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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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장정일 중에서 가장 낯설다

09 1218 장정일 <구월의 이틀> 랜덤하우스 2009 **

4번 타자도 슬럼프에 빠지면 2군에 갈 수 있고, 스트라이커라고 찬스 때마다 골을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장정일의 많은 글들을 읽어 온 나로선, 그의 타격폼이, 그의 슛동작이 이렇게 어설픈 경우는 처음 본다. 꼭 홈런이, 골이 아니어도 좋다. 그 한 번의 스윙이, 발길질로도 그의 실력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참으로 당황스럽다. 황망하다.

127쪽에 책과 동명의 시가 소개될 때, 역시 장정일은 시를 써야 해 라고 생각하며 소설을 용서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 시도 류시화의 시란 걸 알고는 허무했다. 참담했다. 건질 건, 이 시 하나라고 여겼는데 그것마저 낚시 바늘에서 빠져나가며 헛탕이라니!

왜 그가 굳이 10년만에 소설가로 펜을 잡으면서 ‘우익청년탄생기’를 써보려 했는지야 알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전작들에 비해 이렇게 현저히 떨어지는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늙었나? 감이 떨어졌나? 사고가 바뀌었나? 그럴 수도 있나? 다 잘 쓸 순 없는 거라서?

좌와 우를 상징하는 금과 은이라는 도식적 인물구도가 가진 매력도도 떨어지지만, 그의 예전 소설에 수없이 등장했던 성과 동성애의 코드가 가진 신선도는 제로에 가깝다. 사건은 진부하며 플롯은 혼자 플루트나 불고 있다. 거북선생이란 인물이 북한(北)을 거부한다(拒)는 뜻으로 거북선생이란 말을 듣고 있자니 거북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정녕 장정일이 쓴 소설이란 말인가?

광고에 낯설게 하기란 용어가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나 일반적인 관념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적용하면 낯설어 하면서 광고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가버리면 대중은 그 차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난해하거나 어려운 광고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신이 아는 장정일 중 가장 낯선 장정일을 만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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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이치도 (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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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에게 당했다

09 1126 성석제 <도망자 이치도> 문학동네 2007 **

2000년 <순정>의 개정판. 장진 감독의 추천이란 걸 알자마자 바로 알라딘에서 가져왔다. 동시에 산 천명관의 <고래>도 걱정된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처음에만 흥미로웠고 마지막 장이 제대날짜처럼 까마득했다. 완성도가 너무 떨어졌다.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나로선 그의 구라가 단편에만 통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는 이때까지 인간 각자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것, 생명은 훔치지 않았다.”(8쪽)라며 도둑 중의 도둑이라 추켜세워놓고는 마지막 장까지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둑에게도 다섯 가지 도가 있나니라. 먼저 훔칠 물건이 어떤 것이며 자물통은 어떤 게 걸려 있는지 잘 살펴 알아두는 것이 거룩함(聖)이다. 앞장을 서서 훔치러 들어가는 건 용감함(勇)이며 물러날 때 맨 뒤에 서는 것이 의로움(義)이다. 알맞을 때를 보는 게 슬기(智)이니라. 도둑질한 걸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어질다(仁)고 한다. 이 다섯 가지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천하에 이름난 도둑이 될 수 없다.”(70쪽)

이치도는 입 속으로 그 말을 굴리면서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아 그러고 보니 이치도는 개가 아니었다. 단숨에 일류 여학생 앞에 이르러 급정거, 그러고 보면 자전거가 아니었다, 멈춰 섰다.(136쪽)

피식 웃을 수 있는 장면은 이런 류인데 긴 장편 내내 이런 것만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장진은 ‘<순정>을 바칩니다’하면서 여러 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줬다고 한다. 원제도 그렇다. 두련에 대한 순정도 그렇게 흥미롭지가 않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잘 못 이해한 채 소설을 읽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장진이 추천한 책인대, 어쨋거나 잘 팔려 개정판까지 낸 책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영화관 중간에 앉은 탓으로 재미없는 영화를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봐야 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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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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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드 러너> 뛰어 넘는 원작 소설

09 1027 필립K.딕 / 이선주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황금가지, 2008 *****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아마도 서울극장에서 보고 나서, 원작을 읽어보고자 아마도 교보문고로 가서 그 자리에서 짧은 단편을 다 읽었던 적이 있다. 원작의 상상력도 놀라긴 했지만 영화의 표현력에 조금 더 점수를 쳐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브레이드 러너>를 아주 오래 전에 보고 명작의 반열에 올렸었는데 그 원작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고 원작자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쓴 사람인 동시에 영화 <토탈리콜>의 원작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소설을 참으로 재미있게 완독하고 나서 영화 <브레이드 러너>를 다시 봤다. 영화가 소설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총평을 내리고 싶다.

