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쪽 귀퉁이를 등 뒤에서 어깨로 넘겨, 앞쪽의 다른 귀퉁이에 묶는다. 즉석 토가가 완성됐다.

"자체 보행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혼수에서 깨어난 혼수투스 황제다. 짐의 앞에 무릎을 꿇으라."

-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 中



푸하하하하. 어떻게 웃음을 써야 이 즐거움이 전달이 될까. 언어는 정말 많이 발달했지만 웃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너무나 구식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은 배아플 정도로 웃긴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나 이히히히힉 따위로 글을 써버리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마주할 때면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기 십상이지만,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던 나로서는 작가가 느꼈을 창작의 고통이 느껴져 짠하기까지 하다. 우하하하학 이히히히힉 정도면 지금 내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앤디 위어는 정말 재밌는 사람이다.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웬만해선 웃음소리를 내지 않는 기막힌 무뚝뚝함을 지니고 있는 내가 어느 순간 깔깔거리며 애인에게 해당 페이지를 보여주게 된다. 애인은 웃지 않는다. 개그에도 기승전결이 있는 법이니 결만 보고 웃을 수는 없다. 결국 이 '웃김'을 공유하고 싶은 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똑똑한 앤디 위어는 뒷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웃겨준다. 아주 유쾌한 사람이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수학의 명제가 현실에 관한 어떤 설명을 제공하는 한 그것은 불확실하며, 명제가 확실하다면 그것은 현실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中



나는 나 자신이 자연과학도였으면서도 아인슈타인의 말에 빗대어 과학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어떤 문장이 당신의 마음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한 그것은 문과생의 글이며, 이과생의 글이 확실하다면 그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리 없다."


그만큼 이과생이 감정을 건드리는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끼리 대학 시절을 함께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그들은(이럴 때는 선을 긋고 싶다) 시도때도 없이 '이과생 개그'를 투척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웃기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을 유쾌하면서도 짜증나게 만드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내 삶에서 글을 잘 쓰는 이과생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도 써봐야겠다'고 이상한 결론을 내버리고 만 것이다.(성급한 일반화의 예를 우리는 삶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 글만이 똥망진창이다. 테드 창의 글은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미치도록 똑똑한데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 있다니. 어제 나는 테드 창의 단점을 발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다니. 나는 앞장에 그려진 그의 얼굴을 봤다. 어딘가 웹툰 작가 김풍을 닮았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모두 읽은 후에는 그 얼굴이 잘생겨보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비슷한 잘생김을 가지고 있다..)

아, 불공평해. 그러나 나는 합리화를 한다. 웃긴 글을 쓸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웃긴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어젯밤 나는 뒷부분이 궁금해서 잠을 설쳤다. 망할.


3

- 이중 최악은 뭘까요?

1. 망했고 망했다고 생각함.

2. 망했고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3. 망하지 않았고 망했다고 생각함.

- 음…… 4번은 없어요?

- 뭐요?

- 4. 망하지 않았고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中



이럴 때면 정지돈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어쨌든 이런 위대한 작가들이 있으니 SF는 물 건너간 것 같은데, 현재의 상황은… '3. 망하지 않았고 망했다고 생각함'에 해당할 듯. 주식창을 켰다가 황급히 눌러 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엄청난 손해 금액을 봤다가 그 손해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니 이상하게 돈 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나 정말 최악이네..) 엄청난 불행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이상한 종교에 의지하고 사재기를 하듯이 나는 책을 읽으며 불안감을 해소하는 편인 듯 하다. 다행히 우리의 태양은 여전히 살아있고,  1=2가 증명되어 자연과학이 무너지는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 행복해..


4

물리적 공간은 이러한 관계들의 망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결과로 생겨난 조직입니다. 이 선들은 그 자체로는 어디에도, 어느 장소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선들은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서 장소를 만들어냅니다. 공간은 개개 중력 양자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中



서재의 존재를 뒤늦게 깨달았다. 작년에 알라딘 적립금 3만원이 들어와서, 뭔진 몰라도 '개꿀'이구만, 생각하곤 북플 친구님께서 축하한다고 하셔서 '뭔진 몰라도 감사하구만.' 생각해버렸는데...(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옆에 두고 싶지 않은 태평함을 지녔네) 오늘 문득 이것저것 궁금해서 누르던 중 '이달의 마이페이퍼'라거나 '이달의 알라디너'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콜럼버스의 발견까지는 아니어도 나 나름대로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 듯한 이 신선함.. 


