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2 - 1994.11 - 1995.11
장정일 지음 / 미학사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그의 독서일기를 훔쳐보는 쾌락

09 0403 장정일 <장정일의 독서일기 2> 미학사 1995 *****

인터넷 헌책방에서 구해 읽었다. 이로써 장작가의 독서일기를 모두 소유하게 되었다.

장작가 독서일기의 단점은 과도하게 책의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성실함에 있다. 물론 그가 읽은 책의 90% 이상은 처음 접했거나 읽지 않은 책이지만, 어떨 땐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꼬치꼬치 말해준다. 반면에 장점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책을 그토록 재미 있게 읽는 사람에 대한 질투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 첫번째고, 두번째 장점은 응당 새로운 책을 소개 받는 즐거움일 것이고, 세번째는 장정일스런 표현을 읽으면서 느끼는 행복감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아,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포용적인가? 그것은 추함까지 감싸 안는다. 그리고 소설이란 또 얼마나 관용적인가? 그것은 자신을 살해하고자 덤비는 ‘메타’의식마저 안아 키운다.(15쪽)

남성의 내면은 숱한 여인들이 음각해 놓은 풍경으로 가득하다.(29쪽)

마르크스는 <자본>을 통해 전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과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직장은 나의 자아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다(소외)’는 것을 또 ‘나는 자본가의 자아를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착취)’는 것을 말하고 있다.(143쪽)

서른넷이 되도록 단 한번도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소중한 자랑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내가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에서 태어났더라도 그럴 수 있었을까?(150쪽)
 
사디스트는 매저키스트 위에 마음껏 군림하는 것 같지만 실은 매저키스트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한다.(163쪽)

이 책(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은 전사의 투쟁기라기보다는 투병기라고 해야 한다.(199쪽)

이번 독서일기를 훔쳐보고 나서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로빈슨 크루소>,<마르크스 엥겔스의 문학예술론>,<무진기행>,<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세계시민입문>,<일상의 권력과 새도캐저키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피어라 수선화>

이제 다음은 그의 독서일기 7을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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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하우스
장정일 지음 / 산정미디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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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천재 아니면 천재

09 0331 장정일 <보트하우스> 산정 1999 *****

형식. 틀. 고정관념. 기존 가치관.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 주제 구성 문체 인물 사건 배경. 그 따위 것들 닭한테나 줘버려!

장작가는 그의 “적의가 보트하우스를 불태”워 보트를 타고 나갔었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걸 알”려 주려고. “좆도, 포르노 비슷한 걸 써서 감옥에라도 한 번 가보자는 정도의 패기는 있어도 좋은 게 아닌가”

하지만 그가 원하는 건 여전히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설지 말지는 아직 딱 부러지게 결정하지 못”한 채 “얼음 재운 콜라를 마시며 비치 파라솔 그늘 아래의 긴 의자에 누워 쉬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거나 “양계장의 닭들은 멍할 거야. 좆같다고 느낄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으며…

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절대 이 책을 읽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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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10권 세트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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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삼국지 재발견 하기

09 0329 <장정일 삼국지1~10> 김영사 2004 *****

참 오랜만에 10권짜리 장편 소설을 일독했다. 바다를 건넌 기분 내지는 산 하나를 등정한 기분-좋다. 흡족하다.
장정일 삼국지냐 황석영 삼국지냐 고민하다가 장작가 손을 먼저 들어 준 건 책의 홍보문구때문이었다. ‘원전 중심의 단순 번역이 아닌, 역사를 해석한 새로운 판본’,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벗어난 객관적인 역사 해석, 민중과 변방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 나를 유혹하는 요소가 강했다.

책을 일독한 지금 그 홍보문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장작가의 삼국지에 대한새로운 시도 자체는 흥미로웠다. 특히 장작가의 책 중 가장 길었던 작가의 말에 그가 하고 싶은 얘기가 다 있다. 삼국지엔 정본이 없고 삼국지 자체가 중화주의의 관점으로 쓰여진 책인데 번역을 잘하는 게 작가의 역할일 수는 없기에 “내가 제기하려는 문제는 되풀이되는 번역 그 차제이”며, 삼국지로부터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말을 거”는 “‘역사적 교훈’을 추출하려고 애써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황건적을 ‘황건농민군’이라 부르고, ‘칠종칠금’의 유명한 고사도 제갈량의 입장이 아닌 이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자주성을 지키려는 저항정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장작가다운 삼국지의 재발견이다.

그의 두번째 새로운 시도는 심리 묘사라고 생각된다. 삼국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전쟁인 ‘적벽대전’에서 데이비드 커퍼필드를 능가하는 제갈량의 신기가 동남풍을 불어온 것이 아니라 그날이 동남풍이 부는 날임을 알아차린 제갈량의 자연관찰능력이 동남풍이 불어옴을 알았을 뿐이고 동남풍 사건의 시나리오, 주연, 감독까지 다 한 것이라고 풀이한 대목 등은 영웅도 인간으로 보려는 장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부문이라고 본다.

세번째 새로운 시도는 기존 삼국지를 도배했던 한시를 없애고 시인이었던 장작가의 전공을 살린 시의 등장이다. 이런 파격은 실로 파격인데, 어떤 이에게 장정일 삼국지를 삼국지가 아니라고까지 말하는 빌미가 되지 않았나 싶다. 평생 장정일 삼국지 하나만 읽는다면 기존 삼국지의 한시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일생에 걸쳐 다른 작가의 삼국지를 읽게 될 경우는 오히려 흥미로운 소재거리가 아닌가 싶다.

