면 먼 훗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성적 같은 것은 아무 상관없다고 말입니다.
나쁜 성적 때문에 사람이 이토록 쓰디쓴 기분을 맛보아야 합니다! 과연 부모님은 내 동생에게 그렇듯이 아무리 성적표가 나쁘더라도 나를 귀여워해 주실까요?
자전거를 집 앞에 세워 놓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5라고 적힌 시험지는 내 책가방 안에 얌전히 들어 있습니다.
계단을 다 올라가서 집 문 앞 초인종을 누릅니다. 그러면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말씀드릴까? 아니면 입을 다물까?’
내 머릿속은 이 생각으로 뒤죽박죽 엉켜 있습니다.
엄마가 문을 열었습니다.
“별 일 없었니?”
엄마가 물었습니다. 나는 퉁명스레 대답합니다.
“글쎄, 날마다 똑같지요. 뭐.”
부엌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 옵니다. 내 형인 클라우스가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음식이 끓는지 무척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다른 때 같으면, 나는 원래 부엌을 가장 좋아합니다. 한지만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와 형은 서로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저렇게 좋은 기분을, 그것도 엄마의 기분을 내가 상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시험에서 5를 받았다고 털어놓기만 하면 말입니다.
“점심 먹을 거니까 금방 내려 오너라.”
엄마가 말했습니다.
“네.”
하고 나는 말하고 후다닥 내 방으로 사라졌습니다.
시험지가 든 책가방을 책상 밑에 집어던지고는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엄마한테 말씀드려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 봅니다. 하지만 우선 점심을 먹고 나서 말할 것입니다. 야단을 심하게 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분입니다. 미리 시험 공부를 착실히 했느냐고 물으실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형이 말할 테지요.
“맙소사, 이렇게 쉬운 문제들을 가지고, 너한테다 설명해 줬잖아.”
그렇습니다. 형이 설명해 준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나에게 가장 신경을 많이 써 줍니다. 그리고 이번 시험은 망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딱 일 점만 더 맞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정말로 일 점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면 4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에겐 일 점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형을 늘 이 일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 그 밖에도 몇 점 더 받긴 합니다.
몇몇 우리 반 아이들은 5점을 받으면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 말합니다. 벌을 받을까 봐 정말로 무서워합니다. 나는 그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당연히 엄마가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내가 5를 받아서 기분이 몹시 언짢으실 겁니다.
저녁이면 아빠도 나의 빛나는 성적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클라우스를 보고 좀 본받으렴.”
적어도 클라우스가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부류라면 또 모릅니다. 그러면 나도 한 번쯤 생각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형은 노력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공부를 잘합니다.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내 쪽입니다.
그 때, 부엌에서 엄마가 소리칩니다.
“와서 점심 먹자!”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합니다.
‘말을 할까? 하지 말까?’
그냥 이대로 내 방에 있으면 가장 속이 편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내 말이 안 들리니?”
하고 엄마가 다시 소리칩니다.
“지금 가요.”
하고 대답하고 터덜터덜 부엌으로 내려갔습니다.
오늘 점심엔 소고기에 감자와 붉은 양배추를 곁들인 요리입니다.
“흐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하고 클라우스가 말합니다.
“아, 배고파라.”
그러더니 나에게 말합니다.
“숫가락 좀 놓을래.”
“어리석은 소리 마, 형이 직접 해!”
하고 나는 고함을 쳤습니다.
“얘도, 왜 그렇게 퉁명스럽게 굴어.”
하고 엄마가 말합니다.
“클라우스가 상 차리는 걸 어련히 안 도와 줄까봐 그러니?”
당연히 그러겠지요. 이런 모범생이 안 도와줄 리가 있겠어요. 하지만 형은 요즘 와서 사령관이라도 된 듯이 거들먹거립니다.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형한테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나는 접시를 꺼내다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얘, 글쎄 클라우스가 독일어 시험지를 받아 왔는데 몇 점이나 맞았을 것 같으냐?”
하고 엄마가 묻습니다.
“그래, 네 생각은 어때?”