모든 것이 인간과 똑같지만 노예이자 기계인 안드로이드. 그런데 ‘그것’ 역시 인간처럼 영혼이 있고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테스트인 보이그트-캄프 테스트에서 안드로이드로 판명됐다면 당신에게 거짓 기억이 주입됐다는 것?
어느 것 하나 대답하기 쉽지 않다. 물론 상상력의 소산이지만, 하늘을 나는 것도 허황된 상상이었고 우주를 가는 것도 꿈 같은 상상이었던 걸 보면 상상력은 폄하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인 것 같다.

소설은 굉장히 흡입력이 강하다. 안드로이드 사냥꾼인 데커드가 지구로 탈출한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과정을 얼개로 최신 버전의 넥서스-6 안드로이드를 상대하게 되면서 긴장감을 점층적으로 끌어올린다. 거기에 영화에선 반영되지 않았지만 동물들조차 기계로 대체된 세상에서 고가의 진짜 동물을 사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놓칠 수 없는 축으로 형성된다. 현상금을 모아 전기양이 아닌 진짜 양을 사고 싶어하는 데커드의 욕망.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인 동시에 존재에 대한 욕망이며 현실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아무리 똑같다고 해도 전기양은 전기양일뿐. 진짜를 대체할 수 없는 건 진짜밖에 없다. 익서스 광고 카피처럼-진짜에겐 진짜를.

원제인 에 “Yes, they do.”라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진짜라고 안드로이드가 가짜라는 등식은 억지일 것이다. 왜 인간만 인간을, 진짜를 꿈꾸어야 하는가?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진짜를 꿈꾸면 안되는가? 꿈이라는 것이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소망이라면 오히려 안드로이드의 입장이 더 절실할 것이다.

영화는 이런 소설의 문제제기를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 현상금 사냥꾼의 구도로 치환해버린다. 다분히 영화적인 해법이면서 잘 푼 공식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만으로도 원작의 문제제기를 즐길 수 있지만 훨씬 다층적이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소설의 구도를 영화는 하나의 줄기로 소화하는데 전념함으로써 재미가 반감됐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본 자, 꼭 소설을 읽도록.

이렇게 까지 썼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현상금 사냥꾼이고, 그 대상은 2MB 계열의 최신 안드로이드라면? 민주주의와 헌법재판소를 유린하고, 언론 자유와 서민 경제를 파탄 내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를 뒤엎고, 광우병 쇠고기로 국민 속을 뒤집는 최신 버전의 극우 보수 꼴통 2MB 계열 안드로이드를 없애야 한다면?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들에게도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런데 그들의 수명은 인간보다도 더 길어 고작 몇 년에 불과한 안드로이드를 뛰어넘는 최장 수명 연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2MB 계열 안드로이드에 의해 지금은 물론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훼손당하고 있다면?

당신이라면 이 안드로이드에게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고 그 답을 모르겠다면 릭 데커드에게 물어보도록.

릭은 진짜 동물을 갖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내면에서, 마치 진짜 살아 있기라도 한 듯 돌봐 주고 먹여 주어야 하는 전기 양을 향한 증오가 다시 한 번 솟아올랐다. ‘생명 없는 물체에 불과하면서 나를 쥐고 흔들다니. 이건 사물의 폭정이야. 그 전기 양은 나라는 인간이 있는지도 몰라. 안드로이드처럼 말이야. 그놈에겐 다른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능력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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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인 6색 인터뷰 특강 인터뷰 특강 시리즈 6
금태섭 외 지음, 오지혜 사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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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하고 맛있는 호떡 하나