서평은 웬만해선 안 읽는다. 책에 대한 내 감정이 다른 감정으로 인해 변질되는 것이 싫고 나와 딱 맞을 수 있는 책을 누군가의 호불호로 발견하지 못하는 불행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다. 더군다나 책에 대한 호기심에 글을 클릭했는데 원치 않게 소설 내용에 대한 스포를 당한 적도 있어서 더더욱 서평에 대해선 겁쟁이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페이퍼는 나도 모를 이끌림에 종종 누르게 되는데, 스포를 하지 않으면서도 책이 주는 즐거움을 기깔나게 표현하시는 분들의 글이 그렇다. 추천사를 최소한으로 본 후 읽고 싶은 책을 담아두는 편인데, 요즘 읽고 싶은 책이 과하게 늘어 걱정...


어쨌거나 알라딘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이달의 페이퍼를 모바일앱으로도 볼 수 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드레퓌스 사건,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혁명, 대공황,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히틀러, 팔레스타인, 베트남, 미국의 인종 불평등, 핵무기,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에 대해 다루었다. 


아무래도 역사 책이다보니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구체적인 수치나 연도를 언급하며 기술한 것이겠지만, 정보 전달에 너무 힘을 줘서인지 흐름이 끊긴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자주 있었다. 분명 다른 책에서 읽을 땐 흥미롭게 읽혔던 이야기들이 좀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사건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소개한 점은 좋았다. 다른 사건으로 알고 있었던 사건들 간의 연관성을 알게 되어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역사를 재밌게 설명하는 건 역사 덕후인 전공자들은 따라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건이 덜 팔리자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고 노동자를 해고했으며 신규 투자를 유보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합리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두가 불행해졌다.

-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中


다 살아보겠다고 하는 짓인데 결과적으로 치킨런의 게임으로 치닫는 현실... 회사를 좀 살려보겠다고 야근을 시키는 건데 사실 그 야근러들은 회사의 소비자들이고.... 소비자들은 소비할 시간이 없고.....그래서 결국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슬픈 이야기...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운행하는 곳이 생겨나는데 어라? 황당하게도 주4일을 일했더니 더 효율이 높았더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단다. 내 주변 야근러들 중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밤까지 일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어떤 야근러는 사실상 6시까지 단톡방에서 하루종일 떠들다가 뒤늦게 야근을 한다며 우는 소리를 종종 한다. 전자의 경우엔 주4일을 일하면 과연 더 행복해질까 싶기도 하고(남들 놀 때 혼자 일하는 거 아니냐) 후자의 경우엔 주4일을 일해도 똑같이 놀 것 같다. 그래도 주4일제를 시행하는 건 꽤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열심히 일한다.. 나조차도 일을 안 하고 노는 꼴을 못 본다,, 나도 모르게 요상한 가치관이 자리잡은 건지도 모른다..(경계해야지..)


2


최근 일본의 한 연구팀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로봇을 쇼핑몰에 풀어놓고 인간의 이동 경로에 부딪치면서 지나가게 했더니, 아이들이 로봇을 학대하고 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대의 이유를 인터뷰한 결과, 로봇을 물건으로 인식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고" "고통을 느낄 것" 같아서 괴롭혔다는 답변이 나왔다. 이에 제작자는 로봇이 아이들을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알고리즘을 넣었다.

- 김보영, 박상준, 심완선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中



혐오만큼 돈도 노력도 배경도 필요치 않은 권력이 어디 있겠는가. 간단히 권력을 쥘 수 있다는 유혹은 얼마나 달콤한가. 혐한을 하는 일본의 넷우익은 말한다. "지금까지 나는 무시만 받아 왔다. 하지만 혐오를 시작하자, 나는 비로소 누군가의 위에 설 수 있었다." 이 심리는 모든 혐오 발산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같은 책 中



SF라는 큰 줄기를 기준으로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답은 하지 않은 채 끝내기 때문에 혼자 이런저런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즐거운 책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영화에서 나온 장면을 두고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 장면이 가능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고민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확답을 주는 일은 그 사람을 권위있게 만들고 우아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존재만 보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된다. 그건 아무 진보도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책에 나온 아래의 문장은 꽤나 매력있었다.



빛은 가다가 멈출 수 없고 서로 부딪칠 수 없으니 광선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어리둥절했다. "가다가 멈추고 서로 부딪쳤다면 빛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 과학자는 영화의 과학적 오류를 지적한 것이 뿌듯하다는 논조로 글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그러니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보자.

- 같은 책 中



이 뒤에 나오는 내용은 예상하다시피 광선검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고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뻗어가는 광선을 막기 위해 거울을 사용한다면? 색을 띄게하기 위해 플라스마를 사용한다면? 아무래도 이런 상상이 안 된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고 재미있다.