하고 클라우스가 느긋하게 물어 봅니다. 냉장고에 턱 기대서서 저 잘난 척하는 꼴이라니.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잘 압니다 엄마랑 형이 저런 표정을 지으며 점수를 가지고 수수께기 놀이를 할 때면 뻔한 일입니다. 1 아니면 2일 테지요.
“2를 받았단다.”
하고 엄마가 말합니다.
“그것도 하나만 더 맞았으면 1을 받았을 텐데 말이다.”
형도 1점이 모자랄 때가 있다는 게 참으로 고소합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보다 학교 공부를 더 못하는 그런 형이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어때, 정말 잘했지?”
하고 엄마가 묻습니다.
“응응.”
하고 나는 중얼거립니다.
“오늘 따라 너 정말 이상하구나.”
하고 엄마가 불평을 합니다.
“대체 무슨 화나는 일이라도 있었니?”
다행히도 엄마는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야채랑 고기, 감자를 가져 와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당장 클라우스가 가장 큰 고기 조각을 집을 것이 분명합니다.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접시를 앞에 놓고 앉았습니다. 갑자기 클라우스가 나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참, 너네도 산수 시험지 돌려 받았지?”
내 머릿속엔 다시 한번 말할까 말까, 하는 생각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했습니다.
“우리도 돌려 받았어.”
“그런데?”
하고 엄마가 묻습니다.
“에에……, 4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순간에 이미 나는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어째서 성적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
“그랬니?”
하며 엄마가 한숨을 푹 쉽니다. 별로 만족스러운 눈치가 아닙니다. 엄마가 만일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쩌지.
“달걀 노른자까지는 안 돼도 뭐.”
하고 형이 말합니다.
“그것도 겨우 4예요. 1점 사이로 아주 아슬아슬하게요.”
하고 내가 급하게 덧붙였습니다. 그래야 너무 심한 거짓말이 안 될 것 같아서요.
“섭섭하구나.”
하고 엄마가 말합니다.
“시험 공부는 제대로 했니?”
그 말은 꼭 나올 줄 알았습니다.
“몰라요.”
하고 내가 말합니다.
“시험 보기 전에 다 풀 수 있었는데.”
“다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지.”
하고 형은 말합니다.
“그것 가지고는 어림없는 모양이다.”
하고 엄마가 말합니다.
이제는 다음 시험 칠 때 무슨 일이 있어도 3을 받아야만, 5를 두 번 연거푸 받은 것이 성적표에 4로 나오게 생겼습니다. 당장 오늘 오후부터 공부를 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꼭 하겠습니다. 클라우스가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괜찮아.”
하고 엄마가 말합니다.
“그런 얼굴 안 해도 돼. 그래도 4가 5보다는 나으니까.”
엄마의 이 말이 나의 큰짐을 덜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네 시험지 좀 보여 주렴.”
하고 갑자기 엄마가 말합니다.
“으응.”
하고 대답했지만, 그 말을 나중에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잊어버리지 않게 되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공책을 학교에 두고 왔어요. 선생님이 지난번 시험 고친 걸 검사하신다고 해서요.”
이 모든 게 다 멍청한 짓입니다. 거짓말을 한 번 하게 되면 연달아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자, 이젠 점심 먹자.”
하고 엄마가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벌써 밥맛이라곤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 이가령 선생님 '해야 해야'중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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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요 바빠 - 가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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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이가령 선생님 '해야해야'>

이 책은 도토리 계절 그림책 가운데 마지막으로 낸 책입니다.
책 네 권을 함께 좍 펼쳐 놓으면 우리 땅의 사계절이 거기에 아주 정겹게 살아납니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에는 물 오르는 봄의 모습이
<심심해서 그랬어>에는 무성한 초록의 느낌과 생동감이 살아있는 여름의 모습이
<우리끼리 가자>에서는 겨울 산의 동물들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바빠요 바빠>는 가을 편으로 요즈음 읽기에 딱 안성맞춤인 책입니
다. 갈색톤의 부드러운 색채로 산골 마을의 가을 모습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마루예요. 마루네 집은 굴피집이랍니다. 굴피집이 뭐냐구요? 참나무 껍데
기를 기와처럼 좍 펴서 지붕을 얹은 집을 말한답니다. 굴피집은 요즈음은 좀처럼 보기 힘들
지요. 이책의 표지에 그림으로 한번 확인해 보세요.

