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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10권 세트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장정일, 삼국지 재발견 하기
09 0329 <장정일 삼국지1~10> 김영사 2004 *****
참 오랜만에 10권짜리 장편 소설을 일독했다. 바다를 건넌 기분 내지는 산 하나를 등정한 기분-좋다. 흡족하다.
장정일 삼국지냐 황석영 삼국지냐 고민하다가 장작가 손을 먼저 들어 준 건 책의 홍보문구때문이었다. ‘원전 중심의 단순 번역이 아닌, 역사를 해석한 새로운 판본’,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벗어난 객관적인 역사 해석, 민중과 변방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 나를 유혹하는 요소가 강했다.
책을 일독한 지금 그 홍보문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장작가의 삼국지에 대한새로운 시도 자체는 흥미로웠다. 특히 장작가의 책 중 가장 길었던 작가의 말에 그가 하고 싶은 얘기가 다 있다. 삼국지엔 정본이 없고 삼국지 자체가 중화주의의 관점으로 쓰여진 책인데 번역을 잘하는 게 작가의 역할일 수는 없기에 “내가 제기하려는 문제는 되풀이되는 번역 그 차제이”며, 삼국지로부터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말을 거”는 “‘역사적 교훈’을 추출하려고 애써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황건적을 ‘황건농민군’이라 부르고, ‘칠종칠금’의 유명한 고사도 제갈량의 입장이 아닌 이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자주성을 지키려는 저항정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장작가다운 삼국지의 재발견이다.
그의 두번째 새로운 시도는 심리 묘사라고 생각된다. 삼국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전쟁인 ‘적벽대전’에서 데이비드 커퍼필드를 능가하는 제갈량의 신기가 동남풍을 불어온 것이 아니라 그날이 동남풍이 부는 날임을 알아차린 제갈량의 자연관찰능력이 동남풍이 불어옴을 알았을 뿐이고 동남풍 사건의 시나리오, 주연, 감독까지 다 한 것이라고 풀이한 대목 등은 영웅도 인간으로 보려는 장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부문이라고 본다.
세번째 새로운 시도는 기존 삼국지를 도배했던 한시를 없애고 시인이었던 장작가의 전공을 살린 시의 등장이다. 이런 파격은 실로 파격인데, 어떤 이에게 장정일 삼국지를 삼국지가 아니라고까지 말하는 빌미가 되지 않았나 싶다. 평생 장정일 삼국지 하나만 읽는다면 기존 삼국지의 한시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일생에 걸쳐 다른 작가의 삼국지를 읽게 될 경우는 오히려 흥미로운 소재거리가 아닌가 싶다.
네번째는 김태권 화백의 그림이다. 그 역시 영웅주의 사관으로 점철된 삼국지보다는 파리 목숨처럼 사라져간 민초들의 삶에 주목하고 싶다면서 여러 삽화를 통해 당시 화상석이나 자료를 토대로 아주 독특한 삽화를 소개해주는데 이는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웅이 앞장서서 통일의 과업을 떠맡을 때마다, 이름 모를 무수한 민초들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을.”이란 장작가의 말과 일맥상통하며 10권의 마지막 시와 결을 같이 한다
영웅과 제후가 쓰러진 땅 위에
무엇이 끝까지 살아남았는가?
하늘이 걱정하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등불
하늘이 용납하고 기뻐하는 것도
철따라 피고 지는 들풀이라네
나관중이 썼듯, 오래 나누어진 것이 다시 합쳐지고, 합해진 지 오래면 반드시 다시 나뉘어진다는 역사가 2009년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빨리 눈치 채는 게 삼국지를 읽는 수만가지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인물, 사건, 고사성어, 역사 등 온갖 배움과 노가리 요소가 가득한 삼국지. 장장가의 말을 끝으로 일독을 권한다.
“21세기를 맞이하여 통일이라는 화두를 피해갈 수 없는 우리가 저 비극을 피하는 방법은, 먼저 ‘통일의 대업을 내가 이루겠다!’고 외치는 자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일이다. 어떤 영웅에게도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통일에 필요한 한 가지씩의 소임을 맡아 행할 때 통일은 온다. 주제넘지만 신판 <삼국지>와 오래 씨름한 저자가 서문에서 꼭 하려고 별렀던 말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