네번째는 김태권 화백의 그림이다. 그 역시 영웅주의 사관으로 점철된 삼국지보다는 파리 목숨처럼 사라져간 민초들의 삶에 주목하고 싶다면서 여러 삽화를 통해 당시 화상석이나 자료를 토대로 아주 독특한 삽화를 소개해주는데 이는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웅이 앞장서서 통일의 과업을 떠맡을 때마다, 이름 모를 무수한 민초들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을.”이란 장작가의 말과 일맥상통하며 10권의 마지막 시와 결을 같이 한다

영웅과 제후가 쓰러진 땅 위에
무엇이 끝까지 살아남았는가?
하늘이 걱정하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등불
하늘이 용납하고 기뻐하는 것도
철따라 피고 지는 들풀이라네

나관중이 썼듯, 오래 나누어진 것이 다시 합쳐지고, 합해진 지 오래면 반드시 다시 나뉘어진다는 역사가 2009년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빨리 눈치 채는 게 삼국지를 읽는 수만가지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인물, 사건, 고사성어, 역사 등 온갖 배움과 노가리 요소가 가득한 삼국지. 장장가의 말을 끝으로 일독을 권한다.

“21세기를 맞이하여 통일이라는 화두를 피해갈 수 없는 우리가 저 비극을 피하는 방법은, 먼저 ‘통일의 대업을 내가 이루겠다!’고 외치는 자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일이다. 어떤 영웅에게도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통일에 필요한 한 가지씩의 소임을 맡아 행할 때 통일은 온다. 주제넘지만 신판 <삼국지>와 오래 씨름한 저자가 서문에서 꼭 하려고 별렀던 말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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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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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선 물감 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릴 수 있기를…

09 0215 고흐/신성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2005(개정) * * * *

저주받은 천재라면 너무 통속적인 호칭일까. 그의 편지를 읽는 내내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경제적 어려움 없이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생의 목적이었던 고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했던 그는 동생 테오에게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고까지 말했지만 결국 계속되는 발작 끝에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자살하기 한 달 전쯤 파리에서 테오와 돈 문제로 다투었다고 하니 동생의 품에 안겨 죽으며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결국 그의 짧은 생을 끝까지 따라다닌 돈과 발작에 그가 지치고 질려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형이 죽고 6개월 뒤 동생도 죽어 오베르의 형의 묘지 옆에 묻혔다고 하니 이 형제의 우정은 절절하기만 하다.

애가 있는 창녀와 같이 살기도 하고, 친구 고갱에겐 면도칼을 들이대고 고갱이 도망가자 귀를 잘라 잘 보관하라며 어느 창녀에게 주는 등 그의 천재성을 더욱 부각시켰던 그의 광기와 기행은 그림에 대한 고흐의 열정과 집착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요소일 뿐이었다. 그의 평생 유일하게 팔린 유화 작품 <붉은 포도밭>. 879점 중 1. 천재이기 전에 영혼이 따뜻한 화가였으며 광인이라기 보다는 그림에 미친 화가였던 고흐. 그의 눈물겨운 생에 마음이 저미어온다. 하늘나라에선 물감 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릴 수 있기를…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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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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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삽으로 지을 것이냐, 사유로 지을 것이냐

09 0124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돌베개 2004 *****

천박성과 야만성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남한 정권에서 건설은 재개발로 대표되는 천민 자본주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노가다 십장 수준의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는 대운하라는 국가 개조, 아니 국가 망조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한국의 자연 가치와 미래 가치가 주판알 위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건축이 사유의 기호라니? 삽 한 자루에도 생각이 들어갈 수 있다고?

건축이 공학이나 예술학이 아닌 인문학의 분야에 가깝다는 저자의 생각은 충격적이었다. 건축은 기술, 조금 더 봐준다면 예술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둘 다 아니란다. “건축의 문제는 삶 자체의 문제에서 그 이해방식을 찾아야” 하며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기에 특별한 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 건축이나 보기에 아름다운 건축은 건축의 일부분일 뿐이며 삶의 문제와 동떨어진 건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가 권위적 봉건적 방식으로 지어진다면 그것이 무슨 건축이겠는가? 학교는 학교답게 음악당은 음악당답게 지어지려면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예술이 아닌 인문학일 것이다. 건축에서 정말 중요한 건 한 자루의 삽이 아니라 한 조각의 사유일 것이다.

5년 전쯤 유럽을 여행했던 때가 생각난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탄했던 것은 어떻게 그 예전에 지었던 건축물과 도로를 유지하면서도 현재와 잘 어울리게 도시를 가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아니 건물 하나를 부수더라도 생각을 가지고 하느냐 아무 생각 없이 하느냐가 “경축 재개발 확정” 현수막을 거는 우리와의 차이였던 것이다.

건축, ‘Architecture’는 으뜸학문(arch : 으뜸, 크다 + tect : 학문)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정관사를 붙인 ‘The Architect’는 하나님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매트릭스에서도 시스템을 만든 자를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위대한 건축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자본이란 노가다판의 시녀로 불려지다니! 한낱 천박하고도 야만스런 정권의 얼굴마담으로 전락하다니!

오로지 머리에 삽 한 자루밖에 없는 대통령이 존재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으로서 이런 건축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저자가 소개한 16가지의 건축물 중 내가 가 본 것은 단 두 곳-퐁피두 센터와 라 그랑 아르세뿐이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곳까지 사유의 여행을 떠나야지, 가방에 이 다행스런 가이드북을 챙겨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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