산골 마을에는 겨울이 유난히 빨리 찾아듭니다. 겨울 준비를 위해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
두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면 자연의 시간이 참으로 오묘하
구나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고추를 따는 풍경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 모
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고추를 마당 가득 널어 놓고 말리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고추를 말리는 그 때는 바로 메밀 꽃이 피는 시기라고 하구요.
또 미루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면 콩을 터는 시기가 된 거랍니다.
서리가 내릴 무렵에는 밭에 있는 무와 배추를 거두어 들이고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면 김장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간단한 문장 속에서도 이런 내용을 알뜰히 담고 있고, 문장마다 '바빠요 바빠'라는 어구로
리듬감을 잘 살려내서 아주 재미있게 읽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냥 무심히 넘어 가던 일들도 가만히 살펴보니 다 제 철에 따라서 그렇게 움직이
는 것이구나 하면서 이 그림책으로 다시 깨달았답니다. 철이 든다는 말이 자연
의 철을 안다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이 책을 쓰신 윤구병 선생님은

"사람에게 철을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도 제 힘으로 자식
들을 철들게 만들 수 없습니다.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라는 말은 자연만이 바뀌는 생명의
시간 속에서 사람을 철들게 만들고 철나게 만들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사람은 한 철, 또 한
철 자연과 교섭하는 가운데 밖에서 나는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을 내면화합니다. 그리
고 그 과정에서 철이 나고 철이 듭니다. 교육의 큰 목표 중 하나가 아이들을 철들게 하는
것이라면 아이들이 생명의 시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
고 말씀하시네요.

초가을에서부터 늦가을까지 가을의 깊이에 따라 산골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
지는 것도 그림으로 느낄 수 있었고, 모두 사람과 동물 모두 바쁜 가운데에서도 가을이 풍
성하게 무르익어 가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 아주 정겨웠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는 아이들과 함께 이런 정경을 한번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4살 이상, 초등 저학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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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3
방정환 지음, 김세현 그림 / 길벗어린이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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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샤쓰

방정환
1
생물 시간이었다.
“이 없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가?”
선생이 두 번씩 거푸 물어도 손 드는 학생이 없더니 별안간 “넷!” 소리를 지르면서 기운 좋게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음, 창남인가. 어데 말해 보아.”
“이 없는 동물은 늙은 영감입니다!”
“예에끼!”  
하고 선생은 소리 질렀다.
온 반 학생이 깔깔거리고 웃어도 창남이는 태평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도덕 시간이었다.
“성냥 한 개피의 불을 잘못하야 한 동리 삼십여 집이 불에 타 버렸으니 단 한 개의 성냥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써야 되는 것이니라.”
하고 열심으로 설명해 준 선생님이 채 교실 문 밖에도 나아가기 전에,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모이어 큰 홍수가 난 것이니 누구든지 콧물 한 방울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흘려야 하나니라.”
하고 크게 소리친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돌아서서,
“그게 누구냐? 아마 창남이가 또 그랬지?”
하고 억지로 눈을 크게 떴다. 모든 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웃다가 조용해졌다.
“네, 선생님 안 계신 줄 알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담엔 안 그러지요.”
병정같이 우뚝 일어서서 말한 것은 창남이었다.
억지로 골낸 얼굴을 지은 선생님은 기어코 다시 웃고 말았다. 그래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고는 그냥 나가 버렸다.
“아하하하하.”
학생들은 일시에 손뼉들을 치면서 웃어대었다.
○○ 고등 보통학교* 1학년의 2반 창남이는 반 중에서 제일 인기 좋은 쾌활한 소년이었다.
이름이 창남이요 성이 한가인 고로 ‘안창남’ 씨와 같다고 학생들은 모두 그를 보고 “비행사, 비행사.” 하고 부르는데 사실상 그는 비행사같이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질을 가진 좋은 소년이었다.
모자가 다 해어져도 새 것을 사 쓰지 않고 양복 바지가 해어져서 궁둥이에 조각조각을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집안이 구차한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이라도 근심하는 빛이 있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도 없었다.