문득 안 된다고 포기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안 되는 이유라거나 시도할 수 없는 이유들은 굉장히 많지만 안 된다는 설명을 하며 인생을 사는 건 역시나 재미가 없다. 그러니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지?


2021년에 읽은 책들을 마무리하고 문득 4년 전부터의 기록을 대충 훑어보니 별점이 점점 후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근래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책을 읽을수록 취향이 넓어지고 사소한 내용에서도 느끼는 바가 좀 더 많아진 것 같다. 별점은 결국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며 주게 되는데, 이젠 어떤 책을 읽더라도 조금이라도 깨닫는 순간들이 하나씩 생겨나는 느낌이랄까.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한 감정들도 요즘은 더더욱 알 것 같다. 겨울날 따뜻한 유자차 한 모금이 주는 위안이라거나 밀폐용기에 크루와상 생지를 넣어두고 다음날 꺼내봤을 때 부풀어있는 것을 보고 느끼는 묘한 성취감, 추운 날씨에도 죽지 않고 바들바들 떨며 제자리를 버티고 있는 나무가 주는 대견함같은 것. 짧은 통화 후에 짧은 통화가 못내 걸렸는지 자전거를 반납하느라고 짧게 끊었다며 핑계대는 아버지의 문자. 이런 몽글몽글한 것이 행복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1-08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9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읽기 쉬운 책들이 유행인 한 해였던 것 같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한 아이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고 있길래 빌렸나고 물었다니 직접 샀단다. 쉬운 책들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어렵게 읽을 수도 쉽게 읽을 수도,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달러구트 책도 그렇고 대기업다니는 부장님 이야기도 그렇고 코로나 때문에 많이들 지쳤는지 공감이 되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은 후로 매일같이 화려한 꿈을 꾸고 있다. 어린 시절에 나는 자각몽을 자주 꿨고,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공중에 뜬 채로 거리를 거닐 수 있었다. 그게 아무나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안 이후로는 가진 게 별 거 없는 내게 특권이 생긴 것 같아 꽤나 감격했었는데 어느 순간 꿈을 많이 꾸지 않았고 그 감격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요즘엔 다시 꿈을 꾼다.


불편한 편의점이 좋았던 이유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일상에선 그저 피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지 않은 존재로만 보였던 사람들 혹은 내 일상이 바빠 딱히 관심가질 이유가 없었던 사람들에 대해 그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한가 물음표를 갖게 한다. 이 책을 읽고 편의점에서 일하던 언니의 일상을 떠올렸다. 폐기 상품을 한 봉지 가득히 가지고 와선 마치 산타라도 된 양 우리에게 나눠주던 언니 모습이.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마주쳤을 수많은 JS들과 그들에게 적당히 친절함을 베풀었을 언니의 모습. 이제 우리는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 만큼 배고프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불행은 종종 그립게 느껴지기도 한다.


2


나오미는 온실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도,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불평하는 사람들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희망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상승할 때는 의미가 있지만, 다같이 처박히고 있을 때는, 그저 마음의 낭비인 것이다.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中



예전에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을 읽은 후 그녀의 행보에 기대를 한 적이 있다. 기대를 하면서도 어쩌면 적당한 과학 지식에 감성 한 두 스푼을 얹어 쉽게 쉽게 글을 써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경계하기도 했다.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 M은 그녀의 글은 SF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가 이미 아주 오래 전 나온 것들이고 내용도 새로울 게 없다는 거였다. 나도 조금은 동의했다. 우리는 그녀에 대한 판단을 그녀가 장편소설을 낼 때까지 유보할 수 있을 거라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그 후 김초엽이 장편소설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전혀 읽을 생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끌리지가 않았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책에 호기심이 갔다. 


SF인데 온실이라니. 세상의 종말과 식물로 되살리는 세상 같은 뻔한 이야기려나,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역시나 소재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역시나 그녀는 롱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이과생은 자신의 성향 때문에 이과가 최적이고, 실제로 이과 공부를 하면서 좀 더 이과스러워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김초엽에게는 그런 편견이나 고집이 없다. 과학에 대해 모르면서 SF를 쓰겠다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믿음이 가고 그 와중에 그녀에겐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있다. 이과고 문과고 뭐고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묘한 매력이 그녀에게 있다. 그녀에겐 그녀만의 것이 있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근 읽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나 불편한 편의점, 그리고 김부장 이야기나 지구 끝의 온실은 적당한 가벼움과 감성 때문에 책을 덮고 나면 금세 잊게된다는 것이다. 어렵게 읽어야 더 기억에 남는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 같은 책은 카페에서 술술 한 두 시간이면 읽을 책이지만 삶의 순간 순간에 떠오른다. 이를테면 아래의 구절같은 것.



