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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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읽은 하루키의 작품이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필두로 총 7편의 단편이 실린 책이다. 제목으로 실린 <여자 없는 남자들>부터 먼저 읽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일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책에 실린 순서 따위야 그닥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제목 그대로 7편의 단편들에는 다양한 이유로 여자들을 떠나보낸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처럼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며 사는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헤어진 이후에나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내가 그녀를 적어도 중요한 일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야. 그리고 그녀가 죽어버린 지금, 그건 아마도 영원히 이해되지 못한 채 끝나겠지”(드라이브 마이 카, p.49)

 

아내가 암으로 죽은 후 아내와 육체관계를 가졌던 다카쓰키에 던지는 가후쿠의 말은 어쩌면 나 역시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생을 함께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지고, 그 후론 서로가 무엇을 보는지 알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후 남겨진 자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모습에 항상 아파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카쓰키의 말에 어떤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드라이브 마이 카, p.51)

 

남성과 여성은 서로 간에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신비롭고, 더 애처롭고, 더 애틋한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자 없는 남자들, 어쩌면 그 존재가 밋밋해져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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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러브 - 하나님과 지독한 사랑에 빠지다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아드폰테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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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을 경험한 사람이 현실에 안주한 채 별다른 변화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거야 말로 미친 것이라는 챈 목사님의 말이 귓가에 계속 머무른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후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전부 내놓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챈 목사님은 어쩌면 현대 교회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이야기들을 에두르지 않고 그대로 들려준다. 교만하고 감각적이고 사치스럽고 형식적인 교인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느냐고, 그저 자신이 가진 것 중의 일부만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지내고 있지는 않느냐고,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은 아니냐고?

 

챈 목사님의 말씀은 2014년 내게 가장 큰 시험이 되었던 두 가지 문제와 맞물려 있다. 첫 번째는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챈 목사님의 고백처럼 나 역시 하나님을 오로지 두려워하기만 하였다. 사랑의 하나님을 잊고 있었다. 그랬기에 죄에서 허덕이는 내 모습에 너무나 괴로웠다. 내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 나를 침몰시켰다. 거기에다 내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내 모습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자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기만 했다.

 

그러다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것을 이끄신다는 사실이었다. 내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사랑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나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 내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이 삶에서 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한 채 그저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챈 목사님의 <크레이지 러브>는 내게 예수님께 내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고 말씀에 순종하라고, 이제는 주의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삶에서 행동으로 옮기라고, 하나님을 목숨보다 더 귀히 사랑하고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또한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주께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핑계를 대고 있을 때도 아니다. 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 바로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고,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게 주어진 삶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매일같이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미친 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여기서 맞아서야 쓰겠는가. 남을 돕거나 무릎으로 기도하다가 그 분을 맞아야 할 텐데.(p.186-187)

 

클라라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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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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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라는 책 이름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사람이니까. 그것도 살아 있는 실존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깡패이면서 시인, 소비에트 언더그라운드의 아이돌, 맨해튼의 거지, 억만장자의 집사,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혼란기에 청년 무법자들의 당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늙은 보스. 그를 가리키는 말이 하도 많아서 도대체 진정으로 이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기 어렵다.

 

이 책은 세 가지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다. 먼저 이 책을 쓰게 된 대상인 리모노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재미. 리모노프의 본명은 에두아르드 베니아미노비치 사벤코이지만 어느 날 시인의 삶을 살기 위해 41서점에 모인 사람들과 재미삼아 만든 이름이 에드 리모노프이다. 리모노프는 어린 시절부터 일반인의 생각을 넘어선 모습을 보인다. 깡패이면서 시를 쓰는 그의 모습. 서로 이질적인 모습이지만 또 그게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아마 러시아에서는 시인들이 대중 가수만큼 인기를 누린다는 사리에 바탕으로 한 고정관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리모노프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를 드러내는 말 중에 늙은 정신병원 의사의 말이 가장 그를 정확하게 바라본 것이 아닌가 싶다.

 

자넨 정신병자가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을 뿐이지” (p.82)

 

이 책을 보는 또 다른 관점. 책 속 곳곳에 담긴 저자 카레르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왠지 모르게 리모노프와 카레르는 다른 듯 하지만 또한 비슷한 인생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여타의 소설과는 다르게 카레르의 생각이 너무 솔직하게 담겨 있어서 이게 소설인지 아니면 카레르의 기록물인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관점. 역사, 특히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해체되어버린 소련과 그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흥미로움이 있다. 나이든 사람들이 스탈린을 그리워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왜 일어나는 걸까?