남이 내 걱정이 있어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우스운 말을 잘 지어 내고 동무들이 곤란한 일이 있는 때에는 좋은 의견도 잘 꺼내는 고로 비행사의 이름은 더욱 높아졌다.
연설을 잘 하고 토론을 잘 하는 고로 1반하고 내기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창남이 혼자 나아가 이기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이 정말 가난한지 넉넉한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또 그의 집이 어데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 가는 쪽으로 가는 학생이 없었고 가끔 그 뒤를 쫓아가 보려고도 하였으나 모두 중간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왜 그런고 하니 그는 날마다 이 십 리 밖에서 학교를 다니는 까닭이었다.
그는 다른 우스운 말은 가끔가끔 하여도 자기 집안일이나 자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을 보면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는 입과 같이 궁둥이가 무거워서 운동틀(철봉)에서는 잘 넘어가지 못하여 늘 체육 선생께 흉을 잡혔다.
하학한* 후에 학생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혼자 남아 있어서 운동틀에 매어 달려 땀을 흘리면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동무들은 가끔 보았다.
“얘, 비행사가 하학한 후에 혼자 남아서 철봉 연습을 하고 있더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자 애를 쓰더라.”
“그래 인제는 좀 넘어가데?”
“웬걸, 한 이백 번이나 넘어 연습을 하면서 그래도 혼자 못 넘어가더라.”
“그래 맨 나중에는 자기가 자기 손으로 그 누덕누덕 기운 궁둥이를 자꾸 때리면서 ‘궁둥이가 무거워, 궁둥이가 무거.’ 하면서 가더라!”
“자기가 자기 궁둥이를 때려?”
“그러게 괴짜지.”
“아하하하하하하.”
모두 웃었다.
어느 모로든지 창남이는 반 중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몸이었다.

2
겨울도 겨울,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혹혹 부는 이른 아침에 상학종*은 치고 공부는 시작되었는데 한 번도 결석한 일이 없는 창남이가 이 날은 오지 않았다.
“호외*일세, 호외야! 비행사가 결석을 하다니.”
“엊저녁 그 무서운 바람에 어데로 날러간 게지.”
“아마 병이 났나 부다. 감기가 든 게지.”
“이놈아, 능청스럽게 아는 체 말어라.”
1학년 2반은 창남이 소문으로 소근소근 야단들이었다.
첫째 시간이 반이나 넘어 지났을 때에 교실 문이 덜컥 열리고 창남이가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들어섰다.
학생과 선생은 반가워하면서 웃었다. 그러고 그들은 창남이가 신고 서 있는 구두를 보고 더욱 크게 웃었다.
그의 오른편 구두는 헝겊으로 싸매고 또 새끼로 감아 매고 또 그 위에 손수건으로 싸매고 하여 퉁퉁하기 짝이 없었다.
“창남아, 오늘은 웬일로 늦었느냐?”
“네.”
하고 창남이는 그 괴상한 퉁퉁한 구두 신은 발을 번쩍 들고,
“오다가 길에서 구두가 다 떨어져 너털거리고 고로 새끼를 얻어서 고쳐 신었더니 또 너털거리고 또 너털거리고 해서 여섯 번이나 제 손으로 고쳐 신고 오느라고 늦어졌습니다.
그러고도 창남이는 태평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고 쉬는 동안에 창남이는 그 구두를 벗어 들고 다 해어져서 너털거리는 주둥이를 손수건과 대님짝으로 얌전스럽게 싸매어 신었다. 그러고도 태평이었다.
따뜻한 날도 귀찮아하는 체육 시간이 이렇게 살이 터지게 추운 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추운 날 체육을 한담.”
“또 그 무섭고 딱딱한 선생이 웃통을 벗으라 하겠지…… 아이그, 아찔이야.”
하고 싫어하는 체육 시간이 되었다.
원래 군인 다니던 성질이라 뚝뚝하고 용서성 없는 체육 선생이 호령을 하다가 그 괴상스런 창남이의 구두를 보았다.
“한창남! 그 구두를 신고도 활동할 수 있니? 뻔뻔하게.”
“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고 창남이는 시키지도 않는 뜀도 뛰어 보이고, 달음박질도 하여 보이고 제자리걸음도 부지런히 해 보였다.