샛강을 따라 걷다 우리 텐트로 돌아오거라. 할머니와 내가 기다리고 있으마. 한번 해보렴. 조금 갔다가 돌아오면 되니까. 보니랑 함께.

-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3

벌써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작년보단 많이 읽었다. 아무 것도 쓰지 않은 것에 비하면 너무 조금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많이 읽은 장르인 걸 보면 사실은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2021년의 독서>

경제 2권

과학 6권

사회과학 5권

소설 14권

시 1권

에세이 18권

역사 1권

예술 1권

인문학 3권


별점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아무 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별점을 주는 건 꽤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왓챠나 유튜브 등이 연관성을 가지고 추천영상을 제시하듯 누군가의 별점 리스트는 그 사람의 독서 성향을 알려주고 그건 비슷한 성향을 가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 




4

한 해의 독서목록을 보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가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이를테면 8월 말의 난 좀 지쳤었나보다, 라거나.....


올해 가장 좋았던 책은 단연 이 책이다. 



이 책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그만큼 세상이 좋아질 것 같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김원영 변호사의 글은 항상 깨달음을 주지만 이 책은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나를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진정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김원영, <희망 대신 욕망> 中


위의 문장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2-01-0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원영 변호사님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갖고만 있는데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희망 대신 욕망>이랑 <사이보그가 되다>도 읽어보고 싶어요. 지난해 김초엽을 처음 만났는데 <지구 끝의 온실>도 찜합니다. 봄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봄밤 2022-01-02 08:17   좋아요 0 | URL
어서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독서괭님도 복 많은 한 해 되세요 :)
 

1.


유치하기 짝이 없어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읽고야 말았다. 밀리의 서재로 읽었는데,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잠든 것을 사랑하는 이가 목격함.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읽었더니 요즘 자주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잠든다. 심지어 책 때문인지 간만에 휘황찬란한 꿈들을 꾸고 있다.


어쩌다 작가가 한 인터뷰내용을 봤는데, 삼성을 다니다 그만두고 쓴 최초의 소설이 이 책이라고 한다. 단편조차 써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처음으로 쓴 소설이 이렇게나 완성도가 있다니 앞으로의 모습이 참 기대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소재에 기대 내용은 조금 유치하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인생이 뭐 그렇게 진지하지도 않지, 싶은 생각. 


내용이 좀 덜 유치해지고 세계관이 좀 더 자세히 잡힌다면 영화화했을 때 해리포터같은 대작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리즈물로 만들자니 갈등이나 목표를 만들기 어려운 구조라서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까 궁금하긴 하네. (그래도 내가 제작자라면 어떻게든 만들어보고 싶을 듯 한데.)


읽으면서 모모 생각이 났다. 작가의 인터뷰 내용 중 쉽게 썼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쉽게 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난 늘 쉽게 못 써서 어렵게 썼는데.(그리고 여기 북플에도 그런 사람들 좀 많아 보임.. 쉬운 말로 설명할 줄 알아야 잘 설명하는 건데 그것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다보니... 말이 길어지고 장황해지고 재미가 없지. 꼭 내 리뷰같네)



2.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들의 생활은 어렵기만 했다. 식량과 물자 부족이 더욱 심각해졌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더할 수 없이 커다란 괴로움을 겪고 있었으나, 반대로 부자들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페스트가 사람들의 생활을 불평등하게 만든 것이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中




2

내 기억 중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마당에서 쇠똥구리를 봤다는 것이다. 쇠똥구리는 이젠 거의 멸종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려서 쇠똥구리를 본 것이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란 것을 오랫동안 전혀 몰랐다. 

-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中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일평생 딜런을 사랑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우울, 자살, 살인, 이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물었던 것,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애를 어떻게 기른 거야?"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혹독하게 던지면서 살았다. 일생에 걸친 고뇌와 고통 끝에 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이것이었다.