 

남녀 인민들을 향해 그는 <동지들>이라고 하지 않았다, <동무들>이라고 했다. <동무들>. 이 소박하고도 친숙한 단어, 그동안 뜨거움을 잊고 지냈던 이 단어, 이 한 마디가 환란 속에서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고, 처칠과 드골의 연설이 우리에게 그랬듯 러시아인들의 가슴에 아로새겼다.(p.52)

 

이처럼 소련의 역사, 러시아인의 삶과 생각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찾아보며 역사적 사실들을 배우는 재미도 적지 않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삶, 새로운 역사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이 책에 담겨있다. 구정, 새해를 시작하는 시기에 한 번 읽어보기에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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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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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다는 것.

 

테오는 왜 그런 바람이 되고 싶었을까? 바람처럼 되어야만 나폴레옹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죽은 나폴레옹을 왜 만나고 싶어 했을까? <나폴레옹의 모험>이라는 책에서 말하길,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이었기 때문에.

 

모든 전투에서 이긴 나폴레옹의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

 

테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테오의 부모님을 구하는 것!!!!

 

그렇다. 여덟 살 테오는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이미 세상을 떠난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어 했다. , 부모님이 어떤 상태이기에 그들을 구한다는 것일까? 테오의 부모님들은 서로 간의 전투에 빠져 행복과는 거리가 먼 듯한 가정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오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행복한 가족, 그것이 테오가 세상에서 제일 바라는 것이다. 테오의 바람이 잘못된 것일까? 물론, 아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적으로 바란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족 간에 행복보다는 미움과 다툼이 넘치는 경우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바로 테오의 부모님들처럼 말이다.

 

이들은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싸우고, 식탁을 내리치고, 때로는 욕을 하기도 한다.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이가 있는 앞에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들의 이런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한다면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마틸테가 테오에게 던진 한 마디.

 

넌 언제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애야.”(p.97)

 

심리학적으로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싸우면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단다. 아이들은 오히려 부모님들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테오처럼 바람이 되고 싶어 하는 데 말이다.

테오의 천진한 모습과 부모를 향한 마음에 너무나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이제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바람이 되고 싶었던 테오처럼 나도 바람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해 줄 바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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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해체
스티브 사마티노 지음, 김정은 옮김 / 인사이트앤뷰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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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를 거쳐 현재에 이른 현대 사회는 이제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점차 산업 사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게임, 소셜 미디어, 스마트 폰, 3D 프린팅 등은 거대 기업이 좌지우지 하던 경제 전반을 분해시키며 비즈니스의 지형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이런 변화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기도 했지만 소매 영역은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는 변화이다.

 

소매는 이제 더는 저쪽 편에 있는 물건 파는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래야 한다.(p.168)

 

내가 아는 후배들이 바로 이 유형에 해당된다. 이 친구들은 처음에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사업의 방향을 틀어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세분화하여 사업 방향을 침구류 쪽으로 한정하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활용한 이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제품을 찾는 매니아 층이 생기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변화는 미미하지만 분명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후배들과 같은 상황에서 경제의 대세 패턴인 해체’, 즉 비즈니스의 모든 것이 훨씬 작은 규모로 파편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 중요한 것이 바로 저자가 강조한 접근성이다.

 

소셜 미디어, 4Ps의 변화, 금융의 변화, 게임화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끈 내용은 3D 프린팅에 관한 것이었다. 이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2030 대담한 미래2>의 저자 최윤식님도 3D 프린팅을 향후 눈여겨보아야 할 미래 사업으로 제시하였다. 3D 프린팅은 말 그대로 누구나 제조업자가 될 수 있고,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조금 과장하자면 거의 전 분야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솔직히 이 기술을 이용해 앞으로 무엇이 나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떤 시대나 변화는 항상 있었다. 사람들이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각 사람에게 다른 미래가 펼쳐졌다. 그렇다면 모두가 쉽게 테크놀로지를 이용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산업 시대의 그 방식에 젖어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어진 테크놀로지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는 오로지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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