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이가 아니므로 어제는 일어나자마자 장을 보러 나가 이것저것을 사고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서 맥주를 마셨다.
낮 한 시 햇빛이 좋고 바람이 적당히 차가워서 좋았는데 나는 갈 곳이 없었다는 게 함정.
이렇게 약속이 없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연락이 없어도 되는 건가, 그건 맞을 수 있지.
과자 한 봉지를 다 먹으며 비정상회담과 외국의 시트콤을 두 편 보고 말 그대로 멍때렸다.
멍 때리다가 이게 뭔가 싶었다. 운동은 가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지 못할 바에야 책이라도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꺼냈다. 매트리스 끝에 걸터 앉아 <방랑기>를 읽기 시작하는데 와 왜 이렇게 잘 쓰는 거야. 문장에 사금파리 발라놓은 것처럼 뾰족하고 반짝거리는 이거 뭐야. 이렇게 좋은 문장이라니. 그러다 나는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배고프네.
배고파서 아이스크림과 불닭볶음면과 퐁당쇼콜라와 소시지가 아주 큰 빵과 베이비슈를 사서 요새 인기가 많다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서 먹었다. 저거 다 먹은 건 진짜 함정. 써놓고 나니 진짜 어마어마하게 먹은 느낌이네. 별로 양이 많진 않았던 것 같은데......그거슨 나의 착각인가봉가.
여튼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는데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워낙 대단하게 요리를 해서 멋있다 멋지네 하면서 보고 또 보고 ..그렇게 몇 화를 봤는지 모르겠다. 중식을 하는 이연복 요리사의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감탄 또 감탄. 크나큰 중식도에 마늘 빠개지는 것 보면서 완전 감탄함.
그렇게 새벽 두 시까지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게 되는데......... 또륵 친구는 요리 잘 하는 남자 멋있지 않냐며 그러는데 내 생각으로는 요리를 잘 해서 멋있는 것보단 자기 일을 잘 해서 멋있는 것 같은데 싶었다. 자기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원래 다 멋있음. 친구가 너는 요리 잘 하는 남자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더니 마약밀매업자나 도박꾼에게도 어울릴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먀약밀매업자나 도박꾼은 내게 사람이 아니라고 답해줬다. 답정너임.
아침에는 갑자기
미친 여자의 한낮처럼 무너져 내렸다.
라는 문장이 떠올랐는데 왜 이런 문장이 떠올랐는지는 나도 몰라 너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