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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ㅣ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브레이드 러너> 뛰어 넘는 원작 소설
09 1027 필립K.딕 / 이선주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황금가지, 2008 *****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아마도 서울극장에서 보고 나서, 원작을 읽어보고자 아마도 교보문고로 가서 그 자리에서 짧은 단편을 다 읽었던 적이 있다. 원작의 상상력도 놀라긴 했지만 영화의 표현력에 조금 더 점수를 쳐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브레이드 러너>를 아주 오래 전에 보고 명작의 반열에 올렸었는데 그 원작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고 원작자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쓴 사람인 동시에 영화 <토탈리콜>의 원작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소설을 참으로 재미있게 완독하고 나서 영화 <브레이드 러너>를 다시 봤다. 영화가 소설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총평을 내리고 싶다.
모든 것이 인간과 똑같지만 노예이자 기계인 안드로이드. 그런데 ‘그것’ 역시 인간처럼 영혼이 있고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테스트인 보이그트-캄프 테스트에서 안드로이드로 판명됐다면 당신에게 거짓 기억이 주입됐다는 것?
어느 것 하나 대답하기 쉽지 않다. 물론 상상력의 소산이지만, 하늘을 나는 것도 허황된 상상이었고 우주를 가는 것도 꿈 같은 상상이었던 걸 보면 상상력은 폄하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인 것 같다.
소설은 굉장히 흡입력이 강하다. 안드로이드 사냥꾼인 데커드가 지구로 탈출한 안드로이드를 ‘은퇴’시키는 과정을 얼개로 최신 버전의 넥서스-6 안드로이드를 상대하게 되면서 긴장감을 점층적으로 끌어올린다. 거기에 영화에선 반영되지 않았지만 동물들조차 기계로 대체된 세상에서 고가의 진짜 동물을 사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놓칠 수 없는 축으로 형성된다. 현상금을 모아 전기양이 아닌 진짜 양을 사고 싶어하는 데커드의 욕망.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인 동시에 존재에 대한 욕망이며 현실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아무리 똑같다고 해도 전기양은 전기양일뿐. 진짜를 대체할 수 없는 건 진짜밖에 없다. 익서스 광고 카피처럼-진짜에겐 진짜를.
원제인 에 “Yes, they do.”라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진짜라고 안드로이드가 가짜라는 등식은 억지일 것이다. 왜 인간만 인간을, 진짜를 꿈꾸어야 하는가?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진짜를 꿈꾸면 안되는가? 꿈이라는 것이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소망이라면 오히려 안드로이드의 입장이 더 절실할 것이다.
영화는 이런 소설의 문제제기를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 현상금 사냥꾼의 구도로 치환해버린다. 다분히 영화적인 해법이면서 잘 푼 공식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만으로도 원작의 문제제기를 즐길 수 있지만 훨씬 다층적이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소설의 구도를 영화는 하나의 줄기로 소화하는데 전념함으로써 재미가 반감됐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본 자, 꼭 소설을 읽도록.
이렇게 까지 썼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현상금 사냥꾼이고, 그 대상은 2MB 계열의 최신 안드로이드라면? 민주주의와 헌법재판소를 유린하고, 언론 자유와 서민 경제를 파탄 내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를 뒤엎고, 광우병 쇠고기로 국민 속을 뒤집는 최신 버전의 극우 보수 꼴통 2MB 계열 안드로이드를 없애야 한다면?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들에게도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런데 그들의 수명은 인간보다도 더 길어 고작 몇 년에 불과한 안드로이드를 뛰어넘는 최장 수명 연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2MB 계열 안드로이드에 의해 지금은 물론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훼손당하고 있다면?
당신이라면 이 안드로이드에게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고 그 답을 모르겠다면 릭 데커드에게 물어보도록.
릭은 진짜 동물을 갖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내면에서, 마치 진짜 살아 있기라도 한 듯 돌봐 주고 먹여 주어야 하는 전기 양을 향한 증오가 다시 한 번 솟아올랐다. ‘생명 없는 물체에 불과하면서 나를 쥐고 흔들다니. 이건 사물의 폭정이야. 그 전기 양은 나라는 인간이 있는지도 몰라. 안드로이드처럼 말이야. 그놈에겐 다른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능력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