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의 전시 작품을 보려고 일부러 현대미술관까지 갔는데 막상 예쁘기만 해서 당황스러웠다. 표를 끊으면 전체 전시를 볼 수 있으므로 다른 전시관도 관람을 했는데 글쎄 그닥 나는 모르겠다 뭐 이런 마음이다가도 와 이런 건 진짜 좀 아니지 않나 이런 거 앞에서 이런 얘기도 좀 아닌 것 같고 이런 생각도 하고 그랬다.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는데 또 같은 마음으로 좋아한 작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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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탄으로 그리는 작가, 이재삼.
압도적인 사이즈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거대한 작품들은 많았으므로, 이 작품이 좋았기 때문에 압도적이라고 느낀 것 같고.
작품명이 '달빛'이라고 하니 음, 하고 다시 뒤로 물러나서 볼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
이것저것 생각하기 전에 일단 좋아서 기억해둔 이름. 서울관 개관 1주년 기념 <정원> 전시관에 있는데 도대체 한 군데로 묶이지 않는 작품들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 작품을 보게 되어서 좋았다.
“나에게 목탄의 검은 빛은 검은색이 아닌 검은 공간으로 존재한다” 이건 인터뷰에서 발췌한 작가의 말.
현대미술관을 나와 야 이것 참 어떻게 해야하나 어째서 약간 화가 나나 이러면서 경복궁 옆길을 쭉 걸어가는데 학고재 갤러리에서 백남준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조심스레 들어가서 조심스레 작품을 보는데 이건 뭐랄까 좋고 자시고의 문제를 떠나서 신기하고 무섭다고 해야하나.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드나 내가 밥숟가락 들 힘도 없을 때 이미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스텔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이라는 작품명이 좋아서 찬찬히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걷는데 빌 비올라 전을 하는 게 아닌가! 두둥!!
친구와 나는 우리의 분노는 이렇게 씻는 걸까, 하면서 국제 갤러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좋고 좋아서 너무 좋아서 와, 씨 야, 씨, 이러면서 갤러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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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밤의 기도'. 가만히 앉아 천천히 진행되는 움직임을 바라보는 동안 어떤 무게감이 화면 밖으로 밀려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점에서부터 시작해 걸어오는 남자와 촛불을 하나씩 켜는 여자의 동작이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지고 영상이 끝나갈 때 그들의 몸 그림자가 화면에 가득차면서 꾹 도장 찍듯 어떤 인상을 남겼다.
비올라는 전시가 시작된 5일 기자들과 만나 “부처도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다. 고통은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이라며 “삶이나 인간 존재에는 심오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내면에 더 크게 자리 잡는다”고 자신의 인생철학을 밝혔다.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어두운 공간 안에 하나뿐인 큰 디스플레이. '도치된 탄생'은 배우의 작은 움직임과 거꾸로 진행되는 물줄기를 면면히 살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굳이 하나하나 의미를 두며 생각하고 싶진 않았고 그저 바라볼 뿐인데도 물기 없는 모습으로 돌아가 손을 모을 때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뭐지. 우리는 현대미술관에서 느낀 작은 분노와 실망을 잊고 빌 비올라와 백남준을 그득그득 끌어 안고 나와서 와 씨 야 씨 겁나 좋다 뭐 이렇게 좋냐 이러면서 사람 많은 삼청동을 걸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었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스카프를 샀다. 항상 어둡고 색채라곤 없는 옷들만 사입다가 갑자기 겨자색 스카프를 하고 다니니 뭔가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친구에게 이건 내 스타일의 혁명이야, 라고 말하니 레볼루션이로구만, 오늘은 혁명의 날이야. 뭐 이러더라. 봄에 목이 따뜻하면 이런 기분이구나, 라고 말하니 친구는 조금 놀랐다. 좋지? 목 따뜻하니까. 이래서 응 좋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