"사랑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 같은 책 中



처음에 정혜윤 작가가 '아무튼, 메모'를 쓴 작가란 걸 알고 난 후 절망했다. 아, 내가 그 작가의 책을 산 거였다니. 진짜 재미없을 것 같은데. (난 재미가 없으면 중간에 그만 읽기 때문에 그 책이 후반부에 재밌어지면 그 책의 매력을 영영 모르게 된다....여전히 아무튼 메모의 뒷부분이 재밌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깨달았다. 난 성향 자체가 청개구리라, 남이 울라고 하면 못 울고 남이 울지 말라하면 울 것 같단 걸.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도 딱히 눈물난 적 없었는데(그 책은 자꾸 나보고 울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안 났다..) 이 작가가 덤덤하게 전하는 이야기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보면서 이 사람 참 좋은 작가였구나, 새롭게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난 그 터무니없는 소리를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는, know의 의미가 아니라 try의 의미이다. 이해하려 노력하겠다는 의미다. 이 책은 사람들을 노력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번 적어둔 '소년이 온다'의 구절처럼 개인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진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도망가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노력해볼 수 있도록.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면 종종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선한 마음 하나로 이뤄내는 숭고한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우리에게도 그런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1-12-12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쉬운 글을 적극 지향하는 1인인데요, 북플에도 그런 사람들 많아보인단 말에 너무 공감합니다. 다들 너무 어렵게 글을 써서 어쩔땐 리뷰라기보다 또하나의 책을 쓴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에 비하면 봄밤 님의 글은 어렵지 않아서 읽기 좋아요!

청아 2021-12-12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글 저도 좋아요! 마지막 말씀이 특히 와닿습니다.^^
 

1.


만남은 서로의 책임이야. 뭐든 지나치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中



이 문장을 보고 왜 엄마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지나쳐온 연애들과 상대방에게 미안했던 상황들, 그렇게 연애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문득 엄마부터. 엄마들은 왜 늘 미안해할까? 우리의 만남은 서로의 책임이 아니어서? 수많은 확률을 뚫고 내가 태어난 것에는 내 책임 또한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건 조금 과장된 일일까?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미안해했던 어렸을 적 기억들도 떠올랐다. 이를테면,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의미없이 내뱉었던 '미안해요'라는 말 같은 것들. 나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 문장대로 '뭐든' 지나치게 미안해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도.



새로운 챕터에 들어갈 때마다 인용구가 적혀있는데, 그때마다 잠시 멈춰있게 된다. 좋았던 구절들을 기억용으로 적어둔다.


모든 것에는 깨진 틈이 있어. 빛은 바로 거기로 들어오지, - 레너드 코헨 'Anthem'


그렇게 세상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다. 내 인생의 바깥쪽에서. - 에쿠니가오리, <낙하하는 저녁>


지금 나는 삶을 즐기고 있다. 한 해 한 해를 맞을 때마다 나의 삶은 점점 즐거워질 것이다. 이렇게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저기 밖에는 다른 삶이 있어. 내 말을 믿어." -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내가 산투리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 되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조르바?" "이런, 모르시는 군,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언젠가 누가 그랬어.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 섰다면, 그땐 이미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바람의 그림자>


누군가를 잃어서 슬픈 것은 그 사람 앞에서만 가능했던 나의 모습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외로움이다. - 히라노 게이치로의 TED 강연 중




2.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 한강, <소년이 온다> 中



독자를 '너'라고 지칭하며 쓴 책들은 처음 읽을 땐 신선하지만 그 이후에는 비루하기 짝이 없다. 가끔 어떤 책들은 신선(하다고 생각했을)한 그 방식으로 부족한 알맹이를 숨기려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다르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해 이런 방식은 필연적이다. 각각의 챕터 구성은 사실 너무 아쉽다. 조금 뻔하기도 하고, 감정이 과잉되기도 해서 독자가 슬퍼지기 전에 글이 먼저 울음을 터뜨리는 느낌이다. 읽은지는 조금 지났는데 그래도 아직 '동호'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기억에 남는 책이었음은 확실한 듯.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것은 인용한 것처럼 가상으로 지은 듯한 아래의 내용이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같은 책 내용 中



사람이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사건들을 생각하면 위의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런 상황들은 식상하다. 더군다나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까지,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질문은 무용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의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고 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이 불안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낮은 단계에서의 폭력은 아닌가. 그러면 여기에서 몇 가지의 정의와 규칙이 충돌한다. 나의 안정이 우선인가 타인 또는 사회의 안정이 우선인가. 나의 안정이 우선이되 타인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라고 제한 조건이 붙는다면 그 타인의 범위는 어디까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동등한 인간이라고 정말로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은 배려하지 않으면서 혼자서 우아한 삶을 즐기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시간을 되돌려 그때 그 자리에 당신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죽어가는 친구의 몸을 어떻게든 끌어왔을까, 도망을 갔을까, 총을 들었을까, 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