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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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몇몇 책들에 대한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밤에 꺼내어 하나씩 야금야금 읽으면 좋을 책이다. 짧고 가벼운 내용들이라 몰입하여 오래 읽기엔 좋지 않다. 그런 이유로 밑줄도 별로 치지는 않았지만 읽는 동안에는 아주 조금씩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나 경각심을 가지며 읽었다. 몇몇 책들은 책 자체가 지니고 있는 매력 때문에 그에 대한 소개가 어떤지에 상관없이 읽고 싶어졌다.
(아주 좋은 책이 아니면 안그래도 대충 쓰는 리뷰를 더 횡설수설하며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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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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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김민형 교수님의 책이다. 최근 들은 교수님의 강연과 책의 일부 내용이 겹쳐 빠르게 읽었다.

수학을 가르치며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수학이 필요한 순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이냐,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려운 건 ‘필요한 순간’이란 말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수학이 얼마나 녹아있는지 의식하지 않으면 깨닫기 어렵다. 여러가지 선택 중 여러 변수를 가지고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수학적 논리를 사용하면서도, 전략적으로 투자를 하고 저금을 하며 예산을 관리하면서도, 조사를 하고 그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도 그것이 수학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 사람들이 대는 이유다.

수학을 적용에 초점에 맞추고 수준을 내려야할지 혹은 수준을 올려 진도 나가기에 급급해야할지에 대한 논쟁은 끝이없다. 어쨌거나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줄 수학자를 위해 많은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소수의 수학자를 위해 다른 모든 학생들마저 많은 내용을 학습해야 할까? 삶에 수학이 어떻게 녹아들어있는가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알게 해야하지 않을까? 사실상 대입을 위한 교육만 없었어도 지금처럼 수학이라는 학문의 위상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입시를 위한 수학, 점수를 위한 수학, 줄 세우기를 위한 수학이라는 측면에서의 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의 학교 수학은 수학자 양성을 위한 수학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단순한 문제풀이에만 집중할 뿐 그 깊이를 가르치기엔 그놈의 진도가 너무 빡빡하다.

대학교에 들어가 수학을 배우며 느꼈던 감동을 어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고작 도르레를 올릴 때의 속도의 변화 같은 졸렬한 내용을 배웠던 것 같은데 실제 수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현실을 탐구하는 학문. 그러니까 자연과학과 같았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김민형 교수님의 강연 내용 중 음파에 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sin 함수들의 상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음정의 변화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들으며 감탄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수학으로 가득차 있는가에 대한 감탄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내용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와 그런 수업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잡소리가 길어졌다. 이 책은 확률적 사고, 우주의 언어, 과학과 수학, 선출 제도, 중매쟁이의 수학, 위상수학 등 수학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은 내용으로 수학이 필요한 순간들을 다룬다. 수학의 영역을 아주 조금씩 다양하게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수학을 잘 모르지만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물론 뒷부분에 있는 특강 내용은 현대대수의 내용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중간 중간 생략되어 있는 부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나로선 오랜만에 대학 수학을 접하며 다시 입문자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자연과학과 수학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세계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볼 수 있는 영역의 깊이가 다를 거라고 확신한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오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학이나 과학에서는 어떻게 이런 사실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라고 감탄을 자아내는 순간들이 종종 온다. 서로 다른 수학적 방법으로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결과가 나타날 때라거나 기대하지 않은 방법에서 해를 얻어내는 경우가 그렇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모든 것이 맞물려있다.
과학의 경우에는 대표적으로 양자역학의 존재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과학자들이 굉장히 부럽다. 우주의 탄생과 지구의 탄생, 지구의 순환과 수많은 변화들을 이해하고 사는 것과 아무 것도 모른 채 사는 것이 같을 리 없다.

자잘한 일들에 상처받고 우울한 날에 지구와 별에 대해, 우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면 그런 한낮의 우울쯤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게 된다. 지구의 아주 작은 땅덩어리를 밟고 서서 드넓은 우주의 품을 동경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타고난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과학을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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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8-09-2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 가르치고 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푸하 2020-04-13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봤습니다.

뚜비 2020-08-07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문단이 너무 좋아요. 우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면 현실의 문제들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는 것, 드넓은 우주의 품을 동경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는 말이요. 멋진 리뷰 잘봤습니다:)
 
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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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독서 모임을 위해 다시 읽었다. 4월에 읽고 겪은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다시 읽으면서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혀와 위가 못마땅해져서 여행을 떠난 저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식사를 겪고 본다.

