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쪽 귀퉁이를 등 뒤에서 어깨로 넘겨, 앞쪽의 다른 귀퉁이에 묶는다. 즉석 토가가 완성됐다.

"자체 보행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혼수에서 깨어난 혼수투스 황제다. 짐의 앞에 무릎을 꿇으라."

-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 中



푸하하하하. 어떻게 웃음을 써야 이 즐거움이 전달이 될까. 언어는 정말 많이 발달했지만 웃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너무나 구식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은 배아플 정도로 웃긴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나 이히히히힉 따위로 글을 써버리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마주할 때면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기 십상이지만,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던 나로서는 작가가 느꼈을 창작의 고통이 느껴져 짠하기까지 하다. 우하하하학 이히히히힉 정도면 지금 내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앤디 위어는 정말 재밌는 사람이다.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웬만해선 웃음소리를 내지 않는 기막힌 무뚝뚝함을 지니고 있는 내가 어느 순간 깔깔거리며 애인에게 해당 페이지를 보여주게 된다. 애인은 웃지 않는다. 개그에도 기승전결이 있는 법이니 결만 보고 웃을 수는 없다. 결국 이 '웃김'을 공유하고 싶은 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똑똑한 앤디 위어는 뒷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웃겨준다. 아주 유쾌한 사람이다.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수학의 명제가 현실에 관한 어떤 설명을 제공하는 한 그것은 불확실하며, 명제가 확실하다면 그것은 현실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中



나는 나 자신이 자연과학도였으면서도 아인슈타인의 말에 빗대어 과학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어떤 문장이 당신의 마음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한 그것은 문과생의 글이며, 이과생의 글이 확실하다면 그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리 없다."


그만큼 이과생이 감정을 건드리는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끼리 대학 시절을 함께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그들은(이럴 때는 선을 긋고 싶다) 시도때도 없이 '이과생 개그'를 투척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웃기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을 유쾌하면서도 짜증나게 만드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내 삶에서 글을 잘 쓰는 이과생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도 써봐야겠다'고 이상한 결론을 내버리고 만 것이다.(성급한 일반화의 예를 우리는 삶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 글만이 똥망진창이다. 테드 창의 글은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미치도록 똑똑한데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 있다니. 어제 나는 테드 창의 단점을 발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다니. 나는 앞장에 그려진 그의 얼굴을 봤다. 어딘가 웹툰 작가 김풍을 닮았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모두 읽은 후에는 그 얼굴이 잘생겨보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비슷한 잘생김을 가지고 있다..)

아, 불공평해. 그러나 나는 합리화를 한다. 웃긴 글을 쓸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웃긴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어젯밤 나는 뒷부분이 궁금해서 잠을 설쳤다. 망할.


3

- 이중 최악은 뭘까요?

1. 망했고 망했다고 생각함.

2. 망했고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3. 망하지 않았고 망했다고 생각함.

- 음…… 4번은 없어요?

- 뭐요?

- 4. 망하지 않았고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中



이럴 때면 정지돈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어쨌든 이런 위대한 작가들이 있으니 SF는 물 건너간 것 같은데, 현재의 상황은… '3. 망하지 않았고 망했다고 생각함'에 해당할 듯. 주식창을 켰다가 황급히 눌러 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엄청난 손해 금액을 봤다가 그 손해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니 이상하게 돈 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나 정말 최악이네..) 엄청난 불행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이상한 종교에 의지하고 사재기를 하듯이 나는 책을 읽으며 불안감을 해소하는 편인 듯 하다. 다행히 우리의 태양은 여전히 살아있고,  1=2가 증명되어 자연과학이 무너지는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 행복해..


4

물리적 공간은 이러한 관계들의 망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결과로 생겨난 조직입니다. 이 선들은 그 자체로는 어디에도, 어느 장소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선들은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서 장소를 만들어냅니다. 공간은 개개 중력 양자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中



서재의 존재를 뒤늦게 깨달았다. 작년에 알라딘 적립금 3만원이 들어와서, 뭔진 몰라도 '개꿀'이구만, 생각하곤 북플 친구님께서 축하한다고 하셔서 '뭔진 몰라도 감사하구만.' 생각해버렸는데...(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옆에 두고 싶지 않은 태평함을 지녔네) 오늘 문득 이것저것 궁금해서 누르던 중 '이달의 마이페이퍼'라거나 '이달의 알라디너'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콜럼버스의 발견까지는 아니어도 나 나름대로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 듯한 이 신선함.. 


서평은 웬만해선 안 읽는다. 책에 대한 내 감정이 다른 감정으로 인해 변질되는 것이 싫고 나와 딱 맞을 수 있는 책을 누군가의 호불호로 발견하지 못하는 불행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다. 더군다나 책에 대한 호기심에 글을 클릭했는데 원치 않게 소설 내용에 대한 스포를 당한 적도 있어서 더더욱 서평에 대해선 겁쟁이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페이퍼는 나도 모를 이끌림에 종종 누르게 되는데, 스포를 하지 않으면서도 책이 주는 즐거움을 기깔나게 표현하시는 분들의 글이 그렇다. 추천사를 최소한으로 본 후 읽고 싶은 책을 담아두는 편인데, 요즘 읽고 싶은 책이 과하게 늘어 걱정...


어쨌거나 알라딘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이달의 페이퍼를 모바일앱으로도 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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