09 1009 진중권 外 <화> 한겨레 출판, 2009 ***

“한거레 21”의 6회째 인터뷰 특강을 정리한 책. 3월에 진행된 특강을 7월에 출판하고 10월에 읽었으니 나름 따끈따끈한 호떡을 먹은 셈이다. 게다가 맛도 있었다.
진중권은 이 대목 : 홍세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남의 욕망을 욕망하지 말라.”(…) 여러분 모두 욕망을 갖고 있죠? 그런데 그 욕망이 진짜 자기 욕망인지 생각해보세요.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고 해서 공부 잘했을 뿐이에요. 좋은 회사에 들어가라고 해서 좋은 회사 들어갔을 뿐일 겁니다. 어떤 면에서 남의 욕망을 욕망했을 거에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려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어떤 ‘캐릭터’도 필요하고요.
성적 욕망, 직장 욕망, 결혼 욕망, 그리고 돈 욕망. 그 욕망이 미스터 앤더슨의 욕망이었다니. 결국 네오라고 깨닫기 전까지 우린 매트릭스 안에서 가짜 욕망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정재승은 이 대목 : 예를 들면 키즈클럽이나 놀이동산에 가서 그냥 줄서서 놀이기구를 타는 일밖에 없는 환경에선 전전두엽이 전혀 활동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서 뭐하고 놀지’하는 상황에서 머리를 써서 기발한 놀이들을 만들어내거든요. 독일에서 하는 게, 애한테 골판지 박스 하나를 갖다 줍니다. 골판지 박스를 가지고 스스로 자동차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근사한 자동차를 하나 사주는 것보다 훨씬 더 그 영역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죠.
역시 애한텐 돈 쓰는 걸 자제하는 나의 교육 철학이 빛을 발하겠군.

금태섭은 이 대목 : 앞서 예를 든 두 사건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도 징역을 살 뿐이었지만, 오휘웅의 경우엔 사형을 당한 겁니다. 그래서 사형폐지론의 가장 강한 근거는 ‘오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라는 겁니다.
아, 오판의 가능성…사형제 대신 절대 가석방 없는 200년 형 같은 게 맞긴 한 건 같은데 금검사의 말처럼 희대의 살인마들이 출현할 때마다 그 생각이 희석되는 게 현실인 것 같다. 쳐 죽일 놈들이 문제다.

홍기빈은 이 대목 : 고대 게르만어에서 돈은 ‘죽인다’는 뜻과 관계가 많습니다.(…)돈이 왜 나왔을까요? 피값이라는 설이 있습니다.(…)화폐라는 한자어에서 ‘화(貨)’는 조개껍데기에서 나온 얘기고, ‘폐(幣)’있죠? ‘폐’는 뭐냐면 이것도 죗값입니다. 영어나 독일어에 있는 의미와 똑같은데, 옛날 신을 모신 사당에서 신관에게 드리는 물건들을 의미하는 게 ‘폐(幣)’였습니다.
사실 홍기빈 특강의 요지는 수승화강(水昇火降)으로 돈도 화처럼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한다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특강을 정리한 글이다보니 논거가 좀 약했다.

안병수는 이 대목 : 우리 주변에 화난 식품들, 전부 내쫓아야 합니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와이프한테 읽어보라고 할 부분이다. 라면, 커피믹스, 아이스크림, 설탕…너무 신경써도 노이로제 걸리겠지만 어느정도는 살펴보고 먹어야겠다.
김어준은 이 대목 : 여하튼 본질에 대한 통찰력과 시큰둥한 삶의 태도. 웃으면서 화내려면 이 두 가지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김어준의 요지도 자기객관화와 지성을 가진 성인이 되자는 것인데, 이 친구도 대중적으로 말 할 기회가 많다 보니 나름 자신의 기술을 정리한 것이라 내가 애써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 적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읽는 내내 내공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던 사회자 오지혜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김어준 씨의 책 <건투를 빈다> 중에서 제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을 읽어드리면서 마무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했던 댄 하나도 잃은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라는 걸 때달을 때다”와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것들의 누적분이다. 선택이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제가 굉장히 좋아합니다.

금태섭 <디케의 눈>, 조갑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을 읽어봐야겠다. 조갑제 책을 찾아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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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바이러스
진중권 지음 / 아웃사이더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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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3~2004 진중권의 입

09 1003 진중권 <빨간 바이러스> 아웃사이더 2004 ***

품절 내지 절판으로 나와 있어 인터넷 헌책방에서 샀는데 완전 새 책이었다. 약간 이해할 수 없었다. 각종 언론사 등에 기고한 글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 2003년 2004년의 시대상을 회고할 수 있어 새로웠다. 아주 나중에 읽어보면 더 새록새록할 듯.
단식투쟁과 단식투정, 논리의 빈곤, 열정의 과잉, 몰골과 골몰 등의 표현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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