체육 선생도 어이가 없던지,
“음! 상당히 치료해 신었군.”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호령을 계속하였다.
“전열만 삼 보 앞으로옷!”
“전후열 모두 웃옷 벗엇!”

3
죽기보다 싫어도 체육선생의 명령인지라 온 반 학생이 일제히 검은 양복 저고리를 벗고 샤쓰만 입은 채로 서 있고 선생까지 벗었는데 다만 한 사람 창남이가 벗지를 않고 있었다.
“한창남! 왜 웃옷을 안 벗니?”
창남이의 얼굴은 푹 수그러지면서 빨개졌다. 그가 이러기는 참말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멈츳멈츳하다가 고개를 들고,
“선생님, 만년 샤쓰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 샤쓰? 만년 샤쓰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
성난 체육 선생은 당장에 후려 갈길 듯이 그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벗어랏!”
호령하였다.
창남이는 양복 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샤쓰도 적삼도 아무것도 안 입은 벌거숭이 맨몸이었다. 선생은 깜짝 놀라고 학생들은 깔깔 웃었다.
“한창남! 왜 샤쓰를 안 입었니?”
“없어서 못 입었습니다.”
그 때 선생의 무섭던 눈에 눈물이 돌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웃음도 갑자기 없어졌다. 가난! 고생! 아아, 창남이 집은 그렇게 몹시 구차하였던가…… 모두 생각하였다.
“창남아, 정말 샤쓰가 없니?”
눈물을 씻고 다정히 묻는 소리에,
“오늘하고 내일만 없습니다. 모레는 인천서 형님이 올라와서 사 줍니다.”
“음! 그럼 웃옷은 다시 입어라!”
체육 선생은 다시 물러서서 큰 소리로,
“한창남은 오늘은 웃옷을 입고 해도 용서한다. 그러고 학생 제군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으니 제군은 다 한창남 군 같이 용감한 사람이 되란 말이다. 누구든지 샤쓰가 없으면 추운 것은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 결석이 되더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제일 추운 날 한창남 군은 샤쓰없이 맨몸, 으응, 즉 그 만년 샤쓰로 학교에 왔단 말이다. 여기 섰는 제군 중에는 샤쓰를 둘씩 포개 입은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재킷까지 외투까지 입고 온 사람도 있지 않은가……. 물론 맨몸으로 오는 것이 예의는 아니야. 그러나 그 용기, 의기가 좋단 말이다. 한창남 군의 의기는 일등이다. 제군도 다 그 의기를 배우란 말야.”
만년 샤쓰! 비행사란 말도 없어지고 그 날부터 만년 샤쓰라는 말이 온 학교 안에 펴져서 만년 샤쓰라고만 부르게 되었다.

4
그 다음 날은 만년 샤쓰 창남이가 늦게 오지 않았건마는 그가 교문 근처에까지 오자마자 온 학교 학생이 허리가 부러지게 웃기 시작하였다.
창남이가 오늘은 양복 웃저고리에 바지는 어쨌는지 얄따랗고 해어져 뚫어진 조선 겹바지를 입고 버선도 안 신고 맨발에 짚신을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 까닭이었다.
맨가슴에 양복 저고리. 위는 양복 저고리 아래는 조선바지(그나마 다 뚫어진 겹바지) 맨발에 짚신. 그 꼴을 하고 이십 리 길을 걸어왔으니 행길에서는 오죽 웃었으랴.
그러나 당자*는 태평이었다.
“고아원 학생 같으니, 고아원야.”
“밥 얻어먹으로 다니는 아이 같구나.”
하고들 떠드는 학생들 틈을 헤치고 체육 선생이,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창남이의 그 꼴을 보고 놀랐다.
“너는 양복 바지를 어찌했니?”
“없어서 못 입고 왔습니다.”
“어째 그렇게 없어지느냐? 날마다 한 가지씩 없어진단 말이냐?”
“네! 그렇게 하나씩 둘씩 없어집니다.”
“어째서?”
“네…….”
하고 창남이는 침을 삼키고서.