어떤 식사는 쓰레기로부터 나온다. 가난한 나라에서 비교적 잘 산다는 사람들의 남은 음식이 그보다 더 가난한 이들의 식사로 판매된다. 갓 버려진 식사일수록 비싸다.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그 안에 부유한 국민과 가난한 국민이 있고 가난함 속에 더 한 가난이 숨어있다. 식사 또한 마찬가지다. 건강식이라는 단어조차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어떤 식사는 방사능으로부터 나온다. 체르노빌 사건이 일어나고 그 지역은 구제불가능의 지역이 되었다,라는 이야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어느 정도는 복원이 되었고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보다는 나아졌노라고. 거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마지노선이다.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는 건 우리들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진 1990년대에 그곳에서 여전히 식사를 하고 일을 해나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삶의 터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먹어도 괜찮다며 속으로 앓고 있을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식사를 하는 이들이 그때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아는 것은 얼마나 얄팍한 지식과 동정이었던가. 저자의 행동과 그들의 초연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만다.

어떤 식사는 무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수유를 통해 에이즈가 감염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과 알고 있음에도 줄 수 있는 음식이 없어 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그곳은 에이즈가 잠식하고 있을까? 약 2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인간에게 미래의 희망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아프리카가 있다. 드넓은 광야, 내리쬐는 햇빛. 그 안에는 살점이 뜯긴 옷에 들러붙는 파리 떼가 있다. 너에게 식사란 무엇인가? 너는 다른 이의 식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인간은 무엇일까? ‘먹는’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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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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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나의 일상에 장애인들이 얼마나 맞닿아있었던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많은 기회들 중에서 비교적 접근하기 쉽고 생각하기 편한 방향만을 선별적으로 골라 ‘배려’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했고 내 생각의 폭이 얼마나 나라는 사람 안에 갇혀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기회가 됐다. 저자의 변론 솜씨에 감탄하며 읽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그들 또한 하나의 개인으로서 서사를 만들어가도록 해야한다는 것이, 스냅 사진이 아닌 초상화를 맡길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한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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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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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언제 처음으로 읽었더라. 그 언젠가 이 책을 읽고 정이현에게 반해 그녀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볼 때 그녀의 이름을 말하곤 했었다. ‘안녕, 내 모든 것’, ‘작가의 글쓰기’, ‘사랑의 기초’, ‘오늘의 거짓말’, ‘’너는 모른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까지 그녀의 글들을 읽어댔다. 하지만 아쉽게도 달콤한 나의 도시만큼 그녀를 설명하기 좋은 책은 보지 못했다. 단편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도 꽤 매력 있었지만 그녀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아무래도 달콤한 나의 도시인 듯 하다.

처음으로 읽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태오의 마음에 공감했다. 세 번째 읽을 땐 연하의 남자를 만날 때였고 태오를 바라보는 은수의 마음에 공감하며 쓰린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쨌든 남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의 나이이고 몇몇 연애의 과정에서 왜 그 사람은 내가 갖는 만큼의 마음을 주지 않는 거냐며 떼를 써보기도 하고 떨리지 않는 가슴에게 이 사람이 맞는 거냐고 묻기도 하며 대한민국의 오은수로, 재인으로, 유희가 되어 뼈아프게 읽었다.

그녀의 글에 줄을 치다가 책 한권에 통으로 밑줄을 긋고 싶어져 그만 두었다. 대한민국의 여자로 살아가는 일은 어쨌거나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글에 공감을 하는 거겠지.

태오같은 사람을 만나는 동안은 속으로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보살핌을 받고 사랑을 받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구나. 정말 고맙다, 하고 느끼는 와중에 그의 마음을 외면해보기도 하고 그 치기어린 마음을 우스워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덜 아팠으면, 덜 아팠으면 하고 웃기지도 않을 동정을 품었던 듯 하다. 한편으론 어린 마음에 날 사랑하는게 아닐까라는 조바심을 느끼면서 왜 그 사람은 그리도 어린 걸까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내가 그 나이였더라면 좀 더 마음을 내던져 사랑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나이로 돌아간대도 난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마음을 내던져 사랑할 용기조차 품지 못했다. 그러니 태오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어린 사랑에 대한 동정심과 고마움인 동시에 부러움이었을 것이다. 너는 벌써부터 그렇게 마음을 주는 법을 아는 구나, 라는.

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마음을 내던져 사랑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젠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마음을 내던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행여나 내던져진 그 마음이 내 삶을 곤궁하게 만들까봐. 혹은 내던진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골인하지 못하고 튕겨진 채 산산이 조각나 버릴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사랑에는 모든 걸 내걸고 사랑하고 싶다. 모두가 나중을 생각하느라 지금 불행한 것 아닐까. 그리하여 결혼을 하지 못해 불행하고 결혼을 해서 불안하고 이혼하지 못해 불행하고 이혼해서 불행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다짐을 하고도 또 고민하고 멈춰 설 나를 안다. 그래도 비슷한 순간이 내게 왔을 때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이 책이 내게 주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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