“그저께 저녁에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저희 집 동리에 큰 불이 나서 저희 집도 반이나 넘어 탔어요. 그래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듣기에 하도 딱해서 모두 혀끝을 찼다.
“그렇지만 양복 바지는 어저께도 입고 있지 않었니? 불은 그저께 나고…….”
“네, 저희 집은 반만이라도 타다가 남어서 세간도 더러 건졌지만 이웃집이 십여 호나 모두 타 버린 고로 동리가 야단들이야요. 저는 어머니하고 단 두 식구만 있는데 집은 반이라도 남았으니까 먹고 잘 것은 넉넉해요. 그런데 동리 사람들이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게 되야서 야단이지요. 그래 저희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은 먹고 잘 수가 있으니까 벌거벗는 것만 면하면 살 수가 있으니 두 식구가 당장에 입을 것 한 벌씩만 남기고는 모두 길거리에 떨고 있는 동리 사람들께 나눠 드려라.’ 하시는 고로 어머니 옷, 제 옷을 모두 동리 어른들께 드렸답니다. 그러구 양복 바지는 주지 않고 제가 입고 있었는데 저희 집 옆에서 숯 장사 하던 영감님이 병든 노인인 고로 하도 춥다 하니까 보기에 딱해서 어제 저녁에 마저 벗어 주고 저는 가을에 입던 해진 겹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고개들이 말없이 수그러졌다. 선생님도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너는 네가 입을 샤쓰까지 버선까지 다 벗어 주었단 말이냐?”
“아니오. 버선과 샤쓰뿐만은 한 벌씩 남겼는데 저희 어머니가, 입었던 옷은 모두 남에게 주어 놓고 앉어서 추워서 발발 떠시는 고로 제가 ‘어머니, 저의 샤쓰라도 입으실까요?’ 하니까, ‘네 샤쓰도 모두 남 주었는데 웬 것이 두 벌씩 남어 있겠니?’ 하는 고로 저는 제가 입고 있는 것 한 벌뿐이면서도 ‘네, 두 벌 남었으니 하나는 어머니 입으시지요.’ 하고 입고 있던 것을 어저께 아침에 벗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먼길에 학교 가기 추울 터인데 둘을 포개 입을 것을 그랬구나.’ 하시면서 받아 입으셨어요. 그러고 하도 발이 시려 하시면서 ‘이 애야 창남아, 너 버선도 두 켤레가 있느냐?’ 하시기에 신고 있는 것 한 켤레뿐이건마는 ‘네, 두 켤레올시다. 하나는 어머니 신으시지요.’ 하고 거짓말을 하고, 신었던 것을 어저 저녁에 벗어 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나쁜 일인 줄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나올 때에 ‘이 애야, 오늘같이 추운 날 샤쓰를 하나만 입어서 춥겠구나. 버선을 잘 신고 가거라.’ 하시기에 맨몸 맨발이면서도 ‘네, 샤쓰도 잘 입고 버선도 잘 신었으니까 춥지는 않습니다.’ 하고 속이고 나왔어요. 저는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
하고 창남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네가 거짓말을 하드래도 어머니께서는 너의 벌거벗은 가슴과 버선 없이 맨발로 짚신 신은 것을 보시고 아실 것이 아니냐?”
“아아, 선생님…….”
하는 창남이의 소리는 우는 소리같이 떨렸다. 그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는 눈물 방울이 뚝뚝 그의 짚신 코에 떨어졌다.
“저희, 저희 어머니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눈이 멀으셔서 보지를 못하고 사신답니다.”
체육 선생의 얼굴에도 굵다란 눈물이 흘렀다. 와글와글하던 그 많은 학생들이 자는 것같이 고용하고 훌적훌적 훌적거리며 우는 소리만이 여기서 저기서 조용히 들렸다.

-<<어린이>>, 1927년 3월

*고등 보통 학교: 중학교와 고등 학교가 하나로 되어 있는 학교.
*하학한: 공부가 끝난.
*상학종: 공부 시작을 알리는 종.
*호외: 갑자기 큰 사건이 났을 때 임시로 내는 신문. 여기서는 큰 사건이라는 뜻.
*당자: 바로 그 사람. 여기서는 창남이.
 - 펌: 이가령 선생님의